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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레타리아 미술

프롤레타리아 미술 Proletarian Art(영)

프로 미술이라 약칭되는 수가 많다. 노동자 계급의 사회의식 고양(高揚)을 반영하며, 그들을 중심으로 하는 민중 계급의 생활과 투쟁의 양상, 그리고 지배자의 압제, 허위, 부패를 그리는 미술.
도미에Honoré Daumier(1808~1879), 뫼니에Constantin Meunier(1831~1905)를 선구로 하며, 19세기말부터 1920년대에 국제적인 노동 운동이 전개되면서 성행하였다. 독일의 콜비츠Käthe Kollwitz(1867~1945), 그로츠George Grosz(1893~1959), 프랑스의 스탱랑Théophile-Alexandre Steinlen, 미국의 그로퍼William Gropper(1897~1977), 멕시코의 리베라Diego Rivera(1886~1957), 오로츠코José Clemente Orozco(1853~1949), 시케이로스David Alfaro Siqueiros(1896~1974) 등이 유명하다.
그 표현에는 개개의 작가에 따라 관념적인 저항성, 희생과 비참에 대한 인도주의적 감상(感傷), 염세주의적 또는 허무주의적인 현실 폭로의 태도, 우의적(寓意的) 혹은 도식적(圖式的)인 단순한 묘사가 많으며, 갖가지의 뉘앙스*가 있다. 점차로 방법론적 자각이 전개되어 프롤레타리아 리얼리즘의 주장이 일어났고, 1930년대 중반부터 이 운동의 주류는 사회주의 사실주의* 속으로 발전적 해체를 하였다.

프리마 묘법

프리마 묘법 alla prima(이)

이탈리아어로 ‘단번에’ ‘일시에’라는 뜻이다. 밑그림을 그리고 나서 그림물감을 몇 겹이나 쌓아가는 투명다층(透明多層)의 글라시*, 불투명 다층의 파트 기법에 대하여, 밑그림 없이 그림 물감의 단일한 칠로써 그리는 기법이다. 바탕칠의 순수성을 잘 유지하고, 그림물감 층의 상하의 상호 반발이 없으며 표면의 균열이나 변화가 적다. 오래 전부터 다층묘법(多層描法)과 나란히 행해졌으며 루벤스Pieter Paul Rubens(1577~1640), 앵그르Jean-Auguste Dominique Ingres(1780~1867)의 작품에 이 기법이 쓰이고 있다. 색채감의 변화와 마티에르*의 쇠퇴로, 오늘날에는 고도의 숙련을 필요로 하는 이 프리마 묘법이 잘 쓰이지 않고 있다.

프리미티브

프리미티브 primitive(영)

프리미티브라는 용어는 예술에 관한 저술에서 다음의 세 가지 의미로 사용되어 왔다. ①19세기말에는 진화론자들의 관점에서 문명의 중심지로부터 직접적인 영향권 밖에 있는 민족에게 프리미티브라는 말이 사용됐다. 그래서 아프리카 흑인, 에스키모, 태평양의 섬 주민들과 그들의 미술품이 ‘프리미티브 아트’라고 불렸다. 그러나 그 후 이러한 문화들이 반드시 문화의 형성기나 퇴화기 단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서유럽 문명과는 분명히 다른 사회조직과 기술 체계 안에서 완성된 독특한 문화라고 인식되었다. 따라서 프리미티브 아트 또한 예술적 완성에 도달하기 위한 초보적 단계에 속한다.
②유럽의 미술사가와 미술품 감정가들 사이에서 프리미티브라는 용어는 유럽의 여러 제국 중에서 그림이나 조각의 역사적 발달 과정에서 초기 단계에 속하는 것, 그리고 이 초기의 미술가들이 자연주의적이고 환영주의적인 재현의 분야에서 성숙기의 미술가에 의해 성취된 것을 얻으려고 시도했지만 성공하지는 못했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물론 이것은 오류임이 밝혀졌다). 19세기 중기부터 이 용어는 르네상스* 이전의 서구 미술을 지칭하는 말로 쓰여졌는데, 그 이유는 이 시기가 과학적 원근법*과 해부학의 시대 이전이었기 때문이다. 프리미티브란 용어는 미술사가, 감정가, 큐레이터* 등에 의해 자주 사용되기는 했지만 그것은 가치를 매기는 것도 아니며 완성 단계에 이르지 못한 초보적인 것을 이르는 말도 아니다.
③미술사가들이 전문적 교육을 받지 않고 그 시대의 전통적 또는 전위적 방법과는 다른 방식으로 독특한 소박성을 보여주고 있는 미술가들에게 붙인 명칭이다. 대표적인 예로 루소Henri Rousseau(1577~1640)를 들 수 있으며, 최근에는 모세Olivier Mosset가 있다. 용어가 가진 의미 자체만 볼 때 프리미티브란 정통적 기술이 모자라는 것을 의미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자연스러운 매력을 전해줄 수 있다는 가정이 따른다.

