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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

명문 銘文

비석이나 기물에 새겨진 글. 청동기의 명문은 금문(金文), 비의 명은 비명(碑銘)이라고 한다. 상商, 주周 시대의 청동기는 주조명(鑄造銘)이 대부분이나 전국(戰國)시대 이후에는 각명(刻銘)이 많아졌다. 불상에는 조상명(造像銘)이 있으며 목각과 목조 건축에는 묵서명(墨書銘)이 있다.

명암법

명암법 明暗法 chiaroscuro(이) clair-obscur(프)

회화나 소묘에서 화면이나 묘사된 물체에 입체감과 거리감을 표현하기 위해 한 가지 색상만을 사용해 명암을 단계적으로 변화시킴으로써 원하는 효과를 얻는 기법. 화면에 밝기와 어두움을 표현하는 화법. 명과 암, 빛과 그림자의 대비를 통해 대상에 입체감을 부여하고 화면에 원근감을 표현한다.
명암법이라는 용어는 1681년 발디누치Filippo Baldinucci(1162~1196)가 처음으로 사용하였다. 드 필르Roger de Piles(1635~1709)의 정의에 따르면 명암법이란 ‘전체적인 효과뿐 아니라 눈에 휴식과 만족을 주도록 그림 속에 광선과 음영을 적절히 분배하는 미술’이다. 명암법은 르네상스 시대에 시작하여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1452~1519)에 의해 완성되었다. 그러나 명암법은 빨리 건조되는 템페라*같은 매체에는 사용하기 어려웠다.
그러므로 유화가 등장한 이후에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하여 17세기경 바로크 시대에 최고조에 달했다. 특히 당대의 렘브란트Rembrandt(1606~1669)나 카라밧지오 Caravaggio(1571~1610)는 명암법을 활용하여 광원의 설정, 빛과 그늘의 대조적인 설정을 통해 극적인 효과를 연출하였다. 그 밖에도 퓌슬리Henry Fuseli(1741~1825), 오피John Opie(1761~1807), 베리James Barry(1741~1806) 등이 명암법의 대가로 유명하다.

명왕

명왕 明王 Vidya-raja(범)

‘명’은 지식을 나타내는 말로, 주문진언, 다라니를 가리킨다. 명왕은 주문을 관할하는 왕자(王者) 혹은 주력을 가진 지명자(持明者) 중에서 가장 훌륭한 자를 말한다. 불교에서는 ‘위노왕威怒王’ ‘분노왕忿怒王’이라고 하며 지혜의 작용에 의해 중생을 구제하는 방편불(方便佛)이다. 부처의 명령으로 교화하기 어려운 중생과 이교의 신들을 항복시키기 위하여 다비의 공포스러운 형상으로 나타난다. 종교적인 의미에서 본다면 인간의 심성에 강한 의지를 심어주는 부처님의 다른 형상이라고 할 수 있다. 명왕은 밀교가 성립하면서 등장하였고, 5세기경 공작명왕이 최초로 등장하였다. 공작명왕은 독초나 해충을 잡아먹는 공작을 신격화한 것으로 모든 중생의 정신적인 번뇌를 제거하여 안락함을 주는 존상으로 명왕의 일종이지만 형상이 분노형이 아니고 자비로운 보살형으로 공작을 타고 있다.
한국에서는 고려시대의 동경*(銅鏡)이나 범종*(梵鐘)과 같은 불교 공예품에서 볼 수 있다. 7세기 이후에 등장하는 명왕은 모두 분노형으로 다면다비(多面多臂)상의 형상을 하고 있어 일반적인 도상*의 특징을 나타낸다. 이 중에서 오대명왕이 유명한데, 금강계(金剛界) 5불(佛)의 명령을 받아 교화하기 어려운 중생과 내외의 악마를 항복시키기 위하여 나타나는 5개의 명왕을 말한다. 중앙의 부동명왕(不動明王)은 대일여래(大日如來), 동방의 항삼세명왕(降三世明王)은 아촉불(阿閦佛), 남방의 군다리명왕(軍茶利明王)은 보생불(寶生佛), 서방의 대위덕명왕(大威德明王)은 아미타불(阿彌陀佛), 북방의 금강야차명왕(金剛夜叉明王)은 불공성취불(不空成就佛)의 방편불로 각각 배치된다.
한편 천태계(天台界)에서는 금강야차 대신에 오추사마(烏蒭沙摩)명왕을 넣은 경우도 있다. 오대명왕은 인도에서 성립 발전되었으나, 한 짝을 이루며 나타난 것은 8세기 중국 당唐나라에 이르러서이다. 한국에서는 삼국시대에 부동명왕을 만들었다는 《삼국유사三國遺事》기록이 전하나 실제로는 고려시대의 금강경이나 동경 등에서 볼 수 있다. 오추사마명왕에 관한 신앙 또한 고려시대에 있었으나 조형으로 나타난 것은 19~20세기 초의 신중탱화에서이다. 석가여래의 화현이며 더러움을 제거하는 기능을 가졌기 때문에 신중탱화의 주존으로서 중요한 위치에 놓였던 것 같다.

