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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야마시대 미술

모모야마시대 미술 桃山時代美術

무로마치 바쿠후室町幕府가 멸망하고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1534~1582)가 천하를 통일한 후(1573)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멸망(1615)까지를 미술사에선 보통 모모야마시대라고 한다. 이 시대에는 정치가 안정됨에 따라 산업이 발달했고 경제가 풍요로워진 것이 문화면에도 반영되었다. 인간이 만들어 낸 현실적인 힘에 의해서 낡은 형식은 타파되었고, 현실적, 적극적인 문화가 탄생되었다. 또한 종전에는 거의 없었던 서양과의 교류가 행해져 일본인의 생활 속에 서양적인 요소가 수용되기 시작하였다.
건축:모모야마시대는 봉건 영주의 위용을 과시하기 위한 성곽건축의 황금시대라고 할 수 있다. 오다 노부나가의 명으로 1576년에 건축된 7층의 천수각(天守閣)이 있었던 〈아쓰지 조安土城〉의 고층양식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의해 이어졌다. 그리하여 〈오사카 조大阪城〉, 교토의 〈슈라쿠 다이聚樂臺〉 등의 성곽건축으로 이어졌다. 1609년에 이케다 데루마사池田輝政가 완성시킨 〈히메지 조姬路城〉는 현존하는 대표적 천수각이 있는 성곽이다.
회화:무장(武將)이 화려한 성과 저택을 짓게 되자 그 내부를 장식하기 위하여 커다란 화면이 필요하게 되었고, 이동할 수 있는 후스마나 병풍이나 벽지에 그림을 그리는 쇼헤키가*(障壁畵)가 발달하게 되었다. 야마토에*大和繪의 색채와 수묵화의 구성을 종합한 가노파狩野派는 당시 모모야마화단의 주도적인 위치를 차지하였다. 이외에 지샤쿠인智積院의 장벽화를 그린 하세가와 도하쿠長谷川等伯, 겐닌지建仁寺의 장벽화를 그린 가이호 유쇼海北友松도 중요한 위치에 있는 화가이다. 장벽화 이외에 일본미술과 유럽미술의 혼혈아 같은 특징을 보이는 양풍화(洋風畵)가 출현하여 모모야마 문화의 국제적 성격을 감지케한다.
공예:금공(金工)에서는 대건축물을 위한 수요로 장식금구의 기법과 의장이 발달하였다. 염직에서는 자수나 문질러 입히는 금박이 구사된 대담한 디자인이 선호되었다.
서예:근위삼맥원신윤根衛三貊院信尹이 전대의 수법에 송宋의 장즉지張卽之(즈앙 지즈)의 서풍을 가미한 남성적인 서풍을 창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