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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트럭티브 아트

디스트럭티브 아트 Destructive Art(영)

→ 파괴미술

디자인

디자인 design(영)

의장(意匠), 설계, 도안 등으로 번역된다. 디자인이라는 용어는 ‘지시하다’ ‘표현하다’ ‘성취하다’의 뜻을 가지고 있는 라틴어의 ‘데시그나레(designare)’에서 유래한다. 좁은 뜻으로는 도안 장식이라고 해석되지만, 넓은 뜻으로는 모든 조형 활동에 대한 계획을 말한다. 일반적으로는 어떤 일정한 용도의 것을 만들고자 할 경우, 그 용도에 따라서 가장 아름다운 형태를 갖도록 계획 및 설계하는 것이라 해석된다. 다시 말해서 주어진 목적을 조형적으로 실체화하는 것이 디자인이다.
19세기의 디자인은 그 대상이 한 제품의 제작에 의하는 미술 공예품이거나 대량 생산에 의하는 것이거나 제품의 모체에 첨가하는 외면적 또는 이면적 장식을 고안하는 행위라고 보았으며 따라서 당시의 디자이너는 장식 도안가 혹은 모양의 고안자였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와서는 디자인의 초점이 장식이나 도안보다도 제품의 기능, 구조, 가공 기술 등의 종합 계획에 두어지게 되었고 또 기계에 의한 대량생산과의 결부가 한층 더 의식되어 단순 명쾌한 용도와 아름다움이 통합된 디자인이 지배적으로 요구되기에 이르러 이를 도안이라는 용어로만 표시하기에는 곤란하게 되었다. 모홀리 나기László Moholy-Nagy(1895~1946)나 말도나도Tomas Maldonado 등의 “디자인이란 물체의 표면적인 장식이 아니다. 어떤 하나의 목적 하에 사회적, 인간적, 경제적, 기술적, 예술적, 심리적, 생리적 등의 여러 요소를 통합하여 공업 생산의 궤도에 얹혀 갈 수 있는 제품을 계획 및 설계하는 기술이야말로 디자인이다”라는 주장은 금세기의 디자인 개념을 잘 표현하고 있다.
제2차세계대전 이후 디자인은 무엇보다도 서구의 산업 국가에서 광고와의 협업과 갈등 속에서 상당히 촉진되었다. 디자인의 기본적인 요소는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알맞은 형태로 제품의 용도와 아름다움을 통합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①용도 및 기능에 관한 합당한 목적성 ②재료와 도구, 기계에 관한 기술적, 가공적 제약 ③생산 가격에 관한 경제적 제약 ④미감(美感)이나 쾌적성 등에서의 요구 ⑤전통이나 유행 그리고 국민성 및 풍토성 등에서의 요구 ⑥그 제품이 사회적으로 존재하는 가치성 등의 여러 조건을 고려하면서 종합하여 최종적인 형태, 색채, 공간, 명암, 텍스처 등의 시각적이며 촉각적 제품의 요소를 결정할 필요가 있다.
디자인의 종류는 대체로 다음과 같이 세 종류로 나눌 수 있다. ①인간 생활에 필요한 정보와 지식을 넓히고 보다 신속,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한 시각을 중심으로 하는 시각전달 디자인(visual communication design) ②인간 생활의 발전에 필요한 제품 및 도구를 보다 다량으로, 보다 완전하게 생산하기 위한 제품 디자인(product design) ③인간 생활에 필요한 환경 및 공간을 보다 적합하게 하기 위한 환경 디자인(environment design) 등이다.

디자인 리서치 유니트

디자인 리서치 유니트 Design Research Unit, DRU(영)

1943년 1월 영국 정보성에 의해 설립된 영국 산업디자인국. DRU의 이념은 브룸웰Marcus Brumwell, 그레이Milner Gray, 블랙Misha Black, 리드Herbert Read(1893~1968)에 의해 창안된 것으로, 리드가 초대 국장을 역임하였다.
목적은 영국의 공업 생산품의 디자인을 향상시키기 위해 자문, 상담, 연구 등의 형태로 산업에 실제적인 도움을 제공하고, 그럼으로써 영국 산업이 전후 세계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하는데 있다.

