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1 2 7

레디메이드

레디메이드 ready-made(영)

사전적 의미로는 ‘기성품의, 전시용의’ 작품이라는 뜻이지만, 뒤샹Marcel Duchamp(1887~1968)이 창조해 낸 이후 예술적 측면에서 깊고 다양한 철학적 의미를 갖게 된 용어이다. 레디메이드는 뒤샹이 1913년부터 예술로서 전시하기 위해 임의로 선택한 양산된 제품에 붙인 말이다. 뒤샹은 소변기나 삽처럼 대량생산된 물건을 전혀 변형시키지 않고 제목만 첨부한 후 전시함으로써 그 물건을 기성품 조각으로 승화시켰다.
뒤샹의 레디메이드와 관련된 의미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기성품인 레디메이드는 정확하게 말하면 뒤샹에 의해 ‘가려 뽑힌’ 용어이다. 이것은 그 작품의 ‘다시 고쳐 보기’ 혹은 ‘다시 이름 지음’의 관계와 대응하게 된다. 곧 선택하는 일에 의해 일반어를 특수어로 만드는 행위가 되는 것이다. 이 선택, 분리, 창조의 관계는 1916년 뒤샹의 작품 <여행용 접는 의자>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레디메이드로서 제공된 타자기의 비닐 덮개는 본체로부터 분리되어 그 통상적인 기능과 명칭을 상실한다. 즉 임의적인 규칙과 습관에 의해 결합되어 있을 뿐인 사물과 명칭의 관계는 일단 분리되면, 사물은 우리들의 언어적인 소유 바깥의 사물로서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다. 이것은 뒤샹이 1921년 발표했던 <로즈 세라비Rose Sélavy 왜 재채기를 하지 않나?>라는 오브제 작업에서도 그 언어적인 의미를 읽을 수 있다. 금속제의 새장 속에 들어 있는 각설탕처럼 보였던 흰 입방체가 실제로는 대리석인 것을 알게 된 관중은 새삼스럽게 ‘물체’를 인식하게 된다. 결국 뒤샹은 레디메이드를 언어적 발상의 세계로부터 물체에서 출발하는 세계로 환원시키는 실마리로 사용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 레디메이드는 뒤샹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뒤샹의 작품이라 하지 않을 수 없는 패러독스를 지적할 수 있다. 금세기에 있어서 예술가와 예술의 새로운 관계, 새로운 역할, 그리고 새로운 의미는 여기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하여도 좋을 것이다. 특히 우연성, 행위, 개념성, 기성품의 사용이라고 하는 문제는 직접적이고 결정적인 레디메이드의 영향이었던 것이다.
뒤샹의 의도는 미술에서 지적(知的)인 바탕을 강조하고, 그럼으로써 미술창작과정에 동반되는 신체적 활동과 손재주에 대한 관심을 지적인 것으로 돌리려는 것이었다. 이것은 브라크George Braque(1882~1963)나 피카소Pablo Picasso(1881~1973), 또는 초현실주의*의 작가들이 바닷가의 돌조각이나 짐승의 뼈 등을 주워 오브제로 한 방법과 상통하는 것으로 미(美)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즉 미는 발견해야 한다는 것이 근대 미술*의 새로운 특색이다. 그래서 어디서나 손에 넣을 수 있는 레디메이드를 창의를 가지고 발견하면 창작된 예술 작품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뒤샹의 레디메이드는 초현실주의자들의 ‘발견된 오브제*’와는 다르다. 이 차이를 뒤샹 자신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나의 레디메이드는 개인 취미의 문제이다. 발견된 오브제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 이른바 발견된 오브제가 아름다운 것인가 특이한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개인의 기호인 것이다. 기성품의 선택은 미적인 즐거움에 의한 것은 결코 아니다. 선택은 시각적인 무관심에 기초한 것이다.” 이러한 뒤샹의 레디메이드 개념은 전후 서구 미술, 특히 팝 아트* 계열의 작가들과 신사실주의* 및 개념미술* 작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