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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진북최

남진북최 南陳北崔

중국 명말(明末)에 활약한 진홍수陳洪綬(츠언 홍서우, 1598~1652)와 최자충崔子忠(츠웨이 쯔총, ?~1644) 두 화가를 이른다. 진홍수는 남방의 절강성浙江省 출신이고 최자충은 북방의 산동성山東省 출신이어서 그 호적수를 나타내기 위해 ‘남진북최’라는 말이 생겼고, 《국조화징록國朝畵徵錄》에 그 용례가 보인다. 명말에 이르러 왕조의 부패가 구제할 수 없을 정도에 이르고 사회적 혼탁양상이 가속화하자 비현실적이고 환상적이며 골동취미적인 경향의 그림이 성행하였다. 진홍수와 최자충의 그림은 이러한 경향을 대변하는데, 두 사람 모두 인물화에 뛰어났다. 진홍수의 화풍은 기이하고 생졸하며, 과장되고 변형된 조형을 즐겨 사용하였다.
고개지顧愷之(꾸 카이즈, 344~406)에서 유래된 고대 인물화 양식을 풍자적으로 묘사하는 등 전통적 방식을 연구하였다. 명말의 혼란과 붕괴 상황 속에서 자신의 화풍을 전통에 의지한 것은 고도의 개인주의적인 자아탐구일 뿐만 아니라 명明 왕조나 문화에 대한 충성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인물 뿐만 아니라 화조도 잘 그렸다. 나아가 역사화와 풍속화*에 뛰어났는데 이공린李公麟(리 꽁린, 1040~1106)과 조맹부趙孟頫(자오 멍후, 1254~1322)의 화법(法)을 겸비하였고 설색(設色)은 오도현吳道玄(우 따오쉬앤)의 유법(遺法)을 얻었다.
최자충 역시 명말의 혼란스런 세상을 그림으로 표현한 화가였다. 그는 명말의 서화고동취미(書畵古董趣味)를 반영하는 인물화들을 많이 그렸다. 이는 명말청초(明末淸初)의 혼란기에 전통에 의탁하여 현실 상황에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려는 이상적 취향의 문인화풍을 대변하는 것이었다. 최자충의 화풍도 전통을 추구하여 당唐, 송宋 화풍을 따랐다. 따라서 묘사기법이 세밀하고 치밀하며 색채가 청려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