명치, 대정시대 미술

명치, 대정시대 미술 明治, 大正時代美術

→ 메이지, 다이쇼시대 미술

모노그램

모노그램 monogram(영)

이름의 머리글자를 짜맞추어 도안화한 것. 원래는 하나의 문자로 이루어진 문양이었으나, 이후 두 개 혹은 그 이상의 문자들이 서로 모여 만들어진 문양이나 표지를 말한다. 성명의 머리글자 두 개로 이루어지는 짝맞춤 글자로서 문자 이외의 형태를 결합하거나 다른 도안과 결합된 것도 있다. 보통 서명* 대신에 작품에 기재하거나 혹은 편지지나 인장 등에 쓰이는데, 뒤러Albrecht Dürer(1471~1528)의 A와 D의 짝짓기가 모노그램에 해당되는 예이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시대의 동전들 중 다수에서 지배자나 도시를 상징하는 모노그램이 발견된다.
그러나 모노그램이 보편화한 것은 기독교가 공인되고 난 후의 일이며, 그 도안은 십자가 도형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다. 가장 신성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뜻하는 그리스 문자를 결합한 것으로서, 15세기 중엽에 시에나의 성 베르나르두스가 창안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 모노그램은 원이나 화관 속에 그려지거나 혹은 제단*, 문장, 동전, 무덤, 방패, 천장 따위에 새겨져서 그리스도의 지고한 승리를 찬미하는 상징으로 사용되었다.
한편 중세에는 교회, 예술 그리고 상업상의 필요에 의해서 제작된 문양들이 번성하였다. 초창기의 인쇄업자들은 모노그램이나 문양을 자주 사용하였는데, 이는 주로 출판된 서적들에 대한 보증을 뜻하는 것이었다. 화가나 조각가, 도예가들도 유사한 방식으로 문양을 사용했다. 중세의 상인들은 문장(紋章) 표지 대신에 소유자의 이름 첫 글자와 사적인 문양으로 이루어진 모노그램을 상표처럼 쓰곤 하였다. 모노그램은 이렇게 상업적인 수단으로 사용된 경우라도 재앙이나 자연재해로 자신들의 상품을 보호해주는 기독교 교도의 표식으로서 거의 십자가를 포함하였다.

