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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트럼

로스트럼 rostrum(영)

고대 로마 ‘포룸 로마눔(포로 로마노)’의 원로원 의원과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 개선문* 사이에 있었던 연단(演壇) 또는 설교 단상으로서 현재는 기초 바닥의 흔적만이 남아 있다. 라틴어로 ‘병선(兵船)의 뱃부리’라는 뜻으로 원래는 고대 군함에서 적군의 배를 깨기 위해 뱃머리에 새 부리형으로 돌출시킨 부분을 가리킨다. 기원전 338년 로마의 원형 경기장 안의 연단을 전리품인 뱃부리로 장식한 것에서 유래하였으나, 뜻이 바뀌어 광장이나 공회당 등의 연단을 말하게 되었다.

로케쉬바라

로케쉬바라 Lokeshvara(범)

캄보디아에서 관음Avalokiteshvara를 가리키는 관용적인 말이다. 이 용어는 791년에 쓰여진 비문에 ‘로케쉬바라보살상(bodhisattva Lokeshvara)을 세운다’는 것에서 처음으로 볼 수 있지만 화불*이 표현된 대승 불교의 관음보살상은 이미 7세기부터 나타난다. 그 후 13세기 전반까지 이 상이 만들어졌으며 특히 불교를 독실하게 믿었던 자야바르만Jayavarman 7세 시대(재위 1181~1220)의 작품이 많다.
초기 작품을 제외한 대부분은 하나의 얼굴에 여러 개의 팔을 가진 일면다비(一面多臂)의 밀교적인 형태로 표현되었으나 다면다비 상도 제작되었다. 대체로 입상(立像) 형식인 이 상들은 돌이나 청동으로 만들어졌다. 앙코르 톰의 성문이나 바욘 사원에 보이는 인면탑*의 얼굴이 바로 로케쉬바라를 표현한 것으로 여겨진다.

로코코 미술

로코코 미술 Rococo Art(영)

미술사에서 루이 15세 시대에 유행했던 특징적인 장식예술 및 장식품들을 일컫는 용어. 로코코는 바로크 미술* 양식에 이어 1700년경 프랑스에서 등장하여 18세기말 복고풍에 밀려 후퇴할 때까지 유럽을 휩쓸었다. 로코코라는 말은 ‘조약돌’을 뜻하는 프랑스어 ‘로카이유(rocaille)’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 단어는 루이 15세 치하의 상류 사회의 취향을 지칭하는 미술사가들의 은어이다. 처음에는 조롱의 뜻으로 자주 사용되었으나, 요즈음에는 미술사가들에 의해 객관적인 의미에서 일정한 통일과 조화를 갖고 있는 예술적이고 장식적인 양식을 일컫는 데 사용된다. 직선을 싫어하고 휘어지거나 구부러진, 정교한 장식을 애호하는 점에서는 바로크와 공통되나, 힘찬 후자에 비해서 로코코는 오히려 우아, 경쾌하고, S자형의 곡선, 비대칭적인 장식, 이국적인 풍취, 중국 풍취가 두드러진다. 로코코는 바로크 미술이 즐겨 쓰던 유동적인 조형 요소를 계승하고 있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는 바로크의 연장 또는 변형이라고 생각될 수도 있다. 다만 바로크가 지녔던 충만한 생동감이나 장중한 위압감 따위가 로코코에서는 세련미나 화려한 유희적 정조로 바뀌었다. 다시 말하면 바로크가 남성적, 의지적임에 반하여 로코코는 여성적, 감각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건축에서는 이탈리아의 유바라Filippo Juvara(1676~1736)와 그 선배 건축가들의 조소(彫塑)적인 바로크 양식이 각국의 전통을 통해 해석되었으며 동시에 프랑스의 새로운 장식법을 도입하여 살아나게 하였다. 로코코 건축의 최초의 작품은 로베르 드 코브의 베르사유 궁전 예배당인데 메소니에Juste Aurèle Meissonier(1815~1891)와 보프랑Gabriel-Germain Boffrand에 의해 완성되었다. 보프랑이 만든 오텔 드 쉬비즈의 타원형 살롱, 가브리엘의 퐁텐블로 궁의 회의실이나 베르사유 궁전의 여러 홀에서 볼 수 있는 화려한 장식은 당시의 취미를 잘 전해주고 있다. 조각에서는 17세기 베르니니Bernini(1598~1680)의 동적인 바로크 미술 대신에 우아하고 사랑스러운 작품들이 만들어졌다. 로코코 회화는 와토Jean Antoine Watteau(1684~1721)의 <시테르 섬으로의 여행>(1717)에서 비롯되는데, 그는 색과 선이 서로 융합되고 서로 연관되는 섬세하고 우아한 작품을 보이면서 품위있는 궁정 남녀의 유희도 등의 걸작을 남겼다.
1730~1735년 로코코의 또 다른 국면이 시작된다. 훗날 ‘회화적 장르(genre pittoresque)’라 불리는 이 시기의 특징은 비대칭적인 장식의 사용이다. 이것은 피노Nicolas Pineau가 실내 장식에서, 메소니에가 은공예에서 처음 시도하였으며, 그 후 조각가이자 보석세공인인 몽돈Jean Mondon과 조각가인 드 퀴빌리에Jean François de Cuvillies가 그 뒤를 이었다.
로코코라는 수식어를 붙일 수 있는 대표적인 화가들로는 와토와 부셰François Boucher(1703~1770)가 있다. 프랑스에서의 로코코의 퇴조는 신고전주의*의 부활에 선행되어 일어났다. 18세기 중반에 코겡Charles Nicolas Cochin과 블롱댕Jacques-François Blondin은 ‘회화적 장르’의 극단적인 사치에서 돌아서 고전적 풍습의 모방이 아닌 이전 세기의 좋은 취향으로 돌아갈 것을 주장하였다. 결국 로코코는 고대풍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고 새로운 취향의 고전주의가 출현함으로써 종말을 고하게 된다.

