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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테가

보테가 bottega(이)

이탈리아 중세 혹은 르네상스* 시대에 성립된 미술가들의 워크숍(workshop) 혹은 아틀리에*이다. 이탈리아어로 ‘가게’를 의미하며 공방*이라고 번역되기도 한다. 대규모 조직의 작업장인 보테가를 운영했던 대표적인 작가로는 르네상스의 기베르티Lorenzo Ghiberti(c.1378~1455)나 베로키오Verrocchio(c.1435~1488) 등이 있다. 한 명의 작가와 몇 명의 조수들로 구성된 보테가에서는 스승의 지휘하에 도제들도 함께 작업에 참가하여 예술작품을 제작했으며, 보테가는 그렇게 제작된 작품들을 전시, 판매하는 장소로 이용되기도 했다.

보티시즘

보티시즘 Vorticism(영)

소용돌이파로 번역되며, 영국에서 일어난 미래주의*와 입체주의*를 종합한 성격의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1914년 영국의 화가이자 소설가인 루이스Wyndham Lewis(1882~1957)가 주창하였으며, 잡지 《질풍:위대한 영국의 소용돌이에 대한 리뷰Blast:Review of Great English Vortex》 제1호의 간행과 동시에 발족하였다. 보티시즘이라는 용어는 이 잡지의 부제인 ‘소용돌이(vortex)’에서 비롯되었고, 기계와 에너지를 찬미하였다.
워즈워드Edward Wadsworth나 로버츠William Roberts(1895~1980), 봄버그David Bomberg(1890~1957) 같은 화가, 조각가로는 엡스타인Jacob Epstein(1880~1959)이 보티시즘에 참여하였으며, 문학에서는 미국의 시인 파운드Ezra Pound가 있었다. 파운드는 “소용돌이는 에너지의 최고점이며, 메커닉 가운데 가장 큰 효과를 나타낸다”고 주장하였다. 이처럼 소용돌이를 세계관의 상징으로 삼는 보티시즘의 역동적인 사고 방식은 전통적으로 정적인 영국의 예술계에 충격을 주었다. 이 그룹의 이념은 미래주의 문학과 사회이론 및 입체주의 이론에 바탕을 두었으며, 영국 전위미술* 운동의 한 분기점을 이루었다.
보티시즘은 제1차세계대전의 발발과 더불어 중단되었지만, 전후에 ‘X그룹’(1920년 결성)이라고 불리는 새로운 단체에 의해 계속되었다. X그룹에는 루이스, 워즈워드, 로버츠 등 기존의 보티시즘 작가들과 런던 그룹*의 진보적인 회원이었던 기너Charles Ginner(1879~1952), 돕슨Frank Dobson(1886~1963), 코퍼Mcknight Kaufer(1890~1954) 등이 참여했다.

보현보살

보현보살 普賢菩薩
Samantabhadra(범)

자비나 이(理)를 상징하는 보살. ‘삼만다발다라(三曼多跋陀羅)’ 또는 ‘필수발다(邲輸跋陀)’ ‘편길(徧吉)’이라고도 한다. 비로자나불* 또는 석가모니의 우협시로 부처님의 이덕(理德)과 정덕(定德)과 행덕(行德)을 맡는다. 문수보살과 함께 여러 보살 가운데 으뜸으로 여래가 중생을 제도하는 일을 돕고, 중생들의 목숨을 길게하는 덕을 가졌으므로 보현연명보살(普賢延命菩薩) 혹은 연명보살이라고도 한다.
《법화경法華經》19권의 〈보현보살권발품제28普賢菩薩勸發品第二十八〉에 의하면, 그는 석가모니가 법화경을 하사한 동방보위덕상불(東方寶威德上佛)의 땅에 이르러 부처가 열반에 든 후에 법화경을 호위할 것을 맹세하고, 하얀 코끼리를 타고서 인간 세상의 온갖 해악을 제거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코끼리를 탄 모습외에 연화좌* 위에 칼을 쥐고 앉아 있는 형상이 있는데, 이 모습은 밀교계통에서 많이 그려졌다.
《화엄경華嚴經》에 의하면 이 보살은 비로자나불 밑에서 보살행을 닦았던 보살들의 대표로서, 구도자들에게 법계(法界)를 열어주는 사실상의 《화엄경》 설법사이다. 보현보살은 관음보살*이나 지장보살*처럼 현세이익 또는 내세이익의 측면이 부족하므로 한국에서 신앙의 대상으로 널리 유행하지 않았다.
반면 중국에서는 4대 보살의 하나로 널리 신앙되었고, 돈황석굴*, 수당대(隋唐代) 벽화*속에 많이 보이며, 조각으로는 운강석굴* 제13굴 및 용문석굴* 빈양동賓陽洞, 하북성河北省 정정현正定縣 융흥사隆興寺, 사천성四天省 대족석굴* 북산北山 등에 있다.

