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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천

범천 梵天 Brahmā(범)

인도의 불교성립 이전의 바라문교에서 가장 존중되었던 신으로 ‘대범천’ ‘범천왕’ ‘범왕’이라고도 한다. 색계초선천(色界初禪天)의 제일 높은 곳에 거주하며, 제석천*과 함께 불교에 일찍 받아들여진 호법수호신(護法守護神)이 되었다. 석가삼존의 양 협시*가 되어 후에 삼존형식의 선구가 되기도 하였다. 형상은 중국식 복장을 하고 손에 불자(拂子)를 쥐고 있는 것이 일반적인 모습이다. 천계의 위계상 제석천보다도 높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제석천만큼 신앙되지 않았던 듯하다.

법륜

법륜 法輪 dharma-cakra(범)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전륜성왕(轉輪聖王)의 윤보(輪寶)에 비유한 말로 전법(傳法)을 상징하는 용어. 따라서 부처님이 설법하는 것을 전법륜(轉法輪)이라고 하고 사르나트*(녹야원)에서 다섯 비구에게 법을 설한 최초의 설법을 초전법륜(初轉法輪)이라고 한다. 수레바퀴는 때와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굴러가듯이 부처님의 가르침도 한 곳에 머물지 않고 중생을 교화한다는 의미에서 전법의 상징으로 채택한 것이다. 사르나트 고고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5세기 작품인 초전법륜상은 대좌* 아래 중앙에 입체적으로 조각되어 있는데 이는 인도 미술*을 대표하는 걸작품이다.

법서

법서 法書

세상에 전하는 저명한 서예작품 중 전범으로 삼을만한 훌륭한 것. 타인의 서예작품에 대한 경칭.

법첩

법첩 法帖

석판(石版)이나 목판(木版) 위에 모각한 법서*(法書) 및 그 탁본(拓本). 법첩이라는 명칭은 송宋 태종太宗 순화 3년(992) 시서학사(侍書學士) 왕저王著(우앙 쭈)에게 비각(秘閣) 소장의 법서를 모각하여 10권으로 편찬하게 하고, 각권 앞에 ‘法帖第0’이라 새겨넣어 만든 《순화각첩淳化刻帖》에서 최초로 사용되었다. 원래는 전범으로 삼을만한 것을 일컫는 것이었으나 후대에는 석판이나 목판 위에 모각한 옛사람의 서적(書迹)을 모두 법첩이라 하였다.

베네딕트 수도회

베네딕트 수도회 Benedictine Order(영)

성 베네딕트가 529년에 이탈리아의 몬테 카시노에 창립하여 전 유럽에 전파된 수도회의 일파. 미술에 적극적인 의미를 인정하여 그 성당 건축은 일반적으로 장려하고 특히 풍부한 벽화*와 조각*으로 장식되어 있는 것이 많다. 필사본* 회화에서도 중요한 공헌을 하였다. 또한 기독교 음악사에 있어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오늘날에도 프랑스의 소램, 독일의 보이론 등 수도원*의 활동이 유명하다. 또한 클뤼니 회는 베네딕트 수도회의 개혁파이다.

베네치아파

베네치아파 Scuola Veneziana(이)

르네상스 미술*사상 피렌체와 함께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던 베네치아 지방을 중심으로 형성된 미술 혹은 미술가들에 대한 총칭. 동방과 밀접한 상업 항구 도시 베네치아의 특수한 지리적, 문화적 환경은 색채적이고 감각적인 예술, 특히 회화*의 번영을 가져왔다.
이러한 여건 때문에 북유럽의 독일이나 플랑드르와의 상호영향이 컸으며, 한편으로 예로부터 동방 여러나라와의 미술교류도 활발하였다. 이 많은 양식들을 융합하여 중후하고 화려한 색채주의에 의한 베네치아 지방 특유의 양식을 확립한 것은 15세기의 비바리니Vivarini 일가와 특히 벨리니Bellini 일가였다.
북방의 고딕 양식의 영향을 받은 야코포 벨리니Jacopo Bellini(c.1400~1470)는 여기에 베네치아의 전통과 동방의 비잔틴 미술* 양식을 융합하려고 시도하였다. 야코포의 아들인 젠틸레 벨리니Gentile Bellini(c.1429~1507)와 지오반니 벨리니Giovanni Bellini(c.1430~1516)는 아버지를 이어 경쾌하고 화려한 색채주의를 추진하였다.
이들의 제자로 카르파치오Vittore Carpaccio(c.1455~1525), 티치아노Tiziano(c.1485~1576), 지오르지오네Giorgione(1476~1510)가 배출되는 등 베네치아화파는 15세기 후반부터 16세기에 걸쳐 전성기를 맞았다. 티치아노의 뒤를 이은 틴토레토Tintoretto(1518~1594), 베로네제Paolo Veronese(1528~1588)의 활약으로 무르익은 이 화파는 16세기 후반 이탈리아 화단을 주도하였다.
그러나 이들은 만년에 들어서면서 매너리즘*의 화풍을 보임으로써 다른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이외에도 카라밧지오Caravaggio(1571~1610)가 베네치아 화파에 속하며 17세기와 18세기에는 대벽화가인 티에폴로Tiepolo(1696~1770), 풍경화가로는 구아르디Francesco Gouardi, 카날레토Canaletto(1697~1768)가 활약하였다. 베네치아의 회화 양식은 세속적인 내용의 주제, 관능적인 색감과 표면 처리, 화려한 배경 등을 결합한 것이 특징이다.

