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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태

점태 點苔

수묵 산수화*를 그릴 때 점을 찍는 기법의 한 가지. 바위나 나무줄기 및 가지에 생긴 이끼나 작은 식물의 생략된 표현으로, 붓의 끝을 수직으로 내려서 찍는다. 또 채색화에서는 하나하나 윤곽을 만들고 그 내부를 녹청으로 채우는 일도 있다. 남송南宋 이후 화면의 요소요소에 찍어서 화면 전체의 조화를 잡고 분위기를 정비하거나 악센트를 가하는 효과를 낸다.

정 鼎

→ ‘이기’ 참조

정두서미묘

정두서미묘 釘頭鼠尾描

인물화에서 의문(衣文)을 표현하는 기법의 일종. 인물십팔묘* 중의 하나이며, 오대(五代)의 무동청武洞淸의 화법이라고 전하지만 구체적으로 밝혀져 있지는 않다. 붓을 강하게 댄 후에 차차 가늘게 직선적으로 끌어 빼는 식으로 그린다. 글자 그대로 못대가리처럼 단단하고 뭉툭하게 시작하여 쥐꼬리같이 곧고 가느다랗게 빠지는 선을 말한다. 남송南宋의 마원馬遠(마 위엔)과 절파*의 작품에서 이러한 의문선을 볼 수 있다.

정면성

정면성 正面性 frontality(영)

인물의 표현에 있어서 머리부분에서 발부분까지 인체 정면의 중심선이 수직이고 좌우대칭적으로 전개되며 나아가 표정이나 복장, 근육 등의 세부 사항들이 바로 정면에 서서 작품을 감상하는 관찰자 쪽을 향하는 특징을 갖는 것을 말한다. 물체를 입체적인 유기체로 이해하는 능력을 결여한 정면성은 19세기말 덴마크의 예술학자 랑게Julius Henrik Lange가 만들어 낸 용어이다.
그는 초기 문명의 예술, 특히 이집트나 고대 그리스의 아르카익* 조상(彫像)들에서는 정면에서 보는 시점으로 대상을 표현한다는 특징에 착안하여 ‘정면성의 법칙(Gesetz der Frontalitat, Law of Frontality)’이라는 학설을 제창하였다. 그리스 아르카익 조각의 예를 들어, 조상(彫像)은 일직선의 중심축을 기준으로 대칭을 이루며 관람자를 향해 정면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특징들은 헬레니즘* 조각과 원시미술 등에서 자주 발견되는데, 이는 인체를 관념적으로 포착하기 때문이라고 설명되기도 한다. 특히 로마의 부조*나 비잔틴 미술*의 이콘에서는 권력이나 위엄을 표현하기 위해서 정면성을 지향하였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이미 고전기에 정면을 향한 경직된 자세를 벗어난 조상이 나타나기도 하는 등 정면성의 법칙은 랑게의 주장만큼 엄격하지도, 적용 범위가 넓은 것도 아니다.
그는 정면성이 원시 미술에서 회상 이미지가 우세한 데 기인한다고 생각했으나, 오늘날에는 정면성을 시각적 접근이라기보다는 순수 이성에 의한 접근의 결과로 설명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즉 조각가는 자신이 본대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물체가 존재한다고 자신이 알고 있는 대로 만드는 것이다.

정물화

정물화 靜物畵 still life(영)

스스로의 의지로 움직이지 못하는 생명이 없는 물건, 즉 화초, 과일, 죽은 동물과 새, 악기, 식기, 책 등을 그린 회화*. 용어 자체는 네덜란드어에서 유래했으며 17세기 중반까지는 사용되지 않았던 것으로서, 움직임이 없는 자연의 모습을 의미한다.
정물은 고대 로마의 모자이크*나 폼페이의 벽화*에서도 발견되었으며, 인간에 대한 관심에만 치중했던 중세에는 상대적으로 정물화가 거의 발달하지 못했다. 그러나 동시대 동양의 화가들은 식물과 곤충, 새들의 삶에 대한 다감한 이해를 그림을 통해 보여주었다. 서양에서는 14세기말경에 약간 시도되었으며 16세기에는 죽은 새와 물고기가 단독으로 그려지기도 했다.
이후 정물이 독립된 화제(畵題)로 확립된 시기는 17세기로서 네덜란드, 프랑스, 스페인에서 세밀묘사의 대상이 되면서부터이다. 정물화는 특히 네덜란드에서 성행하였는데, 루벤스Pieter Paul Rubens(1577~1640), 브뤼겔Pieter Bruegel(c.1525~1569), 렘브란트Rembrandt(1606~1669) 등이 대표적이다. 독립된 명칭으로 불리게 된 것은 18세기 네덜란드의 학자 호우브라켄Arnold Houbraken에 의해서였다.
동시대 화가인 샤르댕Jean Baptiste Chardin(1699~1779)에 와서 고유한 성격을 지닌 예술의 하나로 격상되었고, 19세기에 이르러 가장 일반적인 회화의 제재(題材)가 되었다. 또한 생활의 기록인 정물화는 그림을 시각적인 일화나 어떤 외부 자연물의 재현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형태와 외관의 창조로 보는 20세기의 새로운 미학과 더불어 20세기 예술사조에서 특징적인 장르*의 하나가 되었다.

