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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용

변용 變容 transfiguration(영)

기독교 미술의 주제 중 하나. 신약성서의 마태복음 제17장 1절 이하 기타의 공관복음서*에 의하면, 예수 그리스도가 베드로, 야곱, 요한 등 세명의 사도*를 데리고 높은 산으로 올랐더니, 광휘의 모습으로 변하고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구름이 일어 사도들을 감싸고 구름 속에서 하느님의 말씀이 들리자 놀란 사도들은 땅에 엎드렸다. 변용은 그리스도 신성의 현현(顯現)의 한 장면으로서 특히 동방교회의 교의 전례(典禮)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변형

변형 變形 transformation(영)

조형의 경우에 물체의 형상이나 구조를 바꾸는 것을 말한다. 즉 회화*나 조각*에 있어서 물체의 형태나 색을 있는 그대로 베끼지 않고 그것을 자기의 미의식*을 통하여 해체하고 원형과는 별개의 것으로 만드는 것. 그렇다고 해서 원형으로부터 절연(絶緣)되는 것은 아니다. 또 물체를 충실히 묘사하는 경우에도 원형이 무의식적으로 변형되는 일이 많다. 베껴진 모양을 사형(寫形)이라고 한다. 그 밖에 기계적으로 원형을 확대, 축소하는 경우의 변형도 있다.

병령사석굴

병령사석굴 炳靈寺石窟

중국 감숙성甘肅省 영정현永靖縣 현성縣城 밖의 서쪽으로 17㎞, 소적석산小積石山에 있는 불교석굴군. 1951~1952년에 발견, 조사되었다. 황하 상류의 북안 협곡에 있으며, 북위北魏와 서방과의 교통로에 위치하고 있다.
홍사암紅砂巖의 바위산에 2~3층으로 불감*(佛龕), 석굴이 파여져 그 총수는 195개이다. 황폐가 심하며 현재 시대를 알 수 있는 것은 서진西秦 굴 2, 북위 말기 굴 7, 북위 말기 감(龕) 30, 수대(隋代) 굴 4, 수대 감1, 초당(初唐) 굴 2, 초당 감1, 성당(盛唐) 굴 14, 성당 감 104, 중만당기(中晩唐期) 굴 3, 중만당기 감 10, 명대(明代) 굴 2, 명대 감 1개이다. 최고(最古)의 명문은 제169굴의 ‘서진西晉, 건홍 원년’(420년의 조상기造像記)이다. 근년에 이 굴의 벽화 중에 서진, 태초 13년(400)경 이 땅을 경유해서 서역으로 향한 법현法顯의 발원명(發願銘)이 발견되어, 초창(初創)은 4세기라는 설이 유력해졌다. 당대(唐代)의 불상조각이 많이 남아 있고, 또 각 시대의 벽화도 보인다.

보 樑

처마와 무거운 지붕을 지탱하는 수평재로서 가구*(架構)의 바탕을 이룬다. 목조건물의 기둥 위나 공포*에 얹혀 내부공간을 구성한다. 놓이는 위치와 구조적인 기능에 따라 크게 대들보와 보충보(補充樑)로 나눈다.
대들보는 어떤 건물이나 반드시 있는 기본 가구재로서 평주(平柱)와 평주 위, 또는 평주와 고주(高柱) 위에 놓이거나 기둥 위의 공포가 있을 때에는 그 위에 놓이게 된다. 보충보는 기둥과 보, 보와 보 사이, 또는 보 위에 놓이는 것으로 종보(宗樑), 중종보(中宗樑), 퇴량(退樑), 충량(衝樑; 대들보의 직각방향으로 얹힌 퇴보), 우미량(牛尾樑; 도리*와 도리 사이에 놓는 누여진 들보), 귓보(耳樑) 등이 있다.

보관불

보관불 寶冠佛

보관을 쓴 여래. 여래상은 원칙적으로 관을 쓰지 않으나, 인도에서는 굽타* 후기부터 보살처럼 보관을 쓰고 목걸이를 한 상이 출현한다. 사르나트* 후기나 팔라조에 그 예가 많고, 좌상, 입상도 있으며 모두 석가불*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인다. 현장玄裝이 인도여행(629~645)에서 실지로 본 바로는 보드가야*의 불상도상은 보관을 쓰고 있었다 하나 그 이유는 불분명하다. 그리고 정순(正純) 밀교의 주존 대일여래는 보살형으로 보관을 쓰고 있다.

보도사진

보도사진 報道寫眞
photo journalism(영) reportage photographie(프)

사진*을 사실 전달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 신문, 주간지, 월간지 등에 실리는 저널리즘 뉴스 사진의 대부분을 보도사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사진들은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것을 근본이념으로 하며, 주관적이거나 과장을 지양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최초의 보도사진은 1842년 함부르크 대화재를 다게레오타입*으로 찍어 《더 일러스트레이티드 런던 뉴스The Illustrated London News》에 게제한 헤르만 비오우의 사진이다. 보도사진이 하나의 독립된 사진 분야로 확립된 것은 제1차세계대전 후 독일에서 신즉물주의* 운동이 일어난 후이며 독일을 중심으로 발전하여 각국에 파급되었다.

