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 프랑
프라 프랑 pra prang(타)
타이*의 고탑형(高塔形) 사당 건축물로 내부에는 불상*을 안치한다. 본래 크메르* 건축인 프라사트*에서 발전했다. 수코타이Sukhothai(13~14세기)기 이후 타이에 보급되었는데 후대로 내려오면서 점차 가늘고 높은 형태로 바뀌었다.
프라 프랑 pra prang(타)
타이*의 고탑형(高塔形) 사당 건축물로 내부에는 불상*을 안치한다. 본래 크메르* 건축인 프라사트*에서 발전했다. 수코타이Sukhothai(13~14세기)기 이후 타이에 보급되었는데 후대로 내려오면서 점차 가늘고 높은 형태로 바뀌었다.
프라사트 prasat(크)
캄보디아*의 건축물로서 탑당(塔堂)이라고도 하는데, 산스크리트어인 ‘프라사다(prasada, 누각)’에서 유래된 말이다. 단독 사당으로 건축물의 상부구조가 고탑형(高塔形)을 이루는 것이 특징이며 인도의 시카라* 형식(특히 남방형)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또한 참파*의 카랑(사당)이나 중부 자바의 찬디 등과도 건축적으로 유사하다. 앙코르* 시대에 눈부신 발전을 보였는데 기본형은 사각형 건조물 위에 크기가 점차 줄어드는 5층의 탑을 올려 놓는 것이다.
그렇지만 앙코르 와트*의 고탑이나 바욘의 인면탑* 등에서 볼 수 있듯이 형태의 변화가 매우 많다. 처음에는 구운 기와와 라테라이트(紅土)로 만들었으나 그 후 석조가 일반화되었다. 또한 기단을 높은 계단식으로 쌓는다든지 사당 네모서리에 탑을 세워 오탑당 형식으로 만든다든지 하여 앙코르 시대 사원의 중심적인 건축물이 되었다.
프라이머리 스트럭처 primary structure(영)
기본 구조(基本構造), 원구성(原構成) 등으로 번역된다. 원형(圓形), 장방형(長方形)과 같이 단순하면서도 기본적인 모양에 의해 구성하는 것. 1966년 4월 뉴욕에서 개최된 동명(同名)의 전람회가 이 명칭의 기원이다. ‘미국과 영국의 젊은 조각가들’이란 부제가 붙었던 이 전시회는 1960년대 중기에 보여진 조각*의 새로운 특징을 부각시킨 것으로 기획자는 맥샤인Kynaston McShine이다. ‘조각(sculpture)’이란 말 대신에 구성(structure)이란 말을 쓰고 있듯이 깎고 다듬는다는 의미의 종래의 조각 개념에서 탈피하여 새로운 공간 구성을 목표로 하는 경향을 가리킨다. 그 형태가 지극히 단순하다는 점에서 간결한 표현을 추구하는 미니멀 아트*와도 공통점을 지닌다.
프라이머리 스트럭처의 특징은 첫째 형태가 구(球), 원주, 원추, 각주(角柱), 입방체 등의 기본적인 것으로 된 점. 둘째로는 대부분이 선명한 원색으로 채색되어 있는 점. 그러나 이러한 색채는 대개 기계적인 방법(예를들어 분무기 같은 것)으로 채색된 것이어서 우리가 회화에서 느끼는 색채감각과는 달리 정서가 배제되어 있다. 셋째는 재래의 조각에서 사용된 돌, 석고, 시멘트, 철 등의 자연적 또는 반자연적 소재 대신에 플라스틱 알루미늄, 스테인리스, 유리, 합판 등의 현대적 공업용 소재를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점. 넷째는 수공적인 작업을 지양하고 설계도에 따라 공장 등에 주문 생산하고 있는 점 등이다.
따라서 조각가들은 자신의 역할을 디자이너의 그것에 한정시켜 창작의 비개성적인 면과 복제*의 가능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므로 막대한 비용이 소요되는 구조물의 경우는 제작 비용을 지불할 파트롱*이 없으면 실현을 보지 못하는 건축물과 같이 지상(紙上)의 작품으로만 남는 수도 있다.
또한 스케일이 커서 관객들이 그 속에 들어갈 수 있어 종래의 조각처럼 관객에 의해 둘러싸여질 수 없다는 의미에서 환경적인 면이 강한 점도 또다른 특징이다. 이 경향은 1950년대 영국에서 일어난 것으로 카로Anthony Caro(1924~ )와 킹Philip King(1934~ )에 의해 시도되었다.
