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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

상상 想像 imagination(영) Phantasie(독)

현실에서 획득될 수 있지만, 지금 현재에는 실재하지 않는 인상을 기반으로 하며, 사고를 통해 의식 속에 새로운 직관적 심상(心象)을 떠올리는 작용. 사람들을 현실로부터 분리시키는 몽상(夢想)과 구분되는 건전한 상상은 일반적인 사회적 요구와 결부된 것으로서, 사람들에게 현실에 대한 인식을 할 수 있게 해 주고 그것을 변화시켜 나갈 수 있는 능동적인 힘을 준다. 예컨대 과학자는 상상의 도움을 받아 가설(假說)을 만들기도 하고 모델을 고안하기도 한다. 예술가는 예술적으로 의미가 있는 상(象)을 생생하게 그려, 그것들의 실재하는 것에 대한 인식의 능력을 창조하기도 한다. 생활에서도 존재해야 하는 것에 대하여 마음 속으로 만들어 낸 이상(理想) 역시 상상의 산물이며, 이것은 사람들을 계발하는 힘이 된다.
상상은 지각(知覺)과 달라서 외계의 사물을 대상으로 갖지 않으며, 더욱이 명백한 직관성을 갖춘 심상을 의식 중에 생기게 한다는 내발(內發)적인 직관성을 첫번째 특징으로 한다. 처음부터 상상에 의거하여 생기는 심상도 어떤 의미에서는 지각심상의 경험에 의존하며 거기서 소재를 얻는 수가 많으므로 상상은 과거의 지각경험의 재생작용인 기억과 유사한 성격을 갖는다. 또 상상하는 의식 태도와 지각하는 의식 태도는 본래 별개의 것이다. 지각심상은 일단 기억심상으로 바뀐 다음, 비로소 상상심상과 관련을 맺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상상에 대한 기억의 의미는 크다.
그러나 지각과 기억이 결국은 현실의 경험에 따르며 이것을 수동적으로 파악 혹은 재생한다면, 상상은 반드시 현실에 구애받지 않는다. 독자적인 세계를 구성하는 능동적 성격을 갖는 상상은 종종 사고(思考)와 비교해서 논의된다. 즉 상상은 직관적 심상의 흐름에서 성립하는 전체적 의식체험이며 일종의 능동적 구성작용을 가진다는 점에서 광의의 사고와 비교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협의의 사고에서는 표상 계열의 논리적, 개념적 연관이 그 본질을 이루며 심상의 직관성이 부수적인 의미를 갖는데 불과하다. 이와 반대로 상상은 심상에 의한 사고로서, 심상의 흐름 그 자체에서 성립한다는 점에서 사고와 분명히 다르다.

상상력

상상력 想像力
Einbildungscraft(독)

상상*을 하는 심적 능력(心的能力). 구상력(構想力)이라고도 한다. 칸트Immanuel Kant의 인식론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용어. 철학상으로 칸트, 피히테Johann Gottlieb Fichte 등에 의하여 독특한 의미를 부여받고 있다. 특히 이것은 칸트가 말한 감성적(感性的) 경험을 오성(悟性)의 범주에 매개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상상력은 오성에 대하여 이것에 적응하는 직관을 부여하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상상력은 감성에 속하지만 그 종합 작용은 자발성의 작용이고, 감성을 선천적으로 규정하는 능력이라는 점에서 오성적인 것으로도 되며, 감성, 오성의 매개 역할을 한다.

상석

상석 床石

일반 분묘나 능원(陵園)의 봉분 앞에 설치해 놓은 넓적한 장방형의 돌로 된 상. 왕실의 예전인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에는 석상(石牀)으로, 일반사대부의 예서인 《상례비요喪禮備要》 등에는 석상(石床)으로 표기되어 있다.

