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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절

삼절 三絶

동양화에서 흔히 쓰이는 말로 두 가지 설이 있다. ①시(詩), 서(書), 화(畵)의 세 가지 모두에 높은 경지를 이루었을 때 ‘삼절’이라 부른다. 당唐 현종玄宗 이융기李隆基(리 릉치)가 일찍이 정건鄭虔(즈엉 치앤)의 산수화에 제자(題字)를 쓰면서 “정건은 삼절이다”고 했다 한다. ②회화사에서 볼 때 동진東晋의 고개지顧愷之(꾸 카이즈, 344~406)를 흔히 삼절로 불렀다. 《진서晋書》의 고개지 본전(本傳)에 그가 “재절(才絶), 화절(畵絶), 치절(痴絶)의 세 가지를 구비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③명, 청(明淸)시대에는 또 ‘재절, 화절, 서절(書絶)’을 ‘삼절’이라 불렀다.

삼청상

삼청상 三淸象
San-ching-hsiang(중)

도교(道敎)의 세 신인 옥청원시천존玉淸元始天尊, 상청령보도군上淸靈寶道君, 태청태상로군太淸太上老君의 세 상(像)을 칭한다. 세 신은 각각 옥청궁玉淸宮, 상청궁上淸宮, 태청궁太淸宮에 거주한다고 한다. 오대(五代)에 삼청을 주조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원대(元代)의 영락궁永樂宮 삼청전三淸殿(1325)에서는 소조상으로 만들었다. 회화*로서는 도교 사원의 벽화*에 그려진 경우가 많으며 괘폭(掛幅)으로 된 〈삼청위기도三淸圍碁圖〉(東京 根津美術館 소장) 등이 있다.

삼품

삼품 三品

중국 회화비평 기준의 하나. 당대(唐代)의 장회관張懷瓘(즈앙 후에이꾸완, 8세기 전반기 활동)은 《화단畵斷》에서 처음으로 신, 묘, 능품(神, 妙, 能品)이라는 회화비평 기준을 제시하였다. 신품이란 그림의 기예와 공력이 탁월하고 절묘하여 형사*(形似)와 신운(神韻)이 겸비되는 것이고, 묘품이란 의취와 구상이 절묘하여 표현에서 마땅함을 얻는 것이다. 능품이란 형사를 얻어 법칙을 잃지 않는 것이다. 원대(元代)의 하문언夏文彦(시아 원이앤)의 《도회보감圖繪寶鑒》에서는 삼품에 관해 “신품은 하늘이 이루어 주는 것이며, 묘품은 의취가 넘쳐서 되는 것이고, 능품은 형사를 얻는 것”이라 하였다. 이 삼품 외의 평가 기준으로 ‘일품(逸品)’이 있는데, 이것은 당말(唐末)의 비평가 주경현朱景玄(주 징시앤, 9세기 전반기 활동)이 《당조명화록唐朝名畵錄》 서문에서 덧붙인 것이다. 그는 “장회관은 《화단》에서 신묘, 능 3품으로 그 등급을 정하고 다시 이를 상중하 셋으로 나누었다. 이러한 격(格) 외에 상법(常法)에 구애받지 않는 것으로 일품이 있으니, 이것으로써 그 우열을 표시한다”고 하였다.

삿갓천장

삿갓천장

→ 연등천장

상감

상감 象嵌 inlay(영)

공예품의 표면에 다른 재료를 감입(嵌入)해서 문양을 나타내는 장식법. 원래 금속공예의 은입사(銀入絲) 기법이 발전한 것으로, 나무, 도자, 유리 등에도 사용된다. 상감재로서는 그 외에 돌, 조개껍질, 뼈, 뿔 등이 있다. 메소포타미아의 초기왕조와 고대 이집트*에서부터 널리 사용되어 왔던 오래된 기법으로, 중국에서는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부터 시작되었다. 한국에서는 12세기 전반에 청자*에 상감기법을 최초로 응용하여 상감청자*를 만들어냈다. 상감기법의 종류로는 상감재를 실처럼 끼워넣은 선상감(線象嵌), 평면으로 끼워넣는 평상감(平象嵌), 상감재를 튀어나오게 끼워넣는 고육상감(高肉象嵌), 끊어넣는 절상감(切象嵌) 등이 있다.

상감청자

상감청자 象嵌靑磁

고려시대에 상감*기법을 독창적으로 도자에 응용하여 장식한 청자*. 성형한 그릇이 반건조 상태일 때 문양을 조각칼로 음각하고 그 부분에 백토니(白土泥), 자토니(豕土泥)를 붓으로 발라, 마른 후 기벽에 덧묻은 이토를 깎아내면 음각한 부분에만 이토가 남아 문양이 표현된다. 여기에 청자유를 입혀 구우면 백니는 백색으로, 자토는 흑색으로 발색되어 문양은 투명한 청자유를 통해서 아름답게 비친다.
고려 의종 13년(1159)때 죽은 문공유묘文公裕墓에서 출토된 〈청자상감보상당초문대접靑磁象嵌寶相唐草文鉢〉은 완숙한 상감기술을 보여주고 있어, 12세기 전반기부터 제작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13세기 중엽까지 전성기를 누렸으며 조선시대 분청사기*에도 사용되었다.

