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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원

삼원 三遠

산수화* 제작시 사용되는 일종의 투시도법 세 가지. 북송北宋의 곽희郭熙(구어 시)는 《임천고치*林泉高致》에서 화가의 시점에 따라 고원(高遠), 심원(深遠), 평원(平遠)과 같이 회화 구도를 달리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고원은 산밑에서 정상을 쳐다 볼 때의 시점으로, ‘치솟는 산세’를 표현할 때 사용한다. 심원은 앞에 있는 산이나 봉우리로부터 뒤에 있는 산들을 들여다 볼 때의 시점으로, ‘중첩되는 산세’를 나타낼 때 사용한다. 평원은 가까운 산에서 멀리있는 산들을 보았을 때의 시점으로, ‘아득히 멀게 전개되는 산’들을 그릴 때 사용한다. 즉 고원은 앙시(仰視)로 산을 보는 것이고, 심원은 부감시(俯瞰視)로 산을 보는 것이며, 평원은 평시(平視)로 산을 보는 것이다. 삼원법은 자연을 관찰하는 기본적인 각도를 모두 종합한 것이다. 본질적으로 중국회화는 다원시각(多元視覺)에 의거하여 제작되었는데, 곽희는 한 곳으로부터 출발되는 일원적 시각을 주장한 것이다. 그러나 중국의 일반적인 산수화는 한 화면에서 시점이 자유롭게 움직이기도 하고, 삼원법이 한 화면에 병존하는 일도 많다.

삼절

삼절 三絶

동양화에서 흔히 쓰이는 말로 두 가지 설이 있다. ①시(詩), 서(書), 화(畵)의 세 가지 모두에 높은 경지를 이루었을 때 ‘삼절’이라 부른다. 당唐 현종玄宗 이융기李隆基(리 릉치)가 일찍이 정건鄭虔(즈엉 치앤)의 산수화에 제자(題字)를 쓰면서 “정건은 삼절이다”고 했다 한다. ②회화사에서 볼 때 동진東晋의 고개지顧愷之(꾸 카이즈, 344~406)를 흔히 삼절로 불렀다. 《진서晋書》의 고개지 본전(本傳)에 그가 “재절(才絶), 화절(畵絶), 치절(痴絶)의 세 가지를 구비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③명, 청(明淸)시대에는 또 ‘재절, 화절, 서절(書絶)’을 ‘삼절’이라 불렀다.

삼청상

삼청상 三淸象
San-ching-hsiang(중)

도교(道敎)의 세 신인 옥청원시천존玉淸元始天尊, 상청령보도군上淸靈寶道君, 태청태상로군太淸太上老君의 세 상(像)을 칭한다. 세 신은 각각 옥청궁玉淸宮, 상청궁上淸宮, 태청궁太淸宮에 거주한다고 한다. 오대(五代)에 삼청을 주조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원대(元代)의 영락궁永樂宮 삼청전三淸殿(1325)에서는 소조상으로 만들었다. 회화*로서는 도교 사원의 벽화*에 그려진 경우가 많으며 괘폭(掛幅)으로 된 〈삼청위기도三淸圍碁圖〉(東京 根津美術館 소장) 등이 있다.

삼품

삼품 三品

중국 회화비평 기준의 하나. 당대(唐代)의 장회관張懷瓘(즈앙 후에이꾸완, 8세기 전반기 활동)은 《화단畵斷》에서 처음으로 신, 묘, 능품(神, 妙, 能品)이라는 회화비평 기준을 제시하였다. 신품이란 그림의 기예와 공력이 탁월하고 절묘하여 형사*(形似)와 신운(神韻)이 겸비되는 것이고, 묘품이란 의취와 구상이 절묘하여 표현에서 마땅함을 얻는 것이다. 능품이란 형사를 얻어 법칙을 잃지 않는 것이다. 원대(元代)의 하문언夏文彦(시아 원이앤)의 《도회보감圖繪寶鑒》에서는 삼품에 관해 “신품은 하늘이 이루어 주는 것이며, 묘품은 의취가 넘쳐서 되는 것이고, 능품은 형사를 얻는 것”이라 하였다. 이 삼품 외의 평가 기준으로 ‘일품(逸品)’이 있는데, 이것은 당말(唐末)의 비평가 주경현朱景玄(주 징시앤, 9세기 전반기 활동)이 《당조명화록唐朝名畵錄》 서문에서 덧붙인 것이다. 그는 “장회관은 《화단》에서 신묘, 능 3품으로 그 등급을 정하고 다시 이를 상중하 셋으로 나누었다. 이러한 격(格) 외에 상법(常法)에 구애받지 않는 것으로 일품이 있으니, 이것으로써 그 우열을 표시한다”고 하였다.

