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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페어

아트 페어 art fair(영)

화상*이나 수집가 및 미술관계자들이 모이는 견본 시장을 말하며, 그 목적은 국제적인 현대미술 시장에 자극을 주고 발전을 촉진하는 실질적인 움직임을 갖는 데 있다. 따라서 미술관에서 열리는 전람회와는 그 성격이 다르며, 상거래가 중심이 되지만 물질적이고 구체적인 차원에서 예술가를 평가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는 의미를 띤다.
최초의 국제 아트 페어는 1967년 독일 쾰른에서 개최되었으며, 그 후 유럽의 각 도시와 미국 등지에서 열렸다. 스위스의 바젤, 프랑스의 파리, 미국의 시카고, 스페인의 마드리드, 일본의 도쿄 아트페어가 유명하며, 우리나라에선 1980년대 중반 화랑미술제(서울 아트페어)가 창설되어 지속적으로 열리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그 규모나 시스템면에 있어 아직 전문적이거나 본격적인 면모를 갖추진 못했지만 점차 그 역할이 증대되고 있다.

아트리움

아트리움 atrium(영)

고대 로마의 주택에서 실내에 설치된 중앙의 넓은 마당. 지붕의 경사를 안쪽으로 모이게 하고 그 중앙부에 장방형의 천장을 만들어 그 아래에 빗물을 받는 연못을 설치하였다. 중세 기독교 성당 건축에서는 회랑*으로 둘러싸인 정원의 앞부분을 말하며 중앙부에 분수를 두기도 한다.

아틀리에

아틀리에 atelier(프)

원래 공방*, 화실, 작업장이란 뜻으로 흔히 화가, 조각가, 공예가, 건축가, 사진가 등의 작업장을 총칭하는 말이 됐다. 또는 대가를 중심으로 많은 조수와 제자들이 모인, 그 집단의 공동 작업장을 지칭하기도 한다. 개인명으로 전해지는 르네상스*나 바로크*의 대규모 회화의 대부분은 이들 공방의 제자들에 의해 공동 제작된 것이 많다. 그 밖에 마티스Henri Matisse(1869~1954)나 드랭André Derain(1880~1954)이 모였던 ‘아틀리에 줄리앙’ 같이 작가나 예술가들이 자유로이 출입할 수 있는 방 따위를 의미하기도 한다.

아틀리에 17

아틀리에 17 Atelier 17(프)

영국의 화가 헤이터Stanley William Hayter가 1927년 파리 캉파뉴-프르미에르 가(街) 17번지에 설립한 판화공방으로, 동판화*의 독특한 기법을 개발하여 당시 이 공방에 드나들던 초현실주의* 작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1940년에는 뉴욕으로 이전하였으며, 특히 1940년대 후반에는 유럽에서 도미한 샤갈Marc Chagall(1887~1985), 에른스트Max Ernst(1891~1976), 마송André Masson(1896~1987), 마타Roberto Matta, 미로Joan Miró(1893~1983), 탕기Yves Tanguy(1900~1955) 등이 여기서 판화를 제작했다.
이들의 출현은 폴록Jackson Pollock(1912~1956), 마더웰Robert Motherwell, 네벨슨Louise Nevelson, 라산스키Mauricio Lasansky, 피터디Gabor Peterdi 등의 미국 작가들에게 자극을 주어 미국 현대미술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이 공방은 헤이터가 파리로 떠나자 1950년대 말 폐쇄되었다.

아티스츠 스페이스

아티스츠 스페이스 Artist’s Space(영)

뉴욕 우스터 가(街) 155번지에 있는 비영리 화랑 겸 집회 장소. 지명도가 낮은 미술가와 상업 화랑에 속해 있지 않은 미술가들의 작품을 전시할 목적으로, 1973년 뉴욕 주 의회의 보조금과 국가의 미술 기부금으로 설립되었다. 미술가들의 작품, 슬라이드, 문서함이 보존되어 있으며, 수시로 바뀌는 미술가 위원들에 의해 전시회의 선별이 이루어지고 있다.

아티스트 유니온

아티스트 유니온 Artist Union(영)

1971년 소수의 영국 미술가들은 스스로 ‘정책 집단’으로 자처하면서 ‘노동조합총의회’에 관계할 ‘아티스트 유니온(AU)’의 설립 계획을 발표했다. AU의 목적은 회원들의 권익 보호에 대한 의사 결정 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생활 속의 미술을 육성하며 미술과 대중간의 보다 긴밀한 관계를 고취하는 데 있다. 영국 AU의 설립은 이미 1930년대에 성립된 미국이나 유럽의 다른 나라들에 비해 다소 뒤늦은 감이 있다. 네덜란드의 경우, ‘BBK(Beroepsvereniging Beeldende Kunstenaars)’가 제2차세계대전 직후 창립되었다.