모노크롬

모노크롬 monochrome(영)

다색화(polychrome)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단일한 색조를 명도*와 채도*에만 변화를 주어 그린 단색화. 색채뿐만 아니라 내용*, 주제, 선, 형태를 거부한 모노크롬은 구성의 질서를 추구하는 전통적 미술 개념에 대한 반발로 시작되어 전체주의적(wholistic) 관점에 기반을 두고 있다. 모노크롬의 기원은 20세기초 절대주의* 화가인 말레비치Kasimir Malevich(1878~1935)의 <흰 바탕 위의 검은 사각형>과 러시아 구축주의* 작가인 로드첸코Alexandre Rodchenko(1891~1956)의 <검정 위의 검정>을 들 수 있다. 1945년 이래 만조니Piero Manzoni(1933~1963), 폰타나Lucio Fontana(1899~1968), 클랭Yves Klein(1928~1962), 라인하트Ad Reinhardt(1913~1967), 맨골드Robert Mangold(1937~ ), 라이만Robert Ryman 등의 작가들이 단색회화 작업을 전개하였다.
특히 1946년 최초의 단색 실험을 시도한 클랭은 1957년 일명 ‘인터내셔널 클랭 블루IKB, International Klein Blue’라고 불리는 그의 고유한 청색 모노크롬을 고안하였다. 그는 청색이 가장 비물질적이고 절대와 무한을 표상하는 색이라고 생각했으며 이를 통해 비물질적인 실체를 추구하고자 했다. 클랭은 청색 이외에도 금색(monogolds)과 장미색(monopinks)의 모노크롬을 말년에 제작하였다. 청색이 정신성을 의미한다면, 금색은 절대, 분홍색은 삶을 상징한다. 이처럼 자신만의 고유한 모노크롬 색상을 창조하였던 클랭은 더 나아가서 그것으로 특허까지 받았다. 한가지 색상으로 이루어진 모노크롬은 특히 1960~1970년대에 이르러 하나의 주요한 추상회화 양식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그 배경으로는 그린버그Clement Greenberg(1909~1994)가 말하는 모더니스트 회화*의 매체 순수성과 환원주의* 미학, 평면성의 대두, 미니멀 아트* 등을 꼽을 수 있다. 색면회화*에 있어서 색에 대한 사고의 판단 정지를 추구했던 비색주의 경향들은 그 예라 할 수 있다.

모노톤

모노톤 monotone(영)

단색조(單色調). 모노크롬*과 같은 뜻. 원래는 음악 용어로서 단조음(單調音), 즉 억양이 없는 똑같은 톤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 ‘모노크롬‘ 참조

모노파

모노파 物派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에 걸쳐 일본에 나타난 미술 경향. 모노는 일본어로 ‘물(物)’, 즉 물건, 물체라는 뜻이다. 물체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된 모노파는 나무, 돌, 점토, 철판, 종이 등의 소재에 거의 손을 대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상태를 직접 제시하였다. 그럼으로써 사물에 근본적인 존재성을 부여하고 더 나아가 사물과 사물, 사물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강조하였다.
대부분의 모노파 작가들은 원래 일본의 전통적인 회화 작업에서 출발하였으나, 결과적으로는 서양의 신사실주의*나 아르테 포베라*에 이르는 작업들과 유사한 측면이 적지 않았다. 1968년 세키네 노부오關根神夫가 고베神戶의 수마리큐 공원의 땅을 파내고 그 옆에 거기서 나온 흙으로 원기둥을 설치한 <위상(位相), 대지(大地)>는 모노파의 출발점이 되었으며, 이후 많은 작가들이 이를 모방하였다. 한편 모노파에 최초로 이론적인 토대를 마련한 작가는 한국의 이우환李禹煥이다. 그는 하이데거Martin Heidegger의 존재론을 참고하여 세키네 등 모노파 작가들의 작업을 ‘그대로의 세계와의 관계’라고 적극적으로 호평하였다.
작품을 보는 사람이 그 공간 속에서 사물과의 관계를 자각케 한다는 점에서 모노파는 현상학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즉 실체를 통한 지각의 방법을 중시하는 것이다. 이렇게 모노파는 주지주의(主知主義)에서 벗어나, 존재하는 것과의 직접적인 만남에 의미를 부여하였으며, 특히 서양 근대 비판을 전면에 내세우며 동양적 사고와 연결시킨 이우환의 사상은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의 젊은 작가들에게도 자극제가 되었다. 서구 미니멀 아트*의 아류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있으나, 모노파는 전후 일본 미술의 가장 중요한 경향 중 하나였으며 1980년대에는 그 영향을 받은 후기모노파까지 등장하였다.

