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스티시
패스티시 pastiche(영)
원본에서 따온 것을 수정해서 복제*하거나 조각들을 짜맞추어 만든 그림이나 도형, 다른 예술가들의 양식을 명백히 모방한 것, 또는 그런 것들의 양식을 일컫는다. 패스티시는 일반적으로 예술가가 스스로 빌려온 것을 자기 자신의 통일*된 양식으로 융합해내지 않은 것이라는 의미를 내포하면서 절충적인 작품에 대해 경멸적인 의미로 쓰인다.
패스티시 pastiche(영)
원본에서 따온 것을 수정해서 복제*하거나 조각들을 짜맞추어 만든 그림이나 도형, 다른 예술가들의 양식을 명백히 모방한 것, 또는 그런 것들의 양식을 일컫는다. 패스티시는 일반적으로 예술가가 스스로 빌려온 것을 자기 자신의 통일*된 양식으로 융합해내지 않은 것이라는 의미를 내포하면서 절충적인 작품에 대해 경멸적인 의미로 쓰인다.
패턴과 장식 Pattern and Decoration(영)
패턴과 장식(P&D)은 197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 초에 주요 경향을 이루었던 미술 운동. 서구미술에서 ‘장식적’이라는 표현은 다소 모욕적이거나 부차적인 의미에서 사용되었으며, 장인적 기술이나 민속미술* 그리고 속칭 여성의 작업과 관련된 디자인과 기법 및 재료들은 속되거나 실용적인 목적인 감각적 쾌락을 위한 것으로 치부되어왔다.
지극히 이론적이고 환원주의적인 미니멀리즘이 지배적이던 1970년대 중반에 일군의 미술가들은 이슬람, 비잔틴*, 켈트족, 아메리칸 원주민의 미술 등 비서구적 미술을 망라한 동서양의 미술과 소위 ‘장인적 기술’ 작업인 퀼트, 카펫, 직물, 모자이크*, 자수, 레이스, 벽지 등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을 제작함으로써 장식미술을 금기시하는 미술계에 반기를 들기 시작했다. 여타 많은 주의(主義)들과 달리 패턴과 장식은 사실상 하나의 운동이었다.
1974년 패턴과 장식 미술가들은 자카니치Robert Zakanitch의 스튜디오에 모여 장식미술의 예술성에 관해 토론하기 시작하였다. 패턴과 장식은 문화적 경험의 주류에서 소외되어오던 부분을 부각시킴으로써 모든 양식을 포괄하는 다양성을 지니게 되었으며 페미니즘 미술*의 한 유형이 되기도 하였다. 비평가 카레이 리키는 “패턴미술의 힘의 원천은 어떠한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으려는 데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결코 이것이냐 저것이냐를 결정하는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라고 평가하였다.
한편 존 페로가 “하나의 구조이자 하나의 과정으로서의 패턴화는 근래에 있었던 가장 비사실주의적이며 전위적인 어떤 회화보다도 더욱더 복합적인 시각 경험을 제공해 준다”고 했듯이, 패턴 페인팅이 미니멀 아트*에 내재하는 형식주의적* 구조와 반복적인 격자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할지라도 그 효과는 정반대로 나타난다.
샤피로Miriam Schapiro(1923~ )는 단추, 실, 의복장식용 금속조각, 뜨개실, 비단, 올굵은 삼베, 모직물 등을 짜고 수놓고 이어붙여 실용적이면서도 장식적인 물건으로 만들었다. 그는 자신의 재조립 과정을 ‘여성(female)’과 ‘이미지(image)’를 합쳐 ‘파마주(famage)’라고 이름붙였다. 그는 부채꼴 모양의 콜라주*들에서 여성적인 이미지와 추상을 종합하였다. 본래 색면추상 작업을 하던 자카니치는 정교한 색채와 구조를 여전히 존중하면서 벽지와 같은 격자의 꽃무늬 패턴회화로 전환하였다.
매코넬Kim Macconnel은 타피스트리* 같이 느슨한 화포에 화려한 색채와 꽃무늬 또는 기하학적인 패턴을 옛 문화로부터 차용해온 미묘한 이미지들과 결합시켰다.
조던Valerie Jaudon은 켈트미술의 양식화된 문양, 특히 매듭과 겹친 부분이 있는 리본의 형태로 패턴화하였으며, 또한 패턴과 장식 미술가들은 장식의 역할을 미술에서 뿐만 아니라 가정내에서 그리고 공공장소에서도 찾을 수 있다고 이해하였으며, 기능적인 오브제*와 설치*미술 작품(코즐로프Joyce Kozloff와 스미스Ned Smith의 타일, 지루아드Tina Girouard의 리놀륨, 매코넬의 가구 등)도 제작하였다. 그 외 쿠시너Robert Kushner, 립스 Rodney Ripps, 데이비스Brad Davis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팬토크레이터 pantocrator(그)
기독교 미술의 주제. 예수를 우주의 전지 전능한 지배자로 재현한 그림에 나타나는 일련의 예수상 유형을 가리킨다. 가장 기본적인 형태는 긴 머리에 수염이 난 장년의 예수상이다. 비잔틴* 교회의 천장 모자이크*나 애프스*에서 자주 발견되는 성상을 의미하기도 한다.
