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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르곤

고르곤 Gorgon(영)

그리스 신화에서 두 발과 허리띠에 뱀을 가진 괴물 세 자매. 포르키스Phorkys와 케토Keto의 딸로, 스텐노Sthenno, 에우리알레Euryale, 메두사Medusa를 지칭한다. 이들의 얼굴을 보는 사람은 마력에 의해 돌로 변했다고 한다. 그 중 메두사만은 불사(不死)가 아니어서 영웅 페르세우스Perseus에 의해서 퇴치당한다. 메두사를 퇴치하는 페르세우스의 이야기는 기원전 600년경 코르푸 섬 아르테미스 신전의 페디먼트* 조각 등 고대미술에 계속 등장하였으며, 근세에도 카라치Carracci(1560~1609)의 <메두사의 목을 자르는 페르세우스> 등의 작품이 있다.

고린파

고린파 光琳派

→ 린파

고목도

고목도 枯木圖

동양 화훼화(花卉畵)의 한 화제(畵題). 문인화*의 영역에 속하며 마른 나무를 그린 그림이다. 당대(唐代)에 그려진 송석도(松石圖)나 오대(五代)에서 북송北宋에 걸쳐 제작된 산수화* 중에 보이는 해묵은 나무가 그 시초라고 한다. 북송시대에 그려졌다는 소식蘇軾(쑤 스, 1036~1101)의 <고목도枯木圖>는 기록으로만 전하고 확실한 유품은 없다. 문인의 묵희(墨戱)로서 묵죽*(墨竹)과 더불어 특히 원대(元代)에 유행하였다. 몽골족에 나라를 빼앗긴 한족(漢族) 문인들의 저항정신과 지조를 상징하는 화목(畵目)으로 널리 그려졌다.
이곽파*李郭派의 화풍으로 많이 그려졌고 이간李衎(리 칸, 약 1260~1310), 오진吳鎭(우 즈언), 조지백曺知白(차오 즈바이) 등이 유명하였다. 대표작으로는 금金의 왕정균王庭筠(우앙 띵쥔, 12세기)이 그린 <유죽고차도幽竹枯槎圖>, 자정子庭(쯔 띵)이 그린 <고목도> 등이 있다. 특히 왕정균이 그린 <유죽고차도>가 유명한데, 그는 고목과 죽석(竹石) 등을 잘 그렸다고 한다. 이 그림은 고목과 대나무를 섞어 그려 대나무의 절개와 고목의 창연함을 표현한 작품으로, 수묵의 농담처리가 뛰어난 문기(文氣)가 높은 작품이다.
묵죽과 괴석(怪石)을 조화시킨 ‘고목죽석도枯木竹石圖’도 고목도의 한목 유형에 속한다. 북송시대의 소식이 그렸다는 <고목죽석도>에 대해 미불米芾(미 후, 1051~1107)은 그의 저서 《화사*畵史》에서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 “자첨(子瞻; 소식)이 그린 고목은 가지와 줄기가 마치 규룡처럼 꾸불꾸불하고 돌의 준(皴)은 굳세고 또한 매우 기괴하여 마치 그의 가슴 속에 맺혀 있는 울적함과 같다.” 이와같은 평가는 문인들의 묵희로서의 사의*(寫意)를 반영하는 것이다. 기타 작품으로 조맹부趙孟頫(자오 멍후, 1254~1322)의 <과목죽석도窠木竹石圖>(대북 고궁박물원)가 유명하다. 조맹부는 묵죽 또는 고목죽석도에도 많은 업적을 남겼다. 그는 묵죽, 고목, 바위 그림에 서예의 예서(隸書), 전서(篆書), 비백법(飛白法)의 기법을 적용할 것을 제기하는 등 서화일치론*(書畵一致論)을 주장하였다.

고목죽석도

고목죽석도 枯木竹石圖

→ ‘고목도’ 참조.