디지털 아트

디지털 아트 digital art(영)

시뮬레이션*의 방법론을 의미한다. 이것은 인용과 비슷하지만 본질에서 다른, 일종의 기성의 작품을 그대로 따 옮기는 수법이나, ‘커트 업(Cut Up; 콜라주와 비슷하지만 본질에서 다른, ‘자르고 새긴다’는 우연성이 조화롭지 않고 난폭하게 개입하는 수법)’에 의한 표현을 전자기술, 컴퓨터의 개입을 원동력으로 하여 전개시키는 미술을 일컫는다.

딜레탕트

딜레탕트 dilettante(프)

전문가적인 의식이 없고 단지 애호가(愛好家)의 입장에서 예술 제작을 하는 사람. 이탈리아어의 ‘즐기다(dilettare)’가 어원이다. 예술이나 학문에 있어서 독창적 관점을 갖지 못하고 자발성도 없이 시대의 경향을 본받아 제작하는 것을 일컫는, 따라서 일반적으로 나쁜 의미로 쓰인다. 또 이같은 태도를 취하는 것을 ‘딜레탕티슴(dilettantisme)’이라고 한다. 딜레탕티슴은 애호의 대상인 예술이나 학문이 추구하는 가치를 향하여 자기 자신을 투입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그 예술이나 학문의 과정을 즐기려는 것이므로 딜레탕티슴에 의해서는 예술이나 학문의 의미와 가치가 이해되지 않으며 또한 왜곡되기 쉽다.

라마교 도상학

라마교 도상학 Lamaist Iconography(영)

티베트 불교미술의 조각*, 회화*에 보이는 여러 불존의 형태는 원칙적으로 인도 후기 밀교의 탄트라* 성전에 근거를 두고 있지만, 거기에 지역적인 변용이 첨가되어 독자적인 도상학*을 이루고 있다. 라마교의 세계관에는 만물의 근원적인 존재라고 일컬어지는 본초불(本初佛)로부터 5불이 나오고 이 5불에서 일반의 여러 불, 보살, 제천을 비롯해 현상세계의 사물이 유출되어 나온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라마교의 여러 존상은 계통적으로 5불에 속하며, 이를 부주(部主, 각 부를 주재하는 불)로 하여 색채나 외형 등이 비슷하거나 머리에 부주의 소상이 붙기도 한다.
라마교 도상의 기본이 되는 5불의 명칭은 다음과 같다(표 참고). 라마교의 제존은 형태상 다음과 같이 분류된다. ①본초불:지금강(指金剛)금강, 살타, 보현 등. ②5불:표의 5불. ③명비:표의 5명비. ④불:가섭(迦葉), 연등(燃燈), 석가(釋迦), 미륵(彌勒), 약사(藥師) 등 인간의 모습을 한 것도 있다. ⑤보살:관음, 문수, 지장 등으로 이들은 온화한 표정을 짓는다. ⑥염지불(念指佛):헤바주라, 산뒤 등. ⑦호법존:성천녀(聖天女), 마하카라, 야만탄카 등 만다라의 수문장. ⑥과 ⑦은 다면다비(多面多臂)로서 분노형을 띤 것이 많다. ⑧여존(女尊):변재천(辯才天), 백산개(白傘蓋) 등 분노형을 띤 것도 있다.
이 이외에 사계절의 신도 있다. ⑨제천(諸天):다키니, 용신(龍神, 나가), 금시조(金翅鳥, 가루다) 등. ⑩지방신(地方神):부(富)의 신, 동물의 신, 하신(河神), 산신(山神), 야차(夜叉) 등. ⑪조사상(祖師像):파드마산바바, 촌카바 등 역사상 실재했던 라마교의 조사. 이상 라마교의 제존은 색채, 법구, 대좌, 좌법(asana), 인계, 명비의 유무 등에 의해 식별되지만 전거가 되는 인도 밀교의 성전, 의궤와 엄밀하게 대응하지 않으므로 판정이 곤란한 경우가 있다.

