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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우에 피어 Die Blaue Vier(독)
파이닝거Lyonel Feininger(1871~1956), 야블렌스키Alexej von Jawlensky(1864~1941),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1866~1944), 클레Paul Klee(1879~1940)가 모여 구성한 미술가 협회. 야블렌스키의 친구이자 대리인인 샤이어Galka Scheyer가 이 모임을 제안하고 추진하여 성립되었다. 블라우에 라이터*를 연상케하는 블라우에 피어라는 명칭은 샤이어가 지은 것이며, 그룹의 모든 활동도 사실상 전적으로 그녀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24년 3월 31일 네 명의 화가들은 미국에 자신들의 작품을 판매하고 또한 자신의 미술 사상을 해외로 확산시키기 위해서 샤이어에게 대리 권한을 부여하는 계약서를 작성하였다. 같은 해 5월에 샤이어는 그들의 그림을 가지고 미국으로 건너갔으며 1925년에는 오클랜드미술관에 초대를 받아 작품들을 전시했다. 그녀는 미국의 주요 도시를 두루 돌면서 전시회를 조직하고 미술 수집가들을 모아 열띤 토론회와 일련의 강의를 연속적으로 열었다. 일종의 동업자 관계인 네 명의 작가들과는 서신을 통해 사업 뿐만 아니라 미술에 대한 이념을 교환하고 상의하였다. 1946년 사망 전까지 계속되었던 샤이어의 지칠 줄 모르는 활동으로 말미암아 블라우에 피어는 미국에 유럽의 현대미술을 확산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블랙마운틴 칼리지 Black Mountain College(영)
1933년 미국 북 캐롤라이나에 창설된 미술학교로 실험적인 교육방식과 저명한 작가들로 구성된 교수진으로 명성이 높았다. 행정 업무를 최소화하는 대신에 학교 작업과 공동체 생활의 통합, 교수진과 학생 간의 평등한 관계, 예술 각 분야 간의 교류를 목표로 삼았다. 또한 교육뿐만 아니라 당대 예술계 종사자들의 만남과 정보 교환의 장소를 제공하였다. 나치에 의해 독일에서 추방당한 앨버스Josef Albers(1888~1976)가 1944년까지 미술학과 과장을 맡아 당시 미국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유럽의 전위미술과 바우하우스*의 사상을 전파하였다.
특히 그의 작품 경향은 놀랜드Kenneth Noland(1924~ )와 라우센버그Robert Rauschenberg(1925~ ) 같은 제자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그외에도 마더웰Robert Motherwell(1915~1991), 자드킨Ossip Zadkin(1890~1967), 커닝햄Merce Cunningham, 드 쿠닝Willem de Kooning(1904~1997), 클라인Franz Kline(1910~1962), 그린버그Clement Greenberg(1909~1994) 등이 블랙마운틴 대학에서 교편을 잡았으며, 특히 케이지John Cage는 모든 분야에 걸쳐 창조적인 역량을 과시하였다. 케이지가 1952년 커닝햄, 라우센버그, 튜더David Tudor와 함께 첫번째 해프닝*을 계획한 것도 이 학교에서였다. 1956년에 폐쇄된 블랙마운틴 칼리지는 미국 현대미술의 발전에 구심점 역할을 담당했다.
블로크 Blok(폴)
1924년 구축주의*와 절대주의*의 영향 아래 바르샤바에서 형성된 폴란드 최초의 추상 미술가 협회. 그룹의 명칭과 동명의 이론 잡지 《블로크》를 11호까지 발간하였으며, 여기에서 작품의 도판 뿐 아니라 ‘동시대인의 심리 현상을 변형시키는 도구’인 기계들의 사진을 수록할 것을 제안하였다. 블로크의 목적은 데 스틸*이 추구한 목표와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었다.
즉 건축, 산업 디자인*, 도시 계획 등을 포함한 미술 활동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비개성화를 주장하고 일반 대중의 미적 기준을 향상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이 협회의 중요한 멤버로는 스트르제민스키Wladyslaw Strzeminski, 스타제브스키Henryk Stazewski, 스체주카Mieczyslaw Szczuka 그리고 조각가 코브로Katarzyna von Kobro 등이 있다. 이중에서 스트르제민스키가 미적인 형태에 있어서 자율성의 중요함을 강조하였다면, 스체주카는 기능적인 건축에 입각하여 형태를 융합하려 하였다.
이 같은 블로크의 두 가지 방향은 1924년에 발표된 <구축주의란 무엇인가?>라는 선언서에서 제시되었다. 블로크는 화가와 조각가는 물론 건축가들에게까지 문호를 개방했으며, 이것은 후에 ‘프라에센스Praesens 협회’로 알려지게 되었다. 마지막이 된 1926년의 세번째 전시회에서는 건축적인 프로젝트가 회화적인 작품을 대신하였다.
