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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수목도

유정수목도 幽亭秀木圖

산수화*의 한 화제(畵題). 수직으로 높이 뻗은 나무와 그 밑에 정자 하나를 그리고 원경을 배치하는 간결한 구도의 산수화를 말한다. 원사대가*의 한 사람인 예찬倪瓚(니 짠, 1301~1374) 이래 문인화가들이 즐겨 그렸다. 예찬은 1354년에 그린 <송림정자松林亭子>에서 전경의 물가에 배치된 나무와 빈 정자, 중경의 강물, 그리고 원경의 산 등 예찬 특유의 산수화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또 그의 유명한 작품 <용슬재도容膝齋圖>(1372)에서는 얼음같이 찬 바위 위에 서 있는 몇 그루의 앙상한 나무, 예리한 선으로 묘사된 빈 정자, 나지막한 원경의 산으로 이루어진 쓸쓸한 풍경을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양식의 그림들은 속기가 없는 담백한 그림으로 추앙되었고, 하나의 화제로 유행하였다. 이에 동기창董其昌(똥 치츠앙, 1555~1636)은 이 화제의 뜻을 설명하기를, 정자에 속물이 없음을 유(幽)라 하고, 후련하게 솟은 나무가 서리를 맞으며 잎사귀에 단풍이 곱게 든 것을 수(秀)라 하였다.

유토

유토 油土 plasticine(영)

조소*의 재료. 소상(塑像) 따위를 만들 때, 점토보다 부드러운 맛을 내기 위해 쓰는 기름 섞인 흙을 말한다. 주성분은 유황, 산화 아연, 밀랍, 올리브유로서 천연토는 들어 있지 않다. 기온에 따라 경연(硬鉛)의 변화는 있으나 점착력이 있으므로 조각의 소품이나 복잡한 모양의 부조 등에 적합하다.

유파

유파 流派
school(영) école(프)

일단의 예술가들이 공통된 이념, 예술관, 기법, 지역적 기반 등을 토대로 함께 모여 결성하고 공동으로 활동이나 작업을 추진하는 하나의 일관된 미술운동 또는 모임. 화파(畵派)라고도 한다. 무브먼트* 개념과 유사하지만 유파가 보다 집단의 결속력이 강한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유형학

유형학 類型學 Typology(영)

유형학은 신적인 영감을 받아 쓰여진 성서(聖書)가 총체적이고 일관된 체계를 가졌다는 믿음에서 비롯된다. 이를 테면, 구약 성서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사건들은 신약 성서에 등장하는 인물과 사건들에 일치하는 전조를 이룬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교회에서는 신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인물을 세계의 구원자라고 인간들에게 알리고 이해하게 하는 방법으로써 구약에서 이미 성서의 저자들에게 계시를 했다는 입장을 고수한다. 이에 대해 성 아우구스티누스St. Augustinus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구약성서는 베일에 가려진 신약성서와 같고, 신약성서는 베일이 벗겨진 구약과 다르지 않다.” 그러한 입장에서 서양의 기독교 미술은 다양한 테마들을 그 유형학적 일치점을 고려하여 함께 그룹지어 그려내는 방법을 택하였다. 이를 테면, 구약에서의 만나의 기적이 신약의 최후의 심판과, 요나가 고래의 뱃속에서 탈출하는 사건은 신약에서의 예수의 부활과, 그리고 야곱의 사다리는 예수의 승천과 함께 묶어서 묘사되는 것 등이 있다.

유화

유화 油畵
oil painting(영) peinture á l’huile(프)

