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현실주의
초현실주의 超現實主義 Surréalisme(프)
제1차세계대전이 종결된 이듬해인 1919년부터 제2차세계대전 발발 직후까지 약 20년 동안 프랑스를 중심으로 해서 일어났던 전위적인 문학 예술운동. 다다*과 미래주의* 등 20세기에 등장한 다른 전위운동에 비해 양차 세계대전 동안 가장 폭넓게 확산되었으며, 논쟁적인 예술 운동이 되었다. 이성의 지배를 거부하고 비합리적인 것, 의식 아래의 세계를 표현하는 예술 혁신 운동으로 추상미술과 함께 20세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예술 사조의 하나이다.
초현실주의는 근본적으로 경험의 경계를 넘어서려고 애썼으며, 현실을 본능적이고 잠재적인 꿈의 경험과 융합시켜 논리적이며 실재하는 현실, 그 자체를 바라보는 시각을 확장시키려 했던 바 이것은 절대적 혹은 초월적인 현실에 도달하기 위한 것이었다. 직접적으로는 다다의 연속과 반동으로 생겼고, 그 명칭은 아폴리네르Guillaume Apollinaire(1880~1918)의 희곡 《테레지아의 유방》(1918)의 부제 ‘초현실주의의 테마’에서 유래하였다.
그러나 주의로서 확립된 것은 브르통André Breton(1896~1966)이 1924년 발표한 ‘초현실주의 선언*’에서이다. 그는 ‘말로든 글로든 그 외의 어떠한 수단에 의해서든 사유의 현실 작용을 표현하려고 하는 순수한 심적 오토마티슴*, 이성에 의한 아무런 통제 없이, 미적, 도덕적인 선입관 없이 행해지는 사유의 옮겨쓰기’라고 정의했다. 브르통은 또 초현실주의의 목적을 ‘이전의 꿈과 현실의 모순된 상황을 절대적 현실, 초현실적 상태로 변형시키는 것’이라 하였다. 이러한 일반적인 목적 안에서 서로 상이하면서도 모순되지 않는 수많은 주장과 기술을 상호 혼합시키면서, 이성과 의식적인 통제의 지배를 거부하려고 한 다양한 시도라고 할 수 있다.
같은 해에 브르통은 아라공Louis Aragon, 엘뤼아르Paul Eluard 등과 《초현실주의 혁명》지(1924~1929)를 간행하였다. 1929년에 제2선언이 발표되었는데, 이 시기를 경계로 해서 사회적 관심을 강화시킨 공산주의에 접근하는 일파(아라공)와 순수한 예술 운동으로서 나아가는 일파(브르통)로 분열된다. 1930년에 《초현실주의 혁명》지는 《혁명에 봉사하는 초현실주의》로 이름을 바꾸었다.
1925년 파리에서 최초의 국제 초현실주의 종합전이 열려 아르프Jean Arp, 에른스트Max Ernst(1891~1976), 데 키리코Georgeo de Chirico(1888~1978), 마송André Masson, 만 레이Man Ray 등이 여기에 출품했다. 또한 1938년에 파리에서 열린 국제 초현실주의전이 이 운동의 정점이었는데, 1947년에 파리의 국제전을 다시 부활시켰지만 이전의 왕성함은 없고 추상미술의 세력에 억눌리는 경향을 보였다.
이 운동의 문학적 전제가 되는 이들로서 랭보, 보들레르, 로트레아몽 등이 있었다. 미술사에서 이 운동을 예시한 미술가들은 보슈Hieronymus Bosch(1450~1516), 아르킴볼도Giuseppe Arcimboldo, 파라네시, 고야Francisco de Goya(1746~1828), 롭스Felicien Victor Rops, 그리고 현대에 와서는 르동Odilon Redon(1840~1916), 데 키리코 등으로, 환상적이면서도 기이한 면에 대해 새로운 관심을 보였다. 이들과 유사한 특징 때문에 샤갈Marc Chagall(1887~1985) 또한 이 운동의 선두 주자로 언급된다. 이들은 무의식이 프로이트의 이성의 통제를 뛰어넘은 잠재된 충동과 상상의 세계를 해방시킨다는 학설을 원용하여 자동기술법*에 의한 다양한 방법을 개발했다.