상업미술

상업미술 商業美術
commercial art(영)

상업적인 목적을 보다 효과적으로 달성하기 위한 조형적 표현으로 자본주의와 더불어 발전하였다. 상품 자체를 색채, 장식, 재료, 내•외관 등의 측면에서 미적으로 형태화하는 것뿐만 아니라 전통적인 방식의 진열이나 모든 종류의 광고를 통한 상품의 전시와 관련된 전반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이다. 원시적인 형태로서의 상업미술은 고대부터 존재해왔으나, 획기적으로 발달한 것은 포스터*나 선전만화 등의 선전미술이 대중의 선동이나 계몽에 막대한 힘을 발휘하는 것을 경험한 제1차세계대전 이후이다.
상업적인 목적의 디자인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상품 디자인, 광고, 포장, 제본, 디스플레이 등을 통한 조형적 커뮤니케이션을 전문으로 다루는 상업 디자이너들도 등장했다. 이들은 포스터, 신문이나 잡지, 책, TV 등의 매체 및 시각적 환경 전체를 무대로 공급자와 상품을 알리고 수요자의 흥미와 구매욕구를 일으키고자 한다. 상업미술이라는 정확한 명칭이 정해진 것은 1926년 영국에서 발간된 잡지 《상업미술Commercial Art》에서였다. 상업미술에서는 선전 대상에 대한 충분한 이해에 따르는 적절한 표현방식인가, 호소력이 있는가, 근대적 조형미를 가지는가, 대중적인가, 경제적인가, 대량생산성이 있는가 등의 요건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상왕조 미술

상왕조 미술 商王朝美術

상商왕조의 수도인 은허殷墟(현 安陽)는 기원전 1400년경 반경盤庚에 의해 세워졌으나 그 후 주周에 의해 기원전 11세기 후반에 정복된 것으로 알려졌다. 안양의 청동기는 고도로 발전된 것이며, 당시 금속공들이 만든 제기류 등은 이미 그 이전 수세기에 걸쳐 발전된 것으로 보인다. 갑골문*에는 반경 이전 18명의 왕의 이름들이 새겨져 있으며 수도를 다섯번이나 옮긴 뒤에 마침내 안양에 정착하게 되었다고 한다. 고고학적으로 이들 수도들이 증명된다면, 전설상으로만 존재하는 신석기말에서 안양의 청동기 문화 사이의 공백이 밝혀질 것이다.
건축:19세기말경 하남성河南省 안양현의 소둔 일대에서 상대(商代) 후기의 도읍지인 은허가 발견되고 다시 1950년대에는 정주 이리강에서 상, 중기의 도성터가 발견되었다. 1960년대에는 언사 이리두에서 전당(殿堂) 유적이 발견되었다. 전당지는 동서 108m, 남북 100m로 흙을 쌓아올려 굳힌 토단(土壇) 중앙의 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이 전당지에는 여덟 칸의 도리간과 세 칸의 들보간으로 된 굴립주(掘立柱) 건물이 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전당지에는 거주 흔적은 없으며 그 규모로 보아 전례(典禮)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전당의 주위에는 청동기를 주조하는 공방이 있으며, 토기를 굽는 가마장도 있다. 정주 이리강의 도성터는 상대 중기에 해당하는 것으로 성벽은 판축법에 의해 구축되었다. 성내의 동북부에는 토단이 몇 개 있고 굴립주의 주혈이 늘어서 있다. 성벽의 남북 바깥쪽에는 청동기 주조 공방터가 발굴되었다. 북벽 밖에는 골기(骨器) 가공장이 있었는데, 원료를 동물의 뼈 뿐만 아니라 전쟁의 포로였을 사람의 뼈도 사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공예:상대 초기의 이리두 제3기 유적에서는 청동제인 작은 칼, 송곳, 화살촉, 방울 외에 작(爵)이 나오고 동(銅)을 주물하는 거푸집도 발견되고 있다. 상대 중기의 이리강 유적에서는 청동 용기는 크고 그릇의 벽은 두꺼워지고 문양은 도철문* 등이 볼록선으로 평면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문양대 이외에는 유정문(乳釘文)이나 여백으로 구성되어 있다. 상대 후기에는 청동기의 수도 많고 〈사모무정司母戊鼎〉 같이 높이 133cm, 무게 875kg이나 되는 거대한 것도 있다. 주조방법은 동의 원료인 공작석과 석광을 채굴하여 정련한 다음, 도제 도가니에서 녹여 거푸집에 흘려 넣어 청동기를 만들었다. 식기(食器), 주기(酒器), 악기(樂器) 등의 청동기의 종류가 많아진 것은 지배자의 생활수요가 점점 확대되었음을 나타낸 것이다. 상대의 토기는 초기에는 회도(灰陶)가 주류를 이룬다. 회도의 표면에는 승문과 네모형, 뇌문의 전신 문양이 인문(印文)으로 장식되어 있다. 그런데 이러한 기법으로 새겨진 문양의 토기는 중국 남부의 영향을 받기 시작했음을 시사한다. 상대의 토기 중 가장 주목되는 것은 백색토기이다. 백색토기는 자기로 취급될 정도로 섬세하게 만들어졌는데, 순수한 고령토*로 물레 위에서 마무리한 뒤 1,000℃정도에서 소성한 것이다. 또한 하남성과 호북성湖北省에서는 유약을 바른 그릇들도 출토되고 있다.