안료를 녹이는 매재*로서 린시드유*를 사용한 그림. 유채화라고도 한다. ‘유화’라는 용어는 그림을 그리는 방법에 대해서도 쓰여지고, 그러한 방법으로 그려진 그림에 대해서도 쓰여진다. 유화 기법의 특징은 다른 기법과 비교해서 색조, 색의 농담을 쉽게 얻을 수 있는 동시에 선적 표현도 가능하고 광택, 반광택, 무광택의 효과, 혹은 불투명, 반투명, 투명의 묘법도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으며 두꺼운 칠, 얇은 칠, 혹은 기복의 변화가 있는 화면 등 재질감의 표현이 가능하다. 또한 제작 중의 색과 건조 후의 색의 변화도 없는 등의 장점을 가진다. 여러 시대에 걸친 각 유파의 기법이 구조와 외양에 있어서 다르기 때문에, 그림의 방법과 재료 등 매우 다양한 범위에 걸쳐 사용되었다. 그러나 유화라고 부를 때 그 공통적인 특징은 매재에 건성유*를 사용하는 것이다.
유화가 15세기 초반 반 아이크van Eyck에 의해 발명되었다고 하는 바자리Giorgio Vasari(1511~1574)의 주장은 잘 알려져 있지만, 유화의 기원은 분명하지 않다. 반 아이크는 햇빛에 쬐지 않고서도 마르는 바니시*를 연구하는 동안 린시드유와 호도유에서 이러한 성징을 발견하였다. 반 아이크는 이러한 기름을 색소에 대한 매재로 사용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러한 기름이 이보다 훨씬 이전인 중세에 이미 사용되었음이 확인되었다. 어쨌든 반 아이크가 보다 나은 유연성, 보다 풍부한 색조, 보다 범위가 확장된 명암을 유럽 회화로 유입하면서 유화의 기법상 하나의 혁명을 실현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와 같이 초기 플랑드르파에서 사용되기 시작한 이 새로운 화법이 다 메시나Antonello Da Messina에 의해 이탈리아로 전해졌고, 이때부터 새로운 유화 방법의 보다 큰 잠재력이 표출되기 시작하여 점차 종래에 성행하던 템페라*화와 교체되기에 이르렀다. 세부적인 명암의 변화, 색채와 대기의 자연주의적인 재현, 공간에 입체적으로 표현되는 형식, 색조의 미묘한 변화와 혼합 등 이러한 특징은 템페라로는 처리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이제 물감은 조직적인 특질을 갖고 있는 실체로 인정되고, 그 자체의 표현성을 살리면서 사용되기에 이르렀는데, 유화의 가장 큰 특징이랄 수 있는 이러한 기법이 르네상스* 화가들 중에서도 티치아노Tiziano(1485~1576)의 후기 작품에서 절정에 달하였다. 티치아노는 그림의 구조와 입체감 표현 작업에 있어서 주로 색채와 안료에 의존하였다.
17세기에는 루벤스Pieter Paul Rubens(1577~1640), 벨라스케스Diego Rodriguez de sila Y Velasquez(1599~1660), 렘브란트Rembrandt(1606~1669)를 통하여 다양한 유화 기법이 완벽하게 구사되었다. 이들은 유화만이 가능한 제작의 신속함과 분방함, 미묘한 명암의 변화 등을 능숙하게 처리하여 바로크 회화의 양식 형성에 많은 기여를 하였다.
19세기 중반에는 두 가지 면에서 혁명이 일어났다. 그 하나는 상업적인 재료상이 등장하여 화가가 직접 하던 재료의 제조과정을 떠맡았다는 것이다. 짤 수 있는 주석 튜브의 발명은 이전에 사용되었던 불편하고 지저분한 주머니를 대신하여 작업 면에서 기본적인 변화를 가져 왔다. 뿐만 아니라 옥외에 나가 자연을 직접 그릴 수 있는 일이 가능하게 되었다. 매재로서 포피유의 사용은 천천히 마르는 그림을 만들게 되었지만, 동시에 두껍게 버터를 바른 듯한 견고함을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견고함은 붓 터치와 같은 거친 흔적을 보존할 수 있게 했는데 이전에는 그러한 흔적들이 곧 평평하게 사라져 버리기 일쑤였다. 이 같은 물감 성질의 변화는 덧칠해서 원하는 색채를 내는 방법이 아닌, 직접 또는 프리마묘법*으로 그리는 것을 선호하게 하였는데, 이것은 유약칠과 바림(scumbles)으로써 투명 또는 반투명의 물감을 여러번 덧칠하여 그리는 방식이 아니라, 이제는 화가가 마치 그림의 마지막 단계에서 나타나는 효과를 의도했던 것처럼 색채를 부분적으로 칠한다.
또한 직접 그리는 방법은 자연스러움과 충동성을 나타낼 수 있게 하였다. 이전에는 그릴 것을 머릿 속에 구상해 놓은 체계가 있어야 했다. 이제는 세심한 소묘와 주의깊은 밑그림 작업에 따라 단계적으로 조심스럽게 그리는 것이 아니라, 밑그림이 마르지 않은 상태에서 단 한 번의 덧칠을 하거나 아니면 거의 덧칠을 하지 않고서도 그림을 완성할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많은 19세기 화가들에게는 장식적인 붓터치가 더이상 그림의 표현적인 종속물이 아니라, 그림의 본질적 요소가 되었고, 그들 양식의 뚜렷한 특징을 갖게 하였다.
두번째 변화는 인상주의자들의 영향에 의한 것이다. 16세기와 17세기의 화가들은 몇 개 안되는 비교적 밝은 색채를 사용했다. 그래서 그들은 보다 짙은 색조의 사용을 선호하였는데, 이러한 색조로서 미와 강렬함을 최대한 나타낼 수 있었다. 그러나 19세기 중반에는 보다 많은 밝은 계통의 색채, 특히 금속성의 색채를 이용할 수 있게 되어, 그들의 팔레트는 연보라색, 보라색, 밝은 녹색, 오렌지색, 다양한 청색, 강렬한 노란 색 등으로 더욱 풍부해졌다. 그러나 인상주의자들에 의한 이러한 새로운 방법은 물감의 보다 밝고 풍부한 효과를 만들어내기보다는 빛과 대기를 재현하는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 낸 것이다. 20세기에 들어와서 유화의 역사는 끊임없이 불안한 실험양상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15세기 초나 19세기 중반에 일어났던 새로운 미적 전개가 매재를 다루는 방법에 따른 새로운 기법의 소개와 밀접하게 연관되었던 것에 비추어 보면, 20세기의 유화는 이에 비견할 만한 중요한 혁신을 보이지는 못했다. 다만 20세기의 가장 특징적인 혁신은 삼차원적인 구조물에 유화를 결합하는 방법을 고안한 것이다.

