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1 2 7

풍속화

풍속화 風俗畵
peinture de genre(프)

일정한 사회적 계층을 드러내는 사람들의 일상생활의 전형적인 한 모습을 그린 회화. 풍속화는 사람들의 계층에 따라 농민적, 서민적, 귀족적인 것 등으로 나눌 수도 있지만 내용 여하에 따라서는 종교화나 역사화* 등과 뚜렷이 구별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것은 이들 주제를 풍속화풍으로 표현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풍속화는 고대에서도 확인되는데 폼페이의 벽화* 등이 그 좋은 예이다. 중세에서는 일상생활이 예술 표현의 대상이 되지 못했으므로 본래 의미의 풍속화는 나오지 않았다.
유럽 미술에 풍속화풍의 묘사가 다시 나타나게 된 것은 15세기 이후의 일로서 15세기 후반 네덜란드 화가들 사이에서 풍속화풍의 묘사가 점차 많아진다. 또한 독일의 뒤러Albrecht Dürer(1471~1528)도 종교적인 내용을 종종 풍속화풍으로 다루고 있다. 그러나 풍속화가 그 취재 범위를 넓히고 이것을 전문으로 하는 화가가 나온 것은 17세기 특히 네덜란드였다.
플랑드르의 화가 요르단스Jacob Jordaens, 아드리안 브라우워Adriaen Brouwer(1605~1638)는 풍속화가로 유명하며 또 당시의 화가로 렘브란트Rembrandt Harmensz van Rijn(1606~1669), 루벤스Pieter Paul Rubens(1577~1640), 벨라스케스Diego Rodriguez de sila Y Velasquez(1599~1660) 등도 풍속화를 많이 그렸다.
18세기에는 프랑스의 샤르댕Jean Baptiste Siméon Chardin(1699~1779)과, 시민 생활에서 취재하여 교훈적, 풍자적인 풍속화를 그린 호가드 William Hogarth(1697~1764) 등을 제외하고는 상류사회를 다룬 풍속화가 프랑스에서 유행했는데, 랑크레Nicolas Lancret(1690~1743), 부셰François Boucher(1703~1770), 프라고나르Jean Honoré Fragonard(1732~1806) 등이 대표적 화가이다.
당시의 이색적인 풍속화가로서는 스페인의 고야Francisco de Goya(1746~1828)를 들 수 있다. 또한 19세기에 와서 사실주의적 사조는 많은 풍속화를 낳았다. 프랑스에서는 이국풍경을 즐겨 그린 들라크루아Eugène Delacroix(1798~1863), 온갖 사회 단면을 날카롭게 풍자화한 도미에Honoré Daumier(1808~1879), 농민화가인 밀레Jean François Millet(1814~1875)가 있고, 독일에서도 소시민 생활을 그린 리히터Adrian Ludwig Richter(1803~1884)이외에 멘첼Adolph von Menzel(1815~1905), 라이플Wilhelm Leibl(1844~1900) 등이 풍속화를 그렸다.
문학적 내용을 배제하고, 순수한 회화적 요소에만 호소하려는 인상주의* 운동이 일어남과 동시에 마네Edouard Manet(1832~1883), 드가Edgar Degas(1834~1917), 리버만Max Liebermann(1847~1935) 등이 풍속화를 그리기는 했지만, 이후 차차 쇠퇴하게 되었다.

퓌토

퓌토 putto(이)

회화* 및 조각*용어. ‘유아’란 뜻. 특히 이탈리아의 고전주의*와 르네상스* 시대의 제단이나 묘소의 장식 모티브* 또는 독립된 감상용 조상으로 자주 표현되는 작고 벌거벗은 아기로 가끔 날개를 달기도 함. 이러한 예로는 구에르치노Guercino의 천장화 <오로라>(1621~1623년, 로마, 루도비지 별궁)와 베로키오Andrea del Verrocckio(c.1435~1488)의 조각작품 <돌고래를 안은 동자>(1470년경, 피렌체, 팔라초 베키오) 등이 있다.
또 라파엘로Raffaello Sanzio(1483~1520)의 프레스코인 <갈라디아>(1513년, 로마, 파르네시나 별궁) 및 루벤스Pieter Paul Rubens(1577~1640)의 <사랑의 정원>(1632~1634년경, 프라도 미술관)에서 볼 수 있듯이 활과 화살을 들고 있는 사랑의 신이 화신으로 표현되었을 경우에는 큐피드 또는 아모레토Amoretto로 불려진다.