상남폄북

상남폄북 尙南貶北

남종화*(南宗畵)를 숭상하고 북종화*(北宗畵)를 배척한다는 내용의 중국회화 이론. 상남폄북은 동기창董其昌(똥 치츠앙, 1555~1636), 막시룡莫是龍(모 스롱) 등의 남북종론(南北宗論)에 기초하고 있다. 이들이 제기한 남북종론에서는 역대의 화가들을 문인화가와 직업화가로 나누고 그 작품들을 각기 남종화와 북종화로 나누었다. 나아가 문인화가들이 그린 남종화는 고아하고 미적 가치가 높으며, 직업화가들이 그린 북종화는 천박하고 그 가치가 떨어진다고 주장하였다. 문인화*를 위주로 사인기(士人氣) 넘치는 흉중구학*의 화도(畵道)를 추구해야 한다는 논조로 북종화를 폄하했다. 이러한 주장은 ‘상남폄북’이라는 개념으로 귀결되었다.
동기창, 막시룡 등의 상남폄북론은 문인화가와 직업화가의 신분적 차별과 동시에 양자의 화풍이 상이한 점에 근거를 두고 있다. 상남폄북론은 중국의 근대, 현대회화사는 물론 한국의 조선 후기 이후 최근의 회화사에까지도 막강한 영향력을 미쳐왔다. 그러나 현대의 회화연구가인 유검화兪劍華(위 지앤화)는 남북종론이나 상남폄북론이 문인화가였던 동기창, 막시룡 등의 관념적 기호에 의한 단순한 분류에 지나지 않는다고 반박하였다.

→ ‘남종화’ ‘문인화’ ‘북종화’ ‘화지’ 참조

상륜부

상륜부 上輪部

한국 탑*의 옥개석 위쪽에 있는 장식물들로 일반적으로 방형의 노반(露盤)에 복발(覆鉢)과 앙화(仰花)를 얹고 그 위에 찰주(刹柱)를 세우면서 보륜(宝輪), 보개(宝蓋), 수연(水烟) 그 다음으로 용차(龍車)와 보주(寶珠)를 놓는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 ‘탑’ 참조

상면석

상면석 床面石 stylobate(영)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는 건축의 기둥을 받쳐주기 위하여 대개 땅 위에 크레피스(돌계단)라고 부르는 세 단의 토대석을 쌓는다. 이 위에 계속 상면석을 깔고 다시 그 위에 기둥을 얹혀 놓는다.

상상

상상 想像 imagination(영) Phantasie(독)

현실에서 획득될 수 있지만, 지금 현재에는 실재하지 않는 인상을 기반으로 하며, 사고를 통해 의식 속에 새로운 직관적 심상(心象)을 떠올리는 작용. 사람들을 현실로부터 분리시키는 몽상(夢想)과 구분되는 건전한 상상은 일반적인 사회적 요구와 결부된 것으로서, 사람들에게 현실에 대한 인식을 할 수 있게 해 주고 그것을 변화시켜 나갈 수 있는 능동적인 힘을 준다. 예컨대 과학자는 상상의 도움을 받아 가설(假說)을 만들기도 하고 모델을 고안하기도 한다. 예술가는 예술적으로 의미가 있는 상(象)을 생생하게 그려, 그것들의 실재하는 것에 대한 인식의 능력을 창조하기도 한다. 생활에서도 존재해야 하는 것에 대하여 마음 속으로 만들어 낸 이상(理想) 역시 상상의 산물이며, 이것은 사람들을 계발하는 힘이 된다.
상상은 지각(知覺)과 달라서 외계의 사물을 대상으로 갖지 않으며, 더욱이 명백한 직관성을 갖춘 심상을 의식 중에 생기게 한다는 내발(內發)적인 직관성을 첫번째 특징으로 한다. 처음부터 상상에 의거하여 생기는 심상도 어떤 의미에서는 지각심상의 경험에 의존하며 거기서 소재를 얻는 수가 많으므로 상상은 과거의 지각경험의 재생작용인 기억과 유사한 성격을 갖는다. 또 상상하는 의식 태도와 지각하는 의식 태도는 본래 별개의 것이다. 지각심상은 일단 기억심상으로 바뀐 다음, 비로소 상상심상과 관련을 맺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상상에 대한 기억의 의미는 크다.
그러나 지각과 기억이 결국은 현실의 경험에 따르며 이것을 수동적으로 파악 혹은 재생한다면, 상상은 반드시 현실에 구애받지 않는다. 독자적인 세계를 구성하는 능동적 성격을 갖는 상상은 종종 사고(思考)와 비교해서 논의된다. 즉 상상은 직관적 심상의 흐름에서 성립하는 전체적 의식체험이며 일종의 능동적 구성작용을 가진다는 점에서 광의의 사고와 비교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협의의 사고에서는 표상 계열의 논리적, 개념적 연관이 그 본질을 이루며 심상의 직관성이 부수적인 의미를 갖는데 불과하다. 이와 반대로 상상은 심상에 의한 사고로서, 심상의 흐름 그 자체에서 성립한다는 점에서 사고와 분명히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