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화
기억화 記憶畵
memory picture(영)
실물에 의한 것이 아니라 기억에 의해서 그려진 그림. 아동화의 용어로서 흔히 쓰여지며, 아동 미술교육의 한 방법으로서 최근 그 중요성이 인식되고 있다.
기억화 記憶畵
memory picture(영)
실물에 의한 것이 아니라 기억에 의해서 그려진 그림. 아동화의 용어로서 흔히 쓰여지며, 아동 미술교육의 한 방법으로서 최근 그 중요성이 인식되고 있다.
기졸 記拙
조선 후기 문인화가 윤두서尹斗緖가 지은 화평 모음집. 1691년 9월부터 1715년 11월까지 기록된 내용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현재 제1권은 전하지 않는데 그가 세상을 떠난 후 바로 유실되었다고 한다. 제2권의 내용은 시(詩)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화평(畵評), 서간(書簡), 경문(經文), 열전(烈傳), 축문(祝文), 묘지찬문(墓地撰文) 등으로 꾸며져 있다. 회화관계의 글은 조선 초, 중기 화가들에 대한 작가평과 중국화에 대한 품평, 자신의 회화관으로 서술되어 있다. 조선시대 화가들에 대한 작가평은 안견安堅, 강희안姜希顔, 이상좌李上佐 등 20여명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자신의 필묵 경험을 바탕으로 비평하였다. 중국 화가들에 대한 품평은 한대(漢代)의 모연수毛延壽(마오 이앤서우), 송대(宋代)의 소식蘇軾(쑤 스, 1036~1101), 원대(元代)의 조맹부趙孟頫(자오 멍후, 1254~1322), 전순거錢舜擧(치앤 순쥐), 예찬倪瓚(니 짠, 1301~1374) 등을 거론하였다.
자신의 회화관은 <자평自評>에 잘 나타나 있다. 그는 “필법이 공교로워야 하고 묵법은 그 묘미를 터득해야 하는데, 이 두 가지 법이 화합을 이루어야 ‘화(畵)’가 ‘도(道)’에 도달한다”고 주장하였다. 또 화도(畵道)에 이르는 화품을 5가지로 구분하여 도(道), 학(學), 지(識), 공(工), 재(才)를 제기하였다. 즉 만물을 포괄하여 헤아릴 수 있는 것은 화지(畵識)이며, 형상의 의표(意表)를 터득하여 실행하는 것은 화학(畵學)이고, 만물의 척도가 되는 작대의 제작은 화공(畵工)이며, 마음먹은 대로 표현할 수 있는 손의 능력을 화재(畵才)라 하였으며 이들을 모두 갖추어야 화도를 이룰 수 있다는 회화관을 나타내고 있다.
이는 정확한 관찰과 사생을 통하여 대상의 진의를 파악하려는 회화관이며 단순히 사의*(寫意)만을 강조하는 기존의 회화관과는 어느 정도 차별성을 보인다. 즉 청아하고 속기가 없는 사의적인 남종화*론(南宗畵論) 그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전대(前代)에 비해 사생과 관찰을 중시하는 사실주의적인 회화관을 엿볼 수 있다.
기호 記號 sign(영)
기호는 1970년대 미술에서 주관적인 표시법으로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최근의 미술에서는 관찰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어떤 신비적인 암호와 같은 형태를 사용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를테면 주변 공간과의 연관을 설정하고 미시공간과 거시공간 사이의 긴장 관계 같은 것을 요구하는 팔레르모Blinky Palermo의 색점은 설명하기는 어려우나, 그 때문에 더욱 강렬하게 체험할 수 있는 기호적 특성을 지닌다.
이른바 패턴 아트(pattern art)에서 기호들은 장식적인 문양이라는 또 다른 특징을 지닌다. 이탈리아에서는 1970년대말 ‘아르테 치프라(arte cifra)’라고 불리는 양식이 등장했는데, 이 양식의 전체적인 특징은 기호를 통한 주관적인 표현법이다.
긴나라 緊那羅
인비인(人非人), 가신(歌神), 악신(樂神)으로 한역되며 사람인지 짐승인지 분명치 않다. 인도 신화에서 긴나라는 설산에 살며 미묘한 음성으로 노래하고 춤추며, 여러 천, 보살과 중생을 감동시키는 음악의 신이었다. 불교에 들어와서는 제석천*(帝釋天) 또는 비사문천의 악사로서 건달바*乾達婆와 함께 가무 음악을 연주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긴나라의 형상은 경전상에서 일반적으로 마두인신(馬頭人身)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일정한 형상이 없다. 석굴암에서는 왼손에 창, 오른손에 지물을 든 모습이고, 탑* 등에서는 머리에 새, 소 등을 표현하기도 하였다.
