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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

나가 Nāga(범)

물을 상징하는 인도의 뱀신으로서 일반적으로 코브라를 가리킨다. 불교에서는 팔부중*(八部衆)의 하나인 용(龍)으로 번역되며 여성형은 나기니Nāginī이다. 나가의 하반신은 뱀, 상반신은 사람으로 표현되며 5~7개의 머리가 코브라처럼 부채꼴로 펼쳐진다. 나가는 사원 입구에 수호자처럼 놓여 있다.

나비파

나비파 Les Nabis(프)

브르타뉴Bretagne의 퐁타방(Pont-Aven) 체제 시대 고갱Paul Gauguin(1848~1903)에 영향을 받은 화가들이 19세기 말기에 파리에서 결성한 젊은 예술가들의 그룹. 핵심인물은 세루지에Paul Sérusier(1863~1927), 베르나르Emile Bernard(1868~1941), 뷔야르Edouard Vuillard(1868~1940), 보나르Pierre Bonnard(1867~1947), 드니Maurice Denis(1870~1943) 등이었다. 1880년 이후부터 고갱을 중심으로 이른바 종합주의* 운동이 전개되었는데, 1888년 고갱의 제자 세루지에는 이 운동의 이론을 줄리앙 아카데미 출신의 젊은 화가들에게 들려주고 이 그룹을 발족시켰다. 매달 모임이 브라디 가(街)의 카페에서 행해졌으며, 시인 카잘리스Henri Cazalis가 그룹의 명칭을 ‘예언자’라는 의미를 지닌 헤브라이어 ‘나비’라고 명명하였다. 그들은 스스로 새로운 예술의 선구자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나비파(派)는 1892년경 상징주의* 문예 운동의 영향을 받아 신비적, 상징적 경향을 가지게 되었으며, 표현상의 특색으로는 반(反)사실주의적, 장식적 경향이 강하게 나타났다. 또 일본의 우키요에* 판화의 영향을 받아, 평탄한 색면으로 아주 대담한 화면 구성을 즐겼다. 이러한 경향은 특히 보나르나 발로통Félix Vallotton(1865~1925)의 판화, 포스터*, 또 뷔야르의 장식화에서 뚜렷하게 나타난다. 이 그룹의 활동기간은 주로 1890년대로, 20세기가 되면서 각기 독자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회화 뿐만 아니라 판화, 조각, 삽화, 무대장치, 의상 등에까지 미치는 폭넓은 활동은 20세기 미술의 한 출발점으로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되었는데, 특히 나비파의 이론가였던 드니는 “회화란 자연의 재현이 아니고 이차원의 평면이다”라고 강조하는 등 이러한 개념이 20세기 회화의 기본적 방향의 하나가 되었다.

→ ‘종합주의’ 참조

나이브 아트

나이브 아트 naive art(영)

미술사에서의 어떤 유파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일부 작가의 작품 경향을 말할 때 쓰인다. 정규 미술교육을 받지 않고 화단과도 별 관계없이 이른바 문명적인 세련된 기교와도 담을 쌓은 채, 기교 이전의 순수한 즐거움과 충동적 본능으로, 자연발생적인 소박함과 치졸함, 특이한 시각, 그리고 양식화의 특징을 보이는 예술을 이른다. ‘나이브’라는 용어는 ‘자생적으로 획득된’이란 의미의 라틴어에서 파생되었다. 원시 미술(primitive art), 아웃사이더 아트*, 아르 브뤼* 등으로도 불려지고 있지만, 민속 미술*(folk art)과 혼동해서는 안된다. 나이브 아트는 특정한 지역의 역사적 산물이라기보다는 개인적 재능과 정신의 개화로부터 비롯된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나이브 양식은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다. 회화에서는 선명한 채색, 풍부한 세부묘사, 평면적 공간처리 등의 경향을 보여주고, 조각(또는 건축적 구조물)에서는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로디아Simon Rodia의 와츠 타워처럼 폐품이나 버려진 재료를 모아 복잡하게 구성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한 나이브 미술가들은 원근법*을 무시하며, 구상적인 주제를 다루고 그림은 작고 단조로우며 장식적인 경향이 있다. 나이브 아트에 대한 현대의 관심은 원시 문화와 무의식적 정신 상태의 탐구에 매혹된 모더니즘*에서 유래했다. 추상의 발달은 나이브 미술의 왜곡성이 미술계 주류의 일부인 것처럼 만들었다. 이러한 현상은 20세기초 일요화가였던 루소Henri Rousseau(1844~1910)와 매혹적인 환상화가 피카소Pablo Picasso(1881~1973) 및 그와 가까웠던 파리의 미술가들이 아방가르드* 작품으로 평가되었다는 사실로 알 수 있다.
잘 알려진 나이브 예술가로는 보샹André Bauchant(1873~1958), 봄브와Camille Bombois(1883~1970), 힉스Edward Hicks(1780~1849), 허시필드Morris Hirshfield, 비방Louis Vivin(1861~1936), 월리스Alfred Wallis(1855~1942) 등이 있다. 샤갈Marc Chagall(1887~1985), 호크니David Hockney(1937~ ), 벤 샨Ben Shahn(1898~1969) 등은 전문 화가이면서 고의적으로 나이브한 과슈* 방식을 채택하였다.

