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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르차가

스포르차가 Famiglia Sforza(이)

이탈리아 밀라노의 명문 귀족 가문. 무초 아텐돌로(1369~1424)가 무공을 세우고 스포르차(威服者)라는 호칭을 얻고 그의 아들 용병대장 프란체스코가 권력을 장악한 1450년부터 밀라노가 독일 황제 카알 5세에게 독립을 상실하게 된 16세기초까지 밀라노를 실질적으로 지배했다. 프란체스코는 전형적인 용병대장이었으면서도 한편으로 문예를 보호하고 장려하여 밀라노를 북이탈리아의 문화 중심지로 육성하였다. 이 가문의 후원을 받아 밀라노 성당과 파비아의 세르토사 등 많은 교회와 궁전이 건설되었다. 당시에 활동하던 화가로는 포파Vincenzio Foppa(c.1430~1515), 베르고뇨네Ambrogio Bergognone(1481~1522), 건축가로는 브라만테Donato Bramante(1444~1514)가 있으며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1452~1519)도 이 시대에 활동했다.

스푸마토

스푸마토 sfumato(이)

‘연기’라는 뜻의 이탈리아어 ‘스푸마레(sfumare)’에서 유래된 말로 공중에서 사라지는 연기같이 색을 매우 미묘하게 변화시켜서 색깔 사이의 경계선을 명확히 구분지을 수 없도록 부드럽게 옮아가게 하는 기법. 물체의 윤곽선을 자연스럽게 번지듯이 하여 형태의 윤곽이 엷은 안개에 싸인 것처럼 차차 없어지게 그리는 명암법*에 의한 대기 원근법*이다. 바자리Giorgio Vasari(1511~1574)에 따르면, 15세기초 대가들의 특징인 ‘지나치게 또렷하고 거친 윤곽을 부드럽고 아름답게 하는 능력’을 지닌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1452~1519)와 지오르지오네Giorgione(1476~1510)에 의해 처음으로 도입된 방법이다.

스핑크스

스핑크스 Sphinx(그)

고대 오리엔트 신화에 나오는 괴물로, 사람의 머리와 사자의 몸을 가지고 있다. 이집트*에서 왕자의 권력을 상징하는 모습으로 표현됐으며, 이집트와 아시리아*의 신전이나 왕궁, 분묘 등에서 훌륭한 스핑크스 조각들이 발견된다.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하고 오래된 것은 이집트 기자에 있는 제4왕조 카프라왕의 피라미드에 딸린 스핑크스로, 길이가 약 70m, 높이가 19.81m인 거상이다. 앞다리 사이에 투트메스 4세의 석비(石碑)를 둔 이 스핑크스는 카프라왕의 얼굴을 하고 있으며, ‘지평선상의 매’를 나타낸다. 또한 스핑크스는 이집트 외에 시리아, 페니키아, 바빌로니아, 페르시아, 그리스* 등에도 일찍부터 알려졌다. 특히 그리스 신화에서는 에키도나와 오로코로스의 아들이라고도 하고 라이오스의 딸이라고도 하는 등 여러 가지 전설이 있다.
그리스에서는 기원전 1600년경의 미케네 수혈묘(竪穴墓)나 크레타섬에서 발견되는 인영(印影)에 처음으로 나타나는데, 여기서는 날개를 달고 있다. 그러나 스핑크스는 원래 사자에 대한 주물(呪物) 숭배에서 비롯된 것으로, 시대에 따라 모습과 성격이 달라진다. 즉 매나 암양 또는 숫양의 머리를 한 것, 서 있거나 앞다리만 가진 것, 왕자의 권력을 상징하는 것, 신전의 장식에 쓰인 것 등 형태와 의미가 다양하다. 카르나크 신전이나 사카라의 세라페이온에서는 길 양쪽에서 서로 마주 보면서 가지런히 늘어선 수십개의 스핑크스가 파수꾼 역할을 하고 있다.

