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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돌

고인돌 dolmen(영)

선사시대의 거석 기념물의 하나. 넓고 큰 자연석 또는 다듬은 돌을 지붕과 같이 덮고 그 밑에 네모난 상자형으로 돌을 쌓은 것을 ‘탁자형 고인돌’, 크고 평평한 자연석 덮개돌 밑에 작은 돌을 3~4개로 떠받친 것을 ‘기반형 고인돌’이라고 부른다. 프랑스 서북부의 브르타뉴, 이베리아 반도를 중심으로 아일랜드부터 유틀란트 반도와 스칸디나비아 남부를 거쳐 카프카스, 불가리아, 서아시아의 팔레스티나, 남인도, 중국의 동북지구 동부와 남부, 한반도 서북부에 탁자형 고인돌이 분포하며, 시리아 북부, 이란 북부, 베트남, 한반도 서남부에는 기반형 고인돌군(群)이 있다. 유럽과 서아시아 것은 청동기시대에 속하나, 중국 동부나 한국의 고인돌은 철기시대에 속하기도 하며 그 연대가 뒤진다.

고전적

고전적 古典的 classic(영)

고대 로마의 세르비우스 툴리우스 왕Servius Tullius 시대(기원전 578~35)에 구분된 시민의 6계급 중 최상급을 지칭하던 ‘최상의 지배층에 속하는’이라는 뜻의 라틴어 ‘classicus’에서 유래한 말. 고전적인 것이라는 용어는 이미 기원전 2세기의 조세법에서 최상의 등급에 속하는 저술가에 대해 전의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고대의 고전작가들을 위해 유보된 이 개념은 18세기와 19세기에 들어서는 또한 문학가, 예술가, 작곡가 및 철학자들을 위한 것으로 전환되었다.
고전적인 것이라는 개념은 그것이 도출되는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규범적이고 역사적인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고전적인 가치를 부여받은 작품은 과거의 시대에 속하며, 다음 세대에 의해 규범으로 간주되는 하나의 모범적 타당성을 획득한다. 따라서 예술상의 걸작으로 몇 세기를 지나도 그 가치가 확인되고, 영원한 모범으로서 추앙되는 것들을 고전적인 것이라 부른다. 한편 이 개념은 또 ‘낭만적’에 대립하는 개념으로 쓰이기도 하는데, 이 경우 이것은 고전주의* 양식의 고유한 여러 특징을 가리키는 것으로 반드시 가치 판단의 뜻을 포함하지는 않는다.

고전주의

고전주의 古典主義 Classicism(영)

일반적으로는 고대 그리스인 및 로마인이 이룩한 바와 같은 단정, 간소, 전아한 예술양식을 모범으로 삼는 예술의 경향을 말한다. 양식 개념으로서의 고전주의에 대해서는 바로크 미술*에 대립하는 기본적인 표현양식의 하나로 보는 경우와 아르카익 미술*-고전주의-바로크와 같이 전개해 가는 양식발전의 한 단계로 보는 경우가 있다. 이 둘 모두 고전주의의 본질을 아르카이즘의 소박하고 생경한 표현이나 바로크의 격하고 다이내믹한 화려함에 비해 기술적 완성도, 합리적 질서에 바탕한 통일성, 안정된 구축성, 조화가 이루어진 정밀한 표현, 부분과 전체와의 명확한 관계, 절대적, 영원적인 것에의 지향 등에서 찾는다. 예를 들면 뵐플린Heinrich Wölfflin(1864~1945)은 16세기의 회화, 조각, 건축을 대상으로 고전주의의 특질을 선(線)적인 특성, 평면성, 닫혀진 형식, 다수적 통일, 절대적 명료성 등의 다섯 가지로 요약하였다.
고전주의 운동의 대표적인 예는 다음의 두 시대이다. ①16세기 중엽부터 북이탈리아의 건축가 팔라디오Andrea Palladio(1508~1580)에서 출발하여 17세기에 프랑스, 네덜란드, 영국으로 퍼진 유럽의 건축양식. 고전주의 건축이라 불리는 이 건축 양식은 특히 로마의 모범에 이어지고 있다.
②신고전주의*라고도 불리는 시기로서 17~18세기의 바로크 및 로코코 미술*에 대한 반동으로 일어난 것과 1770~1830년경에 걸쳐 루이 왕조의 궁정 미술을 극복하려고 일어났던 유럽 예술양식을 의미한다. 이 두 시대 모두에는 그리스 및 로마 미술*이 강한 자극과 영감을 제공하였다.
당시의 대표적인 건축가들을 살펴보면, 독일에서는 레겐스부르크Regensburg의 <발할라Valhalla 전당>을 건축한 폰 클렌체Leo von Klenze와 베를린 국립극장과 구(舊)미술관을 건축한 쉰켈Karl Friedrich Schinkel(1781~1841), 프랑스에서는 파리의 <판테온Panthéon>을 건축한 수플로Jacques Germain Soufflot나 퐁텐Pierre-François Fontaine(1762~1853), 영국에서는 대영박물관을 설계한 소안Sir John Soane 등이 있다. 한편 조각의 주요한 테마는 인간이었으며, 재료는 대리석을 주로 사용하였다. 대표적인 조각가로는 이탈리아의 카노바Antonio Canova(1757~1822), 덴마크의 토발트센Bertel Thorwaldsen(1770~1844), 프랑스의 우동Jean Antoine Houdon(1741~1828) 등이 있다. 회화상의 고전주의는 독일의 멩스Anton Raphael Mengs(1728~1779) 등을 전조로 해서 프랑스의 다비드Jacques-Louis David(1748~1825)의 작품 <호라티우스가의 맹세>(1784)와 함께 시작되었다. 이 작품은 처음으로 고전주의 회화의 여러 가지 특질, 즉 옛날 식의 고전적 소재와 내용, 명백하고도 엄격한 구성, 뚜렷한 윤곽, 차가운 느낌의 색채가 나타난 것으로 간주된다. 나폴레옹의 실각과 함께 다비드가 벨기에로 망명한 후에는 앵그르Jean Auguste Dominique Ingres(1780~1867)가 고전주의의 대표적인 후계자로 활약하였다.