상주화

상주화 常州畵

강소성江蘇省 무진현武進縣 상주 지방에서 제작된 초충도*(草蟲圖). 당대(唐代)에 시작된 상주 초충화는 북송北宋 때에 이 지방의 특수한 화풍으로 자리잡았다. 거녕居寧(쥐 닝)이 특히 유명하며 그 후 원, 명대(元明代)를 거치면서 많은 작품 제작이 이루어졌다. 한 화면에 각종 곤충과 화초를 몰골*, 구륵전채*의 두 기법을 혼용하여 그려넣고 풍부한 색채를 활용하여 표현했다. 후에 몰골화조화를 주로 그린 청초(淸初) 운수평惲壽平(윈 서우핑)의 상주파(常州派)도 여기에서 영향을 받았다.

상징

상징 象徵 symbol(영)

그리스어 ‘symbolon’(함께 혼합된 것이나 식별 기호라는 의미)에서 유래. 질적, 형식적으로는 다른 두 가지의 것이 서로 독립적인 뜻을 가지고 있으면서 어떤 의미로 관련을 맺고 한편이 다른 편을 표징(zeichen) 또는 대표하는 것이다. 논리적으로는 결합되기 어려운 양 계기를 초논리적으로 매개하는 표현법이다. 일반적으로 감상적인 것에 있어 초감각적인 것(이성)이 표현되는 것이므로 미*(美)가 이념의 감상화, 감각적인 것의 정신화라는 측면에서 상징은 미학*상 극히 중요한 개념이다. 미학에서 상징은 마술적, 신비적, 종교적인 세계 질서에서 근대적으로 분리되면서부터 그 의미를 획득하게 되었다. 상징은 정태적인 알레고리*와 달리 감각적으로는 접근할 수 없는 경험 영역들의 지각과 인식을 위한 역동적이고도 창조적인 매개물이다. 따라서 예견자나 천재로서의 예술가는 신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 진리와 가상, 이념과 현상 사이의 중개자가 된다.
상징은 고대 범신론적 우주론의 입장에서는 참되거나 신적인 것을, 관념론적 형이상학에서는 절대적인 것이나 비합리적인 것을, 경험론의 입장에서는 보편인간적인 것, 자연법적인 것, 원형적인 것을 의미한다. 상징은 자연적 상징(예를 들어 빛은 진리의 상징)과 관례적 상징(예를 들어 십자가는 기독교의 상징) 등으로서 언어, 신화, 종교, 철학 등의 문화 영역과 사회 전반에 걸쳐 사용된다. 예술적 상징법의 분석과 해석은 도상학*에서 상징의 정신사, 문화사, 형식사적 연구, 예술의 정신분석 및 문예학적인 모티브* 연구 등을 형성했으며, 기호*(sign)로서의 상징은 기호학적 연구에도 영향을 끼쳤다. 미술에서는 전통적인 상징들이 그대로 쓰일 뿐 아니라, 예술가에 의해 새로운 상징이 창조되기도 한다. 가령 뵈클린Arnold Böcklin(1827~1901)의 회화, 메테를링크Maurice Maeterlinck의 희곡 등에서 볼 수 있는 공상적 상징이 그것이다. 한편 논리학, 수학, 자연과학에서 사용되는 상징은 일반적인 의미와 달리 기호 또는 부호라고 쓰인다.