로터스 기둥

로터스 기둥 lotus column(영)

고대 이집트의 장식기둥의 한 종류로 연꽃무늬 모양으로 꾸민 기둥. 봉우리 또는 꽃모양의 주두*와 연꽃의 둥근 단면의 줄기를 4~6가닥으로 모양을 낸 주신(柱身, shaft)으로 구성되었다. 주두 바로 밑은 끈으로 3~5번 둘렀다. 봉우리형 주두의 로터스 기둥은 제5왕조(기원전 2494~2445)에서 비롯되어 중왕국시대(기원전 2050~1786경)에도 사용되었으나, 신왕국시대(기원전 1567~1085경) 이후로는 극도로 양식화되어 파피루스 기둥*과 구별이 곤란한 것도 생겼다.

로톤다

로톤다 rotonda(이)

라틴어의 ‘rotundus(원형의)’에서 파생된 말로 원형 건축을 가리키며, 둥그런 평면구조를 가지며 주로 윗부분이 돔*으로 되어있는 독립적 건물, 또는 큰 건축물의 일부를 이루고 있는 방이다. 로마의 판테온이 대표적인 예이다.

루미노그램

루미노그램 luminogram(영)

광적(光跡) 사진의 일종으로 회중전등 등의 작은 발광체(發光體)의 자유로운 운동궤적을 기록한 사진*을 말한다.

룰렛

룰렛 roulette(프)

동판화* 도구의 일종. 강철 원판으로 된 북 모양의 롤러와 반대편 끝에 달려 있는 뾰족한 톱니바퀴로 구성되어 있다. 가운데 있는 중심축에 나무나 금속의 손잡이가 달려 있어서 쉽게 굴릴 수 있다. 명칭도 프랑스로 ‘돌아가는 작은 바퀴’라는 뜻의 단어에서 유래하였다. 동판면 위에 점선이나 반복적인 압인문을 새기는 데 사용하며, 특히 18세기에 발달하였다.

