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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량화

망량화 魍魎畵

매우 맑고 옅은 묵으로 그리는 수묵화*의 일종. 중국 남송南宋의 지융智融(즈 롱)에 의해 시작되었다고 전해지며, 남송 후반부터 원대(元代) 초기에 걸쳐 많이 제작되었다. 주로 선종화가(禪宗畵家)의 묵희(墨嬉)로 그려져 선종적인 주제를 많이 다룬다. 무준사범無準師範, 솔옹率翁(直翁), 문무관門無關, 호직부胡直夫(후 찌후), 이요부李堯夫(리 야오후) 등의 작자명이 붙어 있고, 남송 후반의 고명한 선승의 화찬(畵贊)이 쓰여 있는 작품들이 많이 남아 있다. 중국에서의 유품은 거의 없고, 대부분은 일본에 보존되어 있다.

망막의 미술

망막의 미술 Optical Art(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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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주석

망주석 望柱石

무덤을 꾸미기 위해 무덤 앞, 양 옆에 하나씩 세우는 돌기둥으로 멀리서 바라보아 쉽게 알아볼 수 있게 한 표지의 기능을 가진다. 중국에서는 ‘화표주(華表柱)’라고 불렀는데 본래 분묘가 있던 곳에 세운 표지였다. 우리나라에서는 통일신라의 괘능과 흥덕왕릉에서 처음 발견된다. 조선시대의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에 따르면, 능원에 설치되는 망주석은 기둥과 대석(臺石)으로 나뉘어졌으며 기둥의 길이는 7자 3치이며 아랫부분의 7치 정도는 둥굴게 깎아내 대석의 팬 곳에 세우도록 정하였다.

망천도

망천도 輞川圖

산수화*의 한 화제(畵題). 당대(唐代)의 문인화가 왕유王維(우앙 웨이, 699~759)가 망천에 은거하며 자신의 별장과 주변 경치를 그린 그림이다. 망천은 장안長安 교외의 남전현藍田縣에 있는 곡천(谷川)이다. 왕유는 이곳에 망천장輞川莊이라는 별장을 짓고 문인들과 함께 풍류생활을 즐겼다. 뛰어난 절경을 배경으로 문인들의 교유를 주제로 한 이 그림은 없어진 지 오래되었지만 후대까지 산수화의 화제로 널리 유행하게 되었다. 많은 모사품이 제작되기도 하였는데, 오대(五代)의 곽충서郭忠恕(구어 쫑쉬)가 모사했다고 하는 것과 북송北宋의 이공린李公麟(리 꽁린, 1040~1106)이 모본했다는 작품이 지금까지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