고분벽화

고분벽화 古墳壁畵

고대 무덤의 내부 벽에 그려진 그림. 왕과 귀족 등의 지배층 무덤에 그려졌으며, 죽은 사람의 사후세계를 위해 제작되었다. 주벽에는 현실생활과 관련된 내용을, 천장에는 하늘세계와 관련된 내용을 그려넣어 무덤 안을 하나의 축소된 우주로 꾸몄다. 한대(漢代)부터 그리기 시작하여 4~7세기 중엽 고구려高句麗에서 가장 성행했다. 고대 회화의 양식과 함께 당시 사람들의 내세관(來世觀)을 비롯한 사상, 종교, 각종 생활 풍속 등을 담고 있어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고비

고비

한국 전통 목가구 중의 하나로 벽에 걸어두고 편지나 두루마리* 등을 꽂아두는 소형 가구. 기원은 분명치 않으나 《재물보才物譜》에서 지와자(紙窩子)를 ‘고삭고비’라 일컬었던 것으로 보아 두꺼운 종이로 주머니 모양을 만들어 걸어두던 것임을 추정할 수 있다. 사랑방에는 주로 곧은 대나무살을 다듬어서 시원한 느낌의 선(線) 처리를 한 것 또는 오동나무 판재로 제작한 것을 두었다.

고사산수

고사산수 故事山水

산수화*의 한 화제(畵題). 자연을 배경으로 꾸민 신화, 역사적인 인물에 얽힌 일화나 이야기를 산수 중심으로 그린 것이다. 황제 신화에 의한 <백택도百澤圖>, 동진(東晋)의 왕희지王羲之(우앙 후에이즈)의 일화를 그린 <섬계방대도剡溪訪戴圖>, 당대(唐代) 현종의 일화를 다룬 <명황행촉도明皇行蜀圖>, 백거이白居易(바이 쥐이)에 의한 <비파행도琵琶行圖>, 소식蘇軾(쑤 스, 1036~1101)에 의한 <적벽도赤壁圖> 등이 잘 알려져 있다. 산수보다 인물이 화면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경우에는 고사인물화라고 부르기도 한다.

고석

고석 鼓石

한국 석상의 네모서리를 괴는 북모양의 돌. 혹은 족석(足石)이라고 한다. 고석의 형태와 크기는 왕실의 예전(禮典)인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에 따르면, 북모양 사면에 나어(羅魚)의 머리를 새긴다면 높이는 한자 다섯치, 지름이 두자 두치 닷푼으로 규정되어 있다.

고세파

고세파 巨勢派

일본 헤이안平安 전기(794~894) 고세 가나오카巨勢金岡를 시조로 한 화가의 가계(家系). 이들은 대대로 궁정의 에도코로繪所(헤이안 시대 이래 궁정이나 사원에 소속된 회화 제작을 담당했던 기관)의 중요한 직위를 맡고 있었다. 가나오카는 중국적 주제(唐風)의 풍경화*, 풍속화*를 일본화했고, 화가의 사회적 지위를 높이는 데 공헌하였다. 10세기 무렵에는 2세 기미타다公忠, 기미모치公望 형제에 의해 제2양식이 전개되었다. 그 전통은 헤이안 시대의 세속화(世俗畵) 전통을 확립시킨 히로타카廣貴로 이어졌다. 이들은 후세에 거장으로 그 이름을 떨쳤지만 유품은 남아있지 않다.

고숙파

고숙파 姑熟派 gushoupai(중)

중국 명말 청초(明末淸初)의 문인화*가 소운종蕭雲從(샤오 윈츠옹)을 시조로 하는 화파. 무호無湖(安徽省)출신의 소운종은 《도회보감속편圖繪寶鑑續篇》 《국조화징록國朝畵 徵錄》등에서 당도當塗(무호의 동북 30km) 출신으로 전해지기 때문에, 당도 부근의 고숙계姑熟溪 또는 고숙성姑熟城의 이름에 따라 고숙파라 명명한 것 같다. 운천雲晋(윈츠옹) 동생의 아들 세대에 가서 형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