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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추상그룹

7+5 추상그룹 7 and 5 Abstract Group(영)

1920년에 창설된 영국의 미술 단체로 ‘7 and 5’라고도 한다. 본래 ‘7+5 협회Seven and Five Society’라는 명칭으로 출발한 이 그룹은 7명의 화가와 5명의 조각가로 구성되었으며, 작품은 구상적이고 정적인 경향을 띠었다. 매년 12명의 회원 전원을 다시 선출하도록 정해져 있는 까닭에 변화를 거듭하여 1930년대 초부터는 추상적인 작업을 전개해 나갔다. 그때부터 그룹명도 ‘7+5 추상그룹7 and 5 Abstract Group’으로 바뀌었다. 이 단체는 1934년께에 가장 의욕적인 회원들로 구성되어 1935년에는 니콜슨Ben Nicholson(1894~1982), 무어Henry Moore(1898~1986), 헤프워드Barbara Hepworth(1903~1975) 등 쟁쟁한 작가들이 참여한 영국 최초의 추상미술협회전을 개최하였다.

진, 한대 미술

진, 한대 미술 秦漢代美術

진秦(기원전 221~201)은 매우 단명한 왕조였지만, 전대까지의 중국 건축을 총괄하여 새로운 진대(秦代) 건축을 창시했다. 수도는 위수渭水의 북쪽에 세운 함양성咸陽城이었다. 위수의 남쪽에는 상림원上林苑을 설치하고, 그 안에 아방궁阿房宮을 건축하였다. 또한 진은 여산驪山의 북쪽 기슭에 대규모의 시황제始皇帝의 수릉壽陵을 축조하고 만리장성의 대토목공사를 하였다. 시황제가 기원전 210년에 죽고 그의 아들 호해胡亥가 기원전 207년 암살됨에 따라 진나라는 종말을 고하게 되었다.
한漢은 유방劉邦(재위 기원전202~195)이 세운 왕조로서 전한前漢(기원전 202~서기 8)과 후한後漢(25~220)으로 구분되며, 그 중간에 신新(9~23)이라는 나라가 존재했다. 전한은 장안長安에 도읍을 정하여 무제武帝(재위 기원전141~87) 때 가장 국력이 신장하였다. 이 때에 흉노를 정벌하여 장건張騫의 원정에 따라 서역과의 교역로가 열렸고 한반도에 사군(四郡)을 두었고 멀리 남월남까지도 세력을 뻗쳤다.
후한은 낙양洛陽에 도읍하고 유교 국가의 형성을 이념으로 하였다. 서역과의 관계는 반초班超 등의 경영으로 단속적으로 유지되었다. 그리고 명제明帝(재위 57~75)때 불교가 전래된 것으로 보인다.
건축:한은 진이 개척해 놓은 것을 이어받고, 장안성을 쌓아 수도로 삼았다. 장안에는 〈장락궁長樂宮〉 〈미앙궁未央宮〉 〈건장궁建章宮〉 등을 건축하였다. 또한 유교의 의식용 건물인 명당의 흔적도 보인다. 건축 유구로는 전, 후한의 분묘의 묘실, 사당, 석궐 등이 있다.