고화품록

고화품록 古畵品錄

중국 남북조시대 남제南齊의 화가 사혁謝赫(시에 허, 500~535년경 활동)이 저술한 화가품평서 1권. 본래는 《화품畵品》이라고 불렀다. 중국에 현존하는 화론 중 가장 오래되고 가장 많이 인용되는 화론이다.
사혁의 생멸년과 출신지 및 경력은 확실치 않으나, 고화품록은 532년 이후에 기록된 것으로 추정된다. 오吳의 조불흥曺不興(차오 부싱)으로부터 남제 말기까지의 화가 27인을 육법*(六法)에 따라 제1품에서 제6품까지 나누고 짧은 평론을 덧붙였다. 이 책의 서문에 회화창작의 요체로서 서술된 육법은 훗날 회화 비평의 기준에 큰 영향을 미쳤다. 육법은 그림을 그릴 때 꼭 있어야 할 6가지의 창작 원칙으로, 사혁이 이를 기준으로 그림의 우열을 나눈 이래 회화평론의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육법을 보면 첫째가 기운생동(氣韻生動)이고 둘째가 골법용필(骨法用筆)이며 셋째가 응물상형(應物象形)이다. 넷째는 수류부채(隨類賦彩)이고 다섯째는 경영위치(經營位置)이며 여섯째는 전이모사(傳移模寫)를 주장하고 있다. 사혁의 육법은 전대의 미술이론을 훌륭하게 계승 발전시킨 것으로 미술이론의 새로운 공헌으로 평가된다. 또 당시의 미술이론이 이미 산만하고 단편적인 단계를 지나 하나의 체계를 지닌 수준으로 향상되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곱은 옥

곱은 옥 曲玉

옥의 머리 부분 가운데 구멍을 뚫어 금실이나 끈으로 매다는 장신구의 일종. 재료로는 흙, 뼈, 비취, 백옥, 청옥, 수정, 마노 등이 있으나 옥으로 된 것이 주류를 이룬다. 곱은 옥을 만든 조형적인 이유에 대하여는 동물의 치아를 걸어 자신의 힘을 과시하려는 이유에서, 그리고 주술적인 의식 용구로서, 또 월신 신앙과 관련하여 초승달 모양으로 만들었다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특히 신라 지역에서는 금관, 목걸이, 귀고리, 허리띠의 장식물로 애용되었다.

