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화파
영남화파 嶺南畵派
ingnanpai(중)
명, 청(明淸) 이래 광동성廣東省 광주廣州에서 시작된 화파. 영남은 광주의 옛 이름이다. 대표적인 화가로는 명대(明代)의 임량林良(린 리앙)으로 수묵 화조화*에 뛰어났는데 필체가 간결하고 힘차면서 호방하여 영남 일대의 화풍을 향상시켰다. 그 기법을 본받은 사람으로 고엄高儼(까오 이앤, 산수화), 진서陳瑞(츠언 루웨이, 화조화)가 있고, 려간黎簡(리 지앤), 이괴李魁(리 쿠에이) 등이 계속해서 활약했는데, 주로 광동 지방 산수의 특색을 묘사하는 데에 치중했다.
앞의 두 사람은 창윤(蒼潤)함이 오진吳鎭(우 즈언)과 흡사하고, 담원(淡遠)하기는 예찬倪撰(니 짠, 1301~1374)과 근사하며 뒤의 두 사람은 화공*(畵工) 출신으로 기법이 정밀하였다. 청대 건륭 연간(乾隆, 1736~1795)에 소육명蘇六明(쑤 리우펑), 소장춘蘇長春(쑤 즈앙츠운) 등이 인물화*에 뛰어났는데, 소육명은 민중의 생활과 시정의 풍속을 그림의 제재로 삼았고, 소장춘은 신선, 불상을 그렸지만 남방의 일반인들을 모델로 하였다. 청말(淸末)엔 거소居巢(쥐 츠아오), 거렴居廉(쥐 리앤)이 화조충어화(花鳥蟲魚畵)에 뛰어났는데, 이들은 운수평惲壽平(윈 서우핑)에게서 영향을 받았다.
현대의 번우番禹(판 위), 고검부高劍父(까오 지앤푸), 고기봉高奇峰(까오 치펑), 진수인陳樹人(츠언 수르언) 등도 일찍이 거렴을 스승으로 섬겼다. 고씨 형제와 진수인은 후에 일본에 유학하여 서양화 기법을 도입하였고, 작품의 제재도 중국 남방의 풍물을 묘사한 것이 많은데, 중국화의 전통 기법을 운용하면서 일본 남화*(南畵)와 서양화 기법을 융합하여 사생에 치중하였다. 선명한 색채와 충분한 물기로 부드럽고 깨끗한 현대 영남화파의 새로운 풍격을 빛내며 전파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