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1 2 7

다문화주의

다문화주의 多文化主義
Multiculturalism(영)

민족중심주의의 반대 개념으로 나타난 개념. 하나의 국가 내지 사회 속에서 복수의 다른 인종, 민족, 계층 등이 존재할 때, 서로 다른 문화의 공존을 적극적으로 인정하고 그들 각자의 독자성을 육성하려는 입장.
미술에서의 다문화주의란 백인 중심의 유럽문화적 전통만을 우월한 것으로 생각하는 태도로부터 다양한 민족과 지역의 문화적 전통을 인정하는 차원으로의 변화를 의미한다. 다문화주의는 특히 모더니즘*이 갖는 순수주의 내지 중심주의를 탈피하려는 시각에서 필연적으로 포스트모더니즘*과 만나게 되면서 미술에서도 급속하게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이 개념은 1980년대말경 미국과 유럽에서 통용되기 시작했는데, 그 이유는 미국과 유럽에 이민으로 유입된 유색인 수가 증가하고 이에 따라 인종 차별적인 사건이 부분적으로 발생했기 때문이다. 또한 현대적 기술의 발달 덕분에 국경을 넘어서 정보와 사고의 즉각적인 전달이 가능해진 점도 다문화주의를 촉진시키는 역할을 했다. 다문화주의는 다른 문화에 속하는 미술을 ‘원시적’인 것으로 보거나, 문화적인 타자(他者)에 의한 색다른 산물로 간주하는 경향에 잠재하는 식민지주의의 흔적을 거부한다. 그리고 비유럽적인 문화에서 제작된 미술작품은 그들의 자체적 기준에 따라 평가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1989년 <대지의 마술사들Les Magiciens de la Terre>이라는 이름으로 퐁피두센터*에서 열린 전시회는 유명한 서양의 미술가와 무명의 제3세계 작가의 작품을 한 데 모았다. 이 전시회는 근본적으로 다른 여러 문화가 존재한다는 것을 일깨워줌으로써 예술의 본질에 대한 사고방식에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지금까지 다문화주의 개념은 서양 문화의 확장이라는 관점에서 기묘하게 적용되는 예가 적지 않았으며, 이러한 한계 속의 다문화주의는 단순한 다양성을 위한 도구의 개념에 불과할 것이다.

다원주의

다원주의 多元主義 Pluralism(영)

특정한 하나의 것만을 주류로 간주하려는 사고방식과 반대되는 관점. 즉 어떤 단 하나의 접근방식이 대폭적인 지지나 관심의 대상이 되지 않고 다수의 양식이 공존하는 것을 말한다.
사실주의*에서 추상미술*까지 그리고 인상주의*에서 표현주의*에 이르기까지 모든 종류의 미술이 모더니즘* 시기에 동시다발적으로 탄생했다. 그러나 1920년대에 이르러서 현대 미술은 19세기말부터 한 양식이 등장했다가는 썰물처럼 사라지고, 그 뒤를 이어 다시 다른 양식이 등장하는 식의 구도가 반복되어 나타났다고 이해되기 시작했다. 마찬가지로 1950년대에 추상표현주의*는 모더니즘의 절정으로 간주되었고, 평론계에서는 다른 접근방식들을 철저히 외면하고 추상표현주의에만 관심을 집중했다.
그러나 1960년대 중반부터 여러 종류의 현대미술이 공존하게 되는데, 팝 아트*, 색면회화*, 미니멀 아트* 등이 모두 비평의 대상으로서 뿐만 아니라 미술시장에서 주목을 받았다. 이어서 철저한 다원주의 시대였던 1970년대에는 새로운 양식과 매체가 많이 등장했다. 아르테 포베라*, 개념미술*, 예술로서의 공예, 대지미술*, 페미니스트 아트*, 미디어 아트*, 패턴과 장식*, 퍼포먼스*, 비디오 아트* 등이 이에 포함된다.
다원주의는 1960년대 말의 정치적 문화적 상황의 격변에 따라 나타났다. 미술세계에서 활약하는 여성의 수가 미술사상 어떤 시대보다도 양적으로 늘어난 것이 그 좋은 예다. 1970년대의 다원주의 미술세계는 워낙 복잡하기 때문에 평론가들이 탐탁치 않게 여기는 경우도 있었다. 다원주의에 호의적이지 않은 평론가들은 회화*와 조각* 이외의 형태를 중시하는 경향을 비난했는데, 이 새로운 형태들은 전혀 새로운 평가 기준을 필요로 했다. 그러나 다른 평론가들은 이러한 상황을 혼란스럽다기보다는 개방적인 것으로 보고, 다원주의가 현대사회의 다양성을 실질적으로 반영한다고 주장했다.
이후 1980년대 중엽에 이르러 신표현주의*가 퇴조하자 진정한 의미에서 다원주의 시대가 시작되며 모든 형식의 작품이 전시, 평가받게 되었다. 그리고 다원주의는 모더니즘의 급진적인 ‘권위주의’로부터 탈출을 의미하며 여러 가지 주의, 주장을 함께 포함하는 동시에, 이론보다는 감각을 우선하는 의지가 한편에 잠재해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다이너미즘

다이너미즘 Dynamism(영)

기계와 속도의 미에서 파생된 조형 감각을 말한다. 이 경향은 이탈리아의 미래주의* 운동에서 주장된 것으로, 역동주의(力動主義)라고 한다. 근대 사회가 이룩한 기계문명의 승리를 조형 표현상에서 확인하려는 사상에서 나온 미래주의 운동의 중심 화제(畵題)였다.