공간

공간 空間 space(영)

시각예술의 조형요소 중 하나로 삼차원 혹은 삼차원성을 지향하는 요소. 조형 공간의 창조에는 무엇보다도 동적인 색면 및 포름*의 구성이 중요한 문제이다. 또한 시각적 효과 차원에서 균형이나 움직임을 결정하는 요소가 되기 때문에, 조형에 있어서 소재 간의 공간처리는 매우 중요하다. 또한 포함된 공간과 배제된 공간을 조형적으로 동시에 설명해 낼 수 있는 능력, 주어진 공간을 명확하게 한 개 또는 몇 개의 비율로 마음대로 축소하거나 확대할 수 있는 능력, 그밖에 여러 특수한 조형적 능력이 필요하다고 논해지고 있다. 좁은 뜻으로는 공간을 화면상의 공간 처리 기법으로서 남겨 놓은 것, 즉 여백*(餘白)이라는 뜻으로 쓰는 경우도 있다.
음악이나 문학 등의 시간 예술에 대하여 공간 예술*이라 불려지는 회화, 조각, 공예 등의 조형 예술은 직접적으로는 현상(現象)의 공간적 여러 관계의 재현을 위해 그 기능이 한정된 재료 및 수단을 쓰며 스스로를 공간적으로 한정하고 구성한다. 현대 회화에서는 환영적으로 공간을 재구성하는 종래의 방법을 배제하고, 회화의 평면성에 근거한 구성에 의해 비재현적인 조형 공간을 창조하려는 입장이 나타났다. 입체주의*에서 비구상* 회화에 이르는 현대 회화에서 이러한 경향을 찾아볼 수 있다.
한편 현대 조각에 있어서 공간이라는 문제를 새로이 재기한 작가는 가보Naum Gabo(1890~1977) 및 펩스너Antoine Pevsner(1886~1962)였다. 그들은 종래의 매스(mass) 편중(偏重)이 잘못된 것이라 주장하고, 조각에 시간과 공간의 통일적 형식을 실현하기 위한 중요한 계기로서 동력학(動力學)적인 리듬*을 도입하였다. 이어서 모홀리 나기László Moholy-Nagy(1895~1946)도 물리적 공간 속에 실제로 긴장을 만들어 내고 있는 여러 힘을 동적이며 구성적인 시스템 안에서 조화되도록 함으로써 공간을 능동화할 것을 주장하여 모빌* 조각의 이론적 선구자가 되었다.

공간 그룹

공간 그룹 Groupe Espace(프)

정기 간행물인 《오늘의 예술Art d’Aujourd’hui》지와 관련된 미술가들에 의해 1951년 파리에서 설립된 신구성주의 미술가 협회. 마를Félix Del Marle, 피에Edgard Pillet, 베오티Étienne Béothy, 쇠페르Nikolas Schöffer(1912~ ), 고렝Jean Gorin 등이 참여하였다. 사회적이며 비개인적인 행동으로서의 미술에 대한 공간 그룹의 신념은 신조형주의*와 구축주의*로부터 유래한 것이며, 공간주의*, 제로 그룹*, 시각예술탐구그룹*과 같은 기타 현대적 경향과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공간예술

공간예술 空間藝術 Raumkunst(독)

일정한 공간*을 구성함으로써 형상화되는 예술을 가리킨다. 음악이나 문학 등과 같은 시간예술(Zeitkunst)에 대비된다. 회화, 평면 장식 등의 이차원적 예술과 조각, 건축 등의 삼차원적 예술을 총칭한다. 흔히 조형예술이라고 할 경우, 일반적으로 공간 예술을 의미한다. 공간예술의 특색은 그 작품이 물질적 재료를 매개로 해서 실재적 공간성을 지니고, 제작자로부터 독립된 객관적이고 항상(恒常)적인 완성품적 존재라는 데 있다.

공간주의

공간주의 空間主義 Spatialism(영) Spazialismo(이)