르네상스 미술

르네상스 미술 Renaissance Art(영)

14세기 이탈리아에서 시작되어 16세기 유럽 전역을 풍미하며 정점에 이르렀던 미술 경향. 본래 프랑스어로 ‘재탄생’을 의미하는 르네상스라는 용어는 문학 및 예술운동에서 특정한 시대를 의미하는 것 이외에도 중세기의 마감과 근대 시대의 출발을 알리는 전환기를 포괄하고 있다.
미술사가인 바자리Giorgio Vasari(1511~1574)는 《미술가 열전Le vite de’più eccelenti architetti, Picttoroi et scultori Italiani》(1550)에서 13세기 후반 이후의 이탈리아, 특히 토스카나의 미술가들에게 로마제국의 몰락과 함께 잊혀진 미술의 부활을 주장하였다. 여기에서 바자리가 표현한 이탈리아어로 ‘부활(rinascimento)’이라는 단어를 1840년경 프랑스의 미슐레Jules Michelet가 번역하는 과정에서 르네상스라는 용어가 유래되었다. ‘르네상스야말로 세계와 인간에 대한 발견이었다’는 유명한 문구를 남긴 미슐레는 르네상스를 단순한 문화적 부흥 이상의 것, 즉 근대 세계의 출발이었다고 주장한 최초의 역사가였다. 이어서 스위스의 부르크하르트Jacob Burckhardt도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근대 정신이 탄생한 시기라고 해석하였다.
르네상스는 우선 기본적으로 문화적, 미술적 재흥을 의미했으며, 특히 르네상스는 그리스 로마 문화를 회생시키려는 의식적인 운동이었다. 이는 브루넬레스키Filippo Brunelleschi(1377~1446)와 도나텔로Donatello(1382~1466)가 로마에서 고대 로마식 건축과 조각에 관한 연구에 몰두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이들이 다시 피렌체로 돌아와 자신들의 고전 지식을 이용한 작품활동을 시작함에 따라 고대 세계의 미술이 다시 빛을 보게 되었던 것이다.
고전주의*의 부활, 인본주의(humanism), 자연의 재발견, 개인의 창조성 등을 특징으로 하는 르네상스 정신이 가장 두드러지게 표현된 것은 무엇보다 미술 분야였다. 당시 미술은 과학의 차원으로까지 간주되었으며, 자연을 탐구하는 수단인 동시에 발견의 기록이었다. 따라서 미술은 가시적인 세계에 대한 관찰에 바탕을 두고 원근법* 등의 수학적 원칙에 따라 실행되었다. 르네상스 회화의 창시자인 마사치오Masaccio(1401~1428)는 인체해부학을 연구하였고, 원근법에 의한 객관적 사실주의를 추구하였다. 그의 뒤를 이은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Piero della Francesca(1415~1492), 베로키오Andrea del Verrocchio(c.1435~1488) 등은 선과 공간을 이용한 원근법과 해부학에 대한 과학적인 연구를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한편 르네상스가 본격적으로 전개되기 전인 13세기말과 14세기초 ‘초기 르네상스(proto-renaissance)’ 시기의 대표적인 화가로는 지오토Giotto(1266~1337)가 있다. 명료하고 단순한 구조와 심리적 통찰이 돋보이는 그의 작품은 피렌체의 치마부에Giovani Cimabue(c.1240~1302)와 같은 동시대 작가들이 선을 사용한 단조로운 장식과 종교적 위계 질서를 연상시키는 구성 방식에 의존했던 것과는 구별되는 것이었다.
15세기에는 피렌체를 중심으로 보티첼리Botticelli(1445~1510), 만테냐Mantegna(1430~1506)가 활약했고, 16세기에는 로마, 밀라노, 베네치아 등지에서 미켈란젤로Michelangelo(1475~1564), 라파엘로Raffaello(1483~1520),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1452~1519) 같은 거장들이 나와 1490년대 초반부터 1527년까지 대략 35년간 지속되었던 전성기 르네상스(high-renaissance) 회화 양식을 완성하였다.