블록 주두 block capital,
cushion capital(영)
로마네스크* 건축에서 쓰인 펜던티브* 돔을 거꾸로 세운 것 같은 모양을 한 주두*(柱頭). 이 주두의 측면 하부는 반원형으로 되어 있는데, 반원의 수가 두개 이상 되도록 조형적으로 발전시킨 주두를 ‘조개모양 주두(scalloped capital)’라고 한다.
비 碑 bei(중)
중국에서 기원한 각석(刻石)의 일종이다. 고전의 해석에 의하면, 비의 기원에 두가지 계통이 있다. 하나는 종묘의 문 안에 세워 희생물(犧牲物)을 매어놓기 위한 것, 또 하나는 묘소에 세워서 관(棺)을 구덩이 아래로 내리는 것이다.
이러한 묘문의 비, 묘상의 비가 널빤지 형의 돌이 되고, 문장이 새겨지면서 비가 되었다. 시기는 후한대(後漢代)부터이고, 현재 볼 수 있는 가장 오래된 것은 한안 2년(143)의 〈북해 상경군비北海相景君碑〉이다. 최전성기의 비 양식인 한비(漢碑)는 비수(碑首)가 삼각형으로 뾰족한 규수(圭首)와 둥그런 원수(圓首) 두가지가 있고, 윗부분에 천(穿)이라 부르는 둥근 구멍과 원수에는 운(暈)이라고 부르는 홈이 파여 있다.
천은 희생물을 맨 흔적이고, 운은 활거(滑車)의 끈을 미끄럽게 한 흔적이라 한다. 뒤에 운의 밧줄이 용(龍)의 몸에 비유되고, 그 끝에 용의 머리를 나타낸 것을 이수(螭首)라 한다. 상부에 제액(題額)을 만드는 경우가 많고, 이것을 전서*로 썼으므로 전액(篆額)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네모꼴의 비받침을 방부(方趺)라 하고, 거북 모양을 한 것을 귀부*(龜趺)라 한다. 귀부가 아름다운 것으로는 남조 양의 〈안성강왕소수비安成康王蕭秀碑〉가 있다. 6세기말부터 불사에 관한 비는 비액(碑額)에 불합을 만들었고, 당비(唐碑)의 옆에는 당초문*이 많이 새겨져 있다.
비관계 회화 非關係繪畵
non-relational art(영)
알로웨이Lawrence Alloway(1926~1990)에 따르면, 입체주의* 회화와 한스 호프만Hans Hofmann(1880~1966)의 풍부한 색채의 수채화처럼 관계적 회화는 형태의 크기에 상호 연관되는 위계 질서를 갖는다. 이런 회화들은 깊이의 효과를 이용한다. 이에 반해 비관계 회화는 1960년대 스텔라Frank Stella(1936~ )의 회화들처럼 하나의 획일적인 공간을 지니며 그림의 한쪽 끝에서 다른 한쪽 끝으로 뻗어나가는 형태들에 의거하여 깊은 효과를 회피한다. 그 밖의 다른 화가들은 단일한 색채에 의존하거나 평면성에 의거함으로써 깊이를 회피한다.
비관계 회화에서는 내적인 관계가 결여되므로 캔버스의 외적 형태에 더 큰 중요성을 둔다. 비관계라는 표현은 미니멀 아트*에도 적용되어 왔는데 그것은 미니멀 조각가들이 자신들의 작품은 비재현적, 비상징적이며 그림 외부의 어떤 것과도 아무런 관계를 맺지 않는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 ‘추상미술’ ‘미니멀 아트’ 참조
비구상 非具象
non-figurative(영) non-figuratif(프)
구체적인 대상의 재현을 거부한, 즉 추상적인 미술의 한 속성을 의미한다. 비구상미술이란 자연물을 대상으로 삼지 않는 미술인 추상미술*의 한 종류라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추상은 기존의 미술이 갖는 재현적인 요소로부터 탈피하는 태도로부터 출발하는데, 특히 비구상미술은 어떤 대상을 작가의 의도적인 변형과 왜곡으로 인하여 그 형태를 알아볼 수 없게 표현한 것으로 비대상*미술과 구분된다. 예를 들자면 바젠Jean Bazaine이나 마네시에Alfred Manessier(1911~ ), 에스테브Maurice Esteve 등과 같이 구상적 이미지에서 출발하여 점차 그것을 추상화해가는 태도를 비구상적이라고 말한다.
→ ‘비대상’ ‘추상미술’ 참조
비대상 非對象
non-objective(영)
작가가 처음부터 어떤 구체적인 재현 대상을 염두에 두지 않고 그려낸 것을 비대상미술이라고 한다. 이는 추상미술*에서 발견할 수 있는 속성 중 하나로 비구상*과 다소 개념적으로 차이가 있다.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1866~1944)나 몬드리안Piet Mondrian(1872~1944)의 작품과 같이 처음부터 추상적 원리에 바탕을 두고 제작하는 비대상 미술은 엄밀하게 말하자면 비구상미술보다 순수한 의미의 추상미술이라고 할 수 있다.
→ ‘비구상’ ‘추상미술’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