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안 아방가르드
러시안 아방가르드 Russian Avantgarde(영)
절대주의* 회화의 말레비치Kasimir Malevitch(1878~1935), 광선주의*의 라리오노프Mikhail Larionov(1881~1964), 구축주의*의 타틀린Vladimir Tatlin(1885~1953)과 로드첸코Alexander Rodchenko(1891~1956), 부르류크 형제David Burljuk & Vladimir Burljuk, 펩스너Antoine Pevsner(1886~1962)와 가보Naum Gabo(1890~1977)의 광선 키네틱 등을 모두 총칭하여 일컫는다. 러시안 아방가르드는 1911년에 모스크바의 유명한 전시회 <카로-부베Karo-Bube>에서 출발하였다. 이 전시회에서 라리오노프, 말레비치, 곤차로바Natalia Goncharova(1881~1962) 그리고 부르류크 형제는 비대상*성의 경향을 주로 시도했다.
예술의 발달사에서 러시아 회화와 조형의 출현은 러시안 아방가르드의 특징으로 인해 서구의 추상화 운동으로 이해된다. 즉 그것은 전통적인 관습에서 국제적이며 근대적인 경향으로의 근본적인 전이과정으로 이해되는데, 이러한 전이 과정은 10월 혁명이라는 정치적 사건과 함께 진전되었고, 무엇보다도 1917년에서 1921년에 걸친 공산주의 혁명 기간 동안 볼셰비키의 문화 정책에 의해 강력하게 추진되었다. 추상파 예술가들은 볼셰비키의 새로운 통치체제를 아방가르드 예술의 개척자라고 찬미했고, 평론자이자 정치가였던 루나차르스키Anatolii Vasil’evich Lunacharski의 지도하에서 그 당시까지 러시아에서는 결코 겪어보지 못했던 가능성-역사나 예술가들의 창작 활동을 통해 국민들에게 신뢰를 심을 수 있다는-을 공적인 교육 제도와 무수히 신설된 박물관과 화랑 등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들이 각각 모스크바와 레닌그라드 상급 학교의 요직을 차지하게 되면서 러시안 아방가르드는 점차 분열되기 시작하였고, 그로부터 ‘추상주의’와 ‘구축주의*’로 표현될 수 있는 두가지 방향이 생겨나게 되었다. 추상주의자인 말레비치,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1866~1944), 펩스너 형제 등은 예술을 추상적 형식의 구조적 명확성을 통해 질서있는 세계관의 형상을 제시하는 정신 활동으로 간주했다. 반면에 구축주의자인 타틀린과 로드첸코는 프롤레타리아의 발전을 위해 예술과 기술의 효용성을 상호 결합시키려고 하였다. 그러나 1920년, 즉 혁명 후의 모더니즘*적인 예술과 예술 정책은 레닌Vladimir Lenin의 불만을 고조시켜 공식적인 작업의 기회를 얻기 힘들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루나차르스키의 죽음으로 인해 러시안 아방가르드가 쇠퇴하게 된다. 이어서 사회주의 사실주의*라는 선동적 특징을 지닌 중앙통제적인 선동 예술이 생겨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