습필

습필 濕筆

동양회화의 기법으로 붓에 물기가 많이 밴 것을 가리킴. 갈필*(渴筆)과 대비되는 의미로 당唐의 장조張操(즈앙 차오)가 창안하였다고 전한다. 오대(五代)의 형호荊浩(싱 하오)는 스스로, “붓 끝은 겨울나무처럼 가늘고, 먹은 엷기가 들판의 구름처럼 가볍다(筆尖寒樹瘦 墨淡野雲輕)”고 했는데, 여기서 ‘가볍다(輕)’는 것은 바로 물기가 가득한 습필을 썼다는 것을 의미한다. 북송北宋의 곽희郭熙(구어 시)는 “먹의 색깔이 축축하게 윤기나지 않은 것을 일컬어 말랐다고 하며, 말라있으면 생기가 없어 보인다(墨色不滋潤 謂之枯 枯則無生意)”고 하면서 그림 속에 반드시 습필이 있어야 함을 주장했다.
청대(淸代)의 장경張庚(즈앙 껑)은 만년에야 비로소 그 뜻을 깨닫고 “습필은 어렵지만, 건필은 쉽다(濕筆難工 乾筆易好)”고 말했다. 갈필이 문인화의 전형적인 필법인 것처럼 인식되면서 한때 다투어 건필만을 추구하면서 습필은 속된 기교(俗工)라고 여기며 버리기도 했다.
예를 들어 청말의 진조영秦祖永(친 쭈융)은 “그림을 그리는 데에 가장 피해야 할 것이 습필인데, 붓을 놀리면서 먹의 화려하고 깨끗함만 추구한다면 힘을 표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습필법을 버리고 건필을 택하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현대의 황빈홍黃賓虹(후앙 빈홍, 1864~1955)은, “건필이 있어야 습필도 있고, 습필이 있어야 건필도 있게 된다”고 주장, 건필과 습필이 함께 사용되어야 비로소 수묵의 최고 경지라 할 수 있음을 역설하고 있다.

시각 언어

시각 언어 視覺言語
visual language(영)

시각에 호소해 의지를 소통시키는 언어를 뜻한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근대적인 조형예술의 일반 개념으로, 이전부터 존재해왔지만 케페시Gyorgy Kepesi의 저서 《시각의 언어》(1944)에서 비로소 상세한 규정이 내려지게 되었다. 시각 언어의 종류는 조형예술*, 영화, 사진*, 텔레비전 등 인간의 시각에 의한 생활이나 경험을 재현한 것으로 다양하다. 이것들을 구성하는 각각의 요소가 시각어(視覺語)이며, 이로부터 시각언어가 성립된다는 사고는 상업디자인에서도 중요하게 받아들여 이용되고 있다.

시각 커뮤니케이션

시각 커뮤니케이션 visual communication(영)

전통적인 미술교육 과목인 소묘*, 유화*, 수채화*, 레터링* 등과는 별도로 광고, TV, 사진*, 영화, 만화*, 일러스트레이션*, 인쇄 등이 시각 커뮤니케이션과 관련되는 부분을 지칭한다. 《영역없는 미술》의 편집자들이 지적한 바와 같이, 이 용어는 때때로 ‘그래픽 디자인*’의 대용어로 쓰인다. 독일에서는 엔첸베르거Hans M. Enzenberger가 처음 사용하였으며,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실험예술 및 미학연구소Institute for Experimental Art and Aesthetics’에서 발간하는 《미학과 커뮤니케이션》 등의 잡지에서 1970년 이후 사용하고 있는 ‘Visuelle Kommunication’이란 용어는 정치적 사항들에 대한 대중의 인지 수준을 높이는 작업과 관련된 분야를 가리킨다.

