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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연사

동연사 同硏社

1923년 이상범李象範(1897~1972), 변관식卞寬植, 노수현盧壽鉉(1899~1978), 이용우李用雨(1902~1952)가 중심이 되어 만들어진 미술가 단체. 전통적인 관념산수의 틀에 매여있던 당시 동양화단에서 새로운 길을 찾기 위하여 ‘신구화도(新舊畵道)’ 연구와 전시회 개최를 취지로 내세웠다. 근대적 사회 변화에 따른 세계관, 회화관이 변모한데다 서양화와 일본화로부터의 영향, 그리고 구습을 벗어날 것에 대한 당시의 요구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다.
1923년 실재하는 경치를 단일시점으로 원근법*을 적용하고 철저한 사생으로 근경(近景)을 확대하는 등 새로운 화법의 작품들이 나타났다. 이 작품들은 서화협회전*에 출품되어 커다란 호응을 얻었다. 그러나 지속적인 단체활동을 전개하지 못하고 1924년 해체되었으며 이후 각 구성원들은 개인적으로 그 취지를 실현하고자 노력하였다. 해체 후인 1924년 이상범, 노수현 2인전에서는 100여점을 전시하여 성황을 이루었다. 새로운 조형적 실험을 주로 하였던 이용우의 화풍은 이질적이지만 동연사의 화풍에 따른 새로운 실경산수*(實景山水) 전통의 확립을 주도했다. 이들은 일본화의 영향을 받아 선염법*(渲染法)으로 분위기를 묘사하여 필선이 유약화된 화풍을 구사한 면도 있다. 이러한 면은 한국근대화단이 극복해야 할 과제로 남게 되었다.

동판부식법

동판부식법 銅版腐蝕法 aquatint(영)

판화* 기법의 하나로 식각(蝕刻) 요판법의 일종. 그 과정은 다음과 같다. 먼저 동판 면에 아스팔트의 분말을 살포하고 이것을 약간 가열해서 입자를 부착시킨다. 그 위에 방식제로 그림을 그린 다음, 부식액을 작용시켜서 제판한다. 이 기법에 의한 인쇄 효과는 수채화*와 유사하며, 회색 및 흑색에 의한 농담 효과를 낸다. 한편 샌드비Paul Sandby(1725~1809)가 발명한 같은 양의 송진액과 알코올 용액을 혼합하여 동판에 뿌린 다음, 알코올이 증발한 후 송진의 미립자만 남도록 하는 방법도 있다. 이렇게 해서 이루어진 그물 형태의 송진 사이를 부식액이 침투하면 동판 면이 부식된다. 하얗게 남아 있는 부분에는 니스를 칠해 부식을 막는다. 그 위에 설탕용액과 니스를 사용하는 ‘설탕 동판부식법’도 있다. 부식액은 에칭*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주로 초산(硝酸)액이 쓰이는데, 약간 묽은 편이 좋다. 인쇄할 때의 명암의 톤*은 부식된 구멍의 깊이에 따르는데, 부식액의 농도나 부식시간, 송진이 만드는 얼기설기한 망의 조밀함 따위와도 깊은 관계가 있다.
동판부식법이 일반적으로 보급되게 된 것은 프랑스의 르 프랭스Jean Baptiste Le Prince(1733~1781)에 의해서였으며 그 후 18세기말에 이르러 기법적으로 거의 완성되었다. 영국에서는 18세기말부터 19세기초에 걸쳐 수채화, 소묘*의 복제* 수단으로 널리 보급되었다. 19세기 후반에 들어와 동판부식법은 석판화*에 밀려 쇠퇴하였으나 20세기에 다시 부활되어 파리 화파의 많은 거장들, 특히 피카소Pablo Picasso(1881~1973), 루오Georges Rouault(1871~1958), 마송André Masson(1896~1987) 등은 동판부식법을 잘 이용하였다.

동판화

동판화 銅版畵
copper-plate print(영)

동판 위에 그레이버(graver, 강철제의 조각도)로 그림을 파고 그 움푹한 선에 인쇄용의 검정 잉크를 채워 찍는 방법. 목판화가 철판(凸版) 인쇄에 바탕을 두고 있는데 반해, 동판화는 요판(凹版) 인쇄이다. 따라서 새겨넣는 선의 폭과 깊이에 차이를 둘 수가 있는데, 이렇게 함으로써 흑색이나 광택의 변화를 얻을 수 있다. 그림이나 도안, 판각, 인쇄가 각기 다른 사람에 의해 행해지는 수도 있다. 흔히 주어진 본보기를 동판화로 복제하는 조판사와 자기 자신의 창의에 의해 판화를 제작하는 화가 조판사로 구별된다. 동판화의 가장 오래된 예는 1440년경 독일에서 생겨났다. 동판화의 종류에는 에칭*, 동판부식법*, 드라이포인트*, 메조틴트*, 선 인그레이빙* 등이 있다.