프란체스코 수도회 Franciscan Order(영)
1209년 교황 이노센트 3세의 인가를 얻어 이탈리아의 성 프란체스코St. Francesco(본명은 지오반니 디 베르나르도네, 1182~1226)가 창설한 탁발수도회. 그 목적은 가난하고 비천하게 지낸 예수의 생활을 본받아 특히 청빈 정신을 강조하며, 편력 설교(遍歷設敎)를 통해서 가난한 사람과 병든 사람을 위로하는 데 있다.
프랑스 전통 청년화가 Les Jeunes Peintres de la Tradition Française(프)
프랑스의 전통적인 조형 정신을 회화*에서 살리고자 했던 젊은 화가들의 그룹. 1941년 파리의 살롱 드 브롱에서 제1회 전시회를 개최했다. 본래 이 그룹은 이즘을 중심으로 하여 결성된 이념적인 유파는 아닌 자유로운 작가들의 모임이었다.
그들이 주장한 전통적인 조형정신은 나치 점령하의 레지스탕스의 한 방법이다. 따라서 ‘전통’이란 일반적인 의미의 보수적인 전통 내지는 과거의 양식으로 복귀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둘러싼 현실 속에서 순수한 회화적 세계를 창조하기 위해 새로운 의욕의 표현으로서의 형태, 공간, 데생, 색채를 발견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그들은 전통을 부흥시켰던 르네상스* 양식을 퇴폐적인 것으로 보고, 그 이전의 크레타(→‘에게 미술’ 참조), 이집트*, 로마네스크*의 비사실적, 장식적인 예술을 재인식하여 세잔느Paul Cézanne(1839~1906), 반 고흐Vincent van Gogh(1853~1890), 고갱Paul Gauguin(1904~1948)의 길을 발전시켜 새로운 휴머니티를 표현코자 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야수주의*의 풍부한 색채와 입체주의*의 기하학적인 형태를 종합하여 새로운 조형 양식을 창조하고자 했다. 이 그룹에는 로뱅Gabriel Robin, 바젠Jean Bazaine, 르 모알Jean Le Moal 등 10여명이 참가했다.
프랑스 창 french window(영)
마루면까지 안으로 열리는 쌍여닫이 창문으로, 프랑스 도어라고도 한다. 발코니, 베란다, 테라스 등으로 나갈 수 있게 되어 있다.
프레스코 fresco(이)
벽화*를 그릴 때 쓰는 화법. 이탈리아어로 ‘신선하다’라는 뜻. 덜 마른 회반죽 바탕에 물에 갠 안료로 채색한 벽화. 그림물감이 표면으로 배어들어 벽이 마르면 그림은 완전히 벽의 일부가 되어 물에 용해되지 않으며, 따라서 수명도 벽의 수명만큼 지속된다.
프레스코는 석고가 마르기 전에 재빨리 그림을 그려야 하는 어려움이 있으며, 그림의 수정도 거의 불가능해 정확하고 숙련된 기술이 필요하다. 또 사용할 수 있는 안료의 색깔도 제한되어 있고(15~16세기 화가들은 프레스코에는 천연 안료만이 적합한 것으로 보았다), 벽이 마를수록 색깔도 옅어지며, 색의 농담을 이용한 효과도 얻을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어려움과 제약이 오히려 광범한 주제의 디자인과 과감한 방식의 도입을 권장하는 격이 되어, 이탈리아 르네상스* 회화의 순수함과 힘, 불멸성을 크게 촉진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프레스코 화법에서 석고는 안료를 접착시켜 주는 매체*로 작용하며, 흰색만이 사용된다. 이와 같은 정통적인 방법의 프레스코를 이탈리아에서는 프레스코 부오노 또는 부온 프레스코라 하며, 같은 안료를 사용하여 다른 회벽에 그리는 것을 프레스코 세코 또는 단순히 세코라고 불렀다. 프레스코는 기념 건조물의 벽화를 그리기에 가장 적합하다. 다만 습기가 차면 석고가 부서지므로 그림도 함께 떨어져 나가는 단점이 있다. 그러나 건조한 지방에서는 가장 영구적이며, 그 결과 베니스를 제외한 이탈리아에서 많이 사용하였으며 북유럽에서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프레스코 회화는 크레타(→‘에게 미술’ 참조)와 그리스의 벽화, 폼페이의 그레코-로만 벽화가 있다. 중세 초에는 벽화를 그릴 때, 여러 방법이 혼합 사용된 듯하며, 프레스코로만 된 벽화는 없는 듯하다. 그러나 로마의 수도원 건물의 벽화를 보면 12~13세기에는 프레스코가 모자이크* 공예*의 일부로도 사용된 것이 발견된다.
