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룡산석굴 天龍山石窟
T’ien-lung-s-han(중)
산서성山西省 태원太原의 서남쪽 약 17㎞의 산중에 동위東魏에서 당대(唐代)에 이르는 동안 만들어진 불교석굴이다. 백색의 세밀한 사암으로 된 산허리의 서남면에 펼쳐져 있으며, 작은 시내를 사이에 두고 동쪽에 8굴, 서쪽에 13굴이 모여 있다. 제2, 3굴은 동위시대에 만들어진 석굴로, 평면은 방형이며 복두형(覆斗形)의 천장으로 되어 있다.
세 벽에 각각 삼존형식의 불감*(佛龕)이 만들어져 있으며, 제2굴의 천장은 중앙에 연화(蓮華), 사방에 낮은 부조*의 천인(天人)이 배치되어 있다. 제3굴에는 비구(比丘)와 거사(居士), 수하사유상(樹下思惟像)과 유마상(維摩像) 등의 부조가 있다. 천인(天人), 공양자(供養者)의 자태와 천의(天衣)는 용문석굴* 위자동(魏字洞)의 천장을 그대로 이어받은 것이다.
제10, 16굴은 북제北齊시대에 축조되었으며, 평면은 방형, 천장은 복두형, 세 벽에 오존상(五尊像)을 안치한 첨공감(尖拱龕)이 있다. 제16굴은 왼쪽 벽에 교각미륵보살(交脚彌勒菩薩)을 본존으로 하고 있으며, 오른쪽 벽은 아미타불*, 후벽은 석가모니불*이 본존으로 되어 있다. 동굴 입구의 문신상(門神像)은 북제의 독특한 양식을 보여준다.
제1, 8굴은 수대(隋代)에 조성된 것이다. 제1굴은 용두(龍頭) 혹은 조형(鳥形)의 장식을 붙인 아치*형의 불감에 의상(倚像) 또는 좌불(座佛)을 안치시키고 있다. 입구의 좌측에 있는 이수(螭首)의 비형(碑形)에는 ‘개황開皇’이라는 연호가 있는 명문*이 있다. 제8굴은 사방 4m의 방형 석굴로 탑묘(塔廟)를 의미하는 방주(方柱)가 중앙에 있다. 북조北朝의 방주굴(方柱窟) 가운데 가장 후기에 속하는 예이다. 동굴 밖 왼쪽 벽의 귀부*(龜趺) 위에 비형(碑形)이 조각되어 있으며, ‘세차갑진계(歲次甲辰季)’ 즉 수隨 개황 4년(584)의 명문이 있다. 방주 네 면에는 각각 삼존좌불을 안치시키고, 세 방향의 벽 주위에는 좌불감(左佛龕)과 불감 외에 두명의 비구, 두 명의 보살입상이 있다. 천장은 방주에 더해져 삼각정(三角頂)을 이루며, 아치형 입구의 양쪽에는 역사(力士)와 사자가 있다. 동쪽 제4~7굴, 서쪽의 제 14, 17, 18, 21, 22굴은 당대에 축조된 것이다. 동쪽의 것들은 모두 작은 석굴이며, 서쪽의 것들보다 연대가 올라간다.
제 4, 5굴은 측천무후則天武后(690~705)말년 무렵이며, 제 14굴은 현종玄宗(712~756)의 초기이고, 제17, 18굴은 개원 연간(開元, 713~741), 제21굴 이하는 더욱 늦은 중당(中唐)으로 내려 온다. 제5굴에는 결가부좌 정인통견(定印通肩)의 본존불이 있으며, 제4굴은 사방 약 2m의 방형석굴로서 안쪽의 벽에 삼존좌불감(三尊左佛龕)이 있고, 좌우에 나한상(羅漢像)이 있다. 벽은 중앙에 불의상(佛倚像)이 있고, 우협시에 안좌보살(安坐菩薩), 좌협시에 시립하고 있는 보살, 문 입구의 양협시(兩脇侍)에 역사상(力士像)이 있다.
제14굴은 평면의 배치가 제4굴과 거의 동일하지만, 안쪽 벽의 본존이 삼존불의상(三尊佛倚像), 좌우의 협시*가 보살인 점이 다르다. 좌우의 벽은 각각 소위 안락좌(安樂坐)의 반가보살상을 중심 존상으로 하여, 좌우에 시립하는 보살상이 있는데, 이러한 형식의 효시라고 볼 수 있다. 이 불상들은 당대 조각의 한 정점을 보여주고 있는데, 제 17, 18굴에서처럼 시대가 내려옴에 따라서 형식화되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