이탈리아의 화가 폰타나Lucio Fontana(1899~1968)에 의해 제창되었던 예술 운동. 제2차세계대전 후 밀라노를 중심으로 여러 가지의 <공간주의 선언>을 동반하여 예술표현 영역의 확대를 지향했다. 이 운동은 전통적인 예술 개념을 탈피하고 세라믹, 도자기, 콘크리트, 인광 물질과 같은 공업사회의 재료와 기술수단을 취급하며 특히 4차원적인 공간을 표현하고자 했다. 공간주의의 이러한 시도는 소재와 표현의 해방과 함께 제작자와 관중과의 관계, 예술의 사회성을 시사하였다. 공간주의의 본질적인 내용은 기존 미술의 미학을 타파하고, 시간과 공간의 통일에 기초를 둔 새로운 예술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한 폰타나의 <백색 선언Manifesto Blanco>에 잘 요약되어 있다. 1946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발표된 이 선언문은 “우리들은 예술의 혁신을 계속한다. 우리들은 기계의 시대에 살고 있다. 이미 색종이와 석고 등은 의미가 없다. 포름*의 변화가 요구되어진다. 회화를, 조각을, 시를, 음악을 초월해야 한다. 새로운 정신이 외치는 주장에 걸맞은 예술이 요구된다. 이미 알고 있는 포름의 사용을 포기하고, 시간과 공간의 통일에 기초한 예술의 발전에 노력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폰타나는 1947년 밀라노에서 <제1차 공간주의자 선언>을 툴리에Tullier, 조폴로B.Joppolo 그리고 비평가 카이셀리안G.Kaisserlian과 함께 발표했다. 이듬해에는 <제2차 공간주의자 선언>이, 1950년에는 <제3차 공간운동헌장 제안>이 발표되었고, 1951년 제9회 밀라노 트리엔날레 국제회의에 임해서는 <제4차 공간주의 기술선언>과 부리Pol Bury(1922~ ), 탄크레디Parmeggiani Tancredi와 함께 발표한 <제5차 공간예술선언>이 잇따랐다. 1952년 텔레비전 방송을 위한 <제6차 공간운동선언>을 마지막으로 공간주의의 선언은 끝을 맺었다. 제9회 밀라노 트리엔날레에서 공간주의는 전시장 입구와 중앙 천장에 거대한 구멍을 뚫고 네온관에 의한 빛을 투사시켜 환경미술*의 원형을 이루었다. 또한 나비리오 화랑에서 열렸던 폰타나의 개인전 <검은 공간적 환경Black Spatial Environment>(1949)은 블랙라이트를 조명으로 사용한 자극적인 전시회였다. 그 전시회에서 작품은 울트라 바이올렛 빛으로 가득찬 화랑 내부에서 소멸해가고 관객은 다만 빛의 홍수 속에서 자신의 의식만을 직면하게 되었는데, 이러한 양상은 해프닝*과 퍼포먼스*를 예고하는 것이었다.

공공미술

공공미술 公共美術 public art(영)

가장 일반적인 의미의 공공미술은 단순히 지역사회를 위해 제작되고 지역사회가 소유하는 미술을 말한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공공미술이라는 개념은 1960년대 말 미국 정부에서 시작한 두 가지 제도, 즉 ‘미술을 위한 일정지분투자*’ 프로그램과 국립예술기금의 ‘공공장소의 미술(Art in Public Place)’ 프로그램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미술을 위한 일정지분투자 프로그램은 현재 미국의 50개 주 중 약 반 수 정도와 여러 도시 및 카운티에서 시행 중에 있다. 이는 공공건물을 신축할 때 건설 예산액의 일정 지분(대개 1%)을 예치해 미술품을 위해 사용하도록 하는 것이다. 공공장소의 미술 프로그램에서는 지역사회에서 공공장소에 전시할 미술품을 제작, 의뢰하고 구입하는 데 드는 자금과 자문을 도맡아 준다.
이러한 관(官)주도의 미술진흥정책과 발맞추어 미술의 본질에 대한 의식의 변화가 1960년대 말에 일어났다. 많은 미술가들이 작업실을 떠나 작업실 규모보다 큰 건축적 규모를 요구하는 대지미술*과 그 밖의 다른 환경미술* 형태를 창조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작가들은 복잡한 프로젝트의 완수라는 도전적인 상황으로 인해 필요한 기술을 습득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공동작업을 기꺼이 하게 되었고, 그 결과 작업실 제작의 전 과정을 혼자 관리하려는 태도를 버리게 되었다. 공공미술 작품은 코즐로프Joyce Kozloff가 지하철역 구내에 설치한 타일 벽화에서부터 노이하우스Max Neuhaus가 비슷한 장소에 설치한 사운드 아트* 조각, 노구치Isamu Noguchi(1904~1989)가 설계한 수백만 평방미터에 달하는 공원과 광장들, 하스Richard Hass가 단조로운 벽을 환상적인 건축으로 탈바꿈시킨 실물과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하는 눈속임 기법* 벽화, 또 아담스Dennis Adams가 버스 정류소를 통해 보여준 첨예한 정치적 이미지, 베이카Judy Baca가 로스앤젤레스 강변에 늘어선 콘크리트 담장 위에 그린 로스앤젤레스와 스페인계 미국인 사회의 역사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