→ ‘기록사진’ 참조

보드가야

보드가야 BodhGayā(범)

인도 동북부 비하르의 가야시에서 남쪽으로 약 8km 떨어진 리라잔 강(옛 이름은 나이란자나 강) 서안에 있는 불교 유적지이다. 불타가 성도(成道)한 보리수 아래에는 마우리야 시대*의 금강좌(金剛座)가 남아 있다.
보드가야에는 마하보디Mahābodhi라는 사당이 있으며 그 사당을 둘러싼 방형의 울타리에는 조각들이 새겨져 있다. 원래는 아쇼카왕Aśoka이 세운 지붕 없는 간단한 형태의 건물이 보리수를 둘러싸고 있었으나 쿠샨 시대*에 이 건물 대신 사당이 세워졌다고 한다. 사당 주변의 울타리 기둥과 원판에 새겨진 조각들은 슝가 시대*인 기원전 1세기 중엽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불교의 불전도* 이외에 태양신인 수리야*, 인드라*, 락슈미* 등 베다의 신들도 조각으로 표현되어 있다. 현재의 마하보디 사당은 굽타시대*(5~6세기)에 처음으로 세워진 것이지만 이 벽돌 사당은 여러 시기에 걸쳐 보수되었다. 1880년대에 미얀마의 불교도들이 이 사당을 수리하면서 많은 변형을 가했고 현재의 외관은 19~20세기에 수리된 모습이다.
사당을 보수할 때 주변에서 수습된 상들을 감입하였는데, 사당의 정면 벽과 그곳을 채우고 있는 벽감의 상들은 팔라, 세나 시대*(750~1200)의 작품이다. 그리고 사당의 입구 옆에는 굽타 이후인 7세기 것으로 추정되는 불입상이 있다.

보디 컬러

보디 컬러 body color(영)

흰색을 섞은 불투명한 수채화 물감 또는 투명묘법에 대한 물감의 불투명한 효과를 가리킨다. 과슈*와 마찬가지로 유색 종이 위에 드로잉을 하거나 수채화에서 하이라이트* 부분을 강조할 때 사용한다.

보로부두르

보로부두르 Borobudur

인도네시아의 자바섬 중부에 있는 불교 사원으로서 샤일렌드라Shailendra 왕조 시대인 8세기 후반~9세기 초에 세워졌다. 사원의 구조를 보면 방형 기단 위에 이중기단, 위로 올라갈수록 체감하는 오층의 방형층(方形層), 삼층의 원형층이 차례로 놓여 있으며 정상에는 종(鐘)모양의 스투파*가 있다. 삼층의 원형층 위에도 작은 종모양의 스투파들이 놓여 있으며 각 스투파 속에는 불좌상이 안치되어 있다. 가장 아랫부분의 기단은 한 변의 길이가 111.5m이고 사원의 전체 높이는 31.5m에 달하는 거대한 석조건축이다.
오층의 방형층은 복잡하게 굴곡이 지고 각 층마다 난순*(欄楯)과 불감*(佛龕)으로 둘러싸여 있다. 주벽(主壁)과 난순 사이에 네개의 회랑*이 만들어져 있으며 양쪽 벽면은 연속된 부조* 패널*로 장식되어 있다. 또한 하층 기단에 가려진 최초의 기단부 사방에도 부조가 있는데, 이 부조들은 특히 불전, 본생담*, 비유담, 《화엄경華嚴經》 〈입법계품入法界品〉에 나오는 선재동자善財童子의 순례도 등을 주제로 하고 있어 주목된다.
또한 각 층의 난순에는 바깥으로 향한 불감을 일정하게 배치하고 그 안에 불좌상을 안치했는데 모두 432구이다. 불좌상들은 방향마다 다른 수인*을 하고 있어 금강계 밀교의 오방불(五方佛)로 여겨진다. 이처럼 보로부두르의 전체적인 구조는 화엄경에 근거한 하나의 만다라*를 이루고 있다. 패널에 새겨진 부조나 불좌상은 굽타시대*의 조각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보상화문

보상화문 寶相華文
floral medallion motif(영)

반쪽의 팔메트* 잎 2개를 안으로 향하게 하여 만든 하트형의 꽃잎으로 둘러진 꽃장식 무늬. 연화문*(蓮花文)과 결합한 팔메트 잎의 변형으로서 고대 동양미술에서 연화문과 더불어 많이 사용되었다. 보상화문의 기본 요소는 서로 마주보는 반(半)팔메트가 이루는 꽃잎, 꽃잎 안쪽에 양쪽으로 벌어진 C자형 꽃받침, 그 사이에서 피어나는 꽃 등을 들 수 있다.
보상화문은 7세기 전후 사산, 페르시아에서 성립되어 한국과 일본에 전해졌다. 조각*, 회화*, 직물, 와전 등에 사용되었으며 동일한 바탕에 연화문, 팔메트, 동물문, 당초문*과 함께 장식되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통일신라시대에 보상화문이 성행하였다. 좌우대칭으로 완성된 팔메트의 꽃잎이 연속되면서 4잎에서 6잎, 8잎, 10잎 등을 이룬 연화문 형태의 무늬를 만든다. 초기에는 ‘당화(唐花)’라는 전형적인 당풍(唐風)이 유행하다가 8세기 중엽 이후부터 독창성을 띠며 통일신라 말기에는 도식화되어 화판을 묶어주는 꽃받침이 단순한 와상(渦狀)으로 되고 덩굴줄기도 와권 형태로 도안화된다. 통일신라시대의 흥륜사지, 임해전지, 신원사지에서 나온 전돌에 보이며 성덕대왕신종에는 당초문과 결합된 보상화문을 보여준다.
이외에도 포도, 석류, 모란, 연화 등과 함께 결합, 발전하여 각종 문양전과 와당*, 탑비, 범종*, 향완* 등의 여러 장식에서 널리 사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