르네상스 인문주의는 인간을 우주의 중심으로 규정하고 무한한 발전 가능성을 지닌 존재로 파악했으며, 인간은 모든 지식을 포용하고 자신의 능력을 최대로 발휘해야 했다. 한편 스스로를 조각가라고 여겼던 미켈란젤로는 그의 그림조차도 조각적으로 표현하였다. 미켈란젤로 최고의 역작은 1508년에서 1512년까지 4년에 걸쳐 제작한 바티칸의 시스틴 성당 내부를 장식하고 있는 대규모 천장 프레스코*화이다. 다음으로 라파엘로는 고전적인 정신, 즉 조화와 미 등을 완벽하게 표현하여 고유의 우아한 화풍을 확립하였다.
한편 르네상스 건축은 중세 고딕 건축처럼 추상적인 선의 형식이 아니라, 그리스와 로마 건축을 모델로 한 인본적이고 구성적인 형태미를 특징으로 한다. 당시 피렌체에는 부유한 상인 권력 가문들에 의해 많은 궁전과 교회, 수도원* 등의 건축물이 제작되었고 그 내부는 미술 작품으로 장식되었다. 그 중 가장 유명한 가문이었던 메디치 가*는 예술 활동에 호의적이었고 미술가들에 대한 지지와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렇게 독특한 피렌체의 상황은 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이 발전하기 위한 토대를 제공하였다.
전성기 르네상스 건축에서 그 창시자는 브라만테Donato Bramante(1444~1514)라고 할 수 있다. 교황 율리우스 2세는 그를 교황청 건축가로 임명하고 4세기에 세워진 성베드로 대성당의 대대적인 개축안을 구상하게 했는데, 이 때 브라만테가 설계한 성베드로 대성당의 쿠폴라는 브루넬레스키의 피렌체 대성당 돔, 만토바에 있는 알베르티Leone Battista Alberti(1404~1472)의 산토 안드레아 성당 등과 더불어 대표적인 르네상스 건축으로 손꼽힌다. 이 밖의 건축가로는 팔라디오Andrea Palladio(1508~1580) 등이 있고, 조각에서는 도나텔로Donatello(1382~1466), 베로키오Verrocchio(c.1435~1488), 기베르티Lorenzo Ghiberti(c.1378~1455)가 대표적이다.
번성을 거듭하던 르네상스는 1527년 로마의 몰락과 함께 막을 내리고 16세기에는 매너리즘*으로 빠져들었다. 그러나 르네상스 정신에 근거한 예술 작품들은 이탈리아 북부와 북유럽에서 계속 탄생하였다. 티치아노Tiziano(c.1485~1576), 지오르지오네Giorgione(1476~1510), 틴토레토Tintoretto(1518~1594), 베로네제Paolo Veronese(1528~1588) 등이 활약한 베네치아파*도 그중 하나이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 피렌체의 지적인 분위기에 가장 근접한 16세기 화가는 독일의 뒤러Albrecht Dürer(1471~1528)였다. 그는 시각적인 실험과 자연에 대한 연구를 지속적으로 추구하였으며 동판화*와 목판화*를 이용하여 르네상스와 북구의 고딕 양식을 융합시켜 서구 세계에 확산시켰다.
한편 북알프스에서는 플랑드르의 반 아이크 형제Hubert & Jan van Eyck와 보슈Hieronymus Bosch(c.1450~1516), 네덜란드의 브뤼겔Pieter Bruegel(c.1525~1569), 독일의 크라나흐Lucas Cranach(1472~1553), 홀바인Hans Holbein(1497~1543), 프랑스의 퐁텐블로파* 등이 활약하며 르네상스 미술을 발전시켜 나갔다.

르포르타주 포토그래피

르포르타주 포토그래피 Reportage Photogra-phie(프)

→ 보도사진

르푸스와르

르푸스와르 repoussoir(프)

프랑스어로 ‘밀어내다, 물리치다’를 뜻하는 동사 repousser에서 유래한 회화 기법 상의 용어. 그림의 구성상 전경(前景)에 위치하여 관람자의 시선을 화면에 집중시키는 역할을 하는 인물이나 물체를 가리킨다. 일반적으로 르푸스와르는 두드러지거나 진한 색채로 묘사됨으로써 상대적으로 회화의 배경에 있는 장소나 주된 정경이 후퇴하는 듯이 보이는 효과를 유발하여 화면에 깊이감을 준다. 뿐만 아니라 묘사하려는 장면이나 이야기를 부각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