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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시대 미술

통일신라시대 미술 統一新羅時代美術

신라는 삼국시대 이래 경주에 도읍을 정하고 660년 나당(羅唐) 연합으로 백제를 멸망시키고 또 668년에는 고구려를 병합한 뒤 당군(唐軍)을 몰아냄으로써 한반도를 통일시켰다. 통일신라는 당의 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고 불교문화를 꽃피웠다.
건축:불교사원은 주로 평지에 세웠고, 가람*배치는 경주의 〈사천왕사지四天王寺址〉 〈불국사佛國寺〉 〈감은사感恩寺〉와 같이 쌍탑식이다. 탑*은 대부분 석탑이며, 경상북도 의성疑城 탑리塔里의 오층탑을 거쳐, 〈감은사 삼층탑〉(682), 〈불국사 석가탑〉과 같은 전형적인 석가탑(釋迦塔)이 되었다.
9세기의 석탑은 섬세하고 장식적이며, 불상*이나 십이지상이 부조*된 예가 많고, 경상남도 〈산청山淸 범학리泛鶴里의 삼층석탑〉, 전라남도 〈구례求禮 화엄사華嚴寺의 사사삼층탑四獅三層塔〉 등이 있다. 그외 경상북도 안동지방에는 전탑이 많고, 벽돌로 처마를 받치는 형식이 특징이다. 고승의 묘로 팔각당식의 석조 부도*도 많고,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예로는 〈흥법국사염거화상탑興法國師廉居和尙塔〉(844)이 있다.
고분:고분의 형식은, 고구려 . 백제계의 횡혈식 석실분으로 연도(椽道)를 설치하여 추장(追葬)이 될 수 있게 하였다.
조각:불상조각은 당의 영향을 받았으나, 한편에서는 신라 특유의 양식도 나타나기 시작, 8세기에는 경주를 중심으로 독자적인 양식이 전개되었다. 사천왕사지四天王寺址 출토의 〈녹유전상綠釉傳像〉, 경상북도 〈군위삼존불〉 등은 7세기 후반기의 강한 사실성과 생경함이 남아 있으나, 〈감산사甘山寺 석불>(719), 〈경주 굴불사堀佛寺 석불〉(8세기 전반)에서는 신라양식이 엿보인다.
이 신라양식은 8세기 석굴암石窟菴의 불상들에서 정점에 달한다. 그러나 9세기에는 조각도 쇠퇴하기 시작하여 석불은 머리나 어깨가 위축된 모습이다. 이 시기의 것으로 전라남도 장흥군 보림사寶林寺의 〈철조비로자나불좌상鐵造毘盧舍那佛座像〉(858), 강원도 철원군 도피안사到彼岸寺의 〈철조비로자나불좌상〉(865) 등이 있다.
공예:불교문화에 따라 화장(火葬)이 시행되어 부장품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아, 공예품은 거의가 불교 유물이다. 범종은 정상에 용*(龍) 모양의 축과 중공(中空)의 용*(甬)이 붙고, 종신은 상부에는 사구(四區)의 유곽(乳郭), 몸통부 동좌에는 비천*이 배치됐다. 토기는 골호(骨壺)가 많이 남아있는데, 고신라의 토기와는 달리 높은 대가 붙고 시유(施釉)토기도 나타난다.
회화: 통일신라시대에 이르러 고구려, 백제, 신라의 제각기 성격을 달리하는 화풍이 서로 통합되고 조화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때에 활약했던 화가들로 솔거率居, 정화靖和, 홍계弘繼, 김충의金忠義 등이 있다. 솔거는 경주 황룡사皇龍寺 노송(老松), 분황사芬皇寺의 관음보살상(觀音菩薩像), 진주 단속사斷俗寺의 유마상(維摩像)을 그렸다고 전해지나 작품은 남아 있지 않다.
그가 그린 황룡사의 노송에는 새들이 날아들다 떨어지곤 하였다는 전설적인 이야기로 판단해 보면, 청록산수*계통의 채색화에 능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정화와 홍계는 흥륜사興輪寺의 벽에 보현보살상(普賢菩薩像)을 그렸던 승려화가이다. 또한 《역대명화기*歷代名畵記》에 따르면, 김충의는 당唐에서 활약하였던 장군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1977년에 〈대방광불화엄경변상도大方廣佛華嚴經變相圖〉가 발견되어 8세기 중엽의 불교회화 화풍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이 변상도에 그려진 불보살들은 석굴암의 조각상들과 마찬가지로 자연스럽고 유연하며, 정확하고 정교한 곡선으로 호화롭고 미려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통형천정

통형천정 筒形天井 barrel vault(영)

부벽(扶壁)과 지속적인 지지(支持)를 필요로 하는 반원통형의 둥근 천장.

