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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치

키치 Kitsch(독)

‘속악한 것’ ‘속임수의’ ‘모조품의’ 혹은 ‘본래의 목적으로부터 빗나간’ ‘사용방법을 이탈한 것’을 가리키는 용어. 영어의 ‘sketch’ 또는 의미가 모호한 독일어의 동사 ‘kitschen’ 등에서 그 어원을 찾아볼 수 있는 이 용어는 19세기말 뮌헨의 예술가들 사이에서 유행되었다. 어떻든 고결함의 결여를 나타내는 듯이 보이는 그림과, 감상적인 중산층들의 동경심을 만족시키는 듯한 그림의 비판적인 의미로 사용됐던 개념이었다.
로젠버그Harold Rosenberg(1906~1978)는 키치를 오히려 이 시대의 일상적인 예술로 정의하였으며 그것은 서구의 산업화된 사회 어느 곳에서나 발견되는 값싸고 감상적이며 또 귀여운 복제품 전부를 지칭한다는 것이다. 그린버그Clement Greenberg(1909~1994)는 전위예술*이 예술의 최전선이라고 한다면 키치는 가장 후방의 예술이라고 비유했다. 실상 오늘날 기존 미술의 정제된 모습을 염두에 둘 때 이것에 대한 하나의 반발로서 키치의 이념은 설득력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키클로프스 석조

키클로프스 석조 Cyclopean masonry(영)

키클로프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거인족의 이름이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 따르면, 그들은 바다 가운데의 섬에 사는 외눈족으로, 사람을 먹고 양을 기른다. 또한 키클로프스는 거대한 성벽을 쌓는 기술자로 알려져 있어 미케네의 성벽도 그가 쌓은 것이라고 전해진다.

타가르 문화

타가르 문화 Tagar(영)

구(舊)소련 미누신스크 분지를 중심으로 기원전 7~3세기에 걸쳐 번성했던 청동기 문화. 미누신스크 부근에 있는 타가르 호수에서 그 이름이 비롯되었다.
여기에서 지금까지 6천 점 이상의 청동기가 발견되었는데, 칼자루 끝에 스키타이* 양식의 동물상을 붙인 칼과 단검, 사슴 등의 형태를 한 장식판 등이 있다. 이 문화의 형성에는 카자흐스탄과 중앙아시아의 영향이 컸으며, 이란과의 관계도 엿볼 수 있다.

타나토스

타나토스 Thanatos(그)

그리스 신화에서 ‘죽음’을 의신화(擬神化)한 것으로, 사람이 죽을 때 잠의 신 히프노스Hypnos와 함께 와서 죽은 자의 혼을 운반한다고 여겼다. 미술에서 이들은 날개가 달리고 무장한 모습으로 묘사되었으며, 히프노스는 청년, 타나토스는 거친 수염의 추한 장년으로 표현되기도 하나 작품의 예는 적은 편이다.

타블로

타블로 tableau(프)

원래 벽이나 천장 등에 고정되어 있는 회화*에 대하여, 이동할 수 있는 판화라는 의미로 쓰이기 시작했다. 역사적으로는 고대 말기의 미라(mirra) 초상, 비잔틴 미술*의 이콘, 중세, 르네상스*의 제단화*가 이에 해당되나, 오늘날에는 캔버스*나 화지에 그린 그림을 말한다.
보통 액자에 넣어 독립된 회화공간을 만드는 것이 특징이다. 이 경우 에튀드*나 밑그림 등은 포함되지 않고, 어디까지나 완성된 회화를 가리킨다. 따라서 이 때는 ‘회화 작품’이라는 뜻이 된다.

타슈

타슈 tache(프)

반점, 얼룩 등의 의미가 있으며, 미술 용어로는 색면에 해당된다. 또 색반(色班)이라고 번역되기도 한다.

→ ‘타시슴’ 참조

타슈티그 문화

타슈티그 문화 Tashtyk(러)

소비에트 연방의 남 시베리아, 예니세이강 중류 유역에 분포하는 기원전 1세기에서 서기 5세기에 이르는 철기시대의 문화. 분묘에서 발견되는 흙으로 만든 인형이 특징적이며 약 3백 점이 발견되었다. 백색 점토로 성형을 한 다음에 구워낸 것으로, 착색된 것도 있으며 용모의 특징이나 차이가 매우 사실적으로 잘 표현되어 있다.

타시슴

타시슴 Tachisme(프)

