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굽타시대 미술

굽타시대 미술 Gupta Period Art(영)

굽타 왕조는 320년 인도 동부(옛 마가다국) 비하르의 파탈리푸트라(현 파트나Patna)에서 찬드라굽타Candragupta 1세가 즉위함으로써 시작되었다. 아들인 사무드라굽타Samudragupta 시대에는 북인도 전역을 지배하는 통일 제국이 되었지만 6세기 초 백훈족(Epthalites)의 침입으로 인해 굽타 왕조는 마가다 지역의 군소 왕조로 세력이 약화되었다가 550년경 멸망했다.
따라서 굽타 시대 미술은 4세기초에서 6세기 중엽까지 북인도를 중심으로 진행된 미술만을 가리킨다. 굽타 왕조의 멸망 이후 하르샤Harsa가 카나우지를 수도로 재차 북인도를 통일하여 하르샤 시대(606~647)가 약 40년간 지속되기도 하였으나 그 이후에 다시 분열되었다. 반면에 남인도는 안드라* 왕조를 이어 팔라바*, 찰루키야* 등의 독립 왕조들이 통치하고 있었다.
굽타 시대의 미술은 제국의 흥성과 인도 고전 문화를 배경으로 5세기에 절정을 맞이했다. 이 시대에는 제국의 융성과 고전문화의 전개, 확신을 배경으로, 높은 이념과 세련된 기법의 극히 수준 높은 미술을 개화시켰다. 이 시대 불교 미술*의 중심지는 마투라*와 사르나트*이다. 불교 조각상들은 균형과 조화를 이룬 인도적 고전기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또 이 시기는 굽타 문화권 지방에서 석굴사원의 제2의 전성기로 데칸 고원 서부에 있는 아잔타 석굴*에 굽타 양식의 벽화*들이 많이 남아 있으나 굽타 이후 불교 미술은 점차 쇠퇴하게 되었다. 굽타 시대는 신상과 석굴 등의 힌두교 미술*이 발달하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하다. 5세기초에서 중엽까지의 우다야기리Udayagiri 석굴, 6세기 전반인 데오가르Deogarh의 비슈누* 신전, 6세기 중엽의 엘레판타Elephanta 석굴 등은 굽타 시대의 중요한 힌두교 유적지이다.

궁륭

궁륭 穹窿 vault(영) voûte(프)

건축 용어. 돌이나 벽돌 또는 콘크리트의 아치*로 둥그스름하게 만든 천장. 기능에 따라 독특한 여러 형태의 것들이 개발되었는데, 측면의 압력이 쏠리는 지점에 부벽*이 마련되어 있는 점은 공통된 형태이다. 종류와 그 특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원통형 궁륭(barrel vault)—로마 시대에 처음 나타났으며 연속된 아치들로 이루어진 반원통 모양의 구조물이다. ②교차 궁륭*(cross vault)—같은 크기인 두 개의 반원형 궁륭이 서로 교차하여 생긴 것으로, 모서리가 날카롭고 네부분으로 된 경간 구획*을 이루거나 또는 이 두 개의 궁륭이 만나는 곳의 궁륭 교차선(groin)으로 된 경간 구획을 이루기도 한다. ③늑재 궁륭*(rib vault)—구조상의 힘과 장식을 위해 궁륭에 늑골*을 댄 궁륭. ④성형 궁륭*(星形穹窿, stellar vault)—영국의 웨스트민스터 성당 등에서 보는 바와 같이 천장 부분에 장식 늑골이 꽃과 같이 펼쳐져 교차하는 궁륭으로, 복잡한 아름다움을 보여 준다. ⑤그물형 궁륭(Netzgewö lbe)—여러 개의 늑골을 이용하여 늑골 상호간이 그물의 눈처럼 짜여지도록 배치시켜 만든 궁륭.
이 밖에 조형 궁륭이나 원뿔 모양의 장식 격자적인 요소가 든 늑재 궁륭을 정교하게 한 것으로서 ‘부채 궁륭*(fan vault)’, 중심부를 가로질러 늑골을 대어 기둥 사이의 경간 구획을 여섯 부분으로 나누는 늑골 교차 궁륭인 ‘육분할형 궁륭’ 등이 있다.

권계화

권계화 勸戒畵

권선징악과 충효사상 등 유교도덕에 바탕을 둔 내용을 교육적 목적으로 그린 회화. 중국에서 한대(漢代)에 많이 그려졌다. 권계화는 그림의 소재나 형태면에서도 주로 역사나 민담의 성인, 현인, 명군, 열사, 열녀 등의 인물이나 행적을 주제로 했다. 권계화는 회화*를 도덕교화의 수단으로 여긴 유교적 회화관을 보여준다.