상징주의

상징주의 象徵主義
Symbolism(영) Symbolisme(프)

1880년대 후반에 프랑스에서 시를 중심으로 시작된 문학운동. 미술에서는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1821~1867), 말라르메Stéphane Mallarmé, 랭보Arthur Rimbaud 등 시인의 영향 하에 반사실주의적인 경향을 지향했으나, 문예의 경우처럼 명확한 주장이나 운동으로 확립되었던 것은 아니다. 쿠르베Gustave Courbet(1819~1877)는 “회화는 본질적으로 구체적인 예술이다. 그것은 실재하는 사물의 재현에 의해서만 구성된다. 추상적 대상은 회화의 영역에 속하지 않는다”라는 말과 같이 사실주의* 미학을 펼쳤고, 이러한 회화 이념에 대한 반발로 시인 모레아Jean Moréas는 1886년 9월 18일자 《르 피가로Le Figaro》 지에서 상징주의 선언을 발표했다. 그는 예술의 본질적 원리는 ‘사상에 감각적 형태를 씌우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상징주의의 목적은 물질세계와 정신세계 사이의 갈등을 해소하는 것이었다. 상징주의 시인들은 시적 언어를 내면생활의 상징적 표현으로 여겼으므로 화가들에게도 신비와 마술 등을 시각적으로 표현할 것을 요구했다. 상징주의 미술은 인간의 내면을 강조하고 비합리성을 추구함으로써 일상적인 이미지의 왜곡과 비사실적인 우화세계 및 주제의 기묘한 병치를 일으켰으며, 이는 19세기 중반 사실주의의 개념을 파기하는 것이었다. 현실적 주제보다는 신화적이고 신비한 주제를 도입하여 상상의 세계를 그리는 것은 어떤 감정이나 사고에 상응하는 조형세계가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며, 해설이나 설명 없이 감정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미술에 대한 추구가 상징주의 화가들에게 가장 중요했음을 말해준다.
상징주의 미술에 대한 논평은 처음에는 고갱Paul Gauguin(1848~1903)과 퐁타방파* 및 나비파*와 관련된 것이었으나, 점차 퓌뷔 드 샤반느Pierre Puvis de Chavannes(1824~1898), 르동Odilon Redon(1840~1916), 모로Gustave Moreau(1826~1898), 카리에르Eugéne Carriére(1849~1906) 등의 신비적인 주제와 시적, 종교적인 관념을 표현한 세기말적 작품들을 포함하게 되었다. 고갱의 열광적인 후원자였던 평론가 오리에Albert Aurier는 1891년 3월 《메르퀴르 드 프랑스》에 발표한 논문 <회화에 있어서 상징주의>에서 예술작품은 사상이 있어야 한다. 사상을 형식으로 표현하는 것이므로 상징적이어야 한다. 일반적인 이해를 위한 양식으로 여러 형태와 기호를 제시하므로 종합적이어야 한다. 예술이 묘사하는 대상은 객관적인 것이 아니라, 주관에 의해 인지된 사상의 표지이므로 주관적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예술은 결과적으로 장식적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장식적인 그림이란 동시에 주관적, 종합적, 상징적 사상의 표현이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종합적’이란 말은 종종 회화의 상징주의 운동과 시의 상징주의 운동을 구별하기 위해 사용된다. 그리고 적어도 어느 부분은 상징주의 운동과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는 나비파 화가들의 작품에도 사용되는 단어이다. 나비파는 《상징주의자로서의 세잔느》(1907)를 쓴 이론가 드니Maurice Denis(1870~1943)에 의해 상징주의자들로 간주되었다. 그는 상징주의에 대해 “본래 신비적이거나 이상주의적인 운동은 아니다. 이것은 풍경화가와 정물화가들에 의해 시작된 것이지 영혼을 그리고자 하는 화가들에 의해 시작된 것 역시 아니다. 표현된 주체가 우리의 정신상태를 일깨우는 것이 아니라, 작품 그 자체가 최초의 감각을 전달하고 감정을 영속시킨다. 모든 예술작품은 어떤 경험된 감각의 혹은 더 빈번하게는 심리적 사실의 전위(轉位), 열정적인 등가물, 희화이다”라고 말하였다.
상징주의와 상징주의자들의 예술에 대한 개관은 여러 간행물을 통해 출판되었다. 《데카당Décadant》 《보그Vogue》 《상징주의자Symboliste》 가 1886년에, 《메르퀴르 드 프랑스》가 1891년에 출판되었다. 퓌뷔 드 샤반느는 “명료한 사상 각각에는 그것을 번역하게 하는 시각적 사고가 각각 따른다”고 믿었으며, 드니가 ‘회화의 말라르메’라고 부른 르동은 자신의 목적을 “인간의 감성을 아라베스크한 것으로 변형시키는 것”이라고 천명했다. 모로는 마티스Henry Matisse(1869~1954)와 루오Georges Rouault(1871~1958)를 비롯한 야수주의* 작가들의 스승이 되었으며, 카리에르는 몽환적, 문학적인 내용을 무채색조로 그렸다. 상징주의자들은 새로운 회화양식을 창조한 것은 아니었으나, 예술적 형식보다는 시적 사상의 표현, 마술과 종교적 신비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인 일종의 개인주의자들이었다.