두공

두공 斗栱 tou-kung(중)

중국, 한국, 일본에 전래하는 전통 목조건축 용어. 대들보나 도리*에 가해지는 무게를 모아 기둥에 전하는 역할을 하도록 끼워 넣은 일종의 결구물. 지역과 시대에 따라 형식적 변화가 있지만 기본 원리는 같다. 두공은 원래 중국어이지만, 송대(宋代)에는 ‘포작(鋪作)’, 청대관식(淸代官式)에서는 ‘두과(斗科)’, 강남(江南)에서는 ‘비과(牌科)’라고 불렀다. 두공은 배치되는 장소에 따라 외첨(外檐)포작, 신조내(身槽內)포작, 평좌(平坐)포작 등으로 나뉜다. 또 기둥과의 위치관계에 따라 기둥위에 놓이는 주두(主頭)포작, 기둥과 기둥 사이에 놓이는 보간(補間)포작, 모서리 기둥 위에 놓이는 전각(轉角)포작 등으로 구별된다. 한국에서는 ‘공포*(栱包)’라고 불린다. 공포는 배치에 따라 기둥 위에만 있는 형식을 주심포*(柱心包) 양식, 기둥 위에 공포를 배치할 뿐 아니라 기둥과 기둥 사이에 창방*(昌枋)을 놓고 그 위에 공포를 배치하는 형식을 다포*(多包) 양식, 기둥 머리에서 전후 방향으로 첨차형(檐遮形) 부재를 꽂아 그것으로 보*(樑)를 지탱케 하는 익공*(翼工) 양식이 있다. 일본에서는 마수기미(斗組), 구미모노(組物)라고 한다.

두광

두광 頭光 siras-cakra(범)

→ ‘광배’ 참조

두루마리

두루마리 roll(영)

종이나 천을 여러 장 이은 후 끝단에 축(軸)을 끼워 말 수 있도록 한 것. ①중국 고대의 두루마리는 여러 장의 종이를 겹친 책자나 그림을 보존하는데서 비롯되었다. 책자의 경우 서권(書卷)이라 하고 그림은 화권(畵卷)이라고 한다. 양자를 합친 것은 합벽권(合璧卷)이라고 한다. 한대(漢代)에 종이가 발명된 이후에 보존과 장식을 위해 축이나 표지를 붙이게 되었고, 육조(六朝)시대에는 표장(表裝) 형식이 갖추어졌다. ②글을 적은 파피루스*나 양피지(羊皮紙)의 긴 종이. 때로는 그림을 넣었고, 필사본*이 소개되기 전까지 책으로 사용되었다. 같은 뜻으로 ‘스크롤(scroll)’, 라틴어로는 ‘로툴루스(rotulus)’라고 부른다.

두르가

두르가 Durgā(범)

‘접근하기 어려운 자’라는 뜻을 가진 힌두교 여신을 말한다. 두르가를 모시는 개별적인 사원이 건립될 정도로 높이 숭배되고 있다. 두르가 여신의 특징은 시바*신의 배우자로서의 어머니라는 측면과 전사로서의 영웅적인 측면이 결합되어 있다는 점이다. 특히 악마(아수라*)인 마히샤Mahisa를 물리친 이야기가 유명하며 이 때의 두르가는 마히샤수라마르디라고 불린다. 굽타 시대인 401년에 조성된 우다야기리Udayagiri 석굴의 제6굴에는 마히샤수라마르디의 이야기가 조각으로 표현되어 있다.