육각법

육각법 肉刻法

→ ‘타출법’ 참조

육기

육기 六氣

중국 화론(畵論)의 용어. 청대(淸代)의 추일계鄒一桂(처우 이지에, 1686~1772)가 《소산화보小山畵譜》에서 주장하였다. 추일계의 자(字)는 원포(元褒, 原褒)이고 호(號)는 소산(小山)이다. 화훼와 산수 초상을 겸하여 그렸는데, 특히 화훼를 잘 그렸고 화훼 이론서인 《소산화보》를 저술하였다. 그는 《소산화보》에서 “그림에선 육기(六氣)를 피해야 한다. 첫째는 속기(俗氣)로 시골여자의 화장 같은 것이고, 둘째는 장기(匠氣)로 교묘하긴 하지만 신운(神韻)이 없는 것이고, 셋째는 화기(火氣)로 붓자루가 있긴 하지만 붓끝이 너무 노출된 것이고, 넷째는 초기(草氣)로 너무 조잡하여 문기(文氣)있고 아취있는 기색이 없는 것이고, 다섯째는 규각기(閨閣氣)인데 묘사한 선들이 너무 부드럽고 약해서 골력(骨力)이 전혀 없는 것이고, 여섯째는 축흑기(蹴黑氣)로 멋모르고 함부로 창작하는 것이니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것이다”라고 쓰고 있다.