→ ‘민속 미술’ ‘소박화파’ 참조

나자렛파

나자렛파 Nazarener(독) Nazarenes(영)

19세기초에 형성되었던 독일 화가의 한 파. 빈의 아카데미 학생인 오베르베크Johan Friedrich Overbeck 및 프포르Franz Pforr가 중심 화가였다. 그들의 사고방식에 따르면, 예술이란 본디 창조적인 성질의 것이 아닌 종교적인 관념 표출에 도움이 되는 것이다. 이 일파의 화가들에 대해 이른바 ‘나자렛파’라는 별명이 붙여졌던 것도 그 때문이다. 이들은 1809년 빈에 ‘성 루카 조합Lukasbund’을 창설하였으며, 당시의 고전주의적 풍조에 반대하고 로망파 문학자들의 사조에 공감하였다. 이듬해인 1810년 오베르베크와 프포르는 활동 무대를 로마로 옮겼으며, 그 곳에서 활동하고 있던 코르넬리우스Peter von Cornelius(1783~1867), 카롤스펠트Julius Schnorr van Carolsfeld, 샤도Wilhelm von Schadow(1788~1862) 등 다수의 화가들이 이 그룹에 가입하였다.
나자렛파는 핀치오 언덕의 시드로 수도원에서 수도사와 같은 생활을 영위하면서 새로운 종교화의 이상 실현을 지향하는 작품 제작에 전념하였다. 점차 가톨릭의 교의를 받들고 또 라파엘로Raffaello Sanzio(1483~1520)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 페루지노Pietro Perugino(1445~1523)와 안젤리코Fra Angelico(c.1395~1455) 등의 종교화에 심취하였다. 공동 제작한 작품으로는 로마 바르톨디Casa Bartholdy의 벽화 <성요셉전>(1816~1817)과 마시모Casino Massimo의 벽화가 유명하다.

나전칠기

나전칠기 螺鈿漆器

옻칠한 그릇이나 가구의 표면 위에 광채나는 야광패(夜光貝)나 전복조개 등의 껍질을 여러가지 문양으로 박아넣어 장식한 칠기*. 제작과정은 우선 조개 껍질을 숫돌로 얇게 갈아서 줄로 썰고 무늬에 맞게 끊음질을 한 후 바탕나무에 생칠을 한다. 칠과 토분을 이겨서 표면에 고루 바르고 밑그림에 따라 활질로 자개에 구멍을 뚫고 실톱으로 무늬를 오린 후 종이본에 붙인다. 그것을 바탕나무 위에 인두로 눌러붙인 다음 종이본은 떼어내고 옻칠을 더한다. 남아 있는 칠은 긁어내고 인두로 마름질을 하고 광을 내면 완성된다. 문양을 내기 위해 나전을 잘라내는 방법은 주름질(자개를 문양 형태로 오려내는 것), 이음질(문양구도에 따라 주름대로 문양을 이어가면서 나타내는 것), 끊음질(자개를 실같이 가늘게 썰어서 문양부분에 모자이크 방법으로 붙이는 것)이 있는데 끊음질이 주로 사용되었다.
나전기법은 중국 주대(周代)부터 이미 유행했고 당대(唐代)에 성행하여 한국과 일본에 전해진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서는 전래 초기에 주로 백색의 야광패를 사용하였으나 후대에는 청록 빛깔을 띤 복잡한 색상의 전복껍질을 많이 사용하였다. 나전칠기로 현존하는 한국의 유물은 12세기 이후의 것으로 고려시대의 경함(經函)이 다수 보존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는 의함(衣函)과 문서함(文書函)부터 장롱까지 제작하였다.

→ ‘고려나전칠기’ 참조

나체화

나체화 裸體畵 nude painting(영)

인간 또는 신, 악마 등의 인간적인 모습을 나체로 표현한 회화. 자연의 대상물 중에서 가장 자아에 가까운 존재로서의 인체에 대한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하여 옛날부터 그려져 왔다. 민족, 풍습, 시대 등에 따라 그 성립과 양식이 다르지만 나체의 미묘한 선이나 면, 각 부분 간의 비례, 피부의 색조 변화, 육체의 양감 등의 미적 요소를 통일하여 유기적 생명을 표출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고대에서는 그리스 시대나 르네상스 시대에 나체 표현이 존중되었으며, 특히 인상주의* 이후 나체를 다룬 회화들이 많이 그려졌다.