길주요 吉州窯 Ji-zhou-yao(중)
강서성江西省 길안시吉安市 영화진永和鎭에 위치한 도요*(陶窯). 길안은 옛 길주吉州에 속하여 길주요라고 명칭된다. 또 가마*가 영화진에 있어 ‘영화요永和窯’라고도 한다. 당唐 말에 도자기를 제작하기 시작해서 남송대(南宋代)에 흥성했고 원대(元代)에 들어 쇠퇴했다.
북송대(北宋代)에 청백자*(靑白磁)를 주로 제작했고 남송대에는 백유(白釉) 아래 채회를 한 자기 및 각종 장식적인 흑유(黑釉) 자기가 많다. 특히 잎을 이용한 목엽(木葉) 천목*(天目)이나 종이조각을 이용한 천목다완(天目茶碗) 등이 유명하다. 또 정요(定窯)의 인화백자(印花白磁)와 요주요(耀州窯)의 인화청자(印花靑磁) 등을 모방하여 만들었다. 그 중에 흑유자에서 최고의 기량이 발휘되었고, 채회(彩繪), 전지첩화(剪紙貼花), 목협(木犀), 척화(剔花) 등과 같이 교묘한 장식기법을 구사한 도자기가 많다. 원대에는 백유(白釉) 아래에 그림을 그린 자기*와 흑유자 등이 제작되었고 명대(明代)에는 질이 떨어진 청화자기 등이 생산되었다. 저명한 서옹舒翁, 서교舒嬌 부녀(父女)가 남송대의 길주요 도공이다.
나가 Nāga(범)
물을 상징하는 인도의 뱀신으로서 일반적으로 코브라를 가리킨다. 불교에서는 팔부중*(八部衆)의 하나인 용(龍)으로 번역되며 여성형은 나기니Nāginī이다. 나가의 하반신은 뱀, 상반신은 사람으로 표현되며 5~7개의 머리가 코브라처럼 부채꼴로 펼쳐진다. 나가는 사원 입구에 수호자처럼 놓여 있다.
나비파 Les Nabis(프)
브르타뉴Bretagne의 퐁타방(Pont-Aven) 체제 시대 고갱Paul Gauguin(1848~1903)에 영향을 받은 화가들이 19세기 말기에 파리에서 결성한 젊은 예술가들의 그룹. 핵심인물은 세루지에Paul Sérusier(1863~1927), 베르나르Emile Bernard(1868~1941), 뷔야르Edouard Vuillard(1868~1940), 보나르Pierre Bonnard(1867~1947), 드니Maurice Denis(1870~1943) 등이었다. 1880년 이후부터 고갱을 중심으로 이른바 종합주의* 운동이 전개되었는데, 1888년 고갱의 제자 세루지에는 이 운동의 이론을 줄리앙 아카데미 출신의 젊은 화가들에게 들려주고 이 그룹을 발족시켰다. 매달 모임이 브라디 가(街)의 카페에서 행해졌으며, 시인 카잘리스Henri Cazalis가 그룹의 명칭을 ‘예언자’라는 의미를 지닌 헤브라이어 ‘나비’라고 명명하였다. 그들은 스스로 새로운 예술의 선구자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나비파(派)는 1892년경 상징주의* 문예 운동의 영향을 받아 신비적, 상징적 경향을 가지게 되었으며, 표현상의 특색으로는 반(反)사실주의적, 장식적 경향이 강하게 나타났다. 또 일본의 우키요에* 판화의 영향을 받아, 평탄한 색면으로 아주 대담한 화면 구성을 즐겼다. 이러한 경향은 특히 보나르나 발로통Félix Vallotton(1865~1925)의 판화, 포스터*, 또 뷔야르의 장식화에서 뚜렷하게 나타난다. 이 그룹의 활동기간은 주로 1890년대로, 20세기가 되면서 각기 독자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회화 뿐만 아니라 판화, 조각, 삽화, 무대장치, 의상 등에까지 미치는 폭넓은 활동은 20세기 미술의 한 출발점으로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되었는데, 특히 나비파의 이론가였던 드니는 “회화란 자연의 재현이 아니고 이차원의 평면이다”라고 강조하는 등 이러한 개념이 20세기 회화의 기본적 방향의 하나가 되었다.
→ ‘종합주의’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