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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조화

화조화 花鳥畵

꽃과 새를 그린 동양화의 한 화목(畵目). 화론서에 따라서는 꽃과 새 외에 영모, 초충, 어해 등을 꽃나무와 함께 그린 그림이 포함되기도 한다. 그 전부터 이러한 그림은 많이 있었지만 중국 당대(唐代)의 장언원張彦遠(즈앙 이앤위앤)의 《역대명화기*歷代名畵記》에서 처음으로 독립된 화목으로 분류되었다. 오대(五代)에 이르러 화조화의 두 가지 양식이 황전黃筌(후앙 취앤)과 서희徐熙(쉬시)에 의해 확립되었다.
황전은 윤곽선을 그리지 않고 색으로 바로 그리는 몰골법*과 짙은 채색을 사용하여 화려하고 사실적인 화조화를 그렸다. 이에 비해 서희는 묵으로 형태를 대강 그린 다음 담채로 채색을 하였다. 따라서 곽약허郭若虛(구어 루어쉬)는 《도화견문지*圖畵見聞誌》에서 “황전은 부귀(富貴)하고, 서희는 야일(野逸)하다”라고 논평했다. 황전의 그림은 원체화*에, 서희의 그림은 문인화*에 영향을 끼쳤다. 북송北宋의 《선화화보*》 〈화조서론花鳥叙論〉에는 화조화가 열 가지 화목 중의 하나로 분류되어 그 지위가 이미 확고해졌음을 알 수 있다.
역대에 걸쳐서 화조화가는 많이 배출되었는데, 예를 들어 당대(唐代)에는 설직薛稷(쉬에 지, 학(鶴)에 뛰어남), 변란邊鸞(삐앤 루안, 공작(孔雀)에 뛰어남), 도광윤刀光胤(따오 꾸앙인, 화죽에 뛰어남) 등이 있고, 오대(五代)에는 곽건운郭乾暉(구어 깐후에이, 매(鷹)에 뛰어남), 황전黃筌(후앙 취앤, 화조(花鳥)에 뛰어남), 서희徐熙(쉬 시, 화조에 뛰어남) 등이, 북송에는 조창趙昌(자오 츠앙, 화(花)에 뛰어남), 임춘林春(린 츠운, 화조에 뛰어남), 이적李迪(리 띠, 날짐승(禽)에 뛰어남) 등이, 남송南宋에는 오병吳炳(우 빙, 鴛, 鴦에 뛰어남), 왕면王冕(우앙 미앤, 1287~1359, 매화(梅花)에 뛰어남), 진순陳淳(츠언 쉰, 묵화(墨花)에 뛰어남), 서위徐渭(쉬 에이, 묵화(墨花)에 뛰어남) 등, 청대(淸代)에는 팔대산인八大山人(빠따르산르언, 물고기(魚)에 뛰어남), 운수평惲壽平(윈 서우 핑, 화(花)에 뛰어남), 화암華嵒(화 이앤, 새(鳥)에 뛰어남) 등, 그리고 근대엔 오창석吳昌碩(우 츠앙스, 1844~1927, 화훼(花卉)에 뛰어남) 등 모두 일대의 명수들이 계속 끊이지 않고 배출되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조선시대 전반에 걸쳐 많은 화조화가 남아있는데, 대표적인 화가로 신사임당申師任堂(1504~1551), 이암李巖, 조속趙涑(1595~1688), 심사정沈師正(1707~1769), 장승업張承業(1843~1897) 등이 있다.

→ ‘사군자’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