정밀미술

정밀미술 精密美術
Ars Accuarta(라)

연속적이고 수학적인 질서가 있는 도식의 시각적인 표현으로서 현대미술에 있어서의 구축주의* 문맥의 한 발전 양상. 기하학적 추상*의 선구자였던 몬드리안Piet Mondrian(1872~1944), 말레비치Kasimir Malevich(1878~1935), 모홀리-나기 László Moholy-Nagy(1895~1946), 반 되스부르크Theo van Doesburg(1883~1931), 리씨츠키 El Lissitzky(1890~1941), 앨버스Joseph Albers(1888~1976), 바자렐리Victor Vasarely(1908~ ) 등의 작품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정밀미술은 수학적인 문맥을 시각화하려 시도한다. 특히 독일과 체코의 미술가들은 보다 과학화된 구축주의에 관심을 보이고 있으며 바우하우스*, 데 스틸*, 절대주의*의 전통에서부터 그 이념을 모색한다. 기술적으로 발전한 현대의 정밀미술은 빛과 운동, 색채와 공간에 대한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관찰을 시각화한다. 또한 특수 도식에 따라 기하학적인 색면과 입체적인 건축적 요소를 조직화, 공식화한다. 이러한 작업들은 절대적인 정밀함을 요구한다. 정밀미술의 대표적인 작가로는 로제Richard Lohse(1902~1988)와 빌Max Bill(1908~1994) 등을 들 수 있다.

정밀주의

정밀주의 精密主義 Precisionism(영)

미국의 구상회화 경향으로 1915년경에 일어나 1920년대를 거쳐 1930년대까지 전개되었으며, 입체주의*와 미래주의*, 오르피슴*에 기원을 두고 있다. 쉴러Charles R. Sheeler(1883~1965), 데무스Charles Demuth(1883~1935), 오키프Georgia O’Keeffe(1887~1986) 등이 정밀주의의 대표적인 작가들이다.
이들은 공식적인 강령을 지닌 하나의 통일된 유파*나 미술운동을 형성하지는 못했지만, 1920년대에 공동으로 작품을 전시하며 연대성을 보였다. 그 특징으로는 말끔하게 제거한 붓질의 흔적, 단순화된 형태, 단조롭고 넓은 색면의 바탕, 형태를 뚜렷하게 정돈하는 윤곽선 등이다. 정밀주의라는 명칭도 이처럼 매끄럽고 정밀한 기법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정밀주의 회화의 고도의 정밀성과 매끈하고 완벽한 기교는 사진*을 연상시킨다.
실제로 쉴러는 직접 사진을 찍었으며, 당대의 유명한 사진작가 스티글리츠Alfred Stieglitz(1864~1946)의 부인이었던 오키프는 그림을 사진영상 배치와 비교하기도 했다. 이들이 즐겨 그린 주제는 도시나 농촌의 지평선, 뉴욕 맨해턴 풍경, 공장과 굴뚝, 마천루와 교량 건물과 기계 등 대부분 미국의 산업과 건축에서 모티브*를 차용*한 산업적인 풍경이었다. 그리고 곡물창고와 외양간, 빈 벌판, 하늘이 있는 농촌 풍경도 그렸다.
반면에 정밀주의 회화에서는 인물이나 인간적인 흔적의 묘사가 배제되었고, 사회적인 주제의 비판적 언급 또한 없는 차가운 미술로서 관람자와 일정한 거리를 두었다. 단순히 기계적이고 형식적인 양식을 추구하였던 그들의 작품은 어느 정도 추상성을 띠었는데, 그림의 주제도 내용보다는 기하학적 형태의 구성을 위해 사용되었다. 정밀주의 회화는 현대 미국의 추상미술이 발전하는 데 일부 기여하였으며, 특히 미국의 극사실주의*와 팝 아트* 작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정병

정병 淨甁 Kundika(범)

→ ‘불구’ 참조

정사

정사 精舍

산스크리트어 비하라vihāra*(僧院)의 한역(漢譯). 승려들이 모여 사는 곳. 안거를 지내기 위한 실질적인 목적에 의해 생겨났으나 시대가 흐르면서 종교의례를 집행하는 성소*(聖所)로서 성격이 변화하였다. 즉 정사는 승려들의 공동주거지이자 법회 등을 집회하는 장소로 사용되었다.
시대가 흐름에 따라 대건축군으로 조직화되어 발전하게 되는데, 그 예가 인도의 나란다Nālanda, 인도차이나*의 앙코르와트*Angkor Wat, 한국의 해인사 등이다. 중국에서는 승려들이 모여사는 곳을 사원(寺院)이라 하였고 최초의 사원은 백마사百馬寺이다. 당대(唐代)에는 사(寺)와 원(院)을 같은 의미로 보았으나 후대에 이르러 사(寺)는 원(院)보다 넓은 의미로, 가람* 전체를 가리키게 되었다.
한국과 일본에서는 사원을 절이라고 부르는데, 여러 가지 해석이 있으나 정확히 알 수 없다. 일반적으로 절은 불상*을 모신 불전*과 당탑(堂塔)을 모시고 승려들이 거주하면서 불도를 수행하는 곳으로, 가람을 의미한다. 정사는 지역과 기능에 따라 약간 변형되었을 뿐 사원, 가람, 절과 본질적으로 같다고 할 수 있다.

정서

정서 情緖 emotion(영)

→ ‘감정’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