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코코 미술
로코코 미술 Rococo Art(영)
미술사에서 루이 15세 시대에 유행했던 특징적인 장식예술 및 장식품들을 일컫는 용어. 로코코는 바로크 미술* 양식에 이어 1700년경 프랑스에서 등장하여 18세기말 복고풍에 밀려 후퇴할 때까지 유럽을 휩쓸었다. 로코코라는 말은 ‘조약돌’을 뜻하는 프랑스어 ‘로카이유(rocaille)’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 단어는 루이 15세 치하의 상류 사회의 취향을 지칭하는 미술사가들의 은어이다. 처음에는 조롱의 뜻으로 자주 사용되었으나, 요즈음에는 미술사가들에 의해 객관적인 의미에서 일정한 통일과 조화를 갖고 있는 예술적이고 장식적인 양식을 일컫는 데 사용된다. 직선을 싫어하고 휘어지거나 구부러진, 정교한 장식을 애호하는 점에서는 바로크와 공통되나, 힘찬 후자에 비해서 로코코는 오히려 우아, 경쾌하고, S자형의 곡선, 비대칭적인 장식, 이국적인 풍취, 중국 풍취가 두드러진다. 로코코는 바로크 미술이 즐겨 쓰던 유동적인 조형 요소를 계승하고 있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는 바로크의 연장 또는 변형이라고 생각될 수도 있다. 다만 바로크가 지녔던 충만한 생동감이나 장중한 위압감 따위가 로코코에서는 세련미나 화려한 유희적 정조로 바뀌었다. 다시 말하면 바로크가 남성적, 의지적임에 반하여 로코코는 여성적, 감각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건축에서는 이탈리아의 유바라Filippo Juvara(1676~1736)와 그 선배 건축가들의 조소(彫塑)적인 바로크 양식이 각국의 전통을 통해 해석되었으며 동시에 프랑스의 새로운 장식법을 도입하여 살아나게 하였다. 로코코 건축의 최초의 작품은 로베르 드 코브의 베르사유 궁전 예배당인데 메소니에Juste Aurèle Meissonier(1815~1891)와 보프랑Gabriel-Germain Boffrand에 의해 완성되었다. 보프랑이 만든 오텔 드 쉬비즈의 타원형 살롱, 가브리엘의 퐁텐블로 궁의 회의실이나 베르사유 궁전의 여러 홀에서 볼 수 있는 화려한 장식은 당시의 취미를 잘 전해주고 있다. 조각에서는 17세기 베르니니Bernini(1598~1680)의 동적인 바로크 미술 대신에 우아하고 사랑스러운 작품들이 만들어졌다. 로코코 회화는 와토Jean Antoine Watteau(1684~1721)의 <시테르 섬으로의 여행>(1717)에서 비롯되는데, 그는 색과 선이 서로 융합되고 서로 연관되는 섬세하고 우아한 작품을 보이면서 품위있는 궁정 남녀의 유희도 등의 걸작을 남겼다.
1730~1735년 로코코의 또 다른 국면이 시작된다. 훗날 ‘회화적 장르(genre pittoresque)’라 불리는 이 시기의 특징은 비대칭적인 장식의 사용이다. 이것은 피노Nicolas Pineau가 실내 장식에서, 메소니에가 은공예에서 처음 시도하였으며, 그 후 조각가이자 보석세공인인 몽돈Jean Mondon과 조각가인 드 퀴빌리에Jean François de Cuvillies가 그 뒤를 이었다.
로코코라는 수식어를 붙일 수 있는 대표적인 화가들로는 와토와 부셰François Boucher(1703~1770)가 있다. 프랑스에서의 로코코의 퇴조는 신고전주의*의 부활에 선행되어 일어났다. 18세기 중반에 코겡Charles Nicolas Cochin과 블롱댕Jacques-François Blondin은 ‘회화적 장르’의 극단적인 사치에서 돌아서 고전적 풍습의 모방이 아닌 이전 세기의 좋은 취향으로 돌아갈 것을 주장하였다. 결국 로코코는 고대풍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고 새로운 취향의 고전주의가 출현함으로써 종말을 고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