훌륭한 프레스코는 대부분 이탈리아의 대가들에 의해 제작되었다. 그 일인자가 지오토Giotto(1266~1337)이고 그 밖에 마사치오Masaccio(1401~1428),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Pierro della Francesca(1415~1492), 라파엘로Raffaello Sanzio(1483~1520), 미켈란젤로Michelangelo(1475~1564), 코레지오Correggio(c.1490~1534) 등이 있다.
프레스코의 융성기는 14~15세기이며, 16세기 이후로는 점차 유화로 대체되었다. 19세기에 독일 기독교들과 영국의 라파엘전파*의 화가들이 전통적인 이탈리아 프레스코의 부활을 시도했으나 기법의 복귀가 어렵자 들라크루아Eugène Delacroix(1798~1863), 퓌비 드 샤반느Pierre Puvis de Chavannes(1824~1898) 등 많은 화가들이 그 대신에 표구(marouflage) 방법을 사용하였다. 그러나 프레스코는 20세기에 들어와 멕시코의 리베라Diego Rivera(1886~1957)나 오로츠코José Clemente Orozco(1853~1949)에 의해 재발견되는 등 그 전통은 계승되고 있다.
한편 아시아 지역에서는 전통적으로 벽화를 그릴 때 마른 석고 위에 안료로 그리는 방법을 사용해 왔으나, 인도 지방의 벽화기법을 조사해 본 결과, 11~12세기에 프레스코 기법이 전해진 것으로 보인다.
프로그램드 아트 Programmed Art(영)
이탈리아의 미술가이자 디자이너인 무나리Bruno Munari가 1945년 이후에 제작한 자신의 작품을 서술한 말로, ‘만드는 과정에서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것을 목표’로 하는 미술이다. 무나리가 예술 대상으로 삼은 것은 전자모터를 사용하여 작은 화면에 색깔과 형태의 배합, 변형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다. 프로그램이란 컴퓨터 용어로 변형 속도와 전 과정이 한 번 바뀌는 데 소요되는 시간의 길이를 프로그램하는 것이다. 일종의 키네틱 아트*인 듯 하나 무나리는 이러한 가정을 거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키네틱 작품에 프로그램 아트라는 명칭을 붙이기도 한다. 1960년대의 옵 아트*, 시스테믹 페인팅*, 시리얼 아트*에도 이 말이 사용된다. 그러나 이러한 유형의 예술은 문자 그대로 프로그램된 것을 뜻하므로 컴퓨터 아트*로 간주하는 것이 타당하겠다.
프로타주 frottage(프)
나무판이나 잎, 천 따위의 면이 올록볼록한 것 위에 종이를 대고, 연필 등으로 문지르면 피사물(被寫物)의 무늬가 베껴지는데, 그 때의 효과를 조형상에 응용한 기법. 원뜻은 ‘마찰하다’라는 의미의 프랑스 어 ‘frotter’에서 나왔다.
작자의 의식이 작용하지 않은 차원에서 우연히 나타나는 예기치 않은 효과를 노린다는 의미에서는 데칼코마니*나 타시슴* 또는 자동기술법*과 같은 성질의 것이다. 우연한 효과를 노리는 것뿐만 아니고, 몇 가지 피사물을 의식적으로 짜맞추는 경우도 있고, 혹은 거기에 나타난 무늬에서 힌트를 얻어 붓을 가하는 경우도 있다. 이 기법은 우연이나 무의식을 중시하는 초현실주의* 작가들이 다루었다. 특히 독일 태생의 에른스트Max Ernst(1891~1976)는 콜라주*와 함께 이 기법을 사용한 대표적 작가였다. 1926년의 《박물지博物誌》는 이 수법을 구사한 화첩(畵帖)으로서 유명하다. 그는 어느 날, 마룻바닥의 얼룩을 보고 있다가 거기에서 온갖 환각(幻覺)이 생긴다는 것을 깨닫고, 이 기법을 발견하였다. 이 기법에 의한 《박물지》 속의 나뭇잎 등의 형상은 인간의 머리, 괴물, 바다 풍경 등으로 변모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