모뉴먼트

모뉴먼트 monument(영)

기념적인 목적을 위해 제작된 일종의 공공 조형물 일반을 총칭하는 용어. 넓은 의미로는 역사적, 문화적으로 의의가 있는 건축물이나 구조물, 대규모 조각, 기념비 등을 모두 포함한다. 살아있는 자들이 과거의 것을 입증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유적으로서 일반적으로는 개인의 업적을 기리거나 어떤 장소에 관련된 역사적, 종교적 사건을 서술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제작된다. 한편 모뉴멘털(monumental)은 기념물로서 예술 작품의 양식을 지닌 것이라는 비평적 용어로 사용되기도 하였으며, 예술 작품과 관련해서는 위엄, 고귀함, 영속성 등을 연상시키는 특징 그리고 때로는 거대한 기념비적 규모와 크기를 거론할 때 쓰이기도 한다.
기념비적 목적을 지닌 건축물로는 판테온, 개선문*, 오벨리스크*, 전쟁 추모물, 무덤 등을 들 수 있다. 과거의 많은 기념 조각들은 종교적이고 제례적인 모티브와 기억을 영속시키고자 하는 목적을 접합시켰다. 그리스 시대에는 체육인, 기마장군, 통치자, 철학자 등 많은 기념비적 유형이 형성되어 로마제국을 비롯한 서양의 기념 조각에 오랫동안 영향을 미쳤다. 특히 19세기와 20세기초에 들어서는 조각보다는 공공 기념물이 많이 세워졌다. 전통적으로 과거의 기념물은 기억될 만한 사건이나 일화를 특정한 장소와의 관련 아래 서술적인 재현을 통해 영속화하였다. 그러나 현대의 기념물은 구체적인 형상보다 추상적 어휘를 선호하고 있으며, 주위 환경과의 관계 또한 상징적이 아니라 물리적으로만 연결된 공공 조형물의 성격이 부각되고 있다.

모더니스트 회화

모더니스트 회화 Modernist Painting(영)

1960년대 형식주의* 미술 비평가로서 영향력을 크게 떨쳤던 그린버그Clement Greenberg(1909~1994)에 의해 발전된 회화* 개념. 그린버그는 18세기 철학자 칸트Immanuel Kant로부터 시작된 자기비판(self-criticism)적 경향의 심화 혹은 극대화(極大化)가 모더니즘*이라고 정의하였다. 즉 모더니즘의 본질은 원리 그 자체를 비판하기 위해 원리의 특징적인 방법들을 사용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19세기말, 특히 마네Édouard Manet(1832~1883) 이후의 미술은 매체 자체의 특수한 효과와 문제에 몰두하는 모더니스트 미술로 발전해왔다고 한다. 그린버그는 각 예술들이 다른 예술 매체로부터 차용한 모든 효과들을 제거하고 매체의 고유한 본성에 집중함으로써 순수해질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특히 평면성의 추구야말로 모더니스트 회화가 지향해야 할 목표였다. 모더니스트 회화는 회화의 매체를 구성하는 한계, 예를 들어 평면, 캔버스의 형태, 물감 등을 받아들이고 적극적으로 추구한다. 그 중에서도 평면과 그 이차원성은 회화가 다른 어떤 예술과도 공유할 수 없는 유일한 조건이므로 모더니스트 회화는 원칙적으로 조각과 같은 삼차원의 환영과 눈속임 기법*, 지각 가능한 삼차원적 물체가 담겨질 수 있는 공간의 재현을 거부한다. 그린버그는 모더니스트 회화가 엄격하게 시각적인 이차원의 조형 요소로만 환원되어야 할 것을 요구하였으며, 이러한 그의 모더니즘 이론은 당시 미국의 추상표현주의*에 근간을 제공하였다.

→ ‘모더니즘’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