시각 혼합

시각 혼합 視覺混合
optical mixture(영)

색채를 섞을 때 팔레트* 위에서 안료를 실제로 혼합하는 것이 아니라, 화면에 작은 색점을 인접하게 찍어두고 조금 거리를 두고 볼 때 눈에서 시각적으로 혼색되어 보인다는 현상을 원리로 하는 색채 혼합 방식. 인상주의* 화가들도 순도가 높은 색과 분할된 필촉을 사용하였으나, 시각 혼합 기법은 수학적이고 과학적인 색채 이론을 기반으로 했던 신인상주의*에서 확립되었다.
이에 따르면, 녹색과 같이 밝은 2차색을 표현하기 위해서 두 개의 원색인 청색과 황색의 작은 점들을 병치한다. 색채는 혼합할수록 탁해지므로 시각적으로 혼합되었을 때 보다 선명하고 밝은 색채를 얻을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또한 감상자의 눈속에서 혼합이 이루어지는 데에는 항상 거리가 중요한 문제가 되므로 색점은 그림의 크기나 감상되는 거리에 따라 그 크기가 변화되기도 한다.

→ ‘점묘주의’ ‘분할주의’ 참조

시각예술탐구그룹

시각예술탐구그룹 Groupe de Recherche d’Art Visuel, GRAV(프)

1960년 르 파르크Julio Le Parc(1928~ )의 제창으로 결성되고 1968년 해산된 파리에 머무르던 키네틱 아트* 작가들의 그룹. 예술현상을 시각적인 불확실성, 즉 착시, 움직임, 빛, 반사 등으로 표현하고 관객을 예술적 작업과 작품에 직접 참여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 르 파르크 외에 로시Garcia Rossi, 소브리노Francisco Sobrino, 스타인Joel Stein, 이바랄Yvaral, 모를레François Morellet(1926~ )가 참여하였다. 이들은 모두 이전에 결성된 ‘시각예술탐구센터’의 구성원이었으며, 1960년대의 제로 그룹*(독일), 그루포 T(이탈리아) 등의 활동으로 활발해진 빛을 이용한 시각적인 키네틱 아트의 한 계보를 형성한다.
본래 이 모임은 개개 회원의 자유로운 연구를 결집해 보다 고차원적인 공동작업 형식을 취했고, 더불어 1961년 파리 비엔날레에서 발표한 공동작품 <미로(迷路)>에서 보여주었듯이 관객의 참여를 전제로 함으로써 관람자와 분리된 종래의 작품 개념을 극복하는 것을 목표로 출발했다. 이들은 주로 반사경, 알루미늄, 비닐, 아크릴, 플라스틱 등의 공업재료를 사용하여 모빌*이나 부조* 및 각종 실험 장치를 제작했다. 회전과 요동, 착시 등을 통해 관람자의 불안정한 시각과 심리적인 반응을 불러 일으키는 옵 아트*와 키네틱 아트, 라이트 아트*가 결합된 이들의 작업은 관람자들을 새롭고 체험적인 상황으로 이끌었다.

시그널 아트

시그널 아트 Signal Art(영)