나치미술

나치미술 Nazi Art(영)

기념비적인 건축물과 초상화들로 히틀러의 권력과 권위를 확고하게 한 나치 시대의 미술경향. 감수성, 독일 병정의 영웅주의, 땅과 소작인, 아리안 남녀의 거의 포르노에 가까운 나체를 찬양하였다. 문화적 무기로서 예술의 중요성을 이해한 나치 지도자들은 예술가들을 고무시켰으나, 현대적이고 급진적인 예술은 억압하였다. 따라서 표현주의*와 추상미술* 작가들은 ‘타락한 유태인이자 볼셰비키’로 여겨져 추방되었다. 조각과 건축에서는 신고전주의*가, 회화에서는 사회적 리얼리즘*의 형태를 띤 양식이 용인되었다. 호르매츠Bess Hormats는 ‘1930년대와 1940년대 독일 예술에서 나치 미술이 차지하는 비율은 적었고, 보수적이고 아카데믹한 예술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러한 보수적인 예술가들은 자신들의 예술을 통해 나치즘을 반대하지도 않았고, 나치들이 현대적이고 급진적인 예술을 억압함으로써 오히려 혜택을 누렸다. 나치즘에 동조했던 표현주의 작가 놀데Emil Nolde(1867~1956)가 나치에 의해 제작을 금지당했던 예외적인 경우도 있다. 주요 나치 미술가로는 스피어Albert Speer, 트루스트Rudwig Troost, 살리거Ivo Saliger, 파두아Paul M.Padua, 슐트Johannes Schult, 파이너Werner Peiner, 치글러Adolf Ziegler 등이 있다.

나타라자

나타라자 Natarāja(범)

춤의 제왕인 시바*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으로 힌두교의 대표적인 신상*(神像)이다. 특히 인도의 촐라왕조* 시대에는 청동상으로 많이 제작되었는데, 나타라자는 시바의 우주적인 기능, 즉 파멸과 창조의 모습을 하나의 이미지에 응축시킨 도상*(圖像)으로 해석되고 있다. 시바의 탄다바Tandava 춤은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기 위해 세상을 파괴시킬 때 추는 것으로서 나타라자는 시바의 창조, 유지, 파멸이라는 움직임을 표현한 것이다. 남인도 지역의 춤 자세에서 연유된 이 형태는 각각 도상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오른손에 들고 있는 북은 시작을 의미하는 창조를, 왼손에 든 불꽃은 파괴를 의미하는 세상의 종말을, 시무외인을 한 또 다른 오른손은 구원을 뜻한다. 또한 아이를 밟고 있는 오른발은 안정을, 들고 있는 왼발은 휴식을 의미한다고 한다. 나타라자는 청동상 이외에도 사원의 벽면을 장식하는 부조*로 많이 표현되었다.

나한

나한 羅漢 arhat(범)

불교의 수행을 완성하여 공양, 존경을 받을 만한 성자를 말한다. 아라한(阿羅漢)의 준말로, 살적(殺賊), 응공(應供), 응진(應眞)이라고도 한다. 살적은 수행의 적인 번뇌를 항복받아 죽였다는 뜻이고, 응공은 모든 번뇌를 끊고 도덕을 갖추었으므로 인간과 천상의 공양을 받을 만하다는 뜻이며, 응진은 ‘진리에 상응하는 이’라는 뜻이다. 나한은 소승불교에서 수행의 가장 높은 지위인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얻은 자로서 부처가 열반했을 때 그 법을 전수받아 보호하고 지키는 수행자의 역할을 한다. 처음에는 부처에게 직접 설법을 들은 불제자를 뜻하였으나 점차 일정한 수행을 쌓고 덕을 갖추게 되면 나한으로 불려져 많은 사람들로부터 공양과 공경을 받게 되었다.
나한상은 육조(六朝)시대부터 그림으로 그려졌고, 당대(唐代)에는 현장玄裝에 의해 《법주기法住記》가 번역됨으로써 십육나한의 신앙이 시작되었다. 그 뒤 십팔나한, 오백나한을 비롯하여 중국적 해석에 의해 여러 가지 변화형식이 생겼다. 우리나라에서는 석가모니의 십대제자를 비롯, 십육나한, 오백나한이 주로 나한신앙의 대상이 되었다.

낙관

낙관 落款

그림의 화면 일정부분에 도장이나 글씨 등을 쓰는 것. 낙성관지(落成款識)의 준말로 낙관낙인(落款落印)이라고도 한다. 서화(書畵)를 마무리한다는 의미로 작가가 자신의 이름을 쓰고 글이나 인장(印章)을 찍는 행위를 말한다. 제작연도나 계절, 일시, 제작장소 등이 첨가되는 경우도 많다. 중국 원대(元代)의 예찬倪瓚(니 짠, 1301~1374)이 자신의 그림에 도장을 찍었던 것에서부터 유래하며 한국에서는 조선 후기 이래로 많이 사용되었다. 낙관을 하는 것이나 낙관이 유행하는 것 모두가 화가의 지위 향상을 반영한다.

→ ‘관’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