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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수각 天守閣 keep(영)
중세 유럽 성곽 건축의 중심부. 최후의 방위 거점으로 성주와 중신(重臣)의 거주지이다. 감옥과 예배당을 갖추고 있다.
천수관음 千手觀音
Sahasrabhuja(범)
‘천수천안관세음千手千眼觀世音’ 또는 ‘천안천비관세음天眼千臂觀世音’의 약칭. 육관음 중 두번째 관음이며, 밀교에서는 ‘대비금강大悲金剛’이라고 부른다. 《천수천안관세음보살광대원만무애대비심다라니경千手千眼觀世音菩薩廣大圓滿無碍大悲心陀羅尼經》에 따르면, 관세음은 과거무량겁(過去無量劫)에서 천광왕정주여래千光王靜住如來가 ‘광대원만무애다라니’에 대해 설법하는 것을 듣고 일체의 중생에게 이익이 되도록 하겠다고 맹세하자 천수천안이 생겼다고 기록되어 있다.
형태는 온몸이 황금색이며, 두 눈과 두 손 아래 좌우로 각각 스무개의 손이 있고, 그 손은 각각 하나씩의 눈을 쥔 40수(手) 40안(眼)의 모양을 하고 있다. 이는 보살의 자비와 구원 범위가 무궁무진함을 상징하는 것이고, 특히 지옥의 고통에 벗어나게 하여 모든 소원을 성취시킨다고 한다.
중국에서 수隋, 당唐 이래로 중국의 밀교사원에서 유행하기 시작하였다. 하북성河北省 정정현正定縣의 융흥사隆興寺 대비각大悲閣에 있는 송대(宋代)에 구리로 주조한 〈천수천안관음상千手千眼觀音像〉, 태원太原 숭선사崇善寺 대비전大悲殿안에 있는 청대(淸代) 건륭乾隆 연간에 만들어진 〈목조천수천안관음상木造千手千眼觀音像〉 등은 중국의 대표적인 유물인데, 일반적으로 명, 청대(明淸代)에 다시 수리되고 채색되었다.
한국에서도 경주慶州 분황사芬皇寺에 천수관음 보살상이 그려졌다는 기록이 《삼국유사三國遺事》에 남아 있어 8세기 전반경부터 그에 관한 신앙이 널리 퍼져있었음을 알 수 있다.
철선묘 鐵線描
인물화의 선묘법(線描法). 처음부터 끝까지 일정한 두께로 예리하고 팽팽하게 그리는 필선이다. 고고유사묘*(高古遊絲描)와 비슷하지만 더 강하고 팽팽한 긴장감을 나타낸다. 불화* 등 도석인물화와 초상화*의 의습표현에 많이 사용된다.
→ ‘인물십팔묘’ 참조
철필 鐵筆 stylus(영)
쇠로 된 예리한 금속 기구. 본래는 금속 펜촉과 같은 것이었으나, 기록하기 위한 것은 아니고 단지 흔적을 남기기 위한 것이었다. 고전 시대에는 밀랍판에 필기용으로 이용되었으나 후에 여러가지 목적으로 사용되었다.
이를테면 금판에 장식을 새기거나 필사본에 줄을 긋는 것, 혹은 풍자화에서 프레스코*, 조각의 벽토에 이르기까지 구성의 윤곽선을 긋는데 이용되었다. 건축 도면에서는 측량선과 지시선을 긋는데, 그리고 구도를 완성하는 데에도 사용되었다. 오늘날에는 선명하고 잘 지워지는 연필 선이 대부분 이러한 용도에 사용된다.
첨두아치 pointed arch(영)
아치*의 한 종류. 고딕*의 특징을 이루는 것으로, 창이나 문의 끝쪽 곡선이 뾰족하다. 영국의 고딕에 종종 나타나는 가늘고 뾰족한 형식은 설첨 아치(lancet arch)라고 부른다.
→ ‘아치’ 참조
첨두점 尖頭點
수묵 산수화*에서 나뭇잎을 묘사하는 기법. 붓의 뾰족한 끝을 사용하여 위로부터 아래로 찍는다. 잡초의 표현이나 점태*(點苔)의 일종으로 사용된다. 황공망黃公望(후앙 꽁왕, 1269~1454) 계열의 산수화에서 밋밋한 산봉우리 표현에도 나타난다.
첨정지붕 spire(영)
탑 위에 솟은 높은 피라미드*형 또는 원추형 구조물. 기독교 성당에 잘 사용되었는데 신랑*(身廊), 큰 지붕, 용마루 위에 고립된 형태로 설치되는 경우도 있다. 12세기경까지 지붕의 경사는 완만하였으나 그후 서유럽 북부에서 급경사로 변모하였다. 고딕* 성당의 탑 꼭대기 지붕에는 급경사이고 상승성을 강조하는 중요한 구성요소로서 높고 큰 첨정지붕이 세워졌다.
중세말기에는 상승성을 강조하는 역할을 중요시하여 지붕으로서의 기능은 상실되고 석조로 레이스 모양의 화려한 것을 제작하였다. 스트라스부르 및 빈의 대성당, 프라이부르크의 뮌스터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첩학 帖學
법첩*(法帖)의 원류, 우열, 탁본(拓本)의 선후관계와 상태, 서적(書迹)의 진위와 글월의 내용 등을 연구하는 학문. 법첩을 숭상하는 서파(書派)로 비학*(碑學)의 상대적인 개념. 중국 청대(淸代)의 가경嘉慶, 도광道光 연간 이전에는 서법에서 법첩을 숭상하였다. 완원玩元(완 위앤)이 ‘남북서파론*(南北書派論)’을 제기한 이후 세칭 첩학은 남파南派로 분류되고 비학은 북파北派로 여겨진다.
청기사파 靑騎士派
Der Blaue Reiter(독)
다리파*와 함께 독일 표현주의의 주요한 유파로서, 이 명칭은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1866~1944)와 마르크Franz Marc가 1912년에 피퍼Piper 서점에서 간행한 잡지 《청기사》에서 유래됐다. 이 잡지는 1911년 6월부터 계획되고 9월에 계약이 체결되었으며 그해 가을에 작가와 음악가 등 공동 협조자들의 도움을 받아 편집 작업을 했다.
1909년에 만들어진 뮌헨의 신미술가협회*가 원류지만, 위 사람 외에 야블렌스키Alexej von Jawlensky(1864~1941), 뮌터Gabriel Münter, 클레Paul Klee(1879~1940), 쿠빈Alfred Kubin, 막케August Macke 등이 포함되며, 후에는 프랑스의 브라크Georges Braque(1892~1963), 루소Henri Rousseau(1577~1640) 등의 작품도 독일에 소개되어, 범(汎) 유럽적인 운동으로 발전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
1911년 12월 8일 탄하우저Thanhauser 화랑에서 선언문과 전시를 주관하고, 청기사파라는 동일 명칭을 사용했다. 제1차세계대전의 발발에 의해 청기사파는 자연 해산되었고, 막케는 1914년에, 마르크는 16년에 전사했다. 이 파의 경향은 색채에 상징적인 의미를 주고, 독일 고대의 낭만적 심성을 화면에 형상화하는 것으로, 제작자의 내면 표현을 존중함으로써 추상화로의 길을 가게 된다.
단 괴기적이고 환상적인 내용을 담은 오스트리아 쿠빈의 화풍은 전반적인 청기사파의 작가들에 비해 이색적이라 할 수 있다. 이 그룹은 칸딘스키의 정신성, 마르크의 종교성에 의해 주도되어 추상표현주의의 모태가 되었으며, 이들의 작품은 최초의 추상이라 평가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