공공 신호등과 교통 표식이 갖는 시각적, 심리적 자극 효과를 예술적인 모티브*로 하는 미술 경향. 미국의 시그널 아트는 본래 하드엣지* 회화나 앨버스Josef Albers(1888~1976)의 작품, 몬드리안Piet Mondrian(1872~1944)의 <브로드웨이 부기우기>와 같은 기하학적인 색채 조직망에 뿌리를 두고 있다. 뉴만Barnett Newman(1905~1970)과 라인하트Ad Reinhardt(1913~1967)의 색면이 색채 그 자체의 가치를 추구했던 반면, 켈리Ellsworth Kelly(1923~ ), 영거맨Jack Youngerman, 핼드Al Held(1928~ )의 경우는 색채 구성에서 기하학적인 형성을 중시하고 있다. 이들의 색채 구성은 그 추상적인 형태에도 불구하고 구상적 혹은 기호학적인 연상을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연상적인 형식상의 가능성이 각 색채의 표현 가치를 방해하게 된다. 또한 시그널 아트 작품은 색채 형태가 제스처*적인 표현력을 지니기 때문에 하드엣지*의 형태에 모든 요소를 평면 조직으로 구성하고 있다.
핼드와 함께 미국의 추상적 팝 아트* 작가인 크루셰닉Nicolas Krushenick은 시그널에 의한 색채 추상의 대표 작가이다. 크루셰닉의 구축적인 색채 형태는 ‘유기적, 기하학적인 건축 자체’라고 표현되기도 하였다. 이는 입체를 만드는 줄무늬 모양이 장식적으로 겹쳐져 있고, 그 결과 두 가지 색의 교차와 굴절된 윤곽선에 의해 색이 엄격하게 분리되면서 시그널적인 효과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한편 리파드Lucy R. Lippard에 의해 ‘정확한 구성력을 지닌 기술적인 디자이너‘로 주목을 받은 다칸젤로Allan d’Arcangelo(1930~ )는 정교한 윤곽의 추상 형태와 효과적인 색채 대비를 통하여 ‘어지러울 정도의 속력으로 미래를 질주하는 미국의 고속도로와 광고간판, 교통표지판’을 테두리로 둘러 표현하고 있다. 한편 유럽에서의 시그널 아트는 팝 아트, 추상표현주의*의 색채 제스처와 구축주의*의 엄격함 사이를 중개하는 다리로서의 특징을 보여준다.

시니피앙, 시니피에

시니피앙, 시니피에 significant, signifié(프)

표현되어진 기호가 시니피앙이라면, 시니피에는 그 기호가 의미하는 내용을 가리킨다. 20세기초까지만 해도 기호는 구체적인 사물을 나타내는 표시로 간주되며 사물과의 필연적인 관계를 지니는 것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스위스의 언어학자인 소쉬르Ferdinand de Saussure는 기호란 분리가능한 두 개의 요소, 즉 시니피앙과 시니피에로 구성되어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기호 속의 발음을 시니피앙, 그 발음에 의해서 생기는 관념적 내용을 시니피에로 간주하였다. 그리고 이들 간의 상호 불가분의 개념을 언어의 본질로 규정하면서 기호와 사물의 관계는 우연적인 결합에 불과하다고 역설하였다. 소쉬르의 이러한 이론은 언어학 뿐만 아니라 구조주의에 영향을 주었다. 구조주의를 대표하는 프랑스의 정신과 의사이자 정신분석학자인 라캉Jacques Lacan은 시니피앙의 우위를 나타내며, 시니피앙과 시니피에 사이의 경계선 결여가 정신병을 초래한다며 이를 정신병리학에 원용하였다. 예술에 있어서도 작품의 감각적 표현 양식과 그 이념적 내용의 관계가 이같은 상호 불일치를 초래할 수 있다.
한편 바르트Roland Barthes는 시니피앙이란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이미지 자체이고, 그 뒤에 숨어 있는 함축적인 의미와 내용이 시니피에라고 주장하였다. 그는 《신화Mithology》(1957)에서 어떤 사물에 점점 이야기를 붙여서 눈사람처럼 확대되어 가는 상황을 신화라고 설명하였다. 시니피앙과 시니피에를 둘러싼 언어학적 방법론은 현대 미술에도 적용되었다. 신구상회화* 화가들은 그림에 어떤 의미를 담을 것인가 하는 문제를 바르트의 언어이론인 시니피에와 시니피앙을 미술에 도입함으로써 해결하였다. 예를 들어 아이요Gilles Aillaud의 동물원 연작에서 동물원 그림 자체는 시니피앙이고, 동물원과 같은 인공적인 환경에 갇혀있는 현대인의 모습은 시니피에인 것이다. 신구상회화 작가들이 바르트의 《신화》를 읽었고 그로부터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은 1967년 <일상의 신화>라는 그들의 전시회 명칭에서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