능묘:전한 시기 황제들의 능은 문제文帝의 〈패릉覇陵〉과 선제宣帝의 〈두릉杜陵〉이 서안의 동남쪽에 있고, 나머지 9릉은 위수 북안의 구릉일대에 산재한다. 이들 능은 모두 수릉(壽陵)으로 방대형(方臺形)의 분구를 가지고 있으며 황후와 나란히 안장되었다.
후한의 12릉은 광무제光武帝의 <원릉原陵>이 하남성 맹진현에 있는 것 이외는 모두 낙양 북쪽 교외의 망산邙山에 있다. 후한의 묘는 전한의 능제를 따른 것이며, 보다 작은 규모이다. 방분(方墳)이외에 원분도 있다 망산 남록에 위치한 소구燒溝에는 무제 시대부터 후한 말까지 왕후 귀족들의 전곽묘(塼槨墓) 200여기가 있다.
이들 묘에서 벽화, 도제 명기(陶製明器), 청동기, 옥기* 등 현존하는 한대 미술품의 대부분이 출토된 바 있다. 이외에 칠기와 백화*(帛畵), 백서 등이 주로 출토되었으며 수혈식목곽묘(竪穴式木槨墓)인 호남성 장사長沙의 마왕퇴1, 3호묘(馬王堆1, 3號墓, 기원전180 이후)와 청동기류가 많이 출토된 횡혈식 애묘(崖墓)인 하북성河北省 만성滿城의 중산정왕묘中山靖王墓(기원전 113)가 중요하다. 그리고 화북의 각지와 사천성四川省에는 화상석*(畵象石), 화상전*(畵像塼)과 벽화 분묘가 산재한다.
공예:도기는 전대이래 회도(灰陶)가 주류였으나 고화도에 의한 경질(硬質)이 보급되었고 또한 회유도가 남부 지방에서 발달하여 녹유, 갈유로서 주로 명기류에 쓰였다. 명기 이외에 채화도(彩畵陶)가 있으며, 홍도*나 흑도*도 있다. 청동기로는 전한시기에 전국식 검(戰國式劍)이 제작되었고, 각종 용기, 훈로(薰爐), 등(燈) 등이 있었다. 옥기로는 죽은 자가 몸에 지니고 매장되는 각종 장옥(葬玉)이나 실용과 장신구를 겸한 패옥(佩玉)이 성행하였다.
또한 서방으로부터 유리가 들어와 연옥의 대체품으로 장신구나 상감*에 쓰였다. 칠기는 전국시대 초楚의 기법을 이어받은 이배(耳杯), 각종 식기(食器) 등이 장사의 한묘에서 다수 출토되었다. 전한 후기, 후한 전기시대에는 촉나라 광한군廣漢郡의 관영공방(官營工房)에서 만들어진 것이 평양의 낙랑군 유적, 몽골 노인울라의 흉노묘, 귀주성貴州省 귀양貴陽의 청진淸鎭, 평파坪坡 ,한묘漢墓 등 한의 변경지대에서 출토되었다.
서예:장사 마왕퇴묘 출토의 죽간*(竹間), 백서, 산동성山東省 임기현 은작산묘에서 출토된 죽간 등에서 예서*(隸書)를 볼 수 있다. 또한 묘총(墓塚)에 돌비석을 세우는 풍습은 후한에서 비롯되어 비의 형식이 이루어졌다. 비의 서체*는 초기의 고예*(古隸)로부터 후기의 파책이 있는 팔분*으로 발달하였다.

