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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징

상징 象徵 symbol(영)

그리스어 ‘symbolon’(함께 혼합된 것이나 식별 기호라는 의미)에서 유래. 질적, 형식적으로는 다른 두 가지의 것이 서로 독립적인 뜻을 가지고 있으면서 어떤 의미로 관련을 맺고 한편이 다른 편을 표징(zeichen) 또는 대표하는 것이다. 논리적으로는 결합되기 어려운 양 계기를 초논리적으로 매개하는 표현법이다. 일반적으로 감상적인 것에 있어 초감각적인 것(이성)이 표현되는 것이므로 미*(美)가 이념의 감상화, 감각적인 것의 정신화라는 측면에서 상징은 미학*상 극히 중요한 개념이다. 미학에서 상징은 마술적, 신비적, 종교적인 세계 질서에서 근대적으로 분리되면서부터 그 의미를 획득하게 되었다. 상징은 정태적인 알레고리*와 달리 감각적으로는 접근할 수 없는 경험 영역들의 지각과 인식을 위한 역동적이고도 창조적인 매개물이다. 따라서 예견자나 천재로서의 예술가는 신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 진리와 가상, 이념과 현상 사이의 중개자가 된다.
상징은 고대 범신론적 우주론의 입장에서는 참되거나 신적인 것을, 관념론적 형이상학에서는 절대적인 것이나 비합리적인 것을, 경험론의 입장에서는 보편인간적인 것, 자연법적인 것, 원형적인 것을 의미한다. 상징은 자연적 상징(예를 들어 빛은 진리의 상징)과 관례적 상징(예를 들어 십자가는 기독교의 상징) 등으로서 언어, 신화, 종교, 철학 등의 문화 영역과 사회 전반에 걸쳐 사용된다. 예술적 상징법의 분석과 해석은 도상학*에서 상징의 정신사, 문화사, 형식사적 연구, 예술의 정신분석 및 문예학적인 모티브* 연구 등을 형성했으며, 기호*(sign)로서의 상징은 기호학적 연구에도 영향을 끼쳤다. 미술에서는 전통적인 상징들이 그대로 쓰일 뿐 아니라, 예술가에 의해 새로운 상징이 창조되기도 한다. 가령 뵈클린Arnold Böcklin(1827~1901)의 회화, 메테를링크Maurice Maeterlinck의 희곡 등에서 볼 수 있는 공상적 상징이 그것이다. 한편 논리학, 수학, 자연과학에서 사용되는 상징은 일반적인 의미와 달리 기호 또는 부호라고 쓰인다.

상징주의

상징주의 象徵主義
Symbolism(영) Symbolisme(프)

