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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뮬레이션

시뮬레이션 simulation(영)

원래 위조품 혹은 모제품(replica)을 뜻하는 단어이지만, 오늘날 일반적으로 현실의 현상을 컴퓨터 등의 기계장치에 의해 모방적으로 재현하는 실험을 말하며 흔히 ‘모의’라고 번역되기도 한다. 최근의 미술 평론*에서 시뮬레이션은 사실상 시뮬라크럼(simulacrum, 복수형은 simulacra)과 동의어로 간주되고 있다. 위조품을 모사하거나 뉴스 거리가 될만한 사건을 그대로 재연하는 활동을 의미하는 시뮬레이션은 1970년대 말에 커다란 반향을 불러 일으킨 프랑스의 사상가인 보들리야르Jean Baudrillard가 이 용어에 독특한 의미를 부여하면서 포스트모더니즘*과 연결되어 미술계에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즉 오리지널*이 없는 복제*를 만드는 작업을 시뮬레이션으로, 그 복제를 시뮬라크르(simulacre)라고 지칭하게 된 것이다.
보들리야르는 더 이상 실재(reality)와 그것을 묘사한 이미지를 구분할 수 없게 되었고, 예전에는 이미지로서 묘사되었던 실재를 이제는 이미지가 대체해 버렸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이미지의 범람을 토대로 정보가 포화되고 미디어가 지배하는 현대는 리얼리티 자체가 소멸되는 하이퍼리얼리즘*의 시대이며, 이 세계는 모조품인 시뮬라크럼이 지배하는 추상적인 곳이라는 비관적인 세계관을 피력한 바 있다. 특히 그는 1983년 《아트 앤드 텍스트 Art & Text》 9월호에 개제한 논문인 《시뮬레이크라의 진행 The Precession of Simulacra》에서 “이제 더 이상 모방이나 복제의 문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실재 자체를 실재의 기호로 대체하는 문제만이 남아 있을 뿐”이라고 주장하였다. 정보와 이미지를 계속 재생하고 복제하는 새로운 테크놀로지-TV, 팩시밀리, 유전공학까지 포함하는-에 대한 반응으로 보들리야르는 원본성(authenticity)의 개념이 본질적으로 무의미하다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그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무엇이 오리지널인가? 그리고 공적인 사건들은 어디서 끝나며, 이 사건들을 재현하고 해석한 수많은 이미지의 흐름은 어디에서 시작하는가?” 이러한 보들리야르의 추론은 아방가르드*적 독창성(originality)에만 가치를 부여했던 근대 시대가 막을 내리려 하는 시점에서 독창성이 갖는 의미가 무엇인가에 대해 고심하였던 일부 포스트모더니즘 작가들의 태도와 일치한다.
찰스워드Sarah Charlesworth, 헤일리 Peter Halley(1953~ ), 크루거Barbara Kruger, 셰리 레빈Sherrie Levine(1947~ ), 프린스Richard Prince 등과 같은 미술가와 이들에 대해 논평한 평론가들은 종종 보들리야르가 주장한 시뮬라크럼 개념을 언급하였다. 이 중에서 레빈을 비롯한 다수의 작가들이 미술사나 대중문화에 등장했던 기존의 이미지를 의식적으로 선택하여 오리지널리티를 비판하는 차용*(appropriation)의 방법론을 채택하였다. 특히 1980년대 중반에는 이러한 경향을 반영하는 ‘시뮬레이셔니즘(simulationism)’이라는 용어가 잠시 유행하기도 했다.