퇴색

퇴색 褪色 embu(프)

회화 기법 중의 하나. 외기나 광선을 쏘이면 모든 색깔은 바랜다. 또 제작 중에는 흑색, 갈색, 암녹색 계통의 색이 윤기를 잃는 일이 많다. 이를 퇴색이라 하며 베르니 아 르투시(Verni à retouche)를 분무하여 회복시킨다. 퇴색의 정도는 변퇴색 그레이 스케일을 써서 측정한다. 그러나 천연 광물을 원료로 하여 만든 물감 종류는 쉽사리 퇴색되지 않는다.

퇴폐미술전

퇴폐미술전 頹廢美術展
Ausstellung der entarteten Kunst(독)

히틀러의 명령에 의해 행해진, 현대 미술을 탄핵하기 위한 전람회. 독일 국내의 미술관*, 화랑*, 개인 컬렉션*에서 압수한 20세기의 모든 전위 미술 작품이 그 대상이었다.
특히 표현주의* 회화에 엄격하여 이 유파가 행한 색채의 해방, 형태의 의도적 왜곡, 추상 표현 등의 여러 실험이 비(非)독일적인 타락, 퇴폐라고 지목되어, 그 미술가는 제작을 금지당했고 작품은 몰수되었다. 비방 투의 플래카드와 팸플릿이 난무했던 이 전람회는 1937년 뮌헨 및 베를린을 시발로 하여 독일의 주요 도시를 순회하였다.
이때 압수된 작품의 수는 1만 7천 점, 이 가운데에서 4천 점 이상이 1939년 5월 베를린 소방서에서 소각되었고, 약 2천 점이 같은 해 6월 뤼체른에서 열린 미술품 경매*로 국외로 흩어졌다. 공직에서 추방되고, 바우하우스* 등의 거점을 폐쇄당한 독일의 전위 미술가들은 잇달아 국외로 탈출했는데, 스위스의 요양소에 있던 표현주의 화가 키르히너Ernst Ludwig Kirchner(1880~1938)는 자신의 조국의 예술의 앞날에 절망하고, 당국의 폭거에 항의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퇴화기법

퇴화기법 堆畵技法

청자*에 보이는 기법으로, 흑토와 백토를 물에 개서 먹으로 그림을 그리듯 문양을 그리고 유약*을 씌운 것. 이때 흑토와 백토가 조금 도드라지기 때문에 쌓인다는 의미의 ‘퇴(堆)’를 사용하여 ‘퇴화’라고 부른다. 주로 백토를 사용하여 국화, 모란 등을 간략하게 묘사한 후 분청사기*의 박지기법*과 같이 배경을 긁어내어 윤곽을 정리한다.

튜더 아치

튜더 아치 tudor arch(영)

영국 후기 고딕*의 아치* 형식으로서 거의 각이 없는 곡선의 형태를 갖고 있다.

→ ‘아치’ 참조

트랜셉트

트랜셉트 transept(영)

→ 익랑

트랜스아방가르드

트랜스아방가르드 Transavantgarde(영)

구상회화로의 복귀, 즉 전통적 기법 및 서술성의 회복은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 미술의 특징 중 하나이다. 독일의 신표현주의*, 프랑스의 신구상*, 미국의 신회화* 등과 함께 이탈리아에서 일어난 유사 경향을 트랜스아방가르드라고 한다.
이는 이탈리아의 평론가인 올리바Achille Bonito Oliva가 만들어낸 용어로서 그는 구상*과 환상적 요소, 회화의 전통과 그림을 회복시켜 자신의 ‘행복한 의식’을 표현할 작가의 권리를 확인하고자 했으며, 트랜스아방가르드 회화를 전통적인 형식을 사용하는 비정치적이며 절충적인 미술로 정의했다. 이 운동의 작가들은 역사와 대중문화*, 비유럽미술에 등장했던 이미지들을 차용했으며, 이들의 그림에는 논리나 시지각을 통해서가 아니라 감성 또는 직관에 의해 이해되는 은유적인 내용들이 담겨 있다.
키아Sandro Chia(1946~ )는 육중한 인물들을 통해 꿈과 악몽을 지닌 인간의 존재를 강조하면서 신비적이고 초현실주의적인 유머를 나타낸다. 클레멘테Francisco Clemente(1952~ )는 자신의 이미지를 다른 생물이나 혹은 여성의 형상과 결합시킴으로써 인간의 상황을 심리학적으로 분석한다. 쿠키Enzo Cucchi는 자신의 고향풍경을 배경으로 종교적 상징들이나 개인적 경험과 관련된 형상들을 등장시켜 장엄하고 계시록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데 마리아Nicola de Maria 는 자신의 그림들이 걸려 있는 벽을 그리면서 섬세한 기호들로 구성된 색채를 표현했으며, 팔라디노Mimmo Paladino는 그림과 나무조각을 동원하여 신화적이거나 신비한 이념을 드러내는 등 개성적이고 다양한 방향에서 작업을 행하였다.

트랜스포메이션

트랜스포메이션 transformation(영)

→ 변형

트레이서리

트레이서리 Tracery(영)

→ 장식격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