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묵 筆墨
동양 회화의 용어. ‘필(筆)’은 통상적으로 구(鉤), 륵(勒), 준*(皴), 찰(擦), 점(點) 등의 필법(筆法)을 가리키며, ‘묵*’은 홍(烘), 염(染), 파(破), 발(潑), 적(積) 등의 묵법(墨法)을 가리킨다. 이론상으로는 필을 강조하는 것이 주도적이며 묵은 필요에 따라 나오는데, 서로 보조하면서 대상을 완전히 모사하고, 의경(意境)을 표출해내며, 그리하여 형신겸비(形神兼備)의 예술적 효과를 얻는다.
당唐의 장언원張彦遠(즈앙 이앤위앤, 815~875경)의 《역대명화기*歷代名畵記》에는, “골기형이(骨氣形以)는 뜻(意)을 세우는 데에 근본을 두지만, 붓놀림(用筆)으로 귀결된다” “먹을 사용하되 온갖 색깔(五色)이 갖추어진 것처럼 한다면 뜻을 얻게 된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입의(立意)와 필묵의 주종관계를 가리키는 것이라 하겠다. 북송北宋의 한졸韓拙(한 주어)은 《산수순전집山水純全集》에서, “필로써 형질(形質)을 세우고, 묵으로써 음양을 나눈다”고 하여 필과 묵의 관계를 구분하였다.
청대(淸代)의 심종건沈宗騫(선 쫑지앤)은 《개주학화편芥舟學畵編》에서 필묵의 관계를 양분하는 데에 반대하면서, “필묵이란 두 글자를 이해하는 사람은 드물고, 묵에 대해서는 더더욱 드물다. 오늘날 사람들은 옅은 먹물로 오목한 곳(凹處)과 어두운 곳을 메우는 것을 묵이라 하는 것을 종종 보는데, 이는 묵으로 색을 대신하는 것에 지나지 않을 뿐이고 그것이 묵이 아니라는 것을 모르는 소치이다. 또한 필이 이르지 않는 곳에 어찌 묵이 있을 수 있겠는가? 묵이 이른 곳이라도, 묵이 필을 따라 그 신채(神彩)를 드러내지 못한다면, 기껏 필이 있다고 할 수 있을 뿐, 묵은 없을 것이다”라고 했다.
석도石濤(스 타오, 1641~1717)는 《석도화어록石濤畵語錄》에서 ‘필묵’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다. “필과 묵이 만나면 자욱한 상태(絪縕)가 되고, 자욱한 상태가 구분되지 않으면 혼돈(混沌)이 된다. 혼돈을 피하면서 한 폭의 그림을 그려낼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산을 그림으로 그리면 그것을 신령스럽게 하고, 물을 그리면 그것을 생동하게 하고, 숲을 그리면 그것을 생기있게 하고, 사람을 그리면 그것을 뛰어나게 해야한다. 필묵의 만남을 획득하고 자욱한 상태의 구분을 이해하게 되면, 작품이 혼돈을 피하게 되어 고금에 길이 전해짐으로써 일가(一家)를 이루게 된다. 이 모두 지혜로운 자만이 얻을 수 있는 것이다.”
현대의 황빈홍黃賓虹(후앙 빈홍, 1864~1955)은, “필법을 논하자면 반드시 묵법과 함께 논해야 하는데, 묵법의 묘(竗)는 모두 필로써 표출된다”고 생각했다. 동양화에서 강조하는 필묵은 상보상성(相補相成)하는 것이기 때문에, 한쪽에 치우쳐 다른 하나를 폐할 수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