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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파 미술

참파 미술 Champa Art(영)

참파 왕국은 2세기경 인도차이나 반도의 가장 동쪽인 남부 베트남 지역에 참족이 세운 나라로서 15세기에 멸망했다. 중국의 사서에는 ‘임읍林邑’ ‘점성占城’ ‘점파占波’ 등으로 기록되어 있다. 일찍부터 인도화되어 힌두교*, 특히 시바* 신앙과 불교가 널리 성행하였다. 처음에는 다낭Da Nang의 남쪽에 정치, 문화의 중심지가 있었으며 트라키에우Tra Kieu에서는 초기의 도성 유적이 발굴되었다. 미손Mi Son에는 수많은 힌두교 사원*(8~11세기)이 남아 있고 동두옹Dong Duong에는 오래된 대승 불교 사원(875)이 있어 이 나라의 고전기 미술을 대표한다.
10세기 말 베트남의 침입으로 수도를 미손에서 남쪽의 빈딘Binh Dinh으로 옮겼다. 천도한 이후 수도 부근이나 나트랑Nha Trang 등지에 몇 개의 사당(11~13세기)을 축조했다. 그렇지만 12~13세기 초에는 캄보디아*와의 전쟁으로 국력이 쇠퇴하였고 결국 1471년 베트남에 정복되었다. ‘카랑’이라고 하는 사당(祠堂)은 처음에 목조 건물이었으나 현존하는 것은 모두 기와를 얹어 만들었다.
카랑의 형식은 방형의 기단 위에 네모난 건물을 올리고 그 위에 점차 좁아지는 단들을 높게 쌓아올린 것인데 남인도 팔라바* 시대의 비마나*와 유사하다. 또한 중부 자바의 찬디, 캄보디아의 프라사트*도 모두 비슷한 건축 형태이다. 카랑에는 독특한 화엽문(花葉文)이 장식되어 있어 이것으로 카랑 양식*의 변천을 구분할 수 있다.
참파 미술에서는 10세기까지의 조각* 작품이 매우 중요하다. 사당의 모서리를 장식하고 있는 마카라의 머리는 환조로, 기단을 받치고 있는 사자상들은 부조*로 장식되어 있다. 트라키에우에서 발견된 링가*의 대좌* 측면을 장식한 무희(舞姬)와 비천*(飛天)의 부조 작품(10세기)이나, 후옹쿠와Huong Qua에서 출토된 여인상(10세기) 등이 유명하다. 또한 트라키에우나 동두옹에서 발견된 시바상들은 인도네시아*의 영향을 보여주며, 후옹쿠와에서 나온 로케시바라*상은 캄보디아의 전(前)앙코르기적인 요소가 강한 작품이다.

창방

창방 昌枋, 蒼枋

건축부재의 하나. 공포*가 있는 목조건물의 기둥머리에서 기둥과 기둥을 연결해주는 가로재이다. 주심포* 계통의 집이나 규모가 작은 경우에는 장여*형의 창방을 쓰고, 다포*집에서는 평방을 포개어 놓아 하중을 기둥에 전달한다. 주심포계통이나 익공*, 계, 소로수장*집에서는 화반*(花盤) 또는 소로(小累) 등에 의하여 하중을 전달, 기둥에 보낸다. 특수한 쓰임으로 멍에창방, 별창방이 있다.

채도

채도 彩度 saturation(영)

색의 세 가지 속성 중 하나(채도, 색상*, 명도*)로, 색의 선명한 정도를 말한다. 순수함의 정도를 의미하고 포화도라고도 한다. 선명한 색의 채도는 높고, 탁한 색의 채도는 낮다. 예를 들면 노란 색상 중에도 진한 것과 연한 것이 있는데, 이 경우 진한 것을 황색 채도가 높다고 하고, 연한 것을 채도가 낮다고 한다. 물리적으로는 특정한 파장의 빛만이 선택되어 있는가, 혹은 다른 파장의 빛이 섞여 있는가의 차이이다.