복발

복발 覆鉢

→ 안다

복사

복사 卜辭

→ 갑골문

복수 미술

복수 미술 複數美術 multiples(영)

대량생산을 위해 고안된 미술작품으로서, 예술의 독창성과 위대한 예술가의 가치 기준이자 미술의 오랜 관습인 오리지널리티에 도전한다. 복수미술품의 역사는 오래되었는데, 르네상스* 이후 판화*와 조각*은 작업실이나 공방*에서 그 수를 제한하여 한정판으로 복제되었으며 원작과 다를 바 없는 구매력을 갖고 있었다. 1950년대 중반에 등장한 용어인 멀티플은 다수로 제작되지만 그 수를 한정적으로 제한함으로써 복제와는 달리 작품의 오리지널리티를 보유하는 혁신적인 개념이다. 대량생산이 가능해짐으로써 보다 많은 사람들이 미술품을 구입하고 향유할 수 있다.
1955년 아감Yaacov Agam(1928~ )과 팅겔리Jean Tinguely(1925~1991)는 파리의 미술상인 르네Denise René에게 작품을 복수로 제작하자는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그로부터 4년 후에 스포에리Daniel Spoerri(1930~ )는 파리에 에디시옹 M.A.T.(Editions Multiplication Arts Transformable)를 설립하고 칼더Alexander Calder(1898~1976), 뒤샹Marcel Duchamp(1887~1968), 만 레이Man Ray(1890~1977), 팅겔리, 바자렐리Victor Vasarely(1908~ ) 같은 미술가들의 작품들을 100부 한정판으로 제작하여 판매하였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의 복수미술은 1960년대 이후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번졌다. 특히 키네틱 아트*는 기계에 의해 제작된 대량생산품을 원작으로 보급하였는데, 바자렐리는 1955년에 복수미술의 가능성을 다음과 같이 시사한 바 있다. “우리는 미술 작품에 대한 이해를 요구하는 대신, 작품의 존재를 양적으로 확산시킬 것을 권한다.” 공업적으로 대량생산된 복수미술 작품들은 예술을 소비품으로 전환하고자 하는 의도를 기반으로 대중 속에 깊숙이 파고 들었다.

복음서

복음서 福音書 Gospels(영)

성서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을 다룬 네개의 이야기.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이 저술했다고 전해지는 복음서들은 신약성서의 가장 처음에 놓이며 그 분량은 신약성서의 절반에 해당한다. 원래 복음이라는 말은 ‘좋은 이야기’를 뜻하는 앵글로 색슨어 ‘god-spell’에서 유래했는데, 이것은 또한 ‘기쁜 소식’ 혹은 ‘좋은 이야기’라는 의미의 라틴어 ‘evangelium’과 그리스어 ‘euangelion’을 번역한 것이다. 18세기말부터 요한복음서를 제외한 나머지 세개의 복음서들은 본문 중 중복되는 내용들이 많고,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에 대한 묘사가 서로 비슷하기 때문에 ‘공관복음서*(Synoptic Godspels)’라고 불린다.