라마교 미술

라마교 미술 Lamaist Art(영)

티베트 불교 미술. 라마교는 티베트 본토뿐만 아니라 히말라야 산맥 주변의 서 티베트, 라다크, 네팔, 시킴, 부탄 외에 중국 본토와 티베트 지방이 접하는 지역, 북쪽으로는 몽골 고원 일대로부터 중국 동북 지방에 걸쳐 광범위하게 신봉되었다. 이들 각 지역에는 모두 같은 수준의 라마교 미술이 발달했다.
라마교에는 우주의 근원적인 원리를 불격화(佛格化)한 본초불 이하 많은 수의 존상으로 된 판테온(panthéon, 제존의 체계)이 있으며, 개개의 존상을 조상하는 것 외에 판테온 전체를 벽화*나 금동상 등으로 나타내는 예가 있다. 이와 같은 조상의 예는 불교도상학*에 나타난 산발적인 조상의 예보다 훨씬 포괄적이고 체계적인 자료를 제공한다. 어느 책에서는 이 존상들을 약 21항목으로 분류하였는데, 그 중에는 대비밀불(大秘密佛), 오방불(五方佛) 등 여러 종류의 현교적인 불(佛)이나 비밀불, 35(참회)불, 7약사불, 여러 종류의 보살, 구도불모(救度佛母, 多羅), 그 외의 불모(女神)들이 있고 호법신, 호법여신, 십팔나한, 인도 이래의 현교의 조사들 등이 포함되어 있다. 자주 나오는 금강수(金剛手)나 다수의 다키니 등도 이들 항목 속에 포함된다.
일반적으로 제존은 유화형과 분노형으로 나누어지고 또 단신과 쌍신포옹으로 나누어지지만, 라마교에는 분노형이나 쌍신포옹형이 매우 많다. 한 화면에 주존을 중심으로 제존을 중첩해 그려 나무와 같은 형태를 한 것을 쏘크신(tshogs-śin, 集會樹)이라고 한다. 대좌*나 수인*(手印, mudrā)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중에서도 촉지(觸地), 설법(說法), 선정(禪定), 시무외(施無畏), 여원(與願)의 다섯 가지 인(印)이 가장 보편적으로 나타난다. 7보(七寶)나 8길상(八吉祥; 白傘蓋, 魚, 具, 蓮華, 幡, 甁, 法輪, 吉祥結) 또는 그 외의 문양이 흔히 쓰여지고 공양구나 지물*(持物)도 종류가 풍부하다.
만다라*는 라마교 사원에 그려질 뿐만 아니라 흙, 쌀, 금속을 사용하여 입체적으로도 표현된다. 사원의 대전 안벽은 불전도*나 호법신상으로 장식되는 경우가 많고 전면 바깥벽에는 주로 생사륜*이나 수미산 또는 사천왕*의 그림이 보인다. 경내의 곳곳에는 여러 가지 마니통*(嘛尼筒, mani-hkhor)이 놓여 있다. 법회에는 가면무용(hcham)이 공연되며 여기에 등장하는 불, 보살, 호법신, 연화생조사(蓮華生祖師) 등의 가면이나 악기는 각지의 사원에 보존되어 있다.
이상의 벽화*나 존상 혹은 그 외의 미술 공예품은 티베트 중부 지방 및 동부의 여러 사원에서 보인다. 특히 서부 티베트의 트린, 파란, 다보, 만난 등의 여러 절에는 그 연대가 11세기까지 소급되는 우수한 작품이 있다. 몽골 고원 동쪽의 여러 절은 게르구파의 수호신 야만다카, 몽골 민족의 수호신인 마하카라Mahākālā(嘛吟喝喇; 시바)의 거대한 상이 계속 받들어지고 있다. 청해靑海 부근의 쿤붐, 라부란, 중국 북부에는 북경, 오대산, 열하, 몽골의 드론 노루, 울란바토르 등이 그 중심지이다.