채색조각

채색조각 彩色彫刻
polychrome sculpture(영)

다색 조각(多色彫刻). 20세기, 특히 1950년대 이후 부쩍 많이 나타나기 시작한 경향으로, 색채가 있는 재료를 써서 만든 조각이나 채색을 한 조각을 말한다. 이런 채색 조각은 현대 조각의 큰 특징으로 르네상스* 이래의 긴 전통을 깨고, 금세기에 들어와서 본격적으로 시도되었다. 금세기 초 입체주의*의 영향을 받은 조각가들, 특히 아르키펭코에 의해 시도된 이래, 여러 조각가들이 제작에 열중했다. 1930년대 이후 채색 조각은 주로 미국의 스미스David Smith(1906~1965), 칼더Alexander Calder(1898~1976) 등에 의해 제작되었다. 채색 조각의 새로운 운동은 1950년대 말부터 시작되어 1960년대에 전성기를 이루었다. 이러한 동향이 전개된 이유로는 현대 회화가 색채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었다는 점(옵 아트*, 미니멀 아트*와 같은 경향의 회화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과 조각과 회화의 결합이 점점 늘어나게 되었다는 점, 그리고 새로운 조각 재료가 개발되었다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새로운 재료란 채색 효과를 직접 창조해낼 수 있는, 본래부터 색채를 지닌 것(플라스틱 등)과 페인트나 아크릴 합성수지 도료 등으로 도장된 산업적 완제품들로 이에 손질을 가해 작품에 이용하는 경우가 해당된다. 조각이 재료의 자연색을 그대로 드러내야 한다는 생각은 르네상스기에 확립된 것으로서, 그 이유는 그들이 모범으로 삼는 고전 고대의 조각들이 자연색이었다는 것이었지만, 사실 당시 고대 조각의 대부분은 원래는 채색 조각이었다. 구석기, 신석기 시대의 동굴벽화*도 주로 적, 황, 토(赤, 黃, 土) 등으로 채색이 되었던 흔적이 있으며, 고대 이집트의 조각상을 보면, 남성은 적갈색, 여성은 연한 노랑색 등으로 채색되어 있었다.
헬레니즘 시대와 로마 시대에는 채색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약화되었던 듯 하나, 전체적으로 보면 채색조각은 조각의 전 역사를 통해 일관되게 나타나고 있는 주된 경향이었다. 현대의 주요 채색 조각가들로는 부서진 자동차의 유색 금속판을 조합하여 만드는 챔벌레인John Chamberlain(1927~ ), 색 네온으로 작업을 한 크리사Varda Chryssa, 반투명이지만 뚜렷한 색을 지닌 플라스틱을 이용하는 데이비드 웨인리브, 다색채의 점토 조각을 제작한 불코스Peter Voulkos, 표면에 패턴이나 형식을 첨가함으로써 환상적 공간 관계를 창조한 허드슨Robert Hudson 등이 있다.

천강산수

천강산수 淺絳山水

수목이나 암석의 묘사에 엷은 적색의 채색을 가한 산수화*. 남색을 병용하여 효과를 높이는 것이 보통이다. 남송(南宋)시대부터 일반화된 기법이라고 추측되지만, 원대(元代)이후 남종화*에서 시작되었으며, 명청대(明淸代)에 종종 행해졌다. ‘강(絳)’의 뜻은 꼭두서니를 이용하여 만든 붉은 색의 안료(茜染)를 말하지만, 실제로 꼭두서니를 안료에 사용했는지는 분명치 않으며, 일반적으로는 갈색을 띤 주황색(岱赭色)을 사용한다.

천개

천개 天蓋 baldachin(영)