퓌토 그룹

퓌토 그룹 Groupe de Puteaux(프)

앙데팡당전*에서 모여 1911년 결성한 그룹. 퓌토에 있는 뒤샹Marcel Duchamp(1887~1968)의 아틀리에*에서 모임을 가졌으며, 비용Jacques Villon(1875~1963), 뒤샹, 뒤샹-비용Raymond Duchamp-Villon(1876~1918), 글레즈Albert-Léon Gleizes(1881~1953), 메칭거Jean Metzinger(1883~1956), 들로네Robert Delaunay(1885~1941), 라 프레네이Roger de la Fresnaye, 쿠프카Františ ek Kupka(1871~1957), 아폴리네르Guillaume Apollinaire(1880~1918) 등이 참여하였다.
모든 구성원이 황금분할전*에 참가했으며 이들의 활동에 힘입어 피카소Pablo Picasso(1881~1973)와 브라크Georges Braque(1892~1963)의 입체주의*가 대중적으로 알려졌다. 특히 뒤샹 형제는 수학에 관심이 많았으며, 이들은 토론을 통해 입체주의에 비유클리드 기하학 및 상대성 원리, 4차원 개념 등의 이론적 토대를 부여하고자 하였다.

퓨리슴

퓨리슴 Purisme(프)

→ 순수주의

프라 프랑

프라 프랑 pra prang(타)

타이*의 고탑형(高塔形) 사당 건축물로 내부에는 불상*을 안치한다. 본래 크메르* 건축인 프라사트*에서 발전했다. 수코타이Sukhothai(13~14세기)기 이후 타이에 보급되었는데 후대로 내려오면서 점차 가늘고 높은 형태로 바뀌었다.

프라사트

프라사트 prasat(크)

캄보디아*의 건축물로서 탑당(塔堂)이라고도 하는데, 산스크리트어인 ‘프라사다(prasada, 누각)’에서 유래된 말이다. 단독 사당으로 건축물의 상부구조가 고탑형(高塔形)을 이루는 것이 특징이며 인도의 시카라* 형식(특히 남방형)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또한 참파*의 카랑(사당)이나 중부 자바의 찬디 등과도 건축적으로 유사하다. 앙코르* 시대에 눈부신 발전을 보였는데 기본형은 사각형 건조물 위에 크기가 점차 줄어드는 5층의 탑을 올려 놓는 것이다.
그렇지만 앙코르 와트*의 고탑이나 바욘의 인면탑* 등에서 볼 수 있듯이 형태의 변화가 매우 많다. 처음에는 구운 기와와 라테라이트(紅土)로 만들었으나 그 후 석조가 일반화되었다. 또한 기단을 높은 계단식으로 쌓는다든지 사당 네모서리에 탑을 세워 오탑당 형식으로 만든다든지 하여 앙코르 시대 사원의 중심적인 건축물이 되었다.

프라이머리 스트럭처

프라이머리 스트럭처 primary structure(영)