→ ‘르네상스 미술’ 참조

베디카

베디카 vedikā(범)

불교의 스투파*와 같은 성역을 둘러싸는 울타리로, 동아시아에서는 ‘난순(欄楯)’이라고 한다.

→ ‘스투파’ 참조

베엠페테

베엠페테 B.M.P.T(프)

1967년 뷔렝Daniel Buren(1938~ ), 모세Olivier Mosset, 파르망티에Michel Parmentier, 토로니Niele Toroni가 모여 자신들의 이름에서 성의 첫 자를 따서 명명한 추상 회화 그룹. 같은 해인 1967년 파리 비엔날레에 참가하여 대형 작품들을 전시하였으며 또한 모든 미술 활동에 문제를 제기하는 슬라이드를 상영하면서 ‘그려진 것’의 구체적이며 본질적인 실체를 회복하자는 주장을 펼쳤다.
이들은 회화를 무한히 되풀이되는 행위의 궤적으로 봄으로써 기존 회화의 표현 양식을 무시하며 대신 창조적 행위 자체의 표현적 가치를 강조하였다. 수직 줄무늬의 뷔렝, 수평 줄무늬의 파르망티에, 규칙적 흔적을 남기는 토로니, 똑같은 직경의 원을 그리는 모세 등 베엠페테 작가들은 기계적이고 반복적인 방법에 의해 제작가능한 비개성적이며 단조로운 형태와 색채를 고집하였다.
그들의 반복적인 행위는 제반 회화를 단순한 기계적 제스처*로 환원시킴으로써 서정추상*적 표현방식과 결별하였고, 결과적으로 회화의 일반화된 개념을 재고하게 만들었다.
베엠페테 작가들은 이러한 자신들의 작업이 회화에 대한 하나의 비평 행위가 될 수 있음을 주장하였으며 현장 작업을 직접 보여주어 대중에게 그 의도를 알리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사회적, 정치적 성향을 띠면서 형식주의* 회화를 위한 실험을 시도하였고, 또한 예술현상의 사회학적 분석을 통해 미술시장과 미술의 용도를 직선적으로 비난하는 등 미학적 논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베트남 미술

베트남 미술 Vietnamese Art(영)

베트남은 문화적으로 북쪽 지방은 중국의 영향을, 남쪽 지방은 인도의 영향을 받았으므로 서로 다른 성격을 보여 준다. 베트남의 북쪽 지역에는 신석기시대에 속하는 호아빈Hoa-binh 문화와 마제 석기를 사용하던 박손Bacson 문화의 흔적이 남아 있다. 통킹 지방의 동부에서는 중국의 영향을 받은 청동기 문화인 동손Dong-son 문화가 꽃피웠다.
이 유적에서는 청동북(동고銅鼓)과 단검, 창, 도끼 등의 무기류, 항아리, 용기, 쟁반 등 여러 종류의 그릇과 장신구류가 많이 출토되었다. 그 중에서도 제의용으로 생각되는 청동북은 표면에 시문한 장식도안들이 중국 춘추전국(春秋戰國)시대의 장식문양과 연관성이 많아 주목된다(기원전 4~3세기 이후).
베트남 북부는 기원전 111년 전한前漢에 정복된 이후 당唐이 멸망할 때까지 중국령이었으므로 중국인들의 묘도 여러 곳에서 발견되었다. 그러나 베트남 남부는 힌두교의 영향이 지배적인 참파Champa 왕국이 다스리고 있었다. 베트남은 10세기경 중국으로부터 독립했으나 그 이후에도 계속 중국의 영향을 받았다.
독립 이후에도 왕조의 교체가 빈번했으나 점차 남쪽으로 팽창하여 결국 1471년에 참파를 멸망시킴으로써 전국을 통일했다. 그 사이에 도성 다이라Dai-la(大羅, 현 하노이)가 1010년에 창건되고 중국풍의 사찰이나 불탑이 건설되었으나 현재 남아있는 유물이나 유적은 별로 없다.

벽 璧 bi(중)

→ ‘옥기’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