프리미티비즘

프리미티비즘 Primitivism(영)

1905년과 1920년 사이에 야수주의*와 입체주의*의 영향을 받아 일어난 러시아의 표현주의* 경향의 화가들을 가리킨다. 이 화가들은 러시아의 민속 미술*로부터 강력한 자극을 받아, 주로 러시아의 하층 계급의 생활 장면을 많이 그렸다. 그들은 또한 기술적으로는 고도로 단순한 형식과 강렬한 색채를 즐겨 사용했다. 모스크바의 푸른 장미파* 회원들, 라리오노프Mikhail Larionov(1881~1964), 곤차로바Natalia Sergeevna Goncharova(1881~1962), 부르류크 형제David & Vladimir Burliuk 등은 전형적인 프리미티비즘 작가들이다. 말레비치Kasimir Malevich(1878~1935) 또한 초기 단계에서는 프리미티비즘을 추구한 화가였다.

프리즈

프리즈 frieze(영)

①그림이나 조각*으로 장식된 건축물의 외면이나 내면, 기구(器具)의 외면의 연속적인 띠 모양의 부분. ②서양 고전 건축의 주식*에서 아키트레이브*와 코니스* 사이에 끼인 부분. 도리아 양식*에서는 여러 단위로 되어 있는 트리글리프*와 메토프*로 구성되어 있으며, 메토프는 부조*로 장식되어 있는 것이 보통이다. 이오니아 양식*과 코린트 양식*에서는 혼히 연속된 부조대(浮彫帶)로 장식되어 있다.

→ ‘엔타블러처’ 도판 참조

플라스틱

플라스틱 plastics(영)

‘조형성 있는’이라는 의미의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말. 플라스틱 아트란 반죽하거나 틀에 넣어 형이나 모양을 만들 수 있는 물질을 이용하는 예술을 말한다. 회화*에서 플라스틱이란 말을 쓸 때는 부조*나 입체적인 인상을 주도록 묘사한 형태를 의미한다. 플라스틱이 처음 도입되었을 때는 기존 재료의 대체물로 사용되는 경향이 있었고, 그 결과 ‘플라스틱’이란 말은 ‘진짜가 아니다’라는 경멸적인 의미를 내포하게 되었다. 그러나 오늘날 플라스틱이란 외부의 힘, 또는 열에 의해 변형될 수 있으며, 그 후 원형으로 돌아가지 않는 성질을 지닌 자연 및 합성의 재료를 뜻하는 용어로 사용된다.
최초의 인조 플라스틱인 셀룰로이드가 미국에서 특허를 받은 것은 1869년이었으며, 최초의 합성 플라스틱 ‘베이클라이트’가 제조된 것은 1907년이었으나 현대의 플라스틱 산업은 1930년대에 들어서 확립되었다. 그 후 많은 건축가들, 디자이너들, 및 예술가들이 플라스틱을 소재로 사용해 왔으며, 플라스틱을 조각재료로 사용한 최초의 예술가는 펩스너Antoine Pevsner(1886~1962)와 가보Naum Gabo(1890~1977)이다. 그 밖에 플라스틱을 소재로 사용한 예술가들에는 플라이슈만, 올덴버그Claes Oldenburg(1929~ ), 칼더Alexander Calder(1898~1976), 길라르디Piero Gilardi, 세자르César(1921~ ), 모홀리 나기László Moholy-Nagy(1895~1946), 소토Jesus Raphael Soto(1923~ ), 이바랄Yvaral, 르 파르크Julio Le Parc(1928~ ), 쇠페르Nikolas Shöffer(1912~ ) 등이 있다.

플라잉 버트리스

플라잉 버트리스 frying buttress(영)

고딕*식 성당 건축의 독특한 양식으로 신랑*에 설치된 둥근 지붕의 무게를 떠받쳐 벽면으로 전하기 위해 측랑*의 지붕 위에 덮여진 아치*. 이 장치를 설치함에 따라 둥근 지붕의 하중을 계단식 홀에서 유지할 필요가 없게 되어 고딕 건축의 구조적인 미가 발달하게 되었다.

