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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탁선 Bateau-Lavoir(프)
파리 북부 몽마르트르*의 라비냥가 13번지에 있는 낡은 건물의 명칭으로 시인인 자콥Max Jacob이 명명했다. 허름한 건물이지만 제1차세계대전 직전의 한 시기에 많은 예술가들이 살면서부터 역사에 남는 곳이 되었다. ‘바토-라부와르’의 원뜻은 센강에 떠 있는 세탁선(洗濯船)을 말한다. 처음으로 이 건물에 입주한 화가는 퐁타방파*의 일원인 모프라Maxim Louis Maufra였는데, 1900년 이후 먼저 반 동겐Kees van Dongen(1877~1968)이, 이어 피카소Pablo Picasso(1881~1973)가 이곳에 아틀리에*를 차리면서 급속히 새로운 예술의 중심지가 되었다.
그 외에 세탁선에 살았던 작가들은 그리Juan Gris(1887~1927), 살몽André Salmon, 르베르디Pierre Reverdy 등이다. 또한 그들에게 이끌려 마티스Henri Matisse(1869~1954), 브라크Georges Braque(1882~1963), 드랭André Derain(1880~1954), 뒤피Raoul Dufy(1877~1953), 모딜리아니Amedeo Modigliani(1884~1920), 로랑생Marie Laurencin(1885~1956), 위트릴로Maurice Utrillo(1883~1955), 마르쿠시Louis Marcoussis(1883~1941), 메칭거Jean Metzinger(1883~1956), 립시츠Jacques Lipchitz(1891~1973) 등의 미술가들과 시인인 아폴리네르Guillaume Apollinaire(1880~1918), 콕토Jean Cocteau(1889~1963), 차라Tristan Tzara(1896~1960) 등이 빈번히 드나들었다. 피카소의 기념비적인 작품 <아비뇽의 처녀들>도 이곳에서 그려졌듯이, 입체주의*의 미학은 이 세탁선에서 생긴 것이라고 할 만하다.
세폭 제단화 triptych(영)
두폭 제단화*에서 발전한 세폭화는 나란히 세 부분으로 구획되어 중앙의 한 폭에 다른 부분들이 포개지도록 경첩으로 이어진 제단화*나 새김 조각이다. 두폭 그림처럼 세폭 제단화의 형식도 종교적인 형상화를 휴대할 수 있도록 만들어지게 되었으며, 섬세한 내부 표면은 겉장의 표지로 보호되었다. 비잔틴 미술*에서는 이콘의 한 형식으로 존재하며 상아조각도 많다. 상아로 얕게 새겨진 예수와 성자의 형상은 초창기부터 비잔틴 미술가들이 만들었다. 저부조나 그림으로 된 대형 목재 세폭화는 고딕*에서 르네상스*에 걸쳐 많이 만들어졌다. 내용에 있어서는 일반적으로 중앙 패널에는 그리스도, 성모, 성인 등 중심적 주제가 표현되고, 양측의 패널*에는 기증자의 초상 등 부차적인 주제가 묘사되었다. 양 날개를 접었을 때 나타나는 외부에는 그리자이유* 기법이 사용되곤 하였다.
→ ‘제단화’ ‘두폭 제단화’ 참조
세한삼우도 歲寒三友圖
동양 화훼화의 한 화제. 사군자*와 관련 있는 화목으로 문인화*의 영역에 속한다. 원대(元代)에 몽골족에게 나라를 잃은 한족 문인들이 지조와 저항의 상징으로 많이 그렸다. 세한삼우란 ‘추운 겨울의 세 친구’란 뜻으로, 사군자의 항목인 매화, 대나무에 소나무를 덧붙인 것이다. 매화와 대나무, 소나무는 겨울 추위 속에서 오히려 푸르고 꽃을 피우는 특성이 있어, 추위를 견디는 인내와 절개를 상징하는 그림으로 많이 그려졌다. 세한삼우가 지닌 고고한 형상과 상징은 불굴의 정신과 무언(無言)의 저항을 나타내는 문인들의 좋은 화제가 되었다.
세한삼우는 소나무 대나무 매화를 같이 한 화면에 담거나 셋 중 두 가지를 바위와 더불어 그리는 등 몇 가지의 배합 방법이 있다. 이와 관련 있는 화목으로 고목죽석도*(枯木竹石圖)와 쌍송도*(雙松圖)도 원대에 즐겨 그려졌다. 남송南宋의 조맹견趙孟堅(자오 멍진, 1199~?)이 그린 <세한삼우도>(대북 고궁박물원)가 유명하다. 이 그림은 절지(折枝)의 소나무와 매화, 대나무를 한데 어울리도록 그린 그림으로, 문기(文氣)가 매우 뛰어나며 필묵이 가볍고 맑게 그려진 작품이다.
세화 細畵
세밀하고 정밀하게 그려지는 그림. 정확하고 섬세한 필선의 기교와 완벽성이 요구된다. ‘세필화’ 또는 ‘세필 채색화’라고도 한다.
셀라 cellar(영)
주랑 현관과 구분되는 사원의 본체 혹은 여타의 외부 요소. 또는 성상(聖像)을 모시기 위해 지어진 내부 구조물.
셰이프트 캔버스 shaped canvas(영)
기성의 사각형 캔버스가 아닌 다양한 형태와 모양을 갖춘 캔버스. 전시 벽면과 어울리기 위해 일반적으로 사각형을 채택한 전통적인 형태의 캔버스*를 탈피한다. 셰이프트 캔버스의 기원은 르네상스* 시대의 유럽에서 유행했던 톤도*라고 불린 원형 회화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20세기초에도 타원형과 마름모꼴, 십자가 모양 등의 캔버스가 사용되었지만, 셰이프트 캔버스 개념이 널리 통용되기 시작한 것은 1960년 9월 레오 카스텔리 갤러리에서 전시된 스텔라Frank Stella(1936~ )의 ‘오늬형(notched)’ 회화가 기점이다. 화면 위에 지그재그로 반복되는 줄무늬 모양에 맞추어 캔버스의 모양이 결정되는 스텔라의 셰이프트 캔버스는 점차 X, U, Y, S자 형태로 나타나면서 자유자재로 변형되었다. 그 후 그는 그림의 내부 무늬와 외부인 화폭의 모양 사이의 상호관계를 체계적으로 탐색하였다. 전통적인 캔버스의 형태를 버리고 화폭에 캔버스 안의 그림의 형태를 부여함으로써 그림에 화폭을 종속시킨 결과, 회화*는 그것을 지배하던 캔버스 틀에서 완전히 해방되었다.
이처럼 캔버스와 그 위에 그려진 이미지가 일체화된 셰이프트 캔버스에 이르러 회화는 화면 위에 환영적인 세계를 묘사한 것이라기보다는 하나의 독립적 오브제*가 되어 자율성을 획득하였다. 알로웨이Lawrence Alloway(1926~1990)는 셰이프트 캔버스가 미술의 오브제적 특성을 강조하며 회화와 조각*, 공예*의 혼합물이라는 주장을 하였다. 이렇게 셰이프트 캔버스 작품은 일반적으로 회화와 조각을 종합한 것으로 간주되지만, 사실 그 의도는 정반대였다. 셰이프트 캔버스는 완전히 평면인 하나의 통일된 화면을 주장하면서 회화는 그려진 표면임을 강조하였기 때문이다. 이는 보다 나중에 등장한, 주로 스텔라가 제작한 다양한 깊이의 공간감을 표현하여 회화와 조각의 구별이 불가능한 삼차원적 앗상블라주* 및 부조*와 대조를 이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