라마교 신화

라마교 신화 Lamaist Mythology(영)

티베트 불교의 신화로 라마교 미술*의 소재가 되었다. 불교는 원래 무신론이므로 거의 신화가 없으나 대승불교를 거쳐 7~8세기의 탄트라 불교가 되면 유신론적 경향이 강해져 방대한 판테온(불교 제존의 체계)이 성립된다. 라마교는 말기의 인도 불교를 수입하였으므로 이들 판테온에 있는 여러 불, 보살의 신화를 모두 그대로 수용하였고, 그 밖에 힌두교의 신화도 탄트리즘을 통해 많은 부분이 도입되었다. 티베트 지방에는 우주 창조의 신화나 티베트 인의 시조를 원숭이로 생각하는 전설이 있다. 또한 선사시대의 왕조 성립에 관한 신화나 영웅신화로서의 《케사르 이야기》가 유명하고, 불교 전래에 관해서는 하늘에서 불전이 내려왔다는 전설이 있다. 그러나 이것들은 어느 것이나 인도 및 그외 다른 나라의 신화적 요소를 어느 정도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라마야나

라마야나 Rāmāyana(범)

‘라마의 이야기’라는 뜻으로, 인도의 2대 서사시 중의 하나이며 기원전 3세기경의 시인인 발미키Valmiki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비슈누*신의 7번째 화신(아바타라*)인 라마의 이야기를 서술한 이 서사시는 기원전 5~6세기경에 성립되었다고 하지만 계속해서 내용이 첨가되었고, 지역과 종파에 따라서 내용이 서로 다르다. 총 7권의 라마야나 중에서 첫번째와 마지막 책은 후대에 삽입된 것으로 여겨진다. 여러 판본 중 특히 북인도 지역에서 유명한 것은 시인 툴라시다사Tulasidasa가 17세기에 지은 《라마카리타마나사Rāmacaritamānasa》이다. 아요드야국Ayodhya의 왕자인 라마Rāmā가 랑카Lanka의 왕인 라바나Ravana를 물리치는 내용이 주된 줄거리이며, 라마의 동생인 락슈마나Lakshmana와 부인인 시타Sita, 원숭이인 하누만Hanuman이 라마를 도와주는 주요한 인물들이다. 이러한 라마야나의 내용은 인도 세밀화*와 사원을 장식하는 부조*로 많이 표현되었다.

라슈트라쿠타왕조 미술

라슈트라쿠타왕조 미술 Rāstrakūta Dynasty Art(영)

757년경 단티두르가Dantidurga가 전기 서(西)찰루키야 왕조를 멸망시키고 세운 왕조로 인도의 데칸Deccan 고원 서부를 통치했다. 아모가바르샤왕Amoghavarsha(재위 814~880) 때 가장 번영하였고 973년경 후기 찰루키야 왕조*에 의해 붕괴되었다. 이 시대에 만들어진 중요한 유적은 마하라슈투라주에 있는 엘로라Ellora 석굴이다. 엘로라 석굴은 불교(1~12굴), 힌두교(13~29굴), 자이나교(30~34굴)의 석굴 등 모두 34개의 굴이 있다. 그 중 중앙에 있는 제16굴 카일라사나타Kailasanatha 석굴이 가장 중요하다. 시바*신의 사원인 이 석굴은 단티두르가 시대에 시작되어 그 후계자인 크리슈나 1세Krsna(재위 757~773) 때 중요한 건축물(중앙의 사원, 난디Nandi 성소, 입구)이 완성되었다. 암벽을 파서 만든 이 사원은 건물을 중심으로 주위에 회랑*이 둘러져 있으며 사원은 남인도 양식으로 지어졌다. 건물의 기단에는 《마하바라타》와 《라마야나*》의 내용을 새긴 부조*가 장식되어 있다. 라슈트라쿠타 왕조는 북인도와 남인도의 교량적인 역할을 했으나 미술에 있어서는 찰루키야 왕조나 팔라바 왕조*의 영향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