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1 2 7

지오테스키

지오테스키 Giotteschi(이)

지오토파(派)라는 의미. 14세기에 르네상스의 새로운 회화 유파가 생겨날 때까지 이탈리아 각지에서 형성된 지오토Giotto(1266~1337) 양식의 후계자 혹은 그 모방자를 말한다. 유명한 지오테스키는 가디Taddeo Gaddi, 다디Bernardo Daddi등이 있다. 이들은 지오토로부터 정방형의 인물상들과 널찍한 배경 처리법 등을 배웠으며, 그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행위와 표정을 연구했다.
지오토의 가장 충실한 후계자로는 특히 마소 디 반코Maso di Banco를 꼽을 수 있다. 가디는 빛과 깊이를 탁월하게 표현하는 지오토의 방법을 더욱 발전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인물들을 생동감있게 표현하기 위해 세부에 집착하는 것은 지오토의 정신과는 동떨어진 것이었다. 다디는 밝은 색조, 우아한 장식, 그리고 즐거움이 넘치는 듯한 분위기의 연출에 주력했다. 가디의 설화에 대한 선호, 다디의 화려한 장식에의 선호 등은 14세기 중반에 접어들면서 오르카냐Orcagna의 경향 속에서 절정에 이르렀다. 오르카냐도 때로는 지오테스키로 분류되지만 그것은 단지 그가 당시에는 이미 관례화되어 있던 지오토적인 인체 유형을 따르고 있다는 의미에서일 뿐이다.

지우기

지우기 Verwischung(독)

데콜라주* 기법의 하나. 화학적인 부식제(腐植濟) 또는 색(물감)을 덧칠함으로써 인쇄물의 사진이나 그림을 부분적으로 말소하는 행위. 그렇게 말소함으로써 생기는 언어의 단편(斷片)이나 문자의 중복 등에 의해 예기치 않은 신선감이나 흥미있는 효과를 노리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이 기법은 다다*, 특히 포스텔Wolf Vostell에 의해 형태 파괴의 수단으로 자주 이용되었다. 사진의 경우에는 산성(酸性)의 수정액을 사용하여 말소한다.

지장보살

지장보살 地藏菩薩
Kristigarbha(범)

《지장보살본원경地藏菩薩本願經》에 의하면, 석가여래가 입멸한 뒤부터 미륵불이 출현할 때까지 육도의 일체중생을 교화할 것을 맹세한 대자대비의 보살이다. 인도의 지신(地神)에서 유래하였으며 지옥에서 고통받는 중생을 구제해주는 힘이 있다. 특히 악도(惡道)에 떨어져 헤매는 중생들이 성불하기 전에는 결코 성불하지 않을 것을 맹세하였으므로, 자신의 성불은 사실상 포기한 보살이다.
중국에서 전하는 바에 의하면, 그가 모습을 나타내서 설법하던 도량이 안휘성安徽省 구화산九華山에 있다 한다. 구화산 월신보전月身寶殿 안에 있는 〈칠급목질보탑七級木質寶塔〉에는 매 층마다 불감*(佛龕) 여덟좌가 있는데, 모두 지장의 전신좌상이 모셔져 있다. 그 밖에 대족석굴* 177호 지장변상굴, 돈황*막고굴의 오대(五代), 송대(宋代) 석굴에는 통로의 천장부위에 지장상이 그려져 있다.
한국에서는 자비의 보살인 관음보살*과 함께 가장 많이 신앙되었으며 사찰에서 명부전의 주존으로 신앙되었다. 원래의 형상은 천관(天冠)을 쓰고 가사를 입으며, 왼손에는 연꽃을, 오른손은 시무외인을 하거나 보주(寶珠)를 들기도 한다. 또한 삭발한 머리에 석장을 짚고 여의주를 들고 있기도 하는데, 이는 《연명지장경延命地藏經》에 근거한 모습이다. 고려시대에는 두건을 쓴 형태로 표현되기도 하였다.