타슈*에서 유래한 말. 타시슴이라는 말이 처음 쓰인 때는 1889년으로, 작가 페네옹Félix Fénéon이 기교적인 인상주의*자들을 가리켜 타시스트라고 표현한 이래, 1909년에는 드니Maurice Denis가 야수주의* 계열의 작가들을 가리켜 타시스트라는 말을 썼다.
그러나 이 말은 막연히 야수주의의 표현주의*적 요소를 지칭하는 의미로 쓰였었다. 그러다가 1950년대 초반, 당시 성행하던 추상표현주의*적인 경향에 대하여 조소적인 표현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즉 추상표현주의 회화가 몬드리안Piet Mondrian(1872~1944)과 같은 엄격한 계산에 바탕을 둔 기하학적 화면 구성을 거부하고, 그리는 행위의 자발성을 중요시하며, 분방한 운필을 즐겨 사용함으로써 그 화면이 마치 그림물감을 떨어뜨린 얼룩 같다는 데 대한 조소였던 것이다.
제2차세계대전 후 처음으로 이 말이 쓰인 것은 1953년 《오늘날의 미술 Art d’aujourdui》지 10월호에서였다. 여기에서 비평가인 게강Pierre Guéguen은 에스티엔Charles Estienne이 조직한 전시회에 대해 야유적인 표현으로 이 명칭을 사용했다. 그 뒤 에스티엔은 이 말을 정식 명칭으로 받아들였고, 그 후 이른바 뜨거운 추상의 경향을 띤 화가들을 가리키는 이름으로 널리 쓰이게 되었다.
그 후 타시슴이라는 말은 유럽에서만 일반적으로 사용되었고 미국에서는 추상표현주의, 액션 페인팅*, 드립 페인팅* 등으로 쓰였다. 타시슴 작가들은 동양의 서예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
주요 작가로는 뒤뷔페Jean Dubuffet(1901~1985), 폴록Jackson Pollock(1912~1956), 볼스Wols(1913~1951), 마티유Georges Mathieu(1921~ ), 포트리에Jean Fautrier(1898~1964), 오소리오Alfonso Ossorio, 미쇼Henri Michaux(1899~1984), 리오펠Jean-Paul Riopelle(1923~ ), 프란시스Sam Francis(1923~1994) 등이 있다.

타이 미술

타이 미술 Thai Art(영)

타이는 동남아시아*의 인도차이나* 반도 중앙부에 위치한 나라로서 중국 사료에는 섬라(暹羅)로 기록되어 있다. 동북부 국경 지역인 비엔티안에서 신석기시대*의 채문토기(彩文土器)가 발견되기도 하였으나 선사시대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바 없다. 다른 동남아시아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일찍부터 인도* 문화가 유입되었으며 남부 지방에서는 인도에서 제작된 불상*이 약간 출토되고 있다.
타이에서는 인도의 영향을 받은 불교 사원 건축과 불상 조각*을 위주로 하는 미술이 전개되었다. 12세기경 타이족이 지배하기 시작한 이후에는 스리랑카*계의 소승불교가 성행하였다. 6세기에 몬Mon족이 세운 드바라바티 왕조(6~11세기)가 등장하여 드바라바티 미술*이 출현하게 되었다. 나콘 파톰, 폰 듀크, 우통, 코라트 등에 유적과 유물이 분포되어 있다. 드바라바티 왕조는 11세기 초 캄보디아*의 크메르* 제국에 병합되어 멸망했다. 굽타시대* 조각의 영향을 받은 불상이 많이 제작되었으나 후기로 가면서 토착적인 조형이 나타난다.
타이 남부에서는 8~13세기에 걸쳐 슈리비자야Śrivijaya 왕조가 세력을 잡고 수마트라*섬과 말레이 반도에도 영토를 확대하고 있었다. 인도의 굽타 및 팔라 왕조의 영향을 받아 미술품은 대부분 대승불교파의 경향을 따르고 있다. 차이야Chaiya에서 출토된 석조 관음상이나 청동제 관음상은 이 시대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11~13세기는 크메르 제국의 지배기로 통치기구가 있던 지역의 이름을 따서 ‘로프부리Lopburi 미술의 시대’라고 부른다. 이 시대의 미술은 앙코르 미술*에 근거하여 앙코르 와트* 양식(1110~1175)과 바욘 양식(1177~1230)으로 구분하지만, 눈과 입술의 형식에서 민족적인 특색을 보여 몬-크메르Mon-Khmer 양식이라고도 한다.
이처럼 크메르 미술의 전통은 북부에서 남하해 온 타이족에 계승되었다. 북부에서는 쳉센-쳉마이Chieng Sen-Chieng Mai 미술(11~18세기), 그리고 중부 지역에서는 수코타이Sukhothai 미술(13~14세기), 우통UTong 미술(12~15세기)이 발전했으며 타이 미술은 수도를 중심으로 번영한 아유티야Ayuthya 미술(14~18세기)과 방콕Bangkok 미술(1782 이후~20세기)로 이어진다. 스리랑카의 다가바*에 가까운 체디*와 포탄형의 캄보디아식 탑*이 있는데 모두 높이 솟은 형태가 특징적이다.

→ ‘드바라바티 미술’ 참조

타이포그래피

타이포그래피 typography(영)

활자 서체의 배열을 말하며 특히 문자 또는 활판적인 기호를 중심으로 한 이차원적 표현을 지칭한다. 또한 손으로 쓰는 문자에 상대적으로 기계적인 수법에 의한 서체를 말하기도 한다.
바우하우스*를 중심으로 한 근대 타이포그래피는 구성주의적이고 기능주의적인 표현을 추구하면서 타이포그래피를 디자인의 한 분야로 발전시켰고, 점차 그 의미가 확대되어 구성적인 그래픽 및 언어의 시각화를 위한 영역 전체를 포괄하게 되었다. 타이포그래피의 원칙은 주어진 면적 안에서 명료성과 가독성을 고려하여 시각화할 정보의 양을 결정하고 미적인 요건을 충족하면서도 내용상의 표현성이 확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