기본 구조(基本構造), 원구성(原構成) 등으로 번역된다. 원형(圓形), 장방형(長方形)과 같이 단순하면서도 기본적인 모양에 의해 구성하는 것. 1966년 4월 뉴욕에서 개최된 동명(同名)의 전람회가 이 명칭의 기원이다. ‘미국과 영국의 젊은 조각가들’이란 부제가 붙었던 이 전시회는 1960년대 중기에 보여진 조각*의 새로운 특징을 부각시킨 것으로 기획자는 맥샤인Kynaston McShine이다. ‘조각(sculpture)’이란 말 대신에 구성(structure)이란 말을 쓰고 있듯이 깎고 다듬는다는 의미의 종래의 조각 개념에서 탈피하여 새로운 공간 구성을 목표로 하는 경향을 가리킨다. 그 형태가 지극히 단순하다는 점에서 간결한 표현을 추구하는 미니멀 아트*와도 공통점을 지닌다.
프라이머리 스트럭처의 특징은 첫째 형태가 구(球), 원주, 원추, 각주(角柱), 입방체 등의 기본적인 것으로 된 점. 둘째로는 대부분이 선명한 원색으로 채색되어 있는 점. 그러나 이러한 색채는 대개 기계적인 방법(예를들어 분무기 같은 것)으로 채색된 것이어서 우리가 회화에서 느끼는 색채감각과는 달리 정서가 배제되어 있다. 셋째는 재래의 조각에서 사용된 돌, 석고, 시멘트, 철 등의 자연적 또는 반자연적 소재 대신에 플라스틱 알루미늄, 스테인리스, 유리, 합판 등의 현대적 공업용 소재를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점. 넷째는 수공적인 작업을 지양하고 설계도에 따라 공장 등에 주문 생산하고 있는 점 등이다.
따라서 조각가들은 자신의 역할을 디자이너의 그것에 한정시켜 창작의 비개성적인 면과 복제*의 가능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므로 막대한 비용이 소요되는 구조물의 경우는 제작 비용을 지불할 파트롱*이 없으면 실현을 보지 못하는 건축물과 같이 지상(紙上)의 작품으로만 남는 수도 있다.
또한 스케일이 커서 관객들이 그 속에 들어갈 수 있어 종래의 조각처럼 관객에 의해 둘러싸여질 수 없다는 의미에서 환경적인 면이 강한 점도 또다른 특징이다. 이 경향은 1950년대 영국에서 일어난 것으로 카로Anthony Caro(1924~ )와 킹Philip King(1934~ )에 의해 시도되었다.

프란체스코 수도회

프란체스코 수도회 Franciscan Order(영)

1209년 교황 이노센트 3세의 인가를 얻어 이탈리아의 성 프란체스코St. Francesco(본명은 지오반니 디 베르나르도네, 1182~1226)가 창설한 탁발수도회. 그 목적은 가난하고 비천하게 지낸 예수의 생활을 본받아 특히 청빈 정신을 강조하며, 편력 설교(遍歷設敎)를 통해서 가난한 사람과 병든 사람을 위로하는 데 있다.

프랑스 전통 청년화가

프랑스 전통 청년화가 Les Jeunes Peintres de la Tradition Française(프)

프랑스의 전통적인 조형 정신을 회화*에서 살리고자 했던 젊은 화가들의 그룹. 1941년 파리의 살롱 드 브롱에서 제1회 전시회를 개최했다. 본래 이 그룹은 이즘을 중심으로 하여 결성된 이념적인 유파는 아닌 자유로운 작가들의 모임이었다.
그들이 주장한 전통적인 조형정신은 나치 점령하의 레지스탕스의 한 방법이다. 따라서 ‘전통’이란 일반적인 의미의 보수적인 전통 내지는 과거의 양식으로 복귀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둘러싼 현실 속에서 순수한 회화적 세계를 창조하기 위해 새로운 의욕의 표현으로서의 형태, 공간, 데생, 색채를 발견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그들은 전통을 부흥시켰던 르네상스* 양식을 퇴폐적인 것으로 보고, 그 이전의 크레타(→‘에게 미술’ 참조), 이집트*, 로마네스크*의 비사실적, 장식적인 예술을 재인식하여 세잔느Paul Cézanne(1839~1906), 반 고흐Vincent van Gogh(1853~1890), 고갱Paul Gauguin(1904~1948)의 길을 발전시켜 새로운 휴머니티를 표현코자 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야수주의*의 풍부한 색채와 입체주의*의 기하학적인 형태를 종합하여 새로운 조형 양식을 창조하고자 했다. 이 그룹에는 로뱅Gabriel Robin, 바젠Jean Bazaine, 르 모알Jean Le Moal 등 10여명이 참가했다.

프랑스 창

프랑스 창 french window(영)

마루면까지 안으로 열리는 쌍여닫이 창문으로, 프랑스 도어라고도 한다. 발코니, 베란다, 테라스 등으로 나갈 수 있게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