①바그다드 산(産) 금란(金襴)을 의미하는 이탈리아어로 발타치노(baldacchino)에서 유래. 독립 제단이나 무덤 위에 금속, 나무, 돌 등의 기둥으로 지지되고 있다. 또한 종교적인 행렬의 제사 때 이동이 가능하도록 받들 수 있게 되어 있다. ②신상, 불상, 왕좌, 제단, 성물의 윗부분을 덮는 장식물. 천이나 나무 등으로 만든 비교적 간단한 것이 있고, 지주로 받치는 형식과 천장에서 매다는 형식이 있다. 불교의 장엄구(莊嚴具)로서 산개(傘蓋), 보개(寶蓋), 화개(華蓋), 현개(縣蓋) 등으로도 불리며, 존상 등의 머리 위를 장식함과 동시에 먼지를 막는 역할도 한다.
본래 빛이나 비를 차단하는 양산에서 출발하여 귀인의 상징으로서 머리 위에 펴던 것이, 후일에는 인도 초기 불교미술에서 상징적인 불타를 표현한 스투파, 보리수, 법륜 등의 위에 만들어졌다. 그것은 불상이 출현한 후에도 계승되어 자루가 달린 양산, 꽃나무를 양산형으로 한 것 등이 일반적인 모양이었으나, 석굴 사원과 불감의 천장 형식을 혼합한 것 등도 나타났으며, 불교의 전파와 함께 중국에도 전해졌다.

천룡산석굴

천룡산석굴 天龍山石窟
T’ien-lung-s-han(중)

산서성山西省 태원太原의 서남쪽 약 17㎞의 산중에 동위東魏에서 당대(唐代)에 이르는 동안 만들어진 불교석굴이다. 백색의 세밀한 사암으로 된 산허리의 서남면에 펼쳐져 있으며, 작은 시내를 사이에 두고 동쪽에 8굴, 서쪽에 13굴이 모여 있다. 제2, 3굴은 동위시대에 만들어진 석굴로, 평면은 방형이며 복두형(覆斗形)의 천장으로 되어 있다.
세 벽에 각각 삼존형식의 불감*(佛龕)이 만들어져 있으며, 제2굴의 천장은 중앙에 연화(蓮華), 사방에 낮은 부조*의 천인(天人)이 배치되어 있다. 제3굴에는 비구(比丘)와 거사(居士), 수하사유상(樹下思惟像)과 유마상(維摩像) 등의 부조가 있다. 천인(天人), 공양자(供養者)의 자태와 천의(天衣)는 용문석굴* 위자동(魏字洞)의 천장을 그대로 이어받은 것이다.
제10, 16굴은 북제北齊시대에 축조되었으며, 평면은 방형, 천장은 복두형, 세 벽에 오존상(五尊像)을 안치한 첨공감(尖拱龕)이 있다. 제16굴은 왼쪽 벽에 교각미륵보살(交脚彌勒菩薩)을 본존으로 하고 있으며, 오른쪽 벽은 아미타불*, 후벽은 석가모니불*이 본존으로 되어 있다. 동굴 입구의 문신상(門神像)은 북제의 독특한 양식을 보여준다.
제1, 8굴은 수대(隋代)에 조성된 것이다. 제1굴은 용두(龍頭) 혹은 조형(鳥形)의 장식을 붙인 아치*형의 불감에 의상(倚像) 또는 좌불(座佛)을 안치시키고 있다. 입구의 좌측에 있는 이수(螭首)의 비형(碑形)에는 ‘개황開皇’이라는 연호가 있는 명문*이 있다. 제8굴은 사방 4m의 방형 석굴로 탑묘(塔廟)를 의미하는 방주(方柱)가 중앙에 있다. 북조北朝의 방주굴(方柱窟) 가운데 가장 후기에 속하는 예이다. 동굴 밖 왼쪽 벽의 귀부*(龜趺) 위에 비형(碑形)이 조각되어 있으며, ‘세차갑진계(歲次甲辰季)’ 즉 수隨 개황 4년(584)의 명문이 있다. 방주 네 면에는 각각 삼존좌불을 안치시키고, 세 방향의 벽 주위에는 좌불감(左佛龕)과 불감 외에 두명의 비구, 두 명의 보살입상이 있다. 천장은 방주에 더해져 삼각정(三角頂)을 이루며, 아치형 입구의 양쪽에는 역사(力士)와 사자가 있다. 동쪽 제4~7굴, 서쪽의 제 14, 17, 18, 21, 22굴은 당대에 축조된 것이다. 동쪽의 것들은 모두 작은 석굴이며, 서쪽의 것들보다 연대가 올라간다.
제 4, 5굴은 측천무후則天武后(690~705)말년 무렵이며, 제 14굴은 현종玄宗(712~756)의 초기이고, 제17, 18굴은 개원 연간(開元, 713~741), 제21굴 이하는 더욱 늦은 중당(中唐)으로 내려 온다. 제5굴에는 결가부좌 정인통견(定印通肩)의 본존불이 있으며, 제4굴은 사방 약 2m의 방형석굴로서 안쪽의 벽에 삼존좌불감(三尊左佛龕)이 있고, 좌우에 나한상(羅漢像)이 있다. 벽은 중앙에 불의상(佛倚像)이 있고, 우협시에 안좌보살(安坐菩薩), 좌협시에 시립하고 있는 보살, 문 입구의 양협시(兩脇侍)에 역사상(力士像)이 있다.
제14굴은 평면의 배치가 제4굴과 거의 동일하지만, 안쪽 벽의 본존이 삼존불의상(三尊佛倚像), 좌우의 협시*가 보살인 점이 다르다. 좌우의 벽은 각각 소위 안락좌(安樂坐)의 반가보살상을 중심 존상으로 하여, 좌우에 시립하는 보살상이 있는데, 이러한 형식의 효시라고 볼 수 있다. 이 불상들은 당대 조각의 한 정점을 보여주고 있는데, 제 17, 18굴에서처럼 시대가 내려옴에 따라서 형식화되기 시작한다.

