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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칭

에칭 etching(영)

산(酸)의 부식작용을 이용하는 판화*의 한 방법. 잘 닦여진 동판에 산의 화학작용을 방지하는 내산성 방식제, 즉 보통 밀랍, 역청(瀝靑), 송진 등이 혼합된 ‘에칭 그라운드’를 입힌다. 검은 피복을 입힌 이 판에 금속 바늘로 형태를 새겨 그 선을 따라 아래의 금속이 노출되도록 하고 판의 뒷면과 모서리는 내산성으로 처리된 바니시*를 덮은 후, 희석된 산에 담근다. 이때는 일반적으로 질산을 사용하며, 부식액 속에 담겨진 판은 바늘로 긁어 그라운드가 벗겨진 부분만 부식이 됨으로써 판에 그 형태가 새겨지게 되는 것이다.
에칭의 효과는 같은 동판화의 일종인 선 인그레이빙*과 비교되곤 한다. 선 인그레이빙이 기구를 사용하여 판에 직접 힘을 주어 새김으로써 손의 압력에 따라 선의 굵기가 결정되며 계획성과 금속성의 명쾌함을 드러내는 특성을 갖는다면, 에칭의 특징은 부드러운 그라운드 위에 형태를 그림으로써 펜이나 연필로 종이 위에 직접 그리는 것과 같이 선들이 자연스럽다는 것과, 또 부식의 정도에 따라 선의 굵기와 깊이가 결정된다는 점에 있다.
에칭이 작품으로 선보인 시기는 1513년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그 이전부터 금공기법으로 존재하여 갑옷이나 투구를 장식하는 데 이용되었다. 뒤러Albrecht Dürer(1471~1528)는 철판을 이용하여 에칭을 하였는데 상당히 강렬하고 거친 부식효과를 내고 있다. 뒤러 외에도 당시 북구의 그라프Urs Graf, 알트도르퍼Albrecht Altdorfer(1480~1538), 반 레이든Lucas van Leyden(c.1492~1533) 및 이탈리아의 파르미지아니노Parmigianino 등이 에칭 기법을 사용하였고, 17세기 초에는 랄로Jacques Lallot와 보스Abraham Boss가 큰 활약상을 보였다. 이들 에칭의 구파(舊派)들은 에칭 기법만의 특이성을 살렸다기보다는 선 인그레이빙의 대체 기법으로 간주한 측면이 강하였다.
최초의 근대적인 에칭 화가는 작품에 풍부한 감정과 힘을 실었던 렘브란트Rembrandt Harmensz van Rijn(1606~1669)였으나 에칭 미술 전반에 큰 영향을 끼치지는 못하였다. 18세기에는 티에폴로Giovanni Battista Tiepolo(1969~1770)가 환상적인 주제를 다룬 작은 크기의 에칭에서 자신의 대형 그림에서 보이는 특징적인 빛, 대기, 공간에 대한 느낌을 보여주고 있다. 같은 18세기말 스페인에서는 고야Francisco de Goya(1746~1828)가 수많은 에칭을 제작했는데, 부식된 선뿐 아니라 그늘진 작은 부분까지도 나타낸, 정교하고 세밀한 에칭의 특성을 그대로 살린 작품들이 많았다.
19세기 말에는 밀레Jean François Millet(1814~1875), 코로Jean-Baptiste-Camille Corot(1796~1875), 피사로Camille Pissaro(1830~1903), 드가Edgar Degas(1834~1917)를 포함하여 프랑스의 뛰어난 작가들 대부분이 에칭을 제작했다. 20세기에 들어서도 많은 화가들이 책의 삽화나 감식가를 위해 고안된 소수의 제한된 판을 제작하거나 자율적이고 독창적인 작품을 위한 에칭을 만들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