육법

육법 六法

중국 남북조(南北朝)시대 남제南齊의 사혁謝赫(시에 허)이 지은 《고화품록*古畵品錄》의 서문에 나오는 회화*의 제작 감상에 필요한 여섯 가지 요체. 첫번째 요체인 ‘기운생동(氣韻生動)’은 대상이 갖고 있는 생명을 생생하게 그려내는 것, 두번째인 ‘골법용필(骨法用筆)’은 형상을 묘사하는 데 있어서 필치와 선조(線條)를 적절하게 사용하는 것, 세번째인 ‘응물상형(應物象形)’은 대상의 실제모양을 충실하게 사실적으로 그리는 것, 네번째인 ‘수류부채(隨類賦彩)’는 사물의 종류에 따라 정확하고 필요한 색을 칠하는 것, 다섯번째인 ‘경영위치(經營位置)’는 제재의 취사선택과 화면의 구도와 위치 설정을 잘 하는 것, 여섯번째인 ‘전이모사(傳移模寫)’는 옛그림의 모사를 통해 우수한 전통을 더욱 발전시키는 것을 뜻한다. ‘기운생동’은 중국회화에 있어서의 미학원칙이라 할 수 있고, ‘골법용필’은 조형기교이며 ‘응물상형’ ‘수류부채’ ‘경영위치’는 표현기교로 이해된다. 이 가운데서 특히 첫번째인 ‘기운생동’은 중국 회화창작에 있어서 가장 많이 요구되어졌다. 처음에 기운은 대상 본위의 외면적 기운관(氣韻觀)에서 출발하였다. 그러나 당唐 중기(8세기 후반) 이후 사의*(寫意) 혹은 심인(心印)이라는 내면적 표현의 존중으로 변화하여 북송北宋 문인화론의 기초가 되었다.

육요

육요 六要

중국 회화에서 창작에 요구되는 여섯 가지의 사항을 일컫는 용어. 두 가지 설이 있다. ①오대(五代) 양梁나라 형호荊浩(싱 하오)의 《필법기*筆法記》에서 말한 기(氣), 운(韻), 사(思), 경(景), 필(筆), 묵(墨)의 여섯 가지를 이르는 것으로 다음과 같다. 기는 ‘마음에 따라 붓을 움직임으로써 물상을 묘사함에 있어 미혹됨이 없는 것(心隨筆運取象不感)’이고, 운은 ‘필적을 숨기고 형상을 이루어냄으로써 법식을 갖추어 속되지 않는 것(隱迹立形 備儀不俗)’이다. 사는 ‘큰 요점만 남기고 잔생각들을 잘라냄으로써 상상을 응집하여 사물을 형상화시키는 것(刪拔大要 凝想形物)’이며, 경은 ‘때에 의거하여 제도에 맞추면서도 오묘한 것을 모아 진을 창조하는 것(制度時因 搜妙創眞)’이다. 필이란 ‘비록 법칙에 의거하긴 하지만 운용하면서 적당히 변통하는 것(雖依法則 運轉變通)’이고, 묵은 ‘색채의 밝기를 조절하여 사물의 깊고 얕음을 결정하는데 문채가 자연스러워서 마치 붓을 대지 않은 것처럼 하는 것(高低暈淡 品物淺深 文彩自然 似非因筆)’이다. ②북송北宋의 유도순劉道醇(리우 따우쉰)이 《성조명화평聖朝名畵評》에서 그림을 이해하는 비결은 육요를 알고 육장(六長)을 탐구하는데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기운겸력(氣韻兼力), 격제구로(格制俱老), 변이합리(變異合理), 채회유택(彩繪有澤), 거래자연(去來自然), 사학사단(師學舍短)의 여섯 가지를 육요로 내세웠다.

육원

육원 六遠

산수화*의 이론. 산의 높이를 표현하기 위해 산 아래에서 꼭대기를 쳐다본 고원(高遠), 깊이를 표현하기 위해 산의 전면에서 후면을 넘겨다본 심원(深遠), 거리를 표현하기 위해 가까운 산으로부터 먼산을 바라본 평원(平遠)의 삼원*에 활원(闊遠), 미원(迷遠), 유원(幽遠)을 더한 것. 북송北宋의 한졸韓拙(한 주어)이 저서 《산수순전집山水純全集》에서 제창하였다. 한졸에 따르면, 활원은 가까운 언덕에서부터 넓어진 산수를 바라본 것이고, 미원은 노을이나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서 들판이나 강을 사이에 둔 경관이 분명하게 보이지 않는 것을 말하며, 유원은 경관 전체가 약간 어렴풋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곽희郭熙(구어 시)의 삼원은 산수화의 기본적인 구성원리를 시점(視點)을 통하여 설명한 것이지만, 한졸이 덧붙인 삼원은 산수 경관의 인상을 설명한 것이다. 그러므로 육원은 삼원을 정밀화, 혹은 확장한 것이라고 그 개념을 규정할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