→ ‘미래주의’ 참조

다이아퍼

다이아퍼 diaper(영)

서양 건축에 사용되는 장식의 일종으로서, 반복되는 작은 단위들을 기초로 한 올-오버(all-over) 문양을 말한다. 이는 로마네스크나 고딕* 건축의 평평한 벽면 위에 조각된 저부조나 스테인드 글라스*에서 발견할 수 있다. 다이아퍼는 단조로운 금색 바탕에 대한 대안으로서 이용되었는데, 15세기에는 그림자가 섞인 소용돌이 무늬가 있는 다양한 배경과 결합되어 사용되었고 점차 풍경화*의 배경으로 대체되었다.

다큐멘터리 포토그래피

다큐멘터리 포토그래피 documentary photography(영)

→ 기록사진

다포

다포 多包

공포*(栱包)의 일종. 기둥과 기둥 사이에 창방*(昌枋)과 평방*(平枋)을 걸고 그 위에 포작(包作)을 짜올리는 양식. 중국에서는 요대(遼代)부터 다포형식이 사용되기 시작하여 송, 원대(宋元代)에는 일반적인 양식이 되었다. 특히 송대에는 《영조법식營造法式》이라는 건축기법에 관한 서적이 발간되어 다포계 양식의 규범이 만들어졌다. 일본에서도 가마쿠라(鎌倉)시대에 다포 양식이 많이 사용되었다.
한반도에서는 이러한 형식이 언제부터 사용되었는지 확실히 알 수 없지만, 1323년 〈관경변상도〉(교토 知恩院 소장)와 북한에 있는 〈심원사心源寺 보광전普光殿〉(1374), 〈석왕사釋王寺 호지문護持門 옹진전應眞殿〉(1384) 등의 건축 자료로 미루어 고려 말기에는 전형적인 다포계 양식이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출목(出目) 수에 있어 내외이출목(內外二出目), 내외삼출목 등 구조 양식의 급격한 발전을 보임에 따라, 전형적인 다포계양식의 시작은 적어도 고려 중기 이전으로 여겨진다. 다포 양식은 목조건축 양식 중에서도 가장 장중하고 복잡한 구조와 형식을 가지므로 주로 조선시대 이후 궁전이나 사찰 등 권위있는 건축물에서 사용되었다. 지붕 사이의 공간에 있는 공포는 공간포(空間包)라 한다.

다폭 제단화

다폭 제단화 多幅祭壇畵 polyptych(영)

기독교의 제단화*, 혹은 세 폭 이상의 패널*로 된 기도용 미술 작품을 말한다.

→ ‘제단화’ 참조

단구

단구 單鉤

집필법의 일종. 단구법에서는 엄지와 검지, 중지로 붓대를 잡으며 무명지와 새끼손가락은 중지를 아래쪽에서 받쳐준다. 다른 말로 ‘단포*(單苞)’라고도 하는데, 정작 사용하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단선점준

단선점준 短線點皴

조선 초기 산수화*에 쓰인 준법*(皴法)의 하나. 가늘고 뾰족한 붓끝을 화면에 살짝 대어 끌거나 점을 찍듯이 하여 짧은 선이나 점의 형태를 이룬 것이다. 산이나 언덕의 능선 주변 또는 바위 표면에 집합적으로 가하여 질감과 양감을 나타내는 것으로, 조선화단에서만 쓰인 고유한 준법이다.
단선점준은 원래 개별적인 필획이나 필흔이 드러나 보이지 않던 안견安堅의 필법이 계승되어 15세기 후반 경부터 그의 영향을 받은 화가들에 의해 점차 필획이 개별화되어 16세기 전반, 특히 1530년대에 가장 유행하면서 그 전형을 이루었다. 16세기 후반부터는 가늘고 길며 부드러운 필선에 가까운 형태로 변모하여 16세기말까지 지속되었으며, 각종 궁중행사도 등 보수성이 강한 기록화에서는 17세기 후반까지도 사용되었다. 단선점준은 15~16세기의 조선적 화풍형성과 발달의 중요한 사례이며, 이 시기 작품의 연대판정과 양식변천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이다.

단청

단청 丹靑

중국 고대 회화에서 주홍색과 파랑색을 자주 사용함에 따라 생긴 명칭. 《한서漢書》 〈소무전蘇武傳〉에는 ‘간과 비단에는 글을 쓰고, 단청은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竹帛所載, 丹靑所)’라고 기록되어 있고, 광범위하게 회화예술을 칭할 때도 있다. 가령 《진서晉書》 〈고개지전顧愷之傳〉에는 ‘더욱 그림에 뛰어났다(尤善丹靑)’라는 기록이 있다. 단청은 청색, 적색, 황색 ,백색, 흑색 등 다섯 가지 색을 기본으로 하여 여러 가지 문양이나 그림을 그려 아름답게 단장하는 것으로, 구조물을 보호하고 건물을 아름답게 장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전조(塼造)의 고분, 기명(器血), 공예품, 조상(造像) 등도 단청의 대상물로 채화(彩畵)되었지만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목조 건물에 많이 사용되었다.
단청의 실례는 고구려 고분벽화나 고분에서 출토된 채화(彩畵), 칠기*(漆器)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고려시대 때의 건축물인 〈수덕사修德寺 대웅전大雄殿〉에 그려졌던 벽화에서 단청의 흔적이 발견되었다. 단청술(丹靑術)은 현대 건축에서도 매우 뛰어난 건축 의장기법으로서 계승, 발전시킬 만한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