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속화
풍속화 風俗畵
peinture de genre(프)
일정한 사회적 계층을 드러내는 사람들의 일상생활의 전형적인 한 모습을 그린 회화. 풍속화는 사람들의 계층에 따라 농민적, 서민적, 귀족적인 것 등으로 나눌 수도 있지만 내용 여하에 따라서는 종교화나 역사화* 등과 뚜렷이 구별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것은 이들 주제를 풍속화풍으로 표현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풍속화는 고대에서도 확인되는데 폼페이의 벽화* 등이 그 좋은 예이다. 중세에서는 일상생활이 예술 표현의 대상이 되지 못했으므로 본래 의미의 풍속화는 나오지 않았다.
유럽 미술에 풍속화풍의 묘사가 다시 나타나게 된 것은 15세기 이후의 일로서 15세기 후반 네덜란드 화가들 사이에서 풍속화풍의 묘사가 점차 많아진다. 또한 독일의 뒤러Albrecht Dürer(1471~1528)도 종교적인 내용을 종종 풍속화풍으로 다루고 있다. 그러나 풍속화가 그 취재 범위를 넓히고 이것을 전문으로 하는 화가가 나온 것은 17세기 특히 네덜란드였다.
플랑드르의 화가 요르단스Jacob Jordaens, 아드리안 브라우워Adriaen Brouwer(1605~1638)는 풍속화가로 유명하며 또 당시의 화가로 렘브란트Rembrandt Harmensz van Rijn(1606~1669), 루벤스Pieter Paul Rubens(1577~1640), 벨라스케스Diego Rodriguez de sila Y Velasquez(1599~1660) 등도 풍속화를 많이 그렸다.
18세기에는 프랑스의 샤르댕Jean Baptiste Siméon Chardin(1699~1779)과, 시민 생활에서 취재하여 교훈적, 풍자적인 풍속화를 그린 호가드 William Hogarth(1697~1764) 등을 제외하고는 상류사회를 다룬 풍속화가 프랑스에서 유행했는데, 랑크레Nicolas Lancret(1690~1743), 부셰François Boucher(1703~1770), 프라고나르Jean Honoré Fragonard(1732~1806) 등이 대표적 화가이다.
당시의 이색적인 풍속화가로서는 스페인의 고야Francisco de Goya(1746~1828)를 들 수 있다. 또한 19세기에 와서 사실주의적 사조는 많은 풍속화를 낳았다. 프랑스에서는 이국풍경을 즐겨 그린 들라크루아Eugène Delacroix(1798~1863), 온갖 사회 단면을 날카롭게 풍자화한 도미에Honoré Daumier(1808~1879), 농민화가인 밀레Jean François Millet(1814~1875)가 있고, 독일에서도 소시민 생활을 그린 리히터Adrian Ludwig Richter(1803~1884)이외에 멘첼Adolph von Menzel(1815~1905), 라이플Wilhelm Leibl(1844~1900) 등이 풍속화를 그렸다.
문학적 내용을 배제하고, 순수한 회화적 요소에만 호소하려는 인상주의* 운동이 일어남과 동시에 마네Edouard Manet(1832~1883), 드가Edgar Degas(1834~1917), 리버만Max Liebermann(1847~1935) 등이 풍속화를 그리기는 했지만, 이후 차차 쇠퇴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