1880년대 후반에 프랑스에서 시를 중심으로 시작된 문학운동. 미술에서는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1821~1867), 말라르메Stéphane Mallarmé, 랭보Arthur Rimbaud 등 시인의 영향 하에 반사실주의적인 경향을 지향했으나, 문예의 경우처럼 명확한 주장이나 운동으로 확립되었던 것은 아니다. 쿠르베Gustave Courbet(1819~1877)는 “회화는 본질적으로 구체적인 예술이다. 그것은 실재하는 사물의 재현에 의해서만 구성된다. 추상적 대상은 회화의 영역에 속하지 않는다”라는 말과 같이 사실주의* 미학을 펼쳤고, 이러한 회화 이념에 대한 반발로 시인 모레아Jean Moréas는 1886년 9월 18일자 《르 피가로Le Figaro》 지에서 상징주의 선언을 발표했다. 그는 예술의 본질적 원리는 ‘사상에 감각적 형태를 씌우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상징주의의 목적은 물질세계와 정신세계 사이의 갈등을 해소하는 것이었다. 상징주의 시인들은 시적 언어를 내면생활의 상징적 표현으로 여겼으므로 화가들에게도 신비와 마술 등을 시각적으로 표현할 것을 요구했다. 상징주의 미술은 인간의 내면을 강조하고 비합리성을 추구함으로써 일상적인 이미지의 왜곡과 비사실적인 우화세계 및 주제의 기묘한 병치를 일으켰으며, 이는 19세기 중반 사실주의의 개념을 파기하는 것이었다. 현실적 주제보다는 신화적이고 신비한 주제를 도입하여 상상의 세계를 그리는 것은 어떤 감정이나 사고에 상응하는 조형세계가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며, 해설이나 설명 없이 감정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미술에 대한 추구가 상징주의 화가들에게 가장 중요했음을 말해준다.
상징주의 미술에 대한 논평은 처음에는 고갱Paul Gauguin(1848~1903)과 퐁타방파* 및 나비파*와 관련된 것이었으나, 점차 퓌뷔 드 샤반느Pierre Puvis de Chavannes(1824~1898), 르동Odilon Redon(1840~1916), 모로Gustave Moreau(1826~1898), 카리에르Eugéne Carriére(1849~1906) 등의 신비적인 주제와 시적, 종교적인 관념을 표현한 세기말적 작품들을 포함하게 되었다. 고갱의 열광적인 후원자였던 평론가 오리에Albert Aurier는 1891년 3월 《메르퀴르 드 프랑스》에 발표한 논문 <회화에 있어서 상징주의>에서 예술작품은 사상이 있어야 한다. 사상을 형식으로 표현하는 것이므로 상징적이어야 한다. 일반적인 이해를 위한 양식으로 여러 형태와 기호를 제시하므로 종합적이어야 한다. 예술이 묘사하는 대상은 객관적인 것이 아니라, 주관에 의해 인지된 사상의 표지이므로 주관적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예술은 결과적으로 장식적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장식적인 그림이란 동시에 주관적, 종합적, 상징적 사상의 표현이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종합적’이란 말은 종종 회화의 상징주의 운동과 시의 상징주의 운동을 구별하기 위해 사용된다. 그리고 적어도 어느 부분은 상징주의 운동과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는 나비파 화가들의 작품에도 사용되는 단어이다. 나비파는 《상징주의자로서의 세잔느》(1907)를 쓴 이론가 드니Maurice Denis(1870~1943)에 의해 상징주의자들로 간주되었다. 그는 상징주의에 대해 “본래 신비적이거나 이상주의적인 운동은 아니다. 이것은 풍경화가와 정물화가들에 의해 시작된 것이지 영혼을 그리고자 하는 화가들에 의해 시작된 것 역시 아니다. 표현된 주체가 우리의 정신상태를 일깨우는 것이 아니라, 작품 그 자체가 최초의 감각을 전달하고 감정을 영속시킨다. 모든 예술작품은 어떤 경험된 감각의 혹은 더 빈번하게는 심리적 사실의 전위(轉位), 열정적인 등가물, 희화이다”라고 말하였다.
상징주의와 상징주의자들의 예술에 대한 개관은 여러 간행물을 통해 출판되었다. 《데카당Décadant》 《보그Vogue》 《상징주의자Symboliste》 가 1886년에, 《메르퀴르 드 프랑스》가 1891년에 출판되었다. 퓌뷔 드 샤반느는 “명료한 사상 각각에는 그것을 번역하게 하는 시각적 사고가 각각 따른다”고 믿었으며, 드니가 ‘회화의 말라르메’라고 부른 르동은 자신의 목적을 “인간의 감성을 아라베스크한 것으로 변형시키는 것”이라고 천명했다. 모로는 마티스Henry Matisse(1869~1954)와 루오Georges Rouault(1871~1958)를 비롯한 야수주의* 작가들의 스승이 되었으며, 카리에르는 몽환적, 문학적인 내용을 무채색조로 그렸다. 상징주의자들은 새로운 회화양식을 창조한 것은 아니었으나, 예술적 형식보다는 시적 사상의 표현, 마술과 종교적 신비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인 일종의 개인주의자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