삿갓천장

삿갓천장

→ 연등천장

상감

상감 象嵌 inlay(영)

공예품의 표면에 다른 재료를 감입(嵌入)해서 문양을 나타내는 장식법. 원래 금속공예의 은입사(銀入絲) 기법이 발전한 것으로, 나무, 도자, 유리 등에도 사용된다. 상감재로서는 그 외에 돌, 조개껍질, 뼈, 뿔 등이 있다. 메소포타미아의 초기왕조와 고대 이집트*에서부터 널리 사용되어 왔던 오래된 기법으로, 중국에서는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부터 시작되었다. 한국에서는 12세기 전반에 청자*에 상감기법을 최초로 응용하여 상감청자*를 만들어냈다. 상감기법의 종류로는 상감재를 실처럼 끼워넣은 선상감(線象嵌), 평면으로 끼워넣는 평상감(平象嵌), 상감재를 튀어나오게 끼워넣는 고육상감(高肉象嵌), 끊어넣는 절상감(切象嵌) 등이 있다.

상감청자

상감청자 象嵌靑磁

고려시대에 상감*기법을 독창적으로 도자에 응용하여 장식한 청자*. 성형한 그릇이 반건조 상태일 때 문양을 조각칼로 음각하고 그 부분에 백토니(白土泥), 자토니(豕土泥)를 붓으로 발라, 마른 후 기벽에 덧묻은 이토를 깎아내면 음각한 부분에만 이토가 남아 문양이 표현된다. 여기에 청자유를 입혀 구우면 백니는 백색으로, 자토는 흑색으로 발색되어 문양은 투명한 청자유를 통해서 아름답게 비친다.
고려 의종 13년(1159)때 죽은 문공유묘文公裕墓에서 출토된 〈청자상감보상당초문대접靑磁象嵌寶相唐草文鉢〉은 완숙한 상감기술을 보여주고 있어, 12세기 전반기부터 제작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13세기 중엽까지 전성기를 누렸으며 조선시대 분청사기*에도 사용되었다.

상남폄북

상남폄북 尙南貶北

남종화*(南宗畵)를 숭상하고 북종화*(北宗畵)를 배척한다는 내용의 중국회화 이론. 상남폄북은 동기창董其昌(똥 치츠앙, 1555~1636), 막시룡莫是龍(모 스롱) 등의 남북종론(南北宗論)에 기초하고 있다. 이들이 제기한 남북종론에서는 역대의 화가들을 문인화가와 직업화가로 나누고 그 작품들을 각기 남종화와 북종화로 나누었다. 나아가 문인화가들이 그린 남종화는 고아하고 미적 가치가 높으며, 직업화가들이 그린 북종화는 천박하고 그 가치가 떨어진다고 주장하였다. 문인화*를 위주로 사인기(士人氣) 넘치는 흉중구학*의 화도(畵道)를 추구해야 한다는 논조로 북종화를 폄하했다. 이러한 주장은 ‘상남폄북’이라는 개념으로 귀결되었다.
동기창, 막시룡 등의 상남폄북론은 문인화가와 직업화가의 신분적 차별과 동시에 양자의 화풍이 상이한 점에 근거를 두고 있다. 상남폄북론은 중국의 근대, 현대회화사는 물론 한국의 조선 후기 이후 최근의 회화사에까지도 막강한 영향력을 미쳐왔다. 그러나 현대의 회화연구가인 유검화兪劍華(위 지앤화)는 남북종론이나 상남폄북론이 문인화가였던 동기창, 막시룡 등의 관념적 기호에 의한 단순한 분류에 지나지 않는다고 반박하였다.

→ ‘남종화’ ‘문인화’ ‘북종화’ ‘화지’ 참조

상륜부

상륜부 上輪部

한국 탑*의 옥개석 위쪽에 있는 장식물들로 일반적으로 방형의 노반(露盤)에 복발(覆鉢)과 앙화(仰花)를 얹고 그 위에 찰주(刹柱)를 세우면서 보륜(宝輪), 보개(宝蓋), 수연(水烟) 그 다음으로 용차(龍車)와 보주(寶珠)를 놓는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 ‘탑’ 참조

상면석

상면석 床面石 stylobate(영)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는 건축의 기둥을 받쳐주기 위하여 대개 땅 위에 크레피스(돌계단)라고 부르는 세 단의 토대석을 쌓는다. 이 위에 계속 상면석을 깔고 다시 그 위에 기둥을 얹혀 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