초현실주의 시인들은 자동기술적인 글을 썼고 미로Joan Miró(1893~1983), 아르프, 마송, 에른스트와 같은 화가들은 프로타주*와 꿈의 현실적 재생산 사이를 넘나드는 기법을 통해 시각적인 등가물을 창출하려고 했다. 그러나 회화나 조각의 복잡한 기법들은 순수한 자동기술법으로는 불완전하기 때문에 최소한 어느 정도의 의식적인 작업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발견된 오브제*’와 꿈이 강조되는 것이다.
초현실주의 회화의 가장 특징적인 면은 과거에 꿈을 그린 그림들과는 다르다는 점이다. 즉, 꿈의 공간에 단순한 재생산(예컨대 탕기Yves Tanguy(1900~1955)의 그림 속에서 볼 수 있듯)과, 논리적으로 서로 상관이 없는 대상들을 암시적으로 병치해 꿈의 특정한 감성적 특징을 전달하는 것과의 차이점이다.
또한 초현실주의자들은 비기능적이거나 전혀 기능성이 없으면서도 정교하게 구성된 물체처럼 보이도록 하기 위해서 대상(물체)을 그들의 규범적인 대(臺)에서 끌어내려 진열함으로써 다다이스트인 뒤샹Marcel Duchamp(1887~1968)과 피카비아Francis Picabia(1879~1953)의 방법을 이어받고 있다. 비논리적인 병치 방법은, 환상의 구조에 객관적 실재의 환영을 부여하려 했던 19세기 후반의 아카데믹한 그림이나, 라파엘전파*의 매우 섬세한 양식과 유사한 사진 기술과의 결합 속에서 달리Salvador Dali(1904~1989)와 마그리트René Magritte에 의해 특히 발전되었다.
그리고 그들의 혼란스러운 인상은 사실주의적 처리와 비현실적 주제 사이의 혼합에 의해 강화되었다. 달리, 만 레이, 벨머Hans Bellmer(1902~1975) 그리고 다른 초현실주의자들 역시 막연한 잠재의식적 연상을 유발시켜 모호한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기법을 개발했다.
특히 달리는 회화를 상상의 세계를 만드는 색채 사진이라고 보고 편집광적 비판*방법, 즉 착란 현상을 해석하고 끼워맞추는 연상에 근거한 비합리적 인식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또 소위 초현실주의의 오브제*는 물체를 그것의 실용으로부터 분리시켜 주관 속에서 작용하게 하는 예술품으로 전화(轉化)시킨 것이다.
초현실주의 운동은 연극, 영화, 사진, 상업미술에서도 다루어지고 있다. 이 운동의 미학은 브르통과 엘뤼아르, 레베르디 같은 프랑스 시인들에 의해 정립되었다. 브르통은 가장 중요한 이론가 중 한 사람으로 1924년과 1929년에 발표된 <초현실주의의 선언문>을 책임 집필하였다. 1928년 그는 《회화와 초현실주의》를 출판하기도 했다. 1926년에 초현실주의자들은 그들의 전용 전시장 ‘초현실주의 화랑’을 설립했고, 1936년(런던)과 1947년(파리)에는 초현실주의의 중요한 전시회가 개최되기도 했다.
초현실주의에 대한 열광은 1930년대 이후 점차 줄어들었지만, 완전히 소멸된 것은 아니고 제2차세계대전 이후에도 소규모로 유지되고 있다. 20세기 미학에서 이 운동의 중요성은 이러한 것에 대한 관심이 없던 때에 놀랍고도 이국적인 것의 부활을 보여 주었다는 것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