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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비

고비

한국 전통 목가구 중의 하나로 벽에 걸어두고 편지나 두루마리* 등을 꽂아두는 소형 가구. 기원은 분명치 않으나 《재물보才物譜》에서 지와자(紙窩子)를 ‘고삭고비’라 일컬었던 것으로 보아 두꺼운 종이로 주머니 모양을 만들어 걸어두던 것임을 추정할 수 있다. 사랑방에는 주로 곧은 대나무살을 다듬어서 시원한 느낌의 선(線) 처리를 한 것 또는 오동나무 판재로 제작한 것을 두었다.

고사산수

고사산수 故事山水

산수화*의 한 화제(畵題). 자연을 배경으로 꾸민 신화, 역사적인 인물에 얽힌 일화나 이야기를 산수 중심으로 그린 것이다. 황제 신화에 의한 <백택도百澤圖>, 동진(東晋)의 왕희지王羲之(우앙 후에이즈)의 일화를 그린 <섬계방대도剡溪訪戴圖>, 당대(唐代) 현종의 일화를 다룬 <명황행촉도明皇行蜀圖>, 백거이白居易(바이 쥐이)에 의한 <비파행도琵琶行圖>, 소식蘇軾(쑤 스, 1036~1101)에 의한 <적벽도赤壁圖> 등이 잘 알려져 있다. 산수보다 인물이 화면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경우에는 고사인물화라고 부르기도 한다.

고석

고석 鼓石

한국 석상의 네모서리를 괴는 북모양의 돌. 혹은 족석(足石)이라고 한다. 고석의 형태와 크기는 왕실의 예전(禮典)인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에 따르면, 북모양 사면에 나어(羅魚)의 머리를 새긴다면 높이는 한자 다섯치, 지름이 두자 두치 닷푼으로 규정되어 있다.

고세파

고세파 巨勢派

일본 헤이안平安 전기(794~894) 고세 가나오카巨勢金岡를 시조로 한 화가의 가계(家系). 이들은 대대로 궁정의 에도코로繪所(헤이안 시대 이래 궁정이나 사원에 소속된 회화 제작을 담당했던 기관)의 중요한 직위를 맡고 있었다. 가나오카는 중국적 주제(唐風)의 풍경화*, 풍속화*를 일본화했고, 화가의 사회적 지위를 높이는 데 공헌하였다. 10세기 무렵에는 2세 기미타다公忠, 기미모치公望 형제에 의해 제2양식이 전개되었다. 그 전통은 헤이안 시대의 세속화(世俗畵) 전통을 확립시킨 히로타카廣貴로 이어졌다. 이들은 후세에 거장으로 그 이름을 떨쳤지만 유품은 남아있지 않다.

고숙파

고숙파 姑熟派 gushoupai(중)

중국 명말 청초(明末淸初)의 문인화*가 소운종蕭雲從(샤오 윈츠옹)을 시조로 하는 화파. 무호無湖(安徽省)출신의 소운종은 《도회보감속편圖繪寶鑑續篇》 《국조화징록國朝畵 徵錄》등에서 당도當塗(무호의 동북 30km) 출신으로 전해지기 때문에, 당도 부근의 고숙계姑熟溪 또는 고숙성姑熟城의 이름에 따라 고숙파라 명명한 것 같다. 운천雲晋(윈츠옹) 동생의 아들 세대에 가서 형성되었다.

고아미파

고아미파 幸阿彌派

일본 무로마치室町에서 에도江戶 시대에 걸쳐 에마키를 그린 화파. 무로마치 이래 어용회사로 활동했다. 양식은 중국의 송宋, 원元 회화의 영향을 받은 야마토에*의 양식에 각종 기법을 구사했다.

고우닌, 조오깡시대 미술

고우닌, 조오깡시대 미술 弘仁, 貞觀時代 美術

→ 헤이안 전기 미술

고월자

고월자 古越磁

→ ‘월주요’ 참조

고유사묘

고유사묘 高古遊絲描

중국 인물화*에서 옷주름을 그리는 방법의 한 가지. 뾰족하고 가는 붓의 끝을 살려 가늘고 길게 계속 이어진 선묘(線描)로, 출렁이며 넘치는 듯한 느낌을 준다. 북제北齊의 서역 출신 화가 조중달曹仲達(차오 쭝따)이 이 묘사법을 사용했으며, 고개지顧愷之(꾸 카이즈, 344~406)와 육탐미陸探微(루 탄웨이)의 의습선(衣褶線)도 이에 해당한다. 한漢나라 이후로 사용된 선묘 가운데 가장 일찍 형식화한 것이다.

고유색

고유색 固有色 local colour(영)

통상 태양광선 아래에서 보이는 물체 고유의 색. 혹은 흙은 흙색, 하늘은 하늘색이라고 일컫는 것처럼 개념적으로 그 물체에 고유하다고 믿어지는 색을 의미한다. 인상주의* 화가들은 사물에는 일정색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 광선의 변화와 보색*의 작용에 의해 시시각각으로 변모하는 색채 현상을 인정하여 사물의 고유색을 부정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