천목

천목 天目 tianmu(중)

송宋의 흑유(黑釉) 자기를 일컫는 일본의 통칭. 일본의 선승(禪僧)이 절강성浙江省의 항주杭州 부근 천목산天目山의 사찰에서 유학 후에 흑유찻잔을 가지고 돌아가 ‘천목(天目)’이라 일컬었던 것에서 유래했다. 최초의 천목은 복건성福建省의 건안建安에서 10세기 무렵에 만들어졌다.
당시에 두차(斗茶)를 마시는 습관이 유행함에 따라 말차의 연두빛깔을 돋보이게 하는 흑유 찻잔이 선호되었다. 검은 바탕에 철분을 함유한 기름 같은 유약*이 흘러 내리면서 만들어낸 무늬가 특징적이다. 흘러내린 흑유의 자취가 은색의 세로 줄무늬를 보여주어 토끼 털처럼 보이는 토호잔(兎毫盞, 禾天目), 물 위에 기름방울이 뜬 것처럼 작은 은색 반점무늬가 나타난 유적천목(油滴天目), 특히 소성과정에서 생긴 유약의 결정체가 무지개처럼 오색으로 빛나는 희귀한 요변천목(曜變天目), 나뭇잎 무늬의 목엽천목(木葉天目) 등 인공의 극치를 보여준다. 천목찻잔은 송나라때 복건성 건요*建窯와 강소성 길주요*吉州窯에서 주로 만들어졌다.

천불상

천불상 千佛像

불경에 기록된 과거장엄겁(過去莊嚴劫)현재, 현겁(現在賢劫)미래, 성수겁(未來星宿劫)의 삼세(三世)에 출생한 삼천불(三千佛)의 조각상. 불교사원에서는 일반적으로 약사불*(藥師佛), 석가모니불*, 아미타불*의 삼세불이 조성되는데, 그 사이 또는 본존의 주위에 천불군(千佛群)이 조성된다. 돈황* 막고굴莫高窟의 각 시기 동굴들은 벽면의 채색화 외에도, 굴의 벽 및 중심탑주감정(中心塔柱龕頂)에 천불을 많이 새겼다.
운강석굴* 제6굴은 화려한 천불상으로 유명하다. 제18굴 본존입상의 우견편단식대의(右肩偏袒式大衣) 위에도 천불의 부조*로 가득 차 있어 비로자나불*(毘盧舍那佛)의 법신(法身)을 표현하고 있다. 용문석굴* 고양동(古陽洞), 빈양동(賓陽洞)의 정밀하고 아름다운 천불 및 만불동(萬佛洞)의 양 벽에는 만여개의 천불감(千佛龕)이 있는데, 조각이 매우 세밀하고, 본존과도 잘 어울린다.

천수각

천수각 天守閣 keep(영)

중세 유럽 성곽 건축의 중심부. 최후의 방위 거점으로 성주와 중신(重臣)의 거주지이다. 감옥과 예배당을 갖추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