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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기

옥기 玉器

옥을 사용한 기물. 중국에서는 옥(玉)이 선사시대 이래로 영성(靈性)을 지니고 있다고 믿어지는 권위의 상징이었다. 주로 연옥(軟玉)을 가리키는데, 오래전부터 실용품과 의식용의 상징으로서 사용되었다. 은대(殷代)부터는 더욱 성행하여 하남성河南省 안양에서 다량 출토되었고, 주대(周代)에는 의례용 서옥(瑞玉)과 제사용 제옥(祭玉)이 있었다. 《주례周禮》에 따르면, 작위를 표상하거나 동서남북의 방위를 나타내는데 사용되기도 했으며 장신구용의 패옥 또는 기물의 장식에도 쓰여졌다. 대표적인 기형에는 규(圭), 장(璋), 벽(璧), 종(琮) 등으로 나눠볼 수 있다.
규는 위가 뾰족하고 아래가 사각의 모양이며 가늘고 긴 좌우대칭형의 판상(板狀)의 서옥으로서, 제후로 봉해질 때 천자로부터 받는 신인(信印)으로 제사나 조빙(朝聘) 때 쓰는 것이다. 장은 규를 절반 나눈 것이고, 벽은 가운데에 구멍뚫린 원반형태로 구멍의 직경과 둘러싼 옥의 폭이 같을 때 벽이라 하고 구멍이 더 크면 환(環) 또는 원(瑗)이라고 한다. 최고의 벽은 신석기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무늬가 없으나 그 후 은殷, 주周시대에는 표면을 정교하게 장식했고, 사회적 신분이나 사자(使者)의 표시 및 제사 등에 사용되었다. 종은 길고 짧은 갖가지 원통상의 옥이다. 이러한 옥기는 특정한 계급에 따라 다른 기형을 지녔고 종류도 다양했다.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에는 표면에 곡문(穀文)이나 기하학적 무늬를 부조*하거나 용봉문(龍鳳文)을 선각 또는 투조하는 절탁(切琢)기술이 크게 발달하였다. 전국 말(戰國末)부터 한대(漢代)에 걸쳐 서옥 중에서 규가 없어지고 벽이 많아졌으며 특수한 용도의 옥기가 만들어졌다. 또한 시신보존의 주술적인 목적으로 시신의 구혈(九穴)을 막는 전(栓)이나 손에 쥐어주는 옥돈(玉豚) 등으로 쓰였으며 옥의(玉衣)로도 사용되어서 옥의 신령성을 빌려 육체의 불멸을 기원했던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서도 신라시대*의 고분에서 옥제(玉製) 물품이 출토되고 금관총金冠塚과 천마총天馬塚의 금관장식에도 쓰이는 등 오래전부터 사용되어왔다.

옥루우

옥루우 屋漏雨

→ 옥루흔

옥루흔

옥루흔 屋漏痕

중국 당대(唐代)의 안진경顔眞卿(이앤 쩐칭)이 고안한 수직방의 용필(用筆)이 두드러진 서체에 대한 비유. 가옥에서 물이 떨어져 벽 사이에 스며드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낸다하여 이름 붙여졌다. ‘옥루우(屋漏雨)’라고도 한다.

옥충

옥충 玉蟲

옥충으로 만든 장식물. 옥충은 비단딱지벌레의 일종으로, 금록색 날개가 매우 아름답다. 경주 98호분의 당초문*이 투조된 금동판을 비롯하여 삼국시대*의 유물에 몇 가지 옥충장식의 예를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