두타초

두타초 頭陀草

조선후기 문인 이하곤李夏坤(1677~1724)의 문집. 전체 18책으로 1,650여편의 시(詩)와 서(書) 등이 실려 있다. 이 중 중국 회화나 고려, 조선시대 회화에 대한 안목있는 비평이 많아 주목된다. 소개되어 있는 중국 화가는 당대(唐代)의 왕유王維(우앙 웨이, 699~759), 송대(宋代)의 마원馬遠(마 위엔), 하규夏珪(시안 꾸에이), 조백구趙伯駒(자오 뿌어쥐), 유송년劉松年(리우 쏭니앤), 원대(元代)의 조맹부趙孟頫(자오 멍후, 1254~1322), 전선錢選(치앤 쉬엔, 1235~1301년 이후), 명대(明代)의 심주沈周(선 저우, 1427~1509), 동기창董其昌(똥 치츠앙, 1555~1636), 청대(淸代)의 맹영광孟永光(멍 융구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고려나 조선시대 화가에 대한 언급은 공민왕恭愍王, 이징李澄(1581~1645), 이덕익李德益, 윤두서尹斗緖, 정선鄭敾(1676~1759) 등이 있는데, 화가와 그림에 대한 간략한 평가로 이루어져 있다. 여러 화론서와 서화를 두루 섭렵했던 이하곤은 학식이 높은 선비화가들의 작품을 높게 평가하고 사의*(寫意)를 중시하였던 경향을 보인다. 그러나 그는 정신을 중시하는 것과 더불어 그리는 대상을 닮게 그리는 형사(形似)도 중요시하는 독특한 회화관을 전개하여 당시로서는 진취적인 회화관을 제기하였다. 이는 당대(當代)의 화가 윤두서가 그린 자화상*이나 말그림, 노승도(老僧圖) 등에 대해 사실성이 높은 훌륭한 그림이라고 평가한 것으로 알 수 있다. 아울러 정선의 진경산수*(眞景山水) 그림이 중국식의 그림이 아니라, 자신의 시의(詩意)로서 그려진 개성있는 그림이라는 품평을 함으로써 선구적 비평 안목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회화는 완물상지(玩物喪志)의 대상’이라는 성리학적인 회화관에서 한걸음 나아가 회화에 대하여 높은 가치를 부여하였다.

두폭 제단화

두폭 제단화 diptych(영)

나무나 상아로 만들어진 패널* 두 개가 마치 책과 같은 형태로 접히도록 고안된 패널화 한 쌍. 이러한 형태의 패널화는 로마 시대의 필기용 서판(書板)에서 유래되었는데, 그것은 움푹 들어간 서판의 밀랍 표면을 보호하기 위해 닫혀질 수 있게 만들어졌다. 상아로 된 두폭 제단화는 4세기부터 사용되었으며 로마 집정관이 공직취임을 비롯한 중요한 시기에 황제와 원로원을 알현할 때 썼다. 이러한 집정관용 두폭화의 내부 표면에는 집정관의 이미지와 그를 축하하는 장면들이 새겨졌다. 6세기에 집정관직이 폐지되면서 집정관용 두폭화는 사라졌다.
이후 두폭화 형식은 종교적 목적으로 사용되었다.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면 주로 목재로 패널을 만들게 되었으며, 내부에는 이미지를 그려넣어 개인의 신앙심을 표현하기 위한 이동용 제단화로 사용하였다. 이 때 패널의 한 쪽에는 예수나 성모자의 이미지 또는 문중(門中) 성인의 이미지를 그렸으며 다른 한 쪽에는 신앙심에 젖어있는 제단화 주인의 초상화*를 그리는 경우가 많았다. 바깥쪽 표면은 종종 개인적인 상징이나 문장(紋章)으로 장식되었다.

→ ‘제단화’ 참조.

드라이 포인트

드라이 포인트 dry point(영)

동판화* 기법의 하나. 닦아낸 동판 위에 매우 예리한 기구, 일반적으로 다이아몬드 포인트나 루비 포인트로 그림을 직접 새기는 판화방법. 그 선은 조각칼로 파낸 선이나 부식액을 쓰는 에칭*의 선과는 다르다. 즉 이 경우는 판화가 침의 첨단(尖端)에 의해 파뒤집혀져서 오목선의 양쪽 혹은 한 쪽에 깔쭉함, 즉 버(burr)가 생기는데, 이것이 드라이 포인트의 특색이다. 이 버는 깎아내는 기구로 떼어낼 수 있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서는 특수한 효과를 얻기 위해서 그대로 두는 경우도 있다. 드라이 포인트는 선으로 된 단순한 디자인에서부터 매우 발전된 색조 구성에 이르기까지 그 형태가 매우 다양하다. 또한 그것은 자체가 단독적으로 쓰이기 보다는 에칭과 같은 다른 과정들과 결합되어 이용되어 왔는데, 빠르고 직접적으로 제작할 수 있으므로 악센트를 주거나 마무리를 하는 데 주로 이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