→ ‘공관복음서’ 참조

복음서 저자

복음서 저자 福音書著者
Evangelist(영)

신약 성서의 네 복음서*의 저자인 마가, 누가, 마태, 요한. 이들은 기독교 미술에서 인간의 모습이나 날개가 달린 짐승으로 상징화되며 서적의 표지나 모자이크*화, 제단*, 출입문 등에 자주 등장하였다. 복음서 저자들의 초상을 책 앞에 내세우는 것은 헬레니즘*의 관례에 기인한다. 튜닉과 망토 차림을 한 예수가 네 명의 복음서 저자들 사이에 서있는 그림은 340년경에 만들어진 로마의 카타콤*에서 유래한다.
복음서 저자들을 동물로 상징한 그림에서 마가는 사자로, 마태는 천사로, 요한은 독수리로, 누가는 황소로 나타난다. 이러한 복음서 저자들의 상징*은 고딕 성당 건축에서 장식적인 역할을 하였으며 특히 15세기 이후 자주 묘사되었다. 16~17세기의 네덜란드 회화에서 그들은 책을 들고 함께 무리를 이루는 모습으로 그려졌다.

복제

복제 複製 reproduction(영)

원작이 다른 사람의 손에서 동일한 기술적 수단에 의해 모방되는 것을 말한다. 원작의 예술 작품과 동일성이 있다고 인정되는 상태로 재현하며 소재나 기법, 크기가 원작과 같은 경우와 다른 경우가 있다. 일반적으로 복제는 원작자 이외의 손을 빌리게 되는데 작가 자신이나 그의 지시에 따라 행해지는 경우도 있다. 만약 동일 작가의 손에서 이루어질 때는 ‘사본(replica)’이라고 하며, 다른 재료를 사용하거나 원작의 대부분을 임의로 바꾸는 경우도 복제에 해당한다. 모사나 모각에 의한 복제는 비교적 그 수가 적으나, 복제판이나 형 뜨기에 의한 복제는 대량으로 만들어지기도 한다.
특히 판화는 사진기술이 보급되기 이전에는 복제기술로 많이 사용되었다. 조각상의 복제는 이미 헬레니즘* 시대에 성행되었다. 특히 기원전 1세기말부터 상당 기간 성행한 그리스 조각의 복제는 오늘날에도 많이 전해지고 있다.
근세 초기에 이르러 예술가의 개성과 독창성이 중시되면서 미술 작품에 대한 학술적 연구가 이루어졌고 기법의 학습을 위해 복제가 다시 유행하게 되었다. 18세기 이래 각지에 아카데미*가 창설되고 연구와 학습용으로 훌륭한 조각 작품의 복제가 많이 필요하게 되면서 석고 모형이 복제되었다.
이러한 복제품을 세계 최대로 소장하고 있는 곳은 프랑스 국립 박물관이다. 또한 목재와 석재를 써서 조각을 모조하는 성취(punktierung)가 있다. 복제품은 유실된 귀중한 원작의 진면모를 후세에 전하는 중요한 근거를 제공해 왔다.

본생담

본생담 本生譚 jātaka(범)

불타의 전생 이야기로 자타카(jātaka)라고 한다. 불타는 전생에 오백번이나 생을 반복하면서 인간이나 동물로 태어났는데 그 때마다 많은 좋은 업을 쌓았기 때문에 마지막 생에서 성불할 수 있었다고 한다. 불타의 전생에 관한 이야기는 불교도들을 위해 그림이나 조각*으로 표현되었는데 그것을 본생도(本生圖)라고 한다. 산치*나 바르후트*, 아마라바티*의 스투파*에는 본생담의 내용을 조각한 작품이 많이 남아 있다. 이와는 달리 부처의 일생을 미술로 표현한 것은 불전도*(佛傳圖)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