지화

지화 指畵

→ 지두화

직공도

직공도 職貢圖

중국 풍속화*의 한 화제(畵題). 중국의 궁정에 조공하는 외국 민족의 형상, 복식, 풍속 등을 그린 것이다.
양梁의 원제元帝 소역蕭繹(샤오 이)이 대동 5년(大同, 539)께 아버지인 무제武帝(재위 502~548) 때의 조공을 묘사한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며 이후 중국 회화사에서 중요한 화제의 하나가 되었다. 유명한 작품으로는 당대(唐代)의 화가 염립본閻立本(이앤 리번, ?~673)이 그린 <직공도>(대북 고궁박물원)가 있다.
이 그림은 외국 민족들이 당唐나라 황제에게 기이한 물건을 조공하러 오는 광경을 그린 것이다. 이역의 진기한 괴석과 보물을 들고 오는 사람들의 표정이 각기 기이하게 그려져 있어, 당시 서역인들의 의습과 행동을 잘 나타내고 있을 뿐 아니라, 당나라의 국가적 번영과 강성함을 반영하고 있다. 당대의 또다른 화가 주방周昉(저우 황, 8세기)이 그린 <만이직공도蠻夷職貢圖>(대북 고궁박물원)도 유명하다.
외족 서역인이 기이한 동물을 몰고 중국 황제에게 바치러 오는 그림으로 염립본의 <직공도>와 매우 유사하다. 이외에도 염립본의 작품으로 전해지는 <회흘진보도回紇進寶圖>(東京 根津美術館), 희녕 10년(熙寧, 1077)의 모본인 <직공도권職貢圖卷>(남경박물원), 원元의 임백온任伯溫(르언 뽀원)이 그린 작품(샌프란시스코 아시아 미술관) 등이 있으며, 청淸 건륭 16년(乾隆, 1751)의 <화원합작본畵院合作本>(북경 고궁박물원)이 있다.

진경산수

진경산수 眞景山水

조선 후기 정선鄭敾(1676~1759)에 의해 형성된 화풍을 말한다. 우리나라에 실재하는 경관의 사생에 주력하여 정선 특유의 화풍으로 발전시킨 산수화*이다. 이 화풍은 조선 후기의 화원(畵員)들 사이에서 한때 널리 추종되었다.

→ ‘정선파’ 참조

진묘수

진묘수 鎭墓獸
zhen-mu-shou(중)

중국에서 묘(墓) 속에 놓아 두는 신상*(神像)으로 주로 짐승형태를 하고 있다. 묘(墓)에 악영향을 미치는 악령을 내쫓을 목적을 지닌 것으로, 전국시대의 초묘(楚墓)에서 다수 출토되었다. 시기마다 형태가 다른데 초楚나라의 진묘수 중에서 초기의 것은 비교적 간단하여 얼굴에 오관(五官)이 없고 중기가 되면 복잡해져서 머리가 둘이 되고 호랑이의 얼굴에 오관을 구비했으며 구불구불한 목과 몸을 가진 것이 나타난다.
후기가 될수록 대체로 얼굴은 비교적 선하고 사람얼굴과 비슷해지기도 하지만, 공통된 특징은 머리에 꽂힌 사슴뿔과 방형(方形)의 대좌* 위에 위치한다는 점이다. 대부분 진묘수는 채색이나 칠(漆)이 되어있고 문양은 기이해서 신비함을 더한다.
이러한 진묘수는 초나라 신화 중에서 명부군주(冥府君主)인 토백(土伯)과 관련이 있다. 한대(漢代)부터 육조(六朝)시대의 묘에서 출토되는 토용(土俑)의 벽사(辟邪), 당唐나라 묘에서 출토되는 무서운 얼굴을 가진 짐승형 또는 인면수신(人面獸身)의 삼채용 등이 이에 해당하고 백제의 〈무녕왕릉〉에서도 출토되었다.

진사

진사 辰砂

적색 계통의 광물성 안료. 명칭은 산지였던 중국 호남성湖南省 북서부에 있는 진주辰州에서 유래되었다. ‘주사(朱砂)’ ‘단사(丹砂)’ ‘단주(丹朱)’라고도 한다. 세계 각지에서 고대로부터 쓰였고 동양에서는 화구(畵具) 외에 주칠(朱漆)이나 인주(印朱)로도 쓴다.
도자기의 안료로는 구리를 넣어 무늬를 그리는 데 사용하며, 무늬 위에 투명유를 발라 환원번조(還元燔造)하면 홍색으로 발색되는데 이를 ‘진사자기’라고 한다. 진사자기는 처음으로 12세기부터 한국에서 고려청자*에 사용하기 시작하였고 원, 명대(元明代)의 유리홍(釉裏紅)과 청대(淸代) 낭요(郎窯)의 우혈홍(牛血紅) 자기 등에 사용되었다.

진사채청자

진사채청자 辰砂彩靑磁

→ ‘고려청자’ 참조

진서

진서 眞書

→ 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