아프가니스탄 미술

아프가니스탄 미술 Afghan Art(영)

아프가니스탄은 동서를 잇는 교역로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어서 예부터 중계 무역이 성행했다. 지리적인 여건상 여러 민족들, 즉 그리스계, 이란계, 투르크계의 왕조들이 흥망성쇠를 거듭했고 불교, 조로아스터교(배화교), 힌두교, 이슬람교 등 여러 종교가 전해졌다. 민족과 종교가 다양했으므로 미술 역시 이란, 인도*, 중앙아시아*의 각종 문화가 혼합된 점이 특징이다.
불교 미술*은 동부의 하다Hadda에서 북부의 옛 박트리아* 지역까지, 이슬람 미술은 가즈니Ghazni로부터 남부 시스탄Sīstān까지, 힌두교 미술*은 카불Kabul 동쪽을 중심으로 유물과 유적들이 다수 전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의 북부는 이란을 비롯한 서방의 문화가, 동부는 인도 문화가 많은 영향을 끼쳤다. 박트리아의 도시 유적인 아이 하눔에서 헬레니즘 문화와 관련 있는 각종 유물이 출토되었고, 쿤두즈와 칸바르 부근에서는 박트리아의 화폐가 발견되었다.
인도 쿠샨 시대*에 아프가니스탄 동부에서는 불교 미술이 널리 유행했는데, 힌두쿠시 산맥을 경계로 남쪽과 북쪽의 양식이 조금씩 다르다. 남쪽은 간다라 미술*과 같은 양식으로서 청색 편마암으로 만든 건축물과 조각상 및 스투코*상이 남아 있다. 북쪽은 아무다리야 유역의 옥서스Oxus 미술과 같은 범주로 석회암제의 조각품이 출토되었다. 베그람Begram에서는 로마의 청동기, 석고 부조상, 인도의 상아 조각품, 중국 한漢나라 시대의 칠기* 등이 발견되어 과거 이 지역이 동서 문화가 교류했던 곳임을 잘 보여 주고 있다. 바미얀 석굴 벽화*의 양식은 사산조 이란*, 인도 굽타 왕조*, 동투르케스탄 지역 미술과의 관계를 나타내며, 폰두키스탄의 소조불과 벽화에서는 굽타 미술의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북부의 수르흐 코탈Surkh Kotal에는 배화신전(拜火神殿)으로 생각되는 유적이 남아 있다.

악튀알리슴

악튀알리슴 Actualisme(프)

1968년 5월의 프랑스처럼 혁명적 상황 하의 예술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기술하기 위해 문필가 주프레이Alain Jouffrey가 사용한 용어. 주프레이의 설명에 따르면 이런 상황에서는 사회현실로부터 유리된 독립적 개체로서의 예술은 폐기되며, 따라서 예술작품이 더 이상 예술로서 범주화되지 않는다면, 진정한 의미 혹은 무의미는 실제의 행동과 의미에 의해 밝혀지게 된다고 한다. 주프레이는 예술은 더 이상 국가의 탁상공론의 기능을 담당해서는 안되며, 예술가는 사회의 모든 분야와 직접 소통하기 위해 예술의 ‘종말’을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견파

안견파 安堅派

안견安堅 및 그의 화풍을 추종하는 화가들로 형성된 조선 초기의 대표적인 화파. 이 화파는 중국 북송北宋 및 원대(元代)의 이곽파*李郭派 화풍을 토대로 하면서도, 산만한 듯 조화를 이루는 경물(景物)들간의 구성과 약간 치우치거나 대칭으로 배치된 구도, 확대지향적인 공간개념 및 흑백의 대비가 두드러지는 필묵법(筆墨法)과 단선점준*(短線點皴) 등 조선적(朝鮮的)인 특징을 짙게 보여주고 있다. 일본 덴리대학天理大學에 소장된 안견의 〈몽유도원도夢遊桃園圖〉와 그의 작품으로 전해지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사시팔경도四時八景圖〉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에서 그의 이러한 특징적인 화풍을 잘 느낄 수 있다.
안견파 화가로는 안견 외에도 양팽손梁彭孫(1480~1545)과 신사임당申師任堂(1504~1551), 조선중기의 김시金禔(1524~1593), 이정근李正根(1532~?), 이흥효李興孝(1537~1593), 이징李澄(1591~?), 이정李楨 등이 있으며 그 밖에 각종 계회도*(契會圖)나 행사도에도 안견파의 영향이 뚜렷하여 조선초기에서 중기까지 오랜 기간에 걸쳐 직업화가들과 사대부 출신 화가들에게 크게 영향을 미쳤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일본의 무로마치수묵화*(室町水墨畵)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조선 중기에 이르러서는 새로이 유행하게 된 절파*浙派 화풍과 혼합되면서 점차 쇠퇴하였다.

안다

안다 anda(범)

‘알’이라는 뜻으로 불교 스투파*의 반구형 돔*을 가리킨다. 안다는 천상의 돔을 형상화한 것인데, 동아시아에서는 사발을 엎어 놓은 모양이라는 뜻으로 ‘복발(覆鉢)’이라고 부른다.

→ ‘스투파’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