→ ‘열녀도’ 참조

궐두묘

궐두묘 橛頭描

→ ‘인물십팔묘’ 참조

궤 簋

→ ‘이기’ 참조

궤두묘

궤두묘 撅頭描

인물화*의 옷에 무늬를 그리는 기법. 궤(撅)는 나룻배를 뜻하는 것으로 필획의 모양을 비유하여 붙인 이름이다. 붓끝이 닳아 없어진 독필(禿筆)로 처음 붓을 댈 때에는 굵게 그린 후 끝을 가늘게 빠지게 하는 선묘법(線描法)을 말한다. 인물십팔묘*(人物十八描)에서 마원馬遠(마 위엔), 하규夏珪(시안 꾸에이)의 인물표현에 포함되어 있으므로 산수화 속의 점경인물(點景人物)을 묘사하는 기법인 것으로 생각된다.

귀갑문자

귀갑문자 龜甲文字

→ 갑골문

귀면문

귀면문 鬼面文
gui-mian-wen(중)

벽사(辟邪)의 뜻으로 괴수(怪獸) 얼굴을 나타낸 문양. 대체로 얼굴부분을 표현하였으나 몸체까지 나타내기도 하였다. 귀면문의 형상은 험상궂고 무서운 것이 특징으로 그 기원은 은대(殷代) 청동기의 도철문*(饕餮文)인데, 이후 귀면으로 발전하면서 용문양이나 사자문양의 영향으로 소의 뿔, 맹수의 치아, 사자의 갈기 등을 조합해 놓은 듯한 험악하고 위압적인 귀면문의 기본형이 완성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귀면문은 인간생활을 위협하는 재앙과 질병 등의 사악한 것들을 초자연적인 존재인 ‘귀(鬼)’의 힘을 빌려 멀리 쫓음으로써 행복을 얻고자 하는 ‘벽사구복(辟邪求福)’에 따라 만들어졌다. 따라서 외부의 세계로부터 보호할 신성한 공간의 입구에 장식되게 마련이어서 궁궐사원과 같은 건축물의 기와류, 출입문의 고리, 묘실(墓室)의 장식 등에 자주 쓰였다.
또한 공예품의 손잡이를 물리는 장식에도 수면문(獸面文)이 장식되었는데, 이는 문을 꼭 닫고 숨어버리는 우렁이신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일명 ‘포수(鋪首)’라고도 한다. 이러한 포수 또한 은, 주(殷周)시대 청동기에 장식된 도철문과 유사한 ‘희수(犧首)’에서 파생된 것이다. 몸체까지 표현한 괴수의 형상을 ‘외수화*(畏獸畵)’라고도 한다. 한국에서는 귀면문이 고구려 고분벽화의 기둥 위나 천장에 보이며 삼국시대 이래로 기와, 방울, 대도(大刀)의 손잡이 등에 다양하게 장식되었다.

귀면준

귀면준 鬼面皴

산수화를 그릴 때 암벽이나 토산의 표면을 그리는 준법*(皴法)의 하나. 도깨비의 얼굴과 같다고 하여 지어진 이름으로 ‘귀피준(鬼皮皴)’이라고도 한다. 퇴적암의 특질을 표현하는 데 많이 쓰이는데, 산의 전체적인 모습이나 바위들의 형세를 귀신의 얼굴처럼 험상궂게 그려 괴이한 느낌을 준다. 석도石濤(스 타오, 1641~1717)의 《고과화상화어록苦瓜和尙語綠》과 장대천張大千(즈앙 따지앤)의 《화보畵譜》 등의 저서에서 언급하고 있다. 실례로는 남송대(南宋代) 염차평閻次平(이앤 츠핑)의 전칭작인〈사락도四樂圖〉와 청대 원강袁江(위앤 지앙)의 작품에 잘 나타나 있다.

귀부

귀부 龜趺 guifu(중)

비갈(碑碣)의 받침(台座)의 일종으로서, 거북 모습을 한 것. 한대(漢代)의 비는 거의 네모난 방부(方趺)인데 후한後漢 말기가 되면 〈익주태수고이의 비 益州太守高頤碑〉처럼 위에 청룡을, 아래에는 현무 등 사신*(四神)을 조각하여 장식을 가하게 된다. 귀부는 이러한 현무, 즉 거북의 조각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또한 양梁의 천감 17년(天監, 518)의 〈안성강왕소수비安成康王蕭秀碑〉 〈임천정왕 소광의 비臨川靖王蕭宏碑〉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신라태종무열왕릉비新羅太宗武烈王陵碑〉(661경)와 신라 경문왕 8년(868)에 조성된 〈쌍봉사雙峰寺 철감선사탑비澈鑒禪師塔碑〉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