집적

집적 集積
accumulation(영)

신사실주의*의 한 기법. 여러가지 일용품을 유리 상자에 넣거나 하드 보드 위에 릴리프상(狀)으로 배열하여 쌓음으로써 미적 효과를 노리는 방법. 신사실주의의 이념을 가장 순수한 형태로 표명하는 이 기법은 때로 앗상블라주*와 더불어 혼용되지만, 그것이 우연성에 중점을 두는 것과는 달리 보다 계획적이고 작위적이다. 즉 조형적 능동성을 갖는 점이 다르다. 아르망Arman(1928~ )은 동일하거나 유사한 물적 소재, 즉 진공관과 같은 대량 생산의 공업 제품을 집적함으로써 산업 사회의 이미지를 역설적으로 표출하고 있는데, 이러한 유형의 작품이 대표적인 예가 되었다.

차용

차용 借用
appropriation(영)

빌려온다는 의미의 ‘차용(借用)’은 미술사, 광고, 미디어 등에 이미 등장한 형상을 가지고 새로운 형상과 합성시켜 또 다른 작품을 창조하는 제작방법을 가리킨다. 차용이 하나의 방법론인 만큼 그 방식과 의미는 그것을 사용하는 작가들만큼이나 다양하지만 현대미술에서 특징적인 것은 점차 차용한 요소 및 ‘차용’ 원리 그 자체가 작품의 본질을 이루는 경우가 많아진다는 것이다.
마네Edouard Manet(1832~1883)가 지오르지오네Giorgione(1476~1510)와 라파엘로Rafaello Sanzio(1483~1520)의 구성을 빌려 오고, 피카소Pablo Picasso(1881~1973)가 루벤스Pieter Paul Rubens(1577~1640)나 벨라스케스Diego Rodriguez de sila Y Velasquez(1599~1660)의 작품에서 많은 부분을 따온 것처럼 과거 거장들의 작품을 인용하는 경우는 이미 자주 있었지만 빌려온 요소가 작품 구성논리의 중심이 되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러나 해밀턴Richard Hamilton(1922~ )이 대중광고들을 콜라주*하고, 워홀Andy Warhol(1928~1987)이 브릴로 상자나 캠벨 수프 깡통의 형상으로 작품을 제작한 팝 아트*에서의 차용은 창조에 대한 영감의 원천이 되었으며, 이를 통해 현대사회에 대한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견해를 표출하였다. 보다 최근의 차용은 미술사적 전통 작품의 지적 소유권에 도전하고 모더니즘의 독창성에 대한 숭배를 비웃기 위한 효과적인 수단으로 사용되며, 이는 모나리자의 복제에 수염을 그려넣어 가치의 전복을 기도한 뒤샹Marcel Duchamp(1887~1968)의 작업방식과 상통한다.
레빈Sherrie Levine은 에반스Walker Evans, 웨스턴Edward Weston, 로드첸코Alexander Rodchenko의 사진을 재촬영하고 몬드리안Piet Mondrian(1872~1944)의 회화를 그대로 본떠 그리는 등의 방법으로 걸작과 대가 그리고 미술사의 정의에 의문을 제기하였을 뿐만 아니라 남성미술가들의 작품만을 빌려옴으로써 여성 미술가의 미술사적 위치를 재고하도록 유도한다.
쿤스Jeff Koons는 스테인리스 스틸이나 도자기로 싸구려 술병과 통속적 인물상을 그대로 본떠 만들며, 살르David Salle나 슈나벨Julian Schnabel 등은 역사, 미술, 대중문화에 등장하는 이미지들로 다층적이고 분석 불가능한 작품들을 그린다.

차이티야

차이티야 caitya(범)

불교의 예배 대상인 스투파*를 모신 성소*(聖所) 또는 사당(祠堂)이다. 최초의 사당은 나무나 짚으로 만든 건물이었으나 지금은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인도에는 마우리야 시대* 이후에 그러한 지상 건물의 형식을 본떠 만든 석굴사원들이 많이 남아 있어 원래의 형태를 짐작케 한다. 암벽을 파서 인공적으로 만든 석굴사원은 석조 건축이라기보다는 조각*에 가깝다. 초기 석굴사원의 전형적인 예로는 기원전 1세기초에 만들어진 바자Bhājā석굴을 들 수 있다. 이 차이티야 굴은 중앙부의 넓은 공간(네이브*)과 그 주위의 좁은 복도로 구성되어 있고 두 공간은 열주*로 구분된다. 석실 가장 안쪽의 반원형 공간에는 암괴를 깎아 만든 스투파가 있다. 이러한 구조는 스투파 주위를 돌면서 예배하고 사원 내에서 여러 의식과 집회가 거행될 수 있도록 설계되었음을 말해 준다. 스투파 또한 차이티야의 한 형식이라고도 볼 수 있다.

차트라

차트라 chattra(범)

불교 스투파*의 정상부에 올려지는 천계의 상징으로서 ‘차타(chatta)’라고도 하며 동아시아에서는 ‘산개(傘蓋)’라고 한다.