상품미학

상품미학 商品美學
Warenästhetik(독)

상품의 미적 장식과 이러한 장식의 심리학적 작용 및 소비자들과 목표한 바의 경제적 결과를 향한 모든 기술이나 이론들을 포함한다. 그것은 상품 자체의 미적 형태화인 디자인, 전시를 통한 생산품의 이미지화와 그것에 대한 구매욕 및 여타 사회적 욕구의 충족, 유행의 변화 등과 관련된 것이다. 상품미학의 개념은 독일의 사회학자 하우크Wolfgang Fritz Haug에 의해 정립되었다. 하우크는 1971년에 출간된 저서 《상품미학의 비판Krithk der Warenästhetik》에서 인간에게 미적이고 감각적인 영향을 미치는 메커니즘을 디자인*과 연관된 상품미를 통해 분석했다. 그는 자신의 글을 ‘자본주의 내에서의 감각의 운명 및 욕구 발전의 사회적 분석에 관한 기교’라고 밝히면서 자본주의의 기제를 미적 주체, 객체 관계로써 풀었다. 하우크는 미적인 것* 그 자체의 실체화된 본질성 대신에 자본주의 사회의 통합적 유지를 위해 미적인 것이 어떻게 기능하는가에 관심을 가졌다.
이와 함께 후기 자본주의에서 자본의 움직임에 있어 점차 중요성이 커지는 영역인 상품미가 부각된다. 상품미는 상품 자체의 장식과 포장에서부터 디자인, 광고, 선전 그리고 팬시 산업 및 오락산업의 체제에까지 걸쳐있다. 상품미학의 비판은 단순히 생산물(사용가치)의 미적현상 그 자체를 고찰하는 것이 아니라, 상품의 미적현상의 ‘기능’을 연구한다. 또한 관찰자로 하여금 소유욕을 자극받고 구매충동을 일으키도록 하기 위하여 상품에 부여되고, 교환가치의 실현이라는 목적을 위해 발전된 감각적 현상으로서의 ‘미*’를 고찰한다. 따라서 상품미학비판은 상품미학이라는 개념으로 지칭된 기능적 관계들의 과학적, 사회경제적 해명이라 하겠다.

상현좌

상현좌 裳懸座

→ ‘대좌’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