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보
인보 印譜 yin-pú(중)
옛 인장*, 또는 전각가(篆刻家)가 새긴 인장을 모아서 계보에 맞게 책으로 만든 것. 당唐의 장언원張彦遠(즈앙 이앤위앤, 815~875경)의 《역대명화기*歷代名畵記》의 한 부분인 〈서고금공사인기敍古今公私印記〉가 당대(唐代)의 감장인(鑑藏印)을 모아 수록하고 있어, 인보에 가까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인보라는 형식이 성립된 것은 북송北宋의 휘종徽宗이 옛 도장을 수집해서 편집해 놓은 《선화인보宣和印譜》가 처음이지만, 현재는 전하여지지 않는다. 남송南宋 왕기王夔(우앙 치어우)의 《소당집고록嘯堂集古錄》에도 한漢, 위魏, 진秦 때의 공사인(公私印) 37개를 싣고 있어, 불완전하나마 인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왕후지王厚之(우앙 허우즈)의 《복재인보復齋印譜》는 현재 《한진인장도보漢晋印章圖譜》로서 전해지고 있다. 이 밖에 양극일楊克一(양 커이)의 《도서보圖書譜(集古印格)》, 안숙하顔叔夏(이앤 쑤시아)의 《고인보古印譜》, 강기姜夔(지앙 쿠에이)의 《집고인보集古印譜》 등이 있었다고 하지만 이 또한 현재는 전하여지지 않는다. 원대(元代)에는 조맹부趙孟頫(자오 멍후, 1254~1322)의 《인사印史》가 있어 한, 위의 인장 340개를 모각하였다. 또 양준楊遵(양 쭌)의 《집고인보》, 오맹사吳孟思(우 멍쓰)의 《오씨인보吳氏印譜》 등도 있었지만 현재는 남아 있지 않다.
명대(明代)에 고종덕顧從德(꾸 충더)이 왕상王常(우앙 츠앙)과 함께 이제까지의 고인보를 모두 모아 새롭게 《집고인보》를 편집하여 만력 3년(萬曆, 1575)에 이를 간행한 이래로, 고동인보(古銅印譜)가 잇달아 저술되고, 전각도 부흥하여 그 각인(刻印)의 인보도 만들어지게 되었다. 청대(淸代)에는 인장에 대한 학문이 성행하여, 새로 출토된 옛 동인장도 첨가하고 방대한 연구도 이루어져 우수한 인보가 나타났다. 동시에 명대에 시작된 문인의 전각이 청 건륭 연간(乾隆, 1736~1795)에는 더욱 유행하고, 이와 함께 각인의 인보도 많이 만들어져, 청 말기까지 이르게 되었다. 명, 청의 인보는 인전(印箋)에 검인한 것을 모은 서책으로, 감상가의 서문을 붙여 간행하는 것이 일반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