퍼포먼스 performance(영)
실제의 관중 앞에서 예정된 코스를 ‘실행’한다는 것을 공통점으로 하는 다양한 행위 양식을 포괄하는 용어. 퍼포먼스는 국제적이면서, 각각 다른 나라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다른 이름으로 불리며 지역적인 문화적 특성 때문에 다양한 면을 보여준다. 액션 페인팅*, 신체미술*, 공동체미술*, 해프닝*, 과정미술*, 거리미술*과도 교류될 수 있는 미술 형태이다. 민속미술*이나 샤머니즘, 어린이들의 놀이, 종족 관습과도 유사성이 있다.
미술에 있어서는 회화*나 조각* 등의 작품에 의하지 않고 미술가의 육체적 행동이나 행위에 의해서 어떤 조형 표현을 하고자 하는 것을 말한다. 금세기 들어 자주 전위예술*의 최전선의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다.
특히 제2차세계대전 후 케이지John Cage를 음악 감독으로 하여 결성된 커닝햄Merce Cunningham 무용단의 영향과 액션 페인팅 이래 미술에서 공연적 요소가 두드러지게 나타나면서 음악, 문학, 조형예술*, 연극 등 여러 장르*를 포함하는 일종의 종합예술을 지향하는 표현수단으로 가장 널리 사용하는 개념이다.
펑크 아트 Funk Art(영)
샌프란시스코에서 일어났던 미국 회화의 한 경향. 펑크는 속어로서 보잘 것 없고 가치 없는 사람, 젊은 불량배, 애송이, 동성연애자, 농담, 허튼 소리 등의 의미가 있다. 1967년 봄, 사이츠William G. Seitz가 캘리포니아 대학 부속 미술관에서 <펑크 아트>라는 명칭의 전시회를 연 이래 부각되었다.
여기에 출품된 작가들은 주로 입체 작품으로, 구부러지고 이상한 형태의 것들이었으며, 대부분 여러가지 색으로 채색되었다는 점이 특징이다 그러나 펑크 아트는 이미 1950년대부터 일부 작가들 간에 논란거리가 되어 왔다. 즉 그들은 뜨겁고, 물결치는 듯한 재즈곡을 지칭하는 펑키(funky)라는 용어를 빌려다가, 전통적인 가치관에 대한 경멸의 의미로 외설적인 명칭을 붙였던 것인데, 펑크 아트는 본질적으로 앗상블라주*의 예술이었던 펑키 아트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한 것이다.
1960년대 대부분의 미술 동향이 ‘차가운’ 경향을 띠었던 것에 반해, 펑크 아트는 재료에 있어서는 반기능적이며 뜨겁고, 미학에서는 반지성적, 반형식적인 입장을 취했다. 그 관심은 기본적으로 인간에게 있었지만 그 인간상은 뒤틀린 인간이며, 통속적인 이미지로 가득 차 있다. 대표적인 작가로는 프라이스Kenneth Price, 코너Bruce Conner, 허드슨Robert Hudson 등이 있다.
페디먼트 pediment(영)
고대 그리스 신전의 박공*. 페디먼트는 그리스 신전 건축의 가장 두드러지는 특색인데, 일반적으로 조각을 하고 세 꼭지에는 장식적인 벽돌을 붙인 것이 전형적이다. 이러한 페디먼트의 대표적인 예는 파르테논 신전에서 살펴볼 수 있으며, 페디먼트는 그후 고전건축의 전형적인 모티브*가 되었다. 고전건축에서의 박공벽은 경사가 완만하며 일반적으로 코니스*를 두르는데, 페디먼트는 창 또는 출입구의 윗부분 장식으로서 건축물의 내외에 사용되었다.
→ ‘박공’ 참조
페르세폴리스 Persepolis(영)
아케메네스조 이란의 다리우스Darius 1세(재위 기원전 522~486)가 세운 제국의 수도이다. 페르세폴리스에는 다리우스 1세 시대인 기원전 518년에 만들어지기 시작하여 크세륵세스Xerxes 1세를 거쳐 아르타크세륵세스Artaxerxes 1세의 통치기인 기원전 460년경에 완성된 궁전이 있다. 거대한 방형 기단 위에는 궁전의 여러 건물들의 유구가 지금까지도 남아 있다.