→ ‘부벽’ 도판 참조

플랑보와이양 양식

플랑보와이양 양식 Style Flamvoyant(프)

14세기 후반에서 16세기에 이르는 프랑스 고딕* 건축의 최종단계를 가리킨다. 19세기초, 드 코몽Arcisse de Caumont에 의해 건축사에 도입된 용어. 이 양식은 곡선 양식의 반대 형태이며 후기 고딕 양식의 특징인 격자창 장식으로부터 파생된 것으로서 마치 ‘불꽃’ 같은 형태를 이루고 있다.
장식이 보다 강조된 성숙기의 방사선 양식에서 볼 수 있는 건축의 특징을 반영하고 있다. 이 양식의 사용은 보통 성가대 본당 칸막이 같은 것에 국한되었으나, 교회 외부에 대해서는 보다 광범위하게 적용되어 교회 전체 모습을 완전히 변형시키기까지 했다. 최초로 1370년 루엥 성당의 서쪽 정면에 사용되었다. 이 양식은 상Sens, 보베Beauvais, 온브뢰Envreux 성당의 원화창(圓花窓) 형태나 루엥 성당의 푸르 드 뵈르 탑, 루엥 성당과 방돔의 라 트리니테La Trinité 성당의 정면 등에 나타나 있다.
이 형태들은 개별적으로는 매우 정교하나 실질감은 없다. 건축 장식이라기보다는 금속 세공 같은 독특한 인상을 주며 초기 양식과는 거의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대개 단조로움을 피하기 위한 노력이며 1510년 노르망디의 르네상스* 형태에서와 같은 과용은 창조성의 붕괴를 은폐하고 있다.

플럭서스

플럭서스 Fluxus(독)

유동(流動), 유출(流出), 변전(變轉)의 뜻으로, 본래 ‘밀려오는’이라는 라틴어에서 유래한 말이다. 혼합매체*(mixed media)적인 액션* 형식의 하나로 극단적인 반예술적 전위운동을 가리킨다. 1960년대 초 동명(同名)의 그룹이 조직되어 뉴욕을 중심으로 유럽 각지에서 활동했다. 그 구성원은 고정되어 있지 않으나 음악가, 화가, 시인, 무용가, 영화작가 등 전 예술 분야에 걸쳐 있으며 이들의 국적도 다양하다.
추진자의 한 사람인 마키우나스George Maciunas에 따르면, 플럭서스는 기존의 예술, 문화 및 그것이 만들어 낸 모든 기구에 대해 불신하는 반예술적, 반문화적인 전위운동이라고 선언했다. 그는 또한 유럽주의도 배격하고 예술의 전문화 및 예술적 자아를 증진시키는 모든 예술 형태에도 반대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또한 플럭서스의 멤버였던 보이스Joseph Beuys(1921~1986)는 혼합매체에 의한 무대 상연을 통해서, 연기(演技)와 문학의 창조성을 부정하고, 연기에 탐닉하는 해프닝*에 대해서도 반대 운동을 전개했다. 그리고 그는 자유 의지에 의한 픽션이 없는 이런 이벤트는 전통적인 극장 공간과 문학적 공상과는 배치되는 것으로, 현실성 자체를 전면에 드러내기 위해 무대에 올려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플럭서스란 개념은 바로 이와 같은 예술 행위를 가리키는 명칭이라는 것이다. 그 행위는 어떤 내용을 표현코자 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의 경과에 따라 저절로 구성되는 것으로 표현은 제한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모든 예술적 의도는 상대적으로 인위적 성격, 즉 부자연스러움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술=인생’이 아니고 ‘반예술=인생’이란 등식을 설정하고 있다. 특히 음악의 분야에서는 “경직된 과거의 형식과 사회적 인습을 건강한 카오스로 해체하는 경향”(요셉 보이스)이 백남준白南準에 의해 시도되었다. 즉 그는 개방적인 의식적 연쇄음(儀式的連鎖音) <심포니 No. 5>로서 이를 구체화하고 있다.
플럭서스의 멤버는 이 밖에 브레크트George Brecht, 오노 요코小野洋子, 히긴스Dick Higgins, 놀즈Alison Knowles, 패터슨Ben Patterson, 윌리엄스Emmett Williams, 영La Monte Young 등 1960년대 전위 예술의 중요 작가들이 거의 다 참여하고 있다. 플럭서스는 1962년부터 비스바덴, 코펜하겐, 파리, 뒤셀도르프, 암스테르담, 런던, 뉴욕, 기타 여러 도시에서 기념 행사를 가졌다.

피.피.

피.피. P.P.(영)

선사하기 위한 증정쇄. ‘presentation proofs’의 준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