→ ‘스투파’ 참조

착금

착금 錯金

→ 입사

찬델라왕조 미술

찬델라왕조 미술 Chandella Dynasty Art(영)

라지푸트족의 일파인 찬델라Chandella 왕조는 약 800년부터 1315년까지 인도 중부인 분델칸드Bundelkhand 지역(현 마디아프라데시주)을 다스렸다. 도읍이었던 카주라호Kahjurāho와 요새 지역인 칼랑자라Kālanjara, 마호바Mahobā, 아자이가르Ajaygarh가 특히 중요하다.
이 시대에는 약 70여 개의 힌두 사원*이 건립되었으나 현재는 약 20여 개 정도만 남아 있다. 특히 카주라호는 오리사 지역과 마찬가지로 북방 형식의 힌두 사원이 많이 건립된 곳이다. 비슈누*신을 모신 락슈마나Laksmana 사원은 야쇼바르만왕Yaśovarman의 통치기인 954년에 완성되었는데 기단 위에 놓인 중앙의 사당을 중심으로 네 모서리에 작은 사당이 있는 구조이다.
기단의 외벽에는 노골적인 성애 장면을 부조*로 새긴 미투나*상이 장식되어 있다. 비드야다라왕Vidyādhara 시대인 1017~1029년에 세워진 〈칸다리야 마하데바Khandariya Mahādeva 사원〉은 카주라호의 사원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 30m 정도 높이의 시카라* 주변에는 같은 모양의 작은 시카라들을 여러 개 배치하여 복잡해 보인다. 이 사원의 외벽에도 600개 이상의 부조상이 환조에 가깝게 조각되어 있는데 미투나상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외에도 카주라호에는 〈데비 자가담바DevI Jagadambā 사원〉 〈비슈바나타Vishvanatha 사원〉 등이 있다.

찰루키야왕조 미술

찰루키야왕조 미술 Chalukya Dynasty Art(영)

인도* 역사에서 찰루키야Chaludya라는 이름의 왕조는 3번 등장한다. ①전기 서(西) 찰루키야(6세기 중엽~8세기 중엽)는 데칸 고원 서부인 카르나타카주의 바다미Bādāmi 지역을 중심으로 등장한 왕조이다. 풀라케신Pulakeśin 2세(재위 610~642) 때는 북쪽의 구자라트 및 말와 지방과 동쪽의 안드라 지방 등 데칸의 대부분을 통치했으나 라슈트라쿠타*에 멸망당했다. 카르나타카주의 바다미, 아이홀Aihole, 파타다칼Pattadakal, 마하쿠타Mahākūta와 안드라프라데시주의 알람푸르Alampūr에는 이 시기에 속하는 힌두교 사원*과 자이나교* 사원 유적이 남아 있다. ②풀라케신 2세의 동생인 비슈누바르다나Visnuvardhana가 새로 세운 동(東)찰루키야(7세기 전반~11세기 중엽)는 데칸 고원 동부인 안드라프라데시주의 벵기Vengī 지방을 지배했다. 대표적인 유적지로는 비카볼루Biccavolu(9~11세기)를 들 수 있다.
③칼야니Kalyānī의 후기 찰루키야(973~약 1189)는 타일라Taila 2세가 데칸 고원 서부의 라슈트라쿠타 왕조를 무너뜨리고 세운 왕조이다. 칼야니 지역은 지금의 안드라프라데시주이다. 후기 찰루키야의 미술은 전기 찰루키야 왕조와 호이살라 왕조 미술*의 연결 고리처럼 여겨지고 있다. 카르나타카주와 안드라프라데시주에는 이 시기에 속하는 사원이 50여 개 이상 현존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이타기Ittagi, 담발Dambal에 있는 힌두 사원이 유명하다.

찰염

찰염 擦染

동양 회화의 기법. 먹이나 색채를 축축히 문지르듯 칠하는 것으로 서서히 물이 스며들 듯 변하는 효과를 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