다리우스 1세의 알현실인 아파다나Apadana는 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거대한 건물로 독립된 기단 위에 만들어졌는데, 네 모서리의 탑*에는 각각 경호실과 계단이 있다. 남쪽에는 방들이 있고 나머지 세 벽면에는 현관인 포르티코(portico)가 있다. 알현실로 올라가는 양쪽 계단의 벽면과 기단부에는 부조*가 장식되어 있다. 기단부는 세 층을 로제트 문양대로 나누어 메디아인과 페르시아인의 행렬을 표현하였다. 아파다나 옆에는 크세륵세스의 알현실이 있는데 모두 100개의 기둥이 있는 넓은 건물이다.
석조 기둥은 이오니아식 열주*를 원형(原形)으로 하여 만들어졌다. 세로홈이 파인 주신(柱身) 위에는 두 마리 동물의 몸이 결합된 주두*가 올려져 있다. 벽면에는 왕좌에 앉은 왕과 괴수와 싸우는 왕의 모습이 부조로 새겨져 있다. 두 알현실 사이에는 부조를 새긴 계단으로 연결되는 트라이파일런(tripylon)이 있다. 양 건물과 통하는 2개의 문 이외에 하렘으로 통하는 문이 하나 더 있어서 이런 명칭이 붙었다.
그 밖에도 왕들이 거주하던 궁전과 보물 창고, 성벽, 출입문 등이 남아 있다. 건물 곳곳에 새겨진 부조들은 같은 형태를 조금씩 바꾸어 반복적으로 표현한 것이며 조각이라기보다는 건물을 장식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페미니스트 아트 feminist art(영)
여성 미술. 1960년대 후반부터 여성 미술가들이 종래의 예술을 남성의 시각에서 본 것으로 간주하고, 이에 대해 여성의 감성과 시각으로 새롭게 바라보고 실천한 예술을 말한다.
여성 참정권론자들은 여성의 해방을 당면목표로 했으나, 이후 여성운동은 사회, 문화적 부분까지 포함하는 등 그 범위가 확대되었다. 이로 인해 페미니스트 비평가와 역사가들은 대부분의 여성들로부터 미술가가 될 기회를 박탈하는 차별적인 문화제도를 지적하게 되었다. 수백년 간 유럽의 대부분의 여성은 미술가가 된다고 생각하거나 설사 그런 생각을 가졌다 하더라도 남성과 동등하게 교육 받고 자신의 작품을 전시한다는 것이 어려웠다.
그래서 여성이 시각문화에 기여한 증거를 이젤 그림보다도 덜 공식적인 영역, 즉 북미의 누비이불이나 나바호 담요, 사진 등에서 주의해 살펴보아야 한다는 주장이 종종 있었다. 문화사적으로 여성이 얼마나 기여했는가는 여성의 미술을 하나의 전통으로 확립해야 할 필요성 때문에 페미니스트 미술가들에게 중요한 문제로 남는다.
페미니스트 아트는 제도의 성적인 편견을 공격하기 위해 필요한 정보를 제공해 주고 여성들은 이를 수용하여 현 제도를 비판하고 보다 나은 환경을 확보하기 위해 공동 제작하기도 한다.
20세기초에 더욱 많은 여성 미술가가 등장했는데, 소니아 들로네Sonia Delaunay(1885~1979), 토이버 아르프Sophie Taueber-Arp(1889~1943), 오키프Georgia O’Keeffe(1887~1986), 헤프워드Barbara Hepworth 등이 대표적이고, 그 뒤를 이어 크리사Vadra Chryssa, 마리솔Escobar Marisol(1930~ ), 프랑켄탈러Helen Frankenthaler(1928~ ), 하티간Grace Hartigan(1922~ ), 라일리Bridget Riley(1931~ ) 등이 1950년대에 명성을 얻었다.
그러나 이 중 어느 누구도 의식적인 페미니스트 작가는 아니었다. 여성의 의식이 높아지면서 이러한 상황은 아주 달라진다. 여성 미술가들의 운동은 여성 해방운동과 뉴욕에서 일어난 예술가들의 저항운동이라는 두 개의 급진적인 모임이 결합되면서 가속화됐다. 그것은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는 시위에 자신의 목소리를 덧붙이고 현존하는 예술구조의 불공정성을 드러냄으로써 페미니스트 아트의 기반을 다졌다.
1971년에는 켈리포니아 미술대학 등에서 페미니스트 아트 강좌가 생기고, 1972년에 여성작가회의가 개최되었다. 그 이후로 여러 그룹들이 협조와 공동작업, 전시회 등을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1979년에는 페미니스트 아트 인스티튜트가 여성의 손으로 결성되었다.
또 같은 해 페미니스트 아트의 기수로 불리는 시카고Judy Chicago(1939~ )가 이 주장을 상징하는 <저녁 만찬 The Dinner Party>을 발표해 주목을 끌기도 했다. 페미니스트 아트는 순전히 여성에 의해 만들어진 미술이 아니라 평등주의자와 차별주의자의 논쟁, 어떤 면에서는 여성 예